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주여행도 이제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늘도 날씨는 쾌청했다. 독일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최진홍 사장은 요즘 아주 이례적인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우리들에게는 축복인 것이다. 라인 강변 여행이 예정되어 있는 오늘은 특히 그러했다.
해 뜨기 전 호텔 앞 오이스키르헨(Euskirchen) 전철역은 아침 일찍 쾰른으로 가는 학생과 직장인들로 붐볐다. 마지막 날이므로 우리 내외는 아침 일찍 식당에 내려가 든든히 먹어두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오후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 타이트한 일정이지만 오전에는 라인강변을 드라이브하고 로렐라이 언덕(Loreley Plateau)을 찾아갔다.
이곳 너른 잔디밭에서는 여름철에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는데 가이드 말이 제주도에 오지 않았나 착각(?)할 수 있다고 했다. 무슨 영문인가 했더니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그 이유를 알았다.
로렐라이 언덕에 요정은 없어도
라인강변 포도밭에서 느끼는
현기증은 포도주 탓이련가
No Nymph is found on the Lorelei hill.
Such dizziness at a Rhein vineyard
Must be caused by a glass of wine.
이 일대 라인강 유역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러므로 자연상태를 훼손할 수 있는 대형 교량건설은 할 수 없고 사진에서 보는 페리보트가 강 양안을 오간다고 한다.
카에사르의 갈리아 정벌 당시부터 라인강은 자연의 국경선이었고, 오랫동안 로마제국의 국경선이 되었다.
오늘의 목적지 뤼더스하임 마을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런데 언덕길을 포도밭 사이로 한참 올라가다 보니 언덕 위 널찍한 테라스에 프랑스를 바라보는 승리의 여신, 보불전쟁 전승기념탑이 서 있었다.
사실 고대 프랑크 왕국이 나뉜 뒤로 독일이 프랑스를 전쟁에서 이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중세 때도 이름만 신성로마제국이지 여러 개로 나뉘어진 군소 왕국의 집합에 불과했었다. 그 중의 프로이센이 그보다 훨씬 큰 프랑스 군대를 이기다니?! 나폴레옹 군대에 유린 당했던 자존심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찾아가 보았던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2세도 그 때 프로이센 편을 들었으므로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제국에 편입되고 나서도 자치령으로 남을 수 있었다. 지금도 바이에른 주에서는 집권여당인 기독교민주당(CDU)이 아니라 같은 보수정당인 기독교사회당(CSU)이 집권하고 있다.
여러 왕국과 공국으로 나뉘었던 독일은 왕위계승 전쟁, 나폴레옹 전쟁 때마다 번번히 프랑스에게 지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승리하였으니 민족적인 감격은 곳곳에 전승기념비, 전승기념탑을 세우고도 남았다.
우리가 가 보았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1791년 준공)도 독일의 개선장군이 아닌 나폴레옹한테 개선식(1806.10)을 빼앗겼으므로 독일인들은 자존심이 엄청 상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보불전쟁에서 프랑스 나폴레옹 3세가 바로 항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격을 계속해 파리를 포위 공격하였으며, 파리를 함락한 프로이센 군대는 샹젤리제 거리와 나폴레옹의 개선문을 보무 당당히 행진하였다고 한다.
반면 전쟁에 지고 알자스-로렌 지방마저 빼앗긴 프랑스 국민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게다가 1871년에 일어난 파리 꼬뮌혁명으로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몽마르트 언덕에서 파리 꼬뮌에 많은 순교자를 낸 가톨릭 교회가 중심이 되어 전국적인 모금운동을 벌여 이곳에 백색의 아름다운 성심성당(Sacré-Cœur Basilica)을 지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聖心)을 품고 서로 용서하고 새로운 희망을 갖자는 무언의 메시지에 프랑스 국민들이 감동하였다.
전쟁에 이긴 측의 전승기념탑*과 패전한 측의 성심성당의 효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전자는 군국주의로 흘러 다시 나라를 전란에 휩싸이게 만들었고, 후자는 파리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예술과 관광의 명소가 되어 파리시민은 물론 우리와 같은 외국 관광객까지 불러모으고 있는 것이다.
* EU를 주도하는 독일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프랑스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전승기념탑이 아니라 니더발트 기념비(Niederwald Denkmal) 또는 게르마니아 여신상으로 부르고 있다 한다.
경쾌한 폴카 음악을 들으며 라인 지방의 특식을 먹고난 후 우리 일행이 일주일 동안 타고 다녔던 버스는 처음 도착했던 프랑크푸르트 공항 터미널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운행 중 단 한 번도 트러블이 없었던 터키계 독일 운전기사에게 우리 모두 박수를 보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터미널은 독일의 유명한 비행선 제펠린 외형을 본떠 설계했다고 한다.
한 주일 여행
그동안 멀게만 느껴진
괴테와 바그너의 나라 독일
호헨촐레른의 프러시아도 있었네
히틀러의 흑역사를 지우려고 애쓰는
통일 독일과 메르켈 수상의 국제적 리더십 -
이것으로 떠날 때 가슴에 품었던 질문에 답이 될까?
우리가 탄 비행기는 뉘엿뉘엿 지는 해를 향해 이륙준비를 마쳤다. 활주로에 이륙을 위해 줄지어 선 비행기들이 마치 붉은 낙조를 향해 차례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공항 상공에는 비행운이 이리저리 뻗어 있었다.
지난 일주일의 여행을 결산해보니 무엇보다도 날씨가 너무 좋았고 가이드의 설명이 친절하고 상세하여 만족스러웠다. 한식은 한 번 뿐이었고 하루 한 번 이상 독일의 Gourmet(미식)를 맛보았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난민 문제를 해결하고자 독일 국민들이 여러 모로 고심하고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대왕, 루트비히 2세, 바그너라는 위인을 전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 것도 커다란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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