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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Onepark 2021. 10. 19. 09:40

정년퇴직한 지 3년이 지났다.

코로나로 외출을 자제하고 '집콕'하며 지내다 보니 간만에 만나는 사람마다 인삿말처럼 요즘 뭘 하고 지내는지부터 물어본다.

전에는 책 읽고 음악 듣고 산책한다고 했으나 반려견이 떠난 뒤에는 아침 저녁으로 하던 산책도 뜸해졌다.

잘 아는 사이라면 온라인 법률백과사전 KoreanLII를 업데이트하는 일로 바쁘다고 하겠지만 KoreanLII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설명이 난감해진다.

 

나이가 들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많이 닮는다는 말이 있다. 일반적인 노인의 모습을 띠게 된다는 말도 된다. 돌이켜 보면 부친은 정년 후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르셨고 철따라 먼 곳으로 산행을 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일기를 쓰시고 지인들에게는 종종 편지를 부치셨다.

고인의 일기나 편지를 보면 그분의 생전의 삶에 대하여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하기야 통일신라 시대의 장보고가 20세기 중반까지 잊혀져 있다가 역사에서 부활한 것도 일본 승려의 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말이다.[1]

삶의 기록을 위해 요즘 MZ세대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Vlog로 남기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얼마 전 한글날을 맞아 1446년 세종임금의 훈민정음 반포 이후 지식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배우고 익히기 쉬워 부녀자를 비롯한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 증거가 조정에서 언문청을 만들어 유학과 불교 경전을 한문과 혼용하여 한글로 간행한 책자들이다. 이것은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데 임진왜란 6년 전 장사지낸 무덤 속의 부장품에서 발견된 순한글 서찰이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2] 옛날에는 종이 값이 워낙 비싸서 일반 사람들은 글을 써서 남기는 일이 드물었지만 간혹 예외적인 일도 벌어졌던 모양이다. 

 

* 안동 무덤에서 발견된 한글편지(1586). 안동대 박물관 소장.

 

요사이 BTS의 메가히트 곡, 오징어 게임 같은 K팝, K드라마 덕에 세계인의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440년 전 무덤에서 발견된 한글 편지라니 외국인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인지 궁금하여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명(非命)에 간 남편을 여읜 여자가 어디 한둘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원이엄마라고 하는 그 부인은 자신의 슬픔을 곡진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꿈속에라도 보고 싶으니 꼭 나타나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을 대등한 관계에서 부르는 '자내(자네)'라고 호칭한 것도 특이했다.[3]

 

자신의 이름도 없이 그저 원이엄마라고 불렸던 조선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만 특별할 것도 없었다. 누구나 다 그랬으니까. 그런데 원이엄마가 애닯은 마음을 쫓기듯 몰래 적어놓은 글이 이렇게 살아남아서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인이 노래 (Who Has Seen the Wind?) 했다. 바람을 본 적이 있냐고. 나뭇잎이 살랑거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면 틀림없이 바람이 지나간 것이라고. 

그래서 KoreanLII에 한국의 아름다운 시를 영어로 번역 소개하는 것처럼 이색적인 이 편지글도 영어로 번역해 볼 작정을 했다. 원본은 국립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소장[3]되어 있으며, 인용한 글은 구둣점을 붙여서 현대어로 잘 고쳐져 있다. 필자는 번역의 편의상 문단을 나누었다.

 

* 혜원 신윤복, "기다림". 간송미술관 소장.

 

원이 아버지께

Dear Won’s Father,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You used to say to me, “Let’s die at the same time after getting old together.”
What on earth you departed too early leaving me alone?
Why do you leave alone and how can I live with a little baby?
How did you bring me your mind, and how did I bring my heart to you?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While we lay in bed, I used to say to you,
“Honey, I wonder if other couples love each other like you and I? Are they really same to us?”
How can you leave me alone too early not considering such situation?
Without you, I cannot dare to live alone.
I want to fly to you quickly. Please, take me as soon as possible.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I can’t forget my heart toward you in this world, and my sorrowful mind is limitless.
I think it impossible that I live with our child while leaving my mind somewhere but longing for you.
If you read this letter, please come to my dream and tell me in detail.
I wish your kind words, so I put inside my message like this.
Oh, come to see it, and tell me something.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깃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I remember you said, “I have something to tell a baby in your womb upon birth.”

Now that you left us, how can I tell the new-born baby whom to call Papa?
Whatever it is shan’t be same as my mind! There must be no sad thing like this.
You may stay there for long. Anyhow you cannot feel sorrow like my mind.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서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Because it is limitless and borderless, I can’t express my mind but a little.
If you read this in full, then come to my dream and show me to tell me details.
I believe that I can see you in a dream.
Please, come to show yourself secretly. Now I have to cut my endless words.

 

 

영어로 번역을 하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례식 때 경황이 없었을 터인데 짧은 시간에 이렇게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나중에는 지면이 모자라 여백에도 빼곡히 썼지만, 단락을 나누고 보니 [고인에 대한 원망→생전의 사랑 회고→꿈속으로의 초대→아이 양육의 걱정→혼백과의 대화 요청]으로 미망인이 표현하는 바가 분명했다.

 

전에 주요한의 "불놀이"를 단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자유시로만 알고 있다가 산문시의 단어를 하나하나 번역하면서 다섯 개 연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아 DABDA 5단계(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4]를 표출한 것임을 발견한 적이 있다. 원이엄마의 편지는 "불놀이"의 전개방식과도 매우 흡사하였다.

 

편지글을 되풀이 읽으면서 상상을 보태니 양반집 젊은 부부의 금실좋았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부부가 생전에 얼마나 정담을 많이 나누었으면 꿈속에라도 나타나 말을 걸어달라고 간청했을까! 

