Travel & People

People

[추억] 쁘띠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다

Onepark 2021. 9. 8. 08:00

우리집 귀염둥이 쁘띠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1]

견생(犬生)으로 13년 2개월을 살았으면 장수(長壽)한 셈이라고 하나 우리 가족에게는 창졸간에 닥친 일이라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2021년 초 초음파검사 결과 간 쪽에 종괴가 보여 관찰을 요한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 반 년 만이었다.

두 달 후 검진에서는 간의 종괴가 커지고 비장에도 나타났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것보다 심장판막이 약해져 피가 역류하고 심장에서 잡음이 들려 심장약 복용을 검토할 단계가 되었다는 게 더 신경이 쓰였다.

 

지난 8월 검진에서 비장에 혈관육종이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진단이 나온 후 쁘띠가 불과 보름만에 우리 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마지막에는 심한 경련발작을 일으켰으니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급격히 악화되었는지 수의사들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마 전부터 내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자꾸 안아달라고 응석을 부린 것이 몸이 안 좋아 주인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음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안아주면 얼마 안 있다 내려가겠다고 하는 걸 되풀이 하길래 짜증을 내기도 했다. 

 

2015년 주인 무릎을 짚고 서 있는 쁘띠

 

요즘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가 네 집 중 한 집 꼴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집 개가 죽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이어서 그 집 식구들의 상실감(Pet loss)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반려견이 안겨 준 정서적 만족감, 행복감을 그 집 식구들 외에는 전혀 체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반려견 자랑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도 공동의 체험이 없는 탓이다.

 

과연 그러할까?

역사나 예술 분야에서는 그것을 실감나게 표현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도 반려견의 존재 또는 그 상실감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영국의 화가 브리튼 리비에르(Briton Riviere, 1840~1920)가 그린 일련의 반려견 그림들을 보자.

반려견이 얼마나 주인에게 충직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 Briton Riviere, "Sympathy", 1878.
* Briton Riviere, "His Only Friend", 1871.

 

지금부터는 제3자로부터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집 강아지 쁘띠 이야기를 할 차례다.

위에서 말한 브리튼 리비에르, 바이런 경, 프리드리히 대왕의 반려견보다는 체구도 작고 주로 집안에서 살며 분리불안이 심한 말티즈 소형견이었다. 내가 2018년 정년퇴직하고 코로나 팬데믹이 휩쓴 후에는 거의 24시간을 함께 한 나의 충직한 벗이자 산책동무였다.

"쁘띠"하고 부르면 고개를 갸우뚱 하고 그 다음 무슨 말을 할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마지막 떠날 때까지 비틀거리면서도 대소변은 꼭 화장실에 가서 하는 깔끔한 성격이었다.

 

* 자기를 모델로 한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쁘띠
* 일반적으로 말티즈는 영리하고 질투심이 많다고 한다.
* 특히 저녁 산책을 좋아한 쁘띠 얼굴 위로 저녁놀이 비치고 있다.

 

며칠 전 동물병원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선고를 받고 집에서 편안하게 고통없이 쁘띠의 마지막 날을 맞기로 작정했다. 개는 죽기 직전 통증을 참을 수 없을 때야 비로소 소리를 지를 뿐 주인이 알지 못하게 고통을 내색하지 않는다는 수의사의 말을 듣고 새삼 놀랐다. 오래 전부터 개란 동물은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면 주인에게서 버림 받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랬을까? 진화론적인 설명이 너무 잔인하다고 여기며 쁘띠에게 3일 이상 지속되는 진통 패치를 복부에 붙여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걸을 수도 없는 쁘띠를 품에 안고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다녔던 코스를 한 바퀴 돌았다. 이날 따라 "학교종이 땡땡땡" 동요를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래 전부터 서리풀 공원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는 슬개골이 약한 쁘띠를 안아들고 "산토끼"와 "학교종" 동요를 부르곤 했었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가 즐겨 불렀던 동요를 영어로 번역할 생각도 하고 KoreanLII에 영어 번역문을 싣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선생님이 학교종을 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승에서의 생이 끝났다는 종을 치실 때 쁘띠 뿐만 아니라 나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리라는 상념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사실 이 블로그에는 매달 쁘띠 사진이 오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쁘띠는 내가 생활하고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모든 장소에 함께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쁘띠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3]

