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칠순(七旬) 기념으로 일본 료칸(旅館)에 가서 온천욕을 하고 왔다.
처음엔 항공사로부터 그동안 쌓였던 마일리지가 곧 실효된다는 통지를 받고 그에 맞춰 어디로 해외 여행이나 다녀올까 생각하였다. 아이들과 상의했더니 어머니 칠순기념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며 큐슈 여행을 제안했다. 목적지는 1월 20일 전후에 갈 수 있는 일본 큐슈에 있는 료칸으로 정하고 아내의 희망사항을 고려하여 범위를 좁혀나갔다.
여기서 누가 "한국에서도 가볼 곳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일본 온천료칸이냐?"고 묻는다면 다음 다섯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유후인에서는 관광지마다, 심지어는 료칸에서도 한국인 방문객이 70~80%는 되어 보였다.
우리 내외 모두 일본으로 온천 관광을 몇 차례 다녀온 터라 여행 일정을 짜는 며늘아이가 퍽 고심하는 눈치였다. 큐슈에 마일리지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편은 여러 달 전에 예약을 했기에 가고오는 편 모두 좌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지 숙소는 후쿠오카 도심을 구경하고 쇼핑도 할 수 있게 하카다(博多)의 커낼(canal) 지역에 있는 호텔을 잡았고 둘째 날과 셋째 날은 각기 특색 있는 유후인(湯布院) 지역의 료칸을 예약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며늘아이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1. 뜨거운 온천수에 몸 담그기
온천탕은 첫째로 온천물이 좋아야 한다.
처음 간 곳은 물 온도도 적당히 뜨겁고 역한 유황 냄새도 나지 않았는데 미네랄 성분이 적은 탓인지 물이 미끌거려서 좋았다. 어차피 일본 온천에서는 때를 밀 수 없으니까.
유후인의 료칸 두 곳 모두 독탕이 있었는데 처음 간 세이코우엔 (淸孔苑) 료칸에서는 아기자기한 미니 정원을 바라보면서 온천욕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답답하면 히노키 나무 욕조에 걸터앉아 몸을 말리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온천욕을 하는 것이 좋은 온천성분이 체내흡수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온천에 몸 담그니 증기처럼 사라지는 근심
Submerged into hot spring water,
I was freed from troubles
like vapor.
2. 온천욕 하며 경치 구경하기
일본 온천에 올 때면 으레 노천탕부터 찾곤 한다. 몸은 뜨거운 물속에, 머리는 차가운 공기 중에 두고 물멍 때리기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깥풍경이 아름답고 풍경소리(wind chimebell), 새소리라도 들리면 금상첨화이리다.
이번 여행 중 두 번째로 찾아간 니혼노 아시타바(二本の葦束, '갈대 두 묶음'이란 뜻) 료칸은 고즈넉한 산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총 13개의 독채 빌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 가족이 묵은 방은 침실 2개에 넓은 거실이 있고 독탕 목욕실이 있는 신사이자보우(心齊坐忘, '마음을 엄숙히 가라앉혀 잊는다'는 뜻) 룸을 예약했는데 60평형 아파트를 하룻밤 빌린 것 같았다.
이 료칸은 저녁 가이세키와 조식도 훌륭했다. 그러나 대나무숲 속에 있는 죽림탕과 산 속의 大노천탕에서는 앞으로 내다보이는 경치는 천하 일품이었다. 가족탕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대노천탕은 인기가 많아서 시간을 예약하고 하루에 두 번 40분 이내로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남녀로 나누어 입욕해야 했으므로 그 시간이 더 짧았다.
나는 죽림탕을 이용객이 없을 때 한 밤중에 한 번, 새벽에 한 번 더 나 홀로 이용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온천욕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는 것이므로 머리감기, 비누칠하기는 생략하고 나무통에 물을 담아 온몸에 끼얹고 탕속에 몸을 담갔다가 공기 중에서 몸을 대강 말리는 식으로 온천욕을 즐겼다.
3. 맛있는 일본의 전통음식 가이세키 식사
료칸의 특징은 저녁에 가이세키(会席)가 나온다는 점이다. 그 료칸의 특징을 살린 고급 정식요리가 차례로 서빙이 된다.