예전에 여러 번 보았던 영화 "사랑과 영혼"(원제는 Ghost) 못지 않다고 여겨졌다.

당시 과학지식으로는 원인 모를 병(감염병으로 추정)이 살인자보다 더 무서웠고 죽음의 원인을 파헤지기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면 그 이상이었다.

 

* 신윤복, "월하정인". 간송미술관 소장.

 

위의 편지를 보면 원이아빠와 엄마는 서로 아끼며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 부부처럼 사랑하는지 궁금해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 미인도 중에서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5]이 떠올랐다. 

망자(亡者)를 그리워하고 영원한 이별을 안타까워 하는 원이엄마의 심정이 위의 번역문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반의 반 만큼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배우고 소통하기 쉬운 한글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KoreanLII에 이 편지글을 올리기로 했다.

 

그럴 때마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견강부회/牽強附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점검(self check)해 보는 차원에서 자주 읽곤 하는 또 다른 시도 여기 영어번역과 함께 소개한다.

시인이 마음에 등불을 켜고 사람과 사물을 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우선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밝히고 내가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시인은 강조하고 있다.

 

 

지금 그대 마음에 등불이 있는가?  - 박노해

Now, do you have a lamp in your heart?  by Park No-hae

 

아하 그렇구나

아름다운 사람은 이렇게 그 자체로

사람을 설레게 하고

사람을 성찰하게 하고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밝히게 하는구나.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가려면

내가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어야겠구나.

Aha, I see.
A beautiful person himself
is making others miss it,
others contemplate it, and
brightening up the beauty inside oneself, isn’t he?
In order to change the world beautiful,
first, I have to become a beautiful person.

내가 있음으로

자신이 한 번 더 돌아봐지고

내가 있음으로 자기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

자신을 망치는 것들과 치열하게 싸워 나가는

아름다운 등불로 걸어가야겠구나.

나이 들수록 더 푸르고 향기 나는

아름다운 사람의 등불로

다시 그 등불 아래로

Because of my presence,
I have to look back myself once more.
My presence would make me more beautiful, and
force me to fight against the bad things destroying myself.
So I have to stride toward the beautiful lamp.
It will be more promising and fragrant while getting older
It must be the lamp of a beautiful person.
Once again, it invites us to under the lamp.

Note

1] 장보고는 한 때 동아시아의 해역을 호령했던 인물이지만 역적으로 몰려 정사(正史)에서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일본의 승려 옌닌(圓仁, 795~864)이 그의 배를 타고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오고, 신라방 법화원에서도 여러 달 지냈다는 기록(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礼行記)을 남겼다. 하버드대 라이샤워 교수가 이를 인용해 장보고를 동아시아 해상제국의 왕자라고 표현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역수입(?)되었던 것이다.

 

2] 1998년 택지 개발이 한창이던 경북 안동시 정상동 기슭에서 무덤 이장(移葬) 작업을 하던 중 4백 년 전의 목관이 드러났다. 유물을 절반쯤 수습했을 무렵 망자의 가슴에 덮인 한지(韓紙) 속에 한글로 쓴 편지가 나타났다.
조사 결과 고성(固城) 李氏 가문의 응태라는 남자가 1586년 서른한 살에 전염병에 감염되어 요절했는데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아내가 장례 직전에 쓴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짠 미투리 신발도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3] 안동 무덤 발굴에 참여한 안동대학교 박물관은 1998년 무덤에서 발견된 부장품의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저널 National Geographic (November 2007 International)과 고고학 잡지 Antiquity (March 2009)에도 소개된 바 있다. 원이엄마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는 편지와 미투리가 소설, 뮤지컬,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활동 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안동대는 2011년 상표권 등록을 마쳤다. 안동대 관계자는 "편지와 미투리가 많은 관심을 받는 가운데 일부 자의적인 사용과 무분별한 활용으로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이미지 관리를 위해 상표권 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출처: 대학저널, 2011.4.8.

이게 놀라운 일도 아닌 것이 중국 후난성 마왕퇴에서는 2100년 전 고위관리의 가족묘가 발굴되어 거기서 출토된 미이라와 수천 점의 유물로 박물관을 새로 지어야 할 정도였다. 지하에 묻혀 있던 2000년 전의 백과사전이라 부를 정도로 고고학적 가치 또한 지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4] DABDA 모델이란 스위스계 미국인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 박사가 1969년 On Death and Dying 책에서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퀴블러로스는 오랜 임상체험을 통하여 죽음을 앞둔 환자가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5단계의 심적 동요와 변화(5 Stages of Grief)를 DABDA (Denial - Anger - Bargaining - Depression - Acceptance)로 정리했다.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린 환자는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하다가 점차 "왜 하필 나지?" 분노와 원망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신을 향해 "살려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타협하려고 하지만 부질 없음을 깨닫고 절망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죽음에 임박해서는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사람에 따라 5단계의 과정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죽음이 아니더라도 극심한 심적 고통에 직면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러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이론이다.

 

5] 혜원의 月下情人圖에 적혀 있는 한시(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김명원의 시에서 일부만 발췌)는 다음과 같다.

月下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달은 기울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이야 그들만이 알겠지

The moon is tilted after midnight. It's two people's hearts that only they know.

 

시간대가 삼경이니 자정이 지난 시간의 달의 모양은 초승달도 그믐달도 아니고, 화가가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라면, 월식으로 아랫부분이 가려진 보름달이라고 한다. 일성록 등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혜원 생전에 부분월식이 보고된 날은 1784년 8월 30일 (정조 8년, 신윤복 26세)과 1793년 8월 21일 (정조 17년, 신윤복 35세)이었다.

그렇다면 시구절처럼 두 연인의 마음도 보름달이 어두워진 것처럼 헤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