 

* 계절 따라 쁘띠가 자주 다녔던 서리풀공원의 한적한 산책로
* 2018년 3월에는 큰 개에 물려 턱뼈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 지난 겨울 아파트 단지에 처음 등장한 눈사람 가족과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한 쁘띠

 

쁘띠를 집에 데려온 후 탈수증이 심해 더 이상 두고볼 수가 없어 9월 6일 아침 다시 동물병원에 입원시키고 영양제와 수액을 맞혔다. 반려동물의 마지막 때를 집에서 보내자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너무 힘들고, 동물병원에 입원시키자니 자칫하면 마지막을 보지 못하는 딜레머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쁘띠의 상태가 호전되면 집에 데려온다는 기대와 희망을 갖기로 했다.

 

이미 한 차례 혈압이 크게 떨어지는 바람에 며칠 전 한밤중에 다른 큰 병원 응급실로 가서 수혈까지 받은 터였다. 그 병원에서는 각종 정밀검사를 통해 종양이 거의 모든 장기에 퍼져 있고, 수혈을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다는 수의사의 절망적인 선고를 들어야 했다.

큰 병원에서 일단 퇴원을 했으나 쁘띠가 물을 거의 못 마시기에 다시 동네 동물병원에 가서 수액을 공급하며 상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다음날 내가 병원으로 면회를 가서 안아들자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는 바람에 크게 놀랐다. 아마도 주인의 손길을 기억하고 반갑다는 몸짓을 한다는게 그만 경련발작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수의사는 종양이 뇌까지 침범하여 뇌에 병변이 일어난 것 같다는 진단과 함께 일단 항경련제를 투입하여 진정시켰다.

 

여러 차례 항경련제의 투여로 쁘띠가 다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주인을 알아보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내가 병원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도 쁘띠가 다시 1~2시간 간격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매우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마도 쁘띠가 그런 흉한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 판단되어 당초 Negative한 입장이었던 내가 먼저 '안락사' 제안을 했다.[4]

 

 

심경이 매우 착잡한 가운데 얼마 전 번역해 두었던, 제인 에어로 유명한 샬롯 브론테의 "Life"란 시를 꺼내 다시 읽어보았다. 그 중 두 번째 세 번째 연(聯)이 쁘띠가 우리 식구들에게 전하는 말 같아서 쁘띠와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식구들 앞에서 낭송하고 위로를 삼았다.

 

9월 7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8시 반 동물병원에서 식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쁘띠와의 마지막 시간을 가졌다. 그 동안 쁘띠가 우리들에게 기쁨과 행복감을 안겨준 이상으로 우리는 한없는 슬픔과 비탄감에 젖어 들었다. 우리 모두 쁘띠의 마지막 따스한 몸에 손을 얹고 부디 병마의 고통을 잊고 편안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기를 빌었다. 쁘띠는 우리들에게 오래오래 웃음과 얘깃거리를 전해 주었음에도 너무나 짧게 눈물로 배웅하는 수밖에 없었다.

 

* 어느 반려견이나 다 그렇지만 쁘띠는 우리 가족의 손길을 좋아했다.

 

Life  by Charlotte Brontë

- 샬롯 브론테

 

Rapidly, merrily,
Life's sunny hours flit by,
Gratefully, cheerily
Enjoy them as they fly!
What though Death at times steps in,
And calls our Best away?
What though sorrow seems to win,
O'er hope, a heavy sway?

재빨리 즐겁게
삶의 빛나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요.
감사한 마음으로 유쾌하게
날아가는 시간을 즐기세요!
때로는 죽음의 신(死神)이 끼어들어
제일 좋아하는 이를 데려간들 어때요?
슬픔이 승리하는 듯하여
희망을 무겁게 흔들지만 뭐 어때요?

Yet Hope again elastic springs,
Unconquered, though she fell;
Still buoyant are her golden wings,
Still strong to bear us well.
Manfully, fearlessly,
The day of trial bear,
For gloriously, victoriously,
Can courage quell despair!

그러나 희망은 잽싸게 튀어올라
쓰러질지언정 굴복하진 않아요.
희망의 금빛 날개는 여전히 펄럭이고
우리가 잘 버틸 수 있을 만큼 강해요.
씩씩하게, 두려움 없이
시련의 날을 견뎌내세요.
영광스럽게, 의기양양하게
용기는 절망을 물리칠 수 있어요.

