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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3] 바이에른 루트비히 2세의 린더호프 궁

Onepark 2018. 10. 12. 22:30

이튿날 아침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공기가 상쾌했다. 

독일 알프스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매력이 있다. 한국에서 패스를 끊어오면 파격적인 금액으로 뮌헨에서 당일치기 알프스 관광도 가능하다고 한다.

해발 3천 미터 가까운 추크슈피체 휴게소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알프스 연봉을 다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나로서는 스위스 루체른의 필라투스산에 두 번씩이나 올랐지만 한 번은 눈, 또 한 번은 비 때문에 알프스 연봉을 전혀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다.

 

아침 8시 반 숙소를 출발하여 1936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가르미슈와 통합된 파르텐키르헨 시가지를 통과했다. 이곳에는 여름휴가나 스키시즌에 장기숙박이 가능한 펜션이 많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는 예수 수난극(Passion)으로 유명한 오버아머가우였다. 집집마다 각자 특색을 살린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아랫쪽 이웃 마을의 이름은 운터아머가우이다.

 

우리 일행은 최진홍 가이드로부터 10년마다 공연되는 예수 수난 연극을 지금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극장과 아름다운 소도시의 면모, 특히 크리스마스 장식 전시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극장 앞에는 금년에 윌리엄 텔 공연을 한다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른 아침 우리 말고는 관광객들도 없어 거리는 한산했으나 쇼윈도마다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과 피규어가 전시되어 있었다.  

 

* 예수가 제자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매질을 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드라마 의상
* 채색이 요란한 각종 벽화들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 위의 크리스마스 캐루젤은 네 귀퉁이에 촛블을 켜면 더운 공기가 상승하면서 프로펠라를 돌리는 원리이다.
* 이곳 크리스마스 장식은 산타할아버지보다 이곳 전설과 신화 속 인물들의 피규어가 훨씬 많았다.

오버아머가우는 고랭지 목축업과 예수 수난극 공연 및 관광업으로 부유한 편이어서 이곳 베드로-바울 교회(Kathedrale St. Peter und Paul)는 내부 장식이 매우 호화스러웠다. 교회 뜰에는 유력인사들의 묘가 많이 있었다.

이러한 점을 노리고 로마 교황청에서는 성베드로 성당 신축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독일지역에서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에 대해 마틴 루터 신부가 반기를 들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것이다. 

 

* 일견 호화로워 보이는 교회 묘지
* 매우 화려해 보이는 예배당 내부
* 바이에른 주기의 푸른색은 파란 창공을 의미한다.

극장 밖 공원광장에는 10월 14일 실시되는 바이에른주 지방의회 선거 벽보가 붙어 있었다. 

이곳 바이에른 지방은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인 기독교사회당(CSU)의 아성이었다. 기사당은 다른 지역의 기독교민주당(CDU)과 연합하여 집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사당 당수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에 비판적이었던 보수 정객이었다. 

전에는 기사당 후보가 되면 선거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이 바뀌어 기사당 지지표가 크게 줄고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당,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급부상하고 있다 한다. 바이에른 주는 오스트리아를 거쳐 오는 난민유입이 많은 곳이기에 이곳 유권자들이 기민당-기사당 연합정권인 메리켈 정부의 난민 정책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1차 목적지는 오버아머가우를 거쳐서 가는 린더호프 성이다. 산골 외진 곳이었는데 본래 이곳이 바이에른 왕실 사냥터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트리아농 궁전을 본떠 건축한 린더호프 성은 공간이 협소하여 엄격하게 시간제로 예약 방문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관람예정 시간인 11시 15분까지 가을의 정취가 물씬한 린더호프 정원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정원은 루트비히 2세의 성격을 반영한 듯 완벽한 좌우대칭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절대완벽 미(美)를 추구하는 빈틈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 린더호프 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걸으며 "한국에서도 못본 단풍을 여기 와서 구경하네" 하고 서로 웃었다.
* 사방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그림 같은 가을 풍경이 펼쳐졌다.

바이에른(영문명칭은 Bavaria) 공국의 루트비히 2세(재위 1864~1886)는 건축광이었다고 한다. 

그는 부왕 막시밀리안 2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19세에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정치와 외교에는 취미가 없었고 음악과 예술 특히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바그너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바그너를 바이에른으로 초치하여 그의 부채도 대신 갚아주고 그의 음악활동을 지켜보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다만, 그가 세운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한 헤렌킴제 성이나 디즈니 신데렐라 성의 모델이 된 노이슈반슈타인(백조) 성은 왕실 재정을 축내고 그를 빚더미 위에 앉게 하였다.

 

* 이곳에 오면 모작(Copy)이 원작(Original)보다 낫게 느껴지기도 한다.

 

 

*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분수가 치솟았다. 마치 1시간에 한 번 뿜는 간헐천 같이.

루트비히 2세는 극도로 내성적이고 신료를 만나는 것보다 홀로 밤 늦게까지 음악과 예술에 몰입해 있는 것을 즐겨 했으므로 뮌헨을 떠나 린더호프 성에 칩거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프로이센이 군비를 확장하고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종횡무진 외교를 펼칠 때였으니 고독한 왕은 복잡한 정치외교 현실을 혐오했을 것이다. 그래도 바이에른 공국은 보불전쟁 때 프로이센 편을 들어 독일제국이 성립한 후에도 자치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가 결혼도 하지 않고 동성애적인 취향을 보였던 탓일까 신료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불과 41세의 나이에 호수에서 의문의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의 광적인 취미활동은 바이에른 신민들에게 후일 엄청난 관광자원을 안겨준 셈이었다.   

