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오전 9시 50분 우리 내외는 눈 때문에 도착이 다소 지연된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아오모리 현의 같은 호시노 리조트 계열인 오이라세 계류(奥入瀬渓流) 호텔로 출발하였다.
눈발은 그쳤으나 밤새 내린 저 많은 눈을 누가 치웠을까 걱정이 될 만큼 길가에 많이 쌓여 있었다.
도와다-하치만타이 (十和田八幡平) 국립공원 가장자리에 위치한 이호텔은 2018년부터 겨울철에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도와다(十和田) 시를 벗어나자 본격적으로 도로 옆에 산골 계곡물(溪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은 거의 그쳤지만 하늘에는 낮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둥근 모습만 보여줬다.
금년 겨울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눈이 별세계처럼 사방의 숲과 들을 뒤덮고 있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1시간 반 만에 화산으로 생긴 호수를 에워싼 국립공원 입구에 도달했다.
호텔 입구에서 직원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승객들의 짐도 그들이 직접 로비로 날라다 주었다.
호텔 로비가 엄청 크고 높았다. 우리를 이렇게 불러모은 이유는 빙폭 구경 하이킹 등 액티비티 활동을 예약한 손님들에게 오늘 일정을 안내하기 위함이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빈 자리가 있으면 참여할 수 있다고 했으나 안내 데스크에서는 내일 자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대신 모스볼, 표주박 램프 만드는 인도어 활동 몇 가지를 추천해줬다.
설신을 빌려 신고 눈밭으로 나가기도 뭣해 우리는 호텔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금년 겨울에 많은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웠다 풀렸다 했는지 처마에는 고드름이 사람 키보다 크게 자라 있었다. 나무들도 가지마다 눈을 한 아름 안고 서 있었다. 어느 곳을 둘러 보아도 한 폭의 흑백 산수화를 보는 것 같았다.
계곡이 있는 쪽으로 가니 국립공원 매점이 있고 이 지역의 특산물을 전시해 놓고 팔고 있었다.
호텔에서 보았던 표주박으로 램프를 만드는 공방이 있고, 공원 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극사실화로 그려서 전시 판매하는 화가의 코너도 있었다.
산정호수는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계류로 흘러내리는 것 말고 일부 수력발전도 이루어진다고 했다.
매점에서 녹차 요거트를 사 먹고 눈이 그친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처럼 눈 싸움도 하고 이곳 저곳을 향해 사진을 찍기 바빴다.
호텔 로비로 돌아와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와 차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거나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보거나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면 되었다.
나는 프론트데스크에서 타올을 빌려 노천탕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이윽고 오후 2시가 되자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어제보다 더 널찍한 양실이 배정되었다.
창밖은 설경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의 트렁크를 펼쳐놓아도 공간이 넉넉했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매점에서 사온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였다.
놀랍게도 이날 오후 5시23분경 토호쿠 지방에 진도 4.3의 지진이 발생해 호텔 안에 있는 우리도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모든 활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자 일본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유가타를 입고 링고 키친에 내려가 식사를 먼저 하였다.
그리고 호텔 구내를 여기저기 어슬렁 거리다가 온천욕을 하러 갔다.
이곳도 휴대폰, 여권 같은 귀중품은 잠금장치가 있는 신발장 같은 조그만 칸에 넣고, 유가타 같은 옷은 바구니에 벗어놓고서 탕 안에 들어갔다. 온천 물의 성분이 어제와는 달라 전혀 미끌거리지 않았다.
노천탕에서는 바깥 아랫쪽 계곡의 물소리가 그대로 들리고 둘레에는 인공 빙폭을 만들어 놓아 운치를 더 했다. 이것이 너무 좋아 이튿날 아침에도 노천탕에 한 번 더 들어갔다.
그러려니 하고 들어간 노천탕
사지와 온몸이 사정 없이 녹아드는데
찬공기에 차가워진 머리는 쨍 하고 깨어나네
Despite cold air
Whole body is heated up
In an open air hot spring.
차가운 공기
온몸에 퍼지는 열기
노천탕의 맛
오이라세 계류 호텔의 기본 컨셉은 이 고장의 특산물인 붉은사과(ringo)였다.
다이닝홀의 입구에는 사과 모양의 붉은 공이 조명이 있는 천장에 주렁주렁 달려있고 입구 한켠에는 실제 붉은 사과가 냉장 보관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구내 매점에도 사과를 이용한 식품, 사과잼이나 말린 것은 기본이고 사과가 들어간 카레 같은 신기한 식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짐을 꾸려 체크아웃을 한 후 아오모리 공항까지 데려갈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눈길에 버스의 호텔 도착이 다소 지체되는 사이에 호텔 주변에서 눈을 뒤집어쓴 나무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겨울에 눈구경하러 아오모리에 온다면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길 일이 없는 우리 내외로서는 아오모리야 호텔에서의 2박을 택할 것이다.
그곳의 온천물이 훨씬 부드러운 데다 호텔의 여러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노라면 하루이틀이 금새 지나갈 것 같기 때문이다.
아오모리 국제공항에 제 시간에 도착하여 입구에서부터 길게 줄을 늘어섰다. X 레이 보안검색 시스템이 하나밖에 없어 모든 짐을 검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 공항이 국제공항이라는 것은 안내판에 영어와 한글, 중국어, 러시어가 병기되어 있는 것, 구제역과 메르스 경고 포스터를 보고 알 수 있었다.
귀국 항공편도 거의 만석이어서 나는 창쪽 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와이프가 모닝캄 회원으로서 부탁한 것이 주효했을까 보딩 직전에 우리 탑승권을 가운데 빈 자리가 있는 3인석으로 바꿔주어 조금 더 편하게 귀국 길에 오를 수 있었다.
인천공항 도착에 즈음하여 우리가 탄 비행기가 서울 상공을 통과하였다.
일본에서는 눈 덮인 광경이었으나 서울에서는 희뿌연 미세먼지로 뒤덮인 아파트촌과 한강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도 보였다.
마침 우리가 비행하는 항로 아래로 작은 여객기 한 대가 '쓩'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 이렇기에 항공교통관제가 필요하구나. 드론이 대거 상용화될 경우 우리의 머리 위 길을 내는 것이나 교통정리가 상당히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임이 예견되었다.
그리고 서쪽 하늘에 기운 햇빛을 받아 인천 앞바다의 개펄이 빛나는 것을 바라보며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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