 

* 쁘띠의 마지막 가는 길 (김포 엔젤스톤 반려동물 장례식장)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달라진 모습의 쁘띠를 담은 상자를 안고 미리 예약해 놓은 김포의 엔젤스톤[5]에 달려가 화장까지 마쳤다. 온 가족이 쁘띠와 얽힌 추억담을 서로 이야기하고 지난 시절을 그리워했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밤길을 유골함을 손에 받들고 이미 형체가 사라진 쁘띠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쁘띠가 돌아다녔던 작은방 거실 창가에 쁘띠 사진과 함께 올려놓았다.

 

펫 로스 증후군 때문인지 쁘띠 생각만 하면 수시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14년을 함께 했던 벗에 대한 당연한 정서적 반응이라 여기고 더 이상 눈물을 참지 않기로 했다.

간밤에 추적추적 내리던 비도 그치고 이튿날 하늘은 환상적인 가을하늘의 모습을 보였다. 우리 눈에는 쁘띠가 무사히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는 사인으로 비쳤다. 

 

* 9월 8일 서울 역삼동에서 바라다보이는 우면산 쪽 청명한 가을하늘

Note

1] "무지개다리를 건너다"란 동물 등의 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영시산책 《축복》(비채출판, 2008) 번역 및 해설 참조.

 

3] 개가 도덕이나 처세훈, 종교적 예화에 등장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줄 수는 없지만 개도 주인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는 먹는다. 마태복음 15:27.
  • 개는 내일 걱정 안하고 현재를 즐길 줄 안다 (Carpe Diem).
  • 주인을 잘 만나야 개는 행복해진다.
  • 개도 주인을 잘 섬기면 안락한 삶을 보장 받는다.
  • 개도 짖거나 낑낑대야 주인이 알아차린다.
  • 개를 훈련시키려면 적절히 칭찬하거나 꾸짖어야 한다.
  • 집 나가면 '개' 고생
  • 불쌍한 표정을 지어야 개도 원하는 것을 얻어 먹는다.
  • 개도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 땅을 뒤지는 개가 땅에 떨어진 것을 줍는다.
  • 개는 무리 속에 들어가면 금방 자기의 서열을 알아차린다.

4] 사람과는 달리 반려동물의 안락사(euthanasia)는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동물의 고통이 심할 때 가족이 합의하에 요청하면 수의사가 실시한다. 기본적인 의례를 갖추어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을 같이 보낼 수 있게 배려하고, 반려동물에 대해 약물로 일차 깊은 수면상태를 유도한 후 심정지 및 폐정지 약물을 순차로 투여한다. 끝으로 수의사가 청진을 하여 사망을 확인하고 사망을 선고한다. 소요시간은 10~20분 정도. 가족이 원하면 깨끗하게 사체를 닦은 후 청결한 상자에 배변패드를 깔고 아이스팩을 넣어 가족에게 인도한다. 동물보호법에 의해 반려견 등록을 한 경우에는 소정 절차에 따라 관할 지자체에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5] 반려동물의 호스피스와 장례식은 일을 처음 겪어보는 사람은 당황하기 쉽다. 그 동안 다녔던 동물병원에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동물병원의 안내를 받고 찾아간 엔젤스톤(김포시 하성면 양택리 소재)은 예약 고객에 한해 밤 10시까지 접수를 하였으며, 비록 동물일지언정 가족의 입장에서 깍듯이 예를 갖춰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Annex 1

이 블로그나 인터넷에는 다음과 같은 쁘띠와의 추억이 간직되어 있다.

 

2011.05.   우리집 귀여운 강아지 쁘띠

2012.10.   KoreanLII의 Pet 기사에 등장한 쁘띠의 사진과 일화

2015.08.   애견카페에서 보낸 여름휴가 (동영상)

2017.05.   꽃밭(?)에서 노는 쁘띠 (동영상)

2019.03.   새봄을 맞아 진달래 꽃 밑에서 뛰어노는 쁘띠

2019.03.   질투심(Jealousy) 많은 쁘띠는 저 말고 다른 식구를 보고 예쁘다고 하면 으르렁 거렸다.

