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몇 차례 여행을 하였지만 이번 겨울에는 눈 구경도 하며 제대로 온천욕을 하고 싶었다.
여행 일정과 코스 잡는 것을 직장 다니는 아내에게 일임하였던 바, 1월 하순 설 직전에 아오모리(靑森)가 좋겠다고 하였다. 호시노(星野) 리조트라는 일본의 대형 호텔 체인이 운영하는 두 곳의 호텔을 2박3일로 예약하였다.
1월 25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이륙한지 2시간 반이 못되어 일본 혼슈 북단의 아오모리에 도착했다. 호화롭고 현대적인 인천공항과는 달리 아오모리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기에는 규모가 작은 시골 공항이었다.
겨울철에 아오모리에 눈이 많은 것은 한반도를 건너온 대기와 일본 열도를 따라 북상한 북태평양 기단이 만나는 지형적인 영향 때문일 것이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아오모리 시가지는 흰눈으로 덮여 있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자마자 호텔에서 제공한 셔틀버스를 타고 오늘의 숙소인 아오모리야로 1시간 이상 걸려 이동하였다.
차도에는 눈이 다 치워져 있었는데 폭설에 대비하여 중앙선을 보여주는 화살표, 도로의 가장자리를 나타내는 막대기 같은 도로표지 시설물이 눈에 띄었다.
아오모리야(靑森屋) 호텔에 도착하자 한국인 직원들이 나와서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자 한국에서 찾기 힘든 청년 일자리가 일본 관광지에 생겨난 것이었다.
우리가 묵을 방은 다다미가 깔린 화실이었는데 구조는 서구식이었다. TV 앞 공간은 거실처럼 꾸며놓아 탁자 아래 공간을 깊게 파서 의자처럼 앉을 수 있게 해놓았다. 좁은 공간을 참으로 입체적으로 만들었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으나 만일 조금이라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용이 어려운 객실이었다.
베란다 밖은 앝으막한 동산과 개울, 오솔길이 자리잡고 있어 철에 따라 신록과 녹음, 단풍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짐을 푼 다음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호텔 약도를 받아들고 서대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문을 통과하자 호수를 끼고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눈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밟고 다니게 해놓았지만 미끄러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주변의 숲이 잘 가꾸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각종 행사에 쓰이는 회관과 연회장, 말 목장이 있었다.
호수는 얼어 있었으나 얼음을 지치는 사람은 없었고 중앙 테라스에는 아오모리 네부타 마쓰리(青森ねぶた祭: 큰 칼이나 창을 든 사무라이 또는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요괴 같은 여러 형상의 크고 작은 등을 수레에 싣고 행진하는 지역 축제)의 등장인물들이 LED 조명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매년 8월 2~7일에는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쓰리 축제가 아오모리시에서 성대하게 열린다고 한다. 어둑어둑해지면 시작되는 축제이므로 표정을 잘 살릴 수 있게 명암과 색채를 고르고 불을 환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네부타 마쓰리에는 네부타 20여 대가 등장하는데 그 중 4대를 최고 작품으로 선정해 네부타 뮤지엄에 전시하고 나머지는 해체・폐기하므로 네부타를 만드는 장인인 네부타시(師) 간에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아직 오후 5시 이전임에도 노을이 지고 있는 가운데 기기묘묘한 무사와 요괴의 등불을 보는 것도 아주 이국적 (또는 환상적)이었다.
그 다음 코스는 호수를 바라보며 뜨거운 온천물로 족욕을 하는 일이었다.
여러 사람이 나란히 앉아 경치를 구경할 수 있게 해 놓았고 뒤에는 면수건을 수북히 쌓아두어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하루 전만 해도 여러 가지 머리를 짓누르는 생각이 많았는데 불과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에서는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에 눈이 시리도록 하얀눈을 구경하며 좋은 경치와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가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났다. 이러한 탈출구가 마련되어 있다면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견딜 수 있는 법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하며 우리는 호텔 지하의 식당으로 이동했다.
오후 5시 반 개장시간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줄을 서서 입장하였다.
호텔측에서는 한국 관광객들을 위해 향토요리 추천메뉴 팜플렛까지 만들어 나눠줬다.
기본적으로 뷔페식이므로 우리는 이것저것 먹음직해보이는 것을 쟁반에 담았다. 그리고 입구에서 열심히 굽고 있는 가리비 조개구이도 빼놓지 않았다. 식당 건너편에는 가리비 낚시 코너도 있었다.
8시 반부터 네부타 마쓰리의 스토리를 창극으로 각색하여 들려주는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이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나 우리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그 시간대에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온천물은 정말로 좋았다. 미끈미끈한 것이 색다른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듯했다.
사실 목욕탕 시설은 한국 사우나 탕만 못하지만 차가운 공기를 쐬면서 노천에서 하는 온천욕은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수증기로 가리워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튿날 새벽에 온천욕을 한 번 더 하였다. 노천탕에서는 흰눈을 맞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오이라세 게이류 호텔로 가는 투숙객들은 모두 짐을 싸들고 로비로 나왔다. 눈길이라 셔틀버스가 다소 지체된다고 했다.
우리가 어제 거닐었던 곳에서는, 안에 난로를 피운 호수를 일주하는 스토브 마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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