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대학교가 있는 슈바빙 지구를 가보지 못하고 뮌헨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오늘 구 동독지역에 들어간다는 최진홍 가이드의 말에 기대가 부풀었다. 뮌헨의 슈바빙 거리는 1955년 서울법대를 중퇴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전혜린이 소개를 많이 하였기에 그녀의 수필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마치 순례코스처럼 찾아가는 곳이다.
아 참, 슈바빙에 가시면 릴케를 만나 보셔야지요.
전혜린도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을 거예요.
영국 정원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어요.
Did you meet with Rilke at Schwabing?
There, you might see Jeon Hye-rin at cafe.
Otherwise, she must wait for us
Walking along the English Garden.
* 전혜린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10여편의 번역소설 - 프랑수아즈 사강의 "어떤 미소", 교포작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 를 읽은 독자들은 그녀의 뛰어난 재능이 너무 일찍 스러져버린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일차로 우선 당도한 곳은 중세풍 건물이 많이 남아 있는 밤베르크(Bamberg)라는 옛 도시였다.
2차대전 당시 폭격을 면했다는 것은 그 만큼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유적이 많다는 의미이다.
성스러운 물품을 많이 소장한 대성당(Dom)과 장미원, "독일의 베니스"라 불릴 정도의 아름다운 운하, 다리 위의 시청사가 이 도시의 매력이었다.
특히 이 구역은 몇 백년 전으로 돌아가도 자연스러우리 만큼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뒤마의 인기소설 "삼총사"를 영화화한 것 등 유럽에서 만드는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한다고 한다.
저 뒤에 보이는 시청사가 다리 위에 세워진 이유는 주교의 관할지역과 일반 주민들이 사는 곳의 엄정 중립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곳 시장은 어느쪽의 요구나 영향을 받지 않고 중립적으로 시정을 펼칠 수 있었다고 한다.
밤베르크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훈제 흑맥주이다. 맥주를 훈제하는 과정에서 다랑어 말린 것(일본음식에 많이 쓰이는 '가쓰오부시') 비슷한 냄새가 배어들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훈제 흑맥주를 마실 때에는 안주가 따로 필요 없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가이드 최진홍 사장의 안내로 슈렝케를라(Schlenkerla) 맥주집의 화장실부터 이용하고 나서 훈제 흑맥주와 함께 독일식 점심식사를 하였다.
고도(古都) 밤베르크에서
전쟁의 폭격과 파괴를 면케 한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고색창연한 문화의 힘
우리가 탄 리무진 버스는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구 동독 지역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곳에도 예외 없이 태양광발전, 풍력발전기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었다. 메르켈 정부에서는 '탈원전'을 선언하고 친환경 발전비중을 늘리고 있다.
그 결과 전력요금이 이웃나라에 비해 크게 높은 편이지만, 독일에서 오래 살고 있는 최진홍 사장의 말에 의하면, 생활의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대가로 여긴다는 것이다.
드디어 구 동독 지역에 들어왔다.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 익숙한 구 동독의 지명이다.
켐니츠는 얼마 전 시리아 난민청년이 독일사람을 둘이나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다.
그만큼 난민에 대한 인심이 흉흉해지고 있다고 한다.
드레스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 것은 즈빙거 궁전 앞 광장에서 K-Pop 군무를 연습하고 있는 일단의 여학생들이었다. 한국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틀어놓고 지친 기색도 없이 춤 동작을 반복 연습 중이었다. 이것이 그네들의 중요한 주말 일과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노래와 춤이 좋아서 빠져드는 K-Pop. 10월 16-17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BTS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밤샘을 하는 것을 보고 시 당국이 청소년들의 건강을 우려해 사상 처음으로 공연장 부근 한 구역에 한해 텐트 치고 야영하는 것을 허가했다는 말도 들렸다.
엘베강이 흐르는 드레스덴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무자비한 폭격 대상이었다. 한 블록을 날려버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폭탄(blockbuster)가 셀 수도 없이 투하되었다.
이곳의 건물들을 보면 당시 피해를 본 검은 부분과 전후 복구공사 때 새로 갈아끼운 밝은 부분으로 확연히 구별되었다.
흑백이 얼룩덜룩한 즈빙거 궁전과 박물관 건물들을 보면 폭격을 면하여 온전히 옛모습을 간직한, 오전에 관광을 하였던 밤베르크 구시가지의 모습하고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츠빙거 궁전은 18세기 초 작센 공국의 아우구스트 선제후(신성로마제국의 이름뿐인 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제후로 그 이권이 막강했다고 함)가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하였다.
화려한 석조 왕관의 문(Kronentor)과 7개의 파빌론이 긴 갤러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드레스덴 레지덴츠 궁전은 2차대전 당시 대공습으로 파괴되었으나 옛 왕궁 마굿간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벽은 기적적으로 전화를 모면했다.
슈탈호프벽에는 길이 100여 m의 마이센 자기 타일로 작센 공국 '왕들의 행진'이라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를 위해 25,000여 개의 타일이 쓰였다고 하는데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2차대전 당시의 폭격술로는 왕궁이나 박물관 같은 문화재를 피해서 타격하는 것이 어려웠다 할지라도 이처럼 무자비한 폭격은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웅장한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어서 괴테가 "유럽 제일의 테라스"라고 불렀다는 엘베 강변으로 나왔다. 지난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아 엘베강 수량이 반으로 줄어 유람선이 운항을 못하고 있었다.
독일 전역의 경기가 좋아지면서 구 동독지역에서도 건설경기가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오늘 여러 곳 관광을 마친 후 성모교회(Frauenkirche) 앞 광장에 섰다. 저으기 피로가 몰려오며 이 고장의 맥주를 마시고 싶어졌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곳은 아주 유서 깊은 장소였다. 드레스덴은 중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하고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작센 선제후가 다스리던 곳이었으며, 그 중 프리드리히 3세(Frederick the Wise, 1463-1529)는 자신은 가톨릭 교도였음에도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건 마르틴 루터를 보호하고 그가 발트부르크 성에 칩거하며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수 있도록 돌봐주었다. 또 아우구스트 2세(Augustus II the Strong, 1670-1733 r.1694-1733)는 폴란드 왕(King of Poland and Grand Duke of Lithuania, 1697-1706, 1709-1733)이 되는 조건으로 루터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러나 작센 시민들은 루터교의 신앙을 지키기로 하고 종교개혁 전에 성모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성당을 1727년 루터교의 주교회로 만들고 건물을 확장하였다.
드레스덴은 종교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곳이었던 만큼 문화와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엘베 강변의 이 도시는 2차대전 중 연합군의 융단폭격 표적이 되고 말았다.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성모교회를 동독 당국이 주차장으로 쓰려던 것을 시민들이 완강히 반대하고 불타버린 벽돌을 번호를 붙여 따로 모아두었다. 독일이 통일이 된 후 성금을 모아 60년 만인 2005년에 옛모습 그대로 복원을 하였다. 벽면의 까만 벽돌은 옛 자리를 찾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교회 돔 위 첨탑의 십자가는 폭격에 참여한 영국 공군장교의 후손이 낸 기부금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비록 루터는 바티칸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파는 것을 맹비난했으나, 전쟁 중의 폭격으로 무너진 교회를 신축하기 위해 시민들이 속죄하는 의미로 헌금을 한 것은 루터도 미소를 지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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