2019.06.   연필 드로잉으로 그린 쁘띠

2019.10.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2020.01.   가족신문의 제호에 등장한 쁘띠

2021.01.   눈사람 가족과 쁘띠

2021.04.   쁘띠의 새봄맞이 벚꽃 구경

2021.08.   꽃이 만개한 배롱나무 아래에서 쁘띠

2021.08.   옥잠화 하얀꽃 밑에서 시들해진 쁘띠

 

Annex 2

외국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반려견을 위한 마음을 표현한 사람이 적지 않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 경(George Gordon Lord Byron, 1788~1824)은 자신이 키우던 보우썬이 죽었을 때 실제로 개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새겨놓았다.

표면상으로는 사랑했던 개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지만, 반어법적으로 겉모습이 잘생겼다고 잘난 척하고, 힘 좀 있다고 오만하고, 용기가 있다고 잔인해지는 인간들의 야비한 성향을 꼬집고 있다.[2]

 

Inscription on the Monument of a Newfoundland Dog

by George Gordon Lord Byron

Near this spot
are deposited the remains of one
who possessed beauty without vanity
strength without insolence
courage without ferocity
and all the virtues of man without his vices.
This praise, which would be unmeaning flattery
if inscribed over human ashes,
is but a just tribute to the memory of
Boatswain, a dog
who was born at Newfoundland, May, 1803,
and died at Newstead Abbey, Nov. 18, 1808.

 

어느 뉴펀들랜드 개의 묘비명

이곳 근처에
그의 유해가 묻혔도다.
그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되 허영심이 없고
힘을 가졌으되 거만하지 않고
용기를 가졌으되 잔인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덕목을 가졌으되 그 악덕은 갖지 않았다.
이러한 칭찬이 인간의 유해 위에 새겨진다면
의미 없는 아부가 되겠지만
1803년 5월 뉴펀들랜드에서 태어나
1808년 11월 18일 뉴스테드 애비에서 죽은
개 보우썬의
영전에 바치는 말로는 정당한 찬사이리라.

 

* Briton Riviere, "Fidelity", 1869.

 

바이런 경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 이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1712~1786)일 것이다. 그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계몽군주로서 독일인들은 그를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이라고 부른다.

연전에 베를린 근교의 포츠담에 있는 프로이센 왕국의 여름별궁 상수시(Sans Souci 근심 없는) 궁전을 찾아갔을 때 아주 이색적인 광경을 보았다.

 

아름다운 궁전과 널찍한 정원은 베르사이유에도 있지만 상수시의 여러 계단의 테라스에는 포도나무 넝쿨이 뻗어 있었고 정원 한켠의 대왕 묘 위에는 방문객들이 감자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대왕의 반려견 묘석도 함께 놓여 있는 것이었다.

그리스・로마 문명과 프랑스식 예술・학문 그리고 포도주를 애호한 대왕으로서 포도나무가 무한한 영감과 예술성의 원천이라 생각했을 터이다. 대왕의 묘 위에 놓인 감자들은 그가 독일에 감자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기아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에 대한 독일인들의 감사 표시였다. 대왕이 남미에서 들여온 감자를 처음 보급할 때 서민들이 못 생기고 맛도 없는 감자를 멀리하자 역으로 감자를 귀족들만 먹을 수 있게 하고 서민들에게는 이를 금했다고 한다. 그러자 일반 서민들에게 묘한 호기심과 관심을 유발함으로써 식용 감자를 조기에 대중화하는 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고 고문을 폐지한 계몽군주의 유택 치고는 너무 소박한 대왕의 묘역
* 감자가 놓여 있는 프리드리히 대왕 묘역과 11마리 반려견들의 묘석

 

그런데 반려견의 묘역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프리드리히 대왕의 부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군대식으로 엄격했고 매우 독선적이었다. 왕자가 병정놀이보다 책과 플루트를 더 좋아하는 것이 못마땅해 체벌을 가하기까지 했다. 28세에 왕위에 오른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런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정략결혼한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상수시 궁전의 왕비 방은 비어있기 일쑤였다. 그 빈 자리를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 같은 방문학자와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등 수십 마리의 반려견이 채웠다. 그래서 대왕의 유언에 따라 왕비가 아닌 반려견의 묘석이 대왕의 묘 옆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