식전에 형형색색 채소 종류의 입맛 돋구는 음식이 조금씩 차려져 나오고 사이드 디시인 생선회와 생선구이, 명란, 알콜곤로 위 프라이팬에 익혀먹는 와규(和牛)에 이어 고실고실한 흰쌀밥과 미소된장국이 나온 다음 케이크 같은 디저트로 마무리된다. 남김 없이 먹었다면 상당한 포만감을 안겨준다. 물론 일본 사케, 맥주나 하이볼 같은 주류도 따로 시킬 수 있다.
조식도 미니 가이세키라 할 만하다. 일본 사람의 도시락에 꼭 들어있다는 매실 장아찌(우메보시/ 梅干し)와 생선구이, 계란말이, 명란, 수란(水卵) 등이 한 상 차려져 나온다.
4. 일본의 전통문화 체험하기
료칸에서의 기본 옷차림이 유카타와 게다이다. 겨울철이므로 손님들에게 두루마기 같은 겉옷과 방한복까지 내준다. 허리띠를 신경 써서 매어야 한다. 나는 유카타가 어색하여 속바지를 입고, 신발을 신고 다녔다.
우리가 투숙했던 료칸에서는 가이세키 먹으러 간 사이에 이부자리를 펼쳐 놓았다.
그밖에 일본 전통문화 체험은 TV에서 생방으로 보여주는 쓰모 경기를 보는 것으로 갈음했다.
무엇보다도 료칸과 음식점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친절이 몸에 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번째 료칸에서 저녁식사 때 서빙하는 종업원이 우리 가족 사진을 찍어준다기에 '어머니 칠순 기념여행'(onsen tour to celebrate Mom's 70th birthday)이라고 했더니 식사가 끝났을 때 아내에게 생일케이크를 증정하여 우리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5. 주변지역 관광하기
유후인은 큐슈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손꼽는 온천 휴양지이므로 볼만한 곳이 제범 많다.
우선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긴린코(金鱗湖), 쌍봉우리(Twin Peaks)로 유명한 유후다케(由布岳, 1584m), 특산품ㆍ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오노쓰보 거리가 있다.
우리 가족은 코미코 미술관(Comico Art Museum)을 찾아갔다. 전통과 자연의 조화를 위해 야키스기(焼き杉: 삼나무를 불에 그을려 내구성을 높인 목재)의 검정 담장이 쳐진 구내에 아주 모던한 미술관 건물이 여러 동 연결되어 있었다. 웹툰 플랫폼 기업인 Naver의 일본 자회사 NHN Japan이 건축가 쿠마켄고에 의뢰하여 사회공헌 목적으로 설립한 미술관이다.
제1관과 제2관은 쿠사마 아요이의 펌프킨 그림 한 점씩 비추는 조명뿐이었고 실내는 아주 캄캄했다. 1관과 2관 사이에는 디지털 숫자가 빠르게 혹은 천천히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 옆 유리벽 밑으로는 물이 조용히 흘렀다.
2층에 올라가 3관과 4관의 전시품을 차례로 관람했다. 긴 테이블이 놓여 있는 라운지 밖으로 나가니 애완견 한 마리가 서 있고 그 옆으로는 까만 구체(球體)가 수직으로 연결된 탑과 바람개비가 소용돌이 치는 듯한 조형물이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리게 배치되어 있었다.
마침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젊은 남자 직원이 올라와 우리 가족의 단체사진을 자청하여 찍어주었다. 이곳에는 미술관 숍은 없고 원하는 작품 사진을 주문하여 구매할 수 있게 해 놓았다.
2층 라운지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아지 조형물 뒷쪽으로, 오늘은 비구름에 가리워 보이진 않지만, 유후인의 또 다른 명소인 유후다케(由布岳)의 쌍봉산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우리나라 여천군의 쌍봉산 아랫마을에서는 쌍둥이 출산 빈도가 높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산이었다.
놀라운 후일담 한 가지. 여천군 쌍둥이 마을에서는 지난 120여년 간 총 75세대 중 35 가정에서 38쌍의 쌍둥이가 태어나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쌍둥이 출생 소식이 없는 것은 여천공단 개발로 지맥(風水脈)이 훼손된 데다 요즘 들어 가임연령의 젊은 부부가 들어와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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