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골에서 감(枾) 농사 짓는 친구가 새벽에 일 나가다가 하현달을 보았다고 SNS에 사진을 올렸다.
티없이 맑은 새벽 하늘에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반달이 차갑게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친구의 정원에도 서리가 잔뜩 내려 앉아 꽃나무들이 애처로워 보였다고 한다.
하현 (下弦) - 박훤일
Waning Moon - Whon-il Park
야심한 시간이나[1]
새벽일 하는 이
반기는 달
Workers in the small hours
or early birds will be
greeted by the Moon.
일주일 후면
사라질 운명, 다시
돌아올 거야
In a week or so,
It’s destined to disappear.
But it will be back.
초라하다 하대(下待) 마라
미구(未久)에
괄목상대(刮目相對) 하리
Don't look down on it
'cause it will show up like a sun
before long.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1924 발표)인 "푸른 하늘 은하수 하연 쪽배"에서 '반달' (윤극영 작사ㆍ작곡)은 상현달일까, 하현달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둘 다 가능해 보이지만 가사를 살펴보건대 1절에서는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또 2절에서는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로 되어 있다.
샛별(금성, 개밥바라기별)이 나타나는 해질 녘에 서쪽 하늘로 지는, 달의 아래 쪽이 둥근 상현달이라고 판단된다.
그럼 '낮에 나온 반달' (윤석중 작사, 홍난파 작곡)은 어떠한가?
"햇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길러 갈 때 치마끈에 달랑달랑 채워줬으면"이라는 가사에 비추어 낮에 해가 떠 있고 저녁밥 지으려는 할머니가 물 길러 가는 시간이므로 오후에 반달이 보이는 상현달일 가능성이 많다. 상현달은 정오에 떠서 자정에 지는 달이기 때문이다.
월출 시간은 하루에 50분씩 늦어지므로 일주일 후 보름달이 되었을 때 저녁에 동산에 떠오를 것이다.
이쯤해서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들어 보아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한 친구가 주변의 자연 현상을 보고 교만과 게으름을 경계하는 시조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작자 미상이라고 하는데 그는 벼슬길에 올랐다가 쥐꼬리만한 권세를 가지고 잇속을 챙기며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정상배(政商輩)들을 보고 환멸에 빠졌던 것 같다. 그러니 익명으로 이런 시를 써붙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굼벙이 매암이 되어 나래 돋쳐 날아올라
높으나 높은 남게 소리는 조커니와
그 우희 거미줄 이시니 그를 조심하여라
A worm becomes a cicada, which sprouts wings, and takes flight.
Apparently it looks good for you to cry loud and proud.
But beware, there's a spider's web just above you.
땅속의 애벌레가 매미 성충이 되어 날개가 돋아 날아 오르는 것은 벼슬자리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높은 나무에서 소리 좋게 우는 것은 권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바로 위의 나뭇가지에 거미줄이 있으니 기세 좋게 울던 매미도 여차하면 거미줄에 걸려 곤욕을 치를 수 있음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Note
1] 하현달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바로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이다. 그의 그림에 적혀 있는 한시(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김명원의 시에서 일부만 발췌)는 다음과 같다.
月下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달은 기울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이야 그들만이 알겠지
그런데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혜원이 그린 달은 여러 정황에 비추어 하현달이 아니라 부분월식이 있는 보름달이라 한다. 자정에 뜨는 하현달이라면 삼경(三更)은 새벽 12~1시 경이므로 현(弦)이 아래가 아니라 윗쪽에 있다. 반대로 상현달은 한낮에 뜨는 달이므로 삼경에는 이미 서산에 진 후다. 일성록 등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혜원 생전에 부분월식이 보고된 날은 1784년 8월 30일 (정조 8년, 신윤복 26세)과 1793년 8월 21일 (정조 17년, 신윤복 35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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