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교외 부흐홀츠 하늘에는 무지개가 걸렸다. 이른 아침에 가랑비가 뿌린 탓이었다.
약간 쌀쌀하였으나 해가 뜨면서 구름이 걷히고 기온도 상승할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탄 버스는 도시 전체가 자유도시로서 역사가 깊고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브레멘으로 향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날씨는 다시 개었고 독일의 무역항들이 몰린 곳 답게 고속도로는 트럭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거리에는 벌써 수업이 파한 듯 중고생들이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시청 앞 광장에는 이동식 놀이터가 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옆에 롤란트 석상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롤란트(Roland)는 이곳을 정복한 샤를르마뉴 대제의 12용사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이 도시와 자치권과 시장(Marketplace)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시 청사 건물과 함께 2004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브레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집에서 쫒겨난 당나귀와 개, 고양이, 수탉으로 구성된 브레멘 음악대이다. 이들이 브레멘에 들어와 음악 공연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세상의 루저들도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동화 속의 네 마리의 짐승 또한 이 도시의 상징물이 되었다.
브레멘의 음악대 네 짐승은
브레멘 땅을 한번 밟아본 적이 없건만
모든 어린이들이 알아보는 덕에 명예시민이 되었구나
브레멘 성당의 내부도 특이했다. 성결(holy)과 세속(secular)을 구분하려 한 것일까?
한쪽 창문은 컬러풀한 스테인드 글래스이고 반대편은 무채색의 유리창이었다.
브레멘에서의 일정이 예정보다 일찍 끝났으므로 점심식사는 다음 행선지인 쾰론 쪽으로 더 가서 하면 어떻겠냐는 가이드의 제안이 있었다. 그곳도 오스나브뤼크라는 큰 도시였다.
볼거리가 많은 쾰른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므로 우리 모두 이에 동의했다.
관광 가이드로서는 사정변동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고 그에 적합한 식당과 숙소를 다수 확보해 놓고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1986년 10월 암스테르담 대학원 유학 시절 처자를 데리고 독일 자동차 여행 길에 나섰다.
쾰른 가까이 와서 돔 주변에서 길을 잃어버려 지나가던 소방차에 부탁해 소방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쾰른 도심에 들어온 일이 생각났다.
돔 옆의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보며 대성당 주변을 돌아다니던 일, 쾰른 순환도로(Ring road)에서 본으로 나가는 방향을 잃고 쩔쩔맸던 일, 라인강변 Bonn 근교의 Bad Godesberg 숙소에서 마르크화가 부족해 쾰른 역에 기차를 타고 와서 환전해 갔던 일 등이 어제 있었던 일처럼 떠올랐다. 지금같이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에 여행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30여년 전 온몸으로 겪었던 것이다.
12세기 신성로마제국 당시 쾰른의 대주교가 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동방박사의 유골을 가져와 이를 안치하기 위한 대성당(Dom)을 1248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밀라노의 대성당(Duomo)을 능가하는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으로 건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것의 진실 여부는 아무도 모르고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라인 강변에 우뚝 솟아있는 높이 157m의 두 개의 상징적인 첨탑과 600년 이상 걸린 웅장하고 정교한 내외부의 건축과 조각에 주목하게 된다. UNESCO에서는 1996년 쾰른 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쾰른은 로마시대부터 주변 바바리안들에게 개방된 도시였고 지금도 수많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지만 엊그제 쾰른 중앙역에서 일어난 폭발물 인질 사건은 씁쓰레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독일 정부가 시리아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인도적 견지에서 문호를 개방하고 있지만, 일부 체제 부적응자들이 사고를 일으켜 독일의 민심이 바뀌고 있는 듯 했다. 그 결과 난민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온 메르켈 수상의 입지가 나라 안팎으로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의 눈에도 바이에른에서 소식을 들었던 극우정당(AfD)의 약진, 며칠 전 베를린에서 24만명이 집단으로 표출한 네오나치즘의 부상을 우려하는 일반 국민들의 불안감, 가이드에게서 들은 무슬림 난민들의 여성교육에 대한 무관심 등이 독일사회의 새로운 불안 요소로 비쳤다. 산아제한이 없는 무슬림 난민들이 2세 교육을 등한시하면 어떻게 독일의 산업을 떠받쳐 온 장인 제도가 존속하겠느냐 하는 우려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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