 

내가 좋아 자비로 건축하는 것임에도
모든 신료가 독기 어린 눈총을 쏘네
백년 뒤 사람들은 경탄의 눈으로 쳐다볼 것을

 

린더호프 성의 내부는 2개 층으로 홀이 몇 개에 불과하여 입장객 수를 엄격히 통제하고 전시물품은 손대는 것은 물론 사진촬영도 금지되었다. 화려하게 채색된 공작새 도자기, 태피스트리, 초상화 여러 점, 각종 마이센(Meissen) 명품 자기류 그리고 피아노의 전신인 쳄발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식사도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2층 집무실로 식탁채 엘리베이터로 올리면 주위 시중을 물리치고 왕 혼자서 했다고 한다.

 

* 궁전 뒤의 계단식 정원은 공사 중이었으므로 그 앞까지 보고 돌아나와야 했다.

우리는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린더호프 궁전 뒤의 언덕 위쪽에는 '비너스'라고 이름 붙인 인공동굴(아래 사진)이 있다.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의 탄호이저 연극을 실감나게 감상하고자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 놓았으나 제대로 공연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바그너는 왕이 총애하는 음악가였지만 바이에른 공국의 신료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본래 낭비벽이 있는 터에 드레스덴 폭동(1849)에도 가담한 전력이 있고 정사에 참견하여 왕의 심기를 어지럽 힌다고 믿었다. 그래서 유부녀인 코지마(프란츠 리스트의 딸)와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아우성을 쳐서 그를 궁정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새로운 오페라를 만든다며 남의 돈을 물쓰듯 하였던 바그너는 바이에른 영내의 바이로이트에 그의 작품을 공연하는 전용극장을 완성했다. 바그너는 反 유태주의자에 철저한 민족주의자였고 히틀러가 그의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의 오페라는 지금도 독일인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루트비히 2세와 바그너는 당시에는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었지만 오늘날 180도 달라진 그들에 대한 평가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오스트리아에 합스부르크 가가 있다면 프로이센에는 호엔촐레른 가(Haus Hohenzollern), 바이에른에는 비텔스바흐 가(Haus Wittelsbach)가 있었다. 물론 여러 대에 걸쳐 왕을 배출하고 전쟁과 외교술로 영토를 확장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물산을 장려하고 예술적인 유산을 남겨 후손들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만든 것이 훌륭한 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가 둘러보았던 린더호프 성의 주인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까, 본인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독일인들에게는 고맙기 짝이 없는 뛰어난 조상임에 틀림없다. 

 

쾌청한 가을 날씨, 아름다운 단풍과 달리 루트비히 2세의 우울한 인생 스토리를 보고 듣고 하니 우리 가슴도 울적해졌다. 하지만 점심 때가 되니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음식을 맛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었다. 옥외 식탁에서는 다양한 차림의 여행객들이 햇볕을 쬐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의 식탁에도 소고기를 푹 쪄서 전통적인 소스로 간을 한 우리식 장졸임 같은 비프스튜와 감자 가루에 빵가루를 섞어 노랗게 물들인 쫀득쫀득한 감자떡(Kartoffelknödel 또는 Kartoffelklöße라고도 하는데 본고장은 노르웨이라 함) 접시가 하나씩 놓였다. 그러나 너무 달콤한 디저트까지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의 입맛을 100% 만족시키지는 못하였다.

 

린더호프 성 아래 뮐러(물레방아간) 레스토랑에서 바이에른식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음 행선지 뮌헨으로 떠났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금요일 오후 비교적 이른 시간에 뮌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레스토랑 주차장이 우리나라의 경춘가도처럼 독일에서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AAR (Ammer-Amper Radweg) 자전거도로의 출발지였다. 안내지도를 보니 가파른 길도 없고 산골짜기와 호숫가를 이어서 달리는 환상적인 코스임을 알 수 있었다.

 

* 뮌헨 외곽의 도로는 교통량을 해소하기 위해 지상과 지하로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마침내 바이에른의 주도 뮌헨에 당도했다. 2015년 4월 남북물류포럼의 아드리아해 탐방여행 때 귀국 길에 주마간산으로 몇 시간 들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접근방식이 달랐다.

우선 볼거리가 많은 BMW 전시관과 박물관을 찾아갔다. 원통 모양의 BMW 본사 사옥까지 건물들의 외양이 아주 특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재 사고가 빈발하여 '불차'라는 오명을 썼지만 BMW(독일식 발음은 '베엠베')는이곳에서도 고급차에 속하여 전시관에는 구경하는 사람 못지 않게 새 차를 사러 오거나 차량을 인도받으러 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자동차 생산 전에는 바이에른 원동기제작회사(Bayerische Morotren Werke AG)라는 사명처럼 독일군의 기동성을 크게 올린 오토바이 군납업체였다고 한다. 

 

* BMW 본사 사옥은 자동차회사라기보다 IT나 우주 등 첨단산업을 지향하는 기업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 원통을 여러 개 붙여놓은 건물이 BMW 본사이고, 큰 대접 모양의 건물이 BMW 뮤지엄이다.
* 독일의 초등학생들이 교사의 인솔하에 BMW 자동차 박물관을 견학하고 각자 꿈을 꾸었을 것이다.

슈투트가르트에 가면 메르세대스-벤츠 역시 웅장한 본사 건물과 체험 전시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 

BMW 전시관 내부에 들어가보면 기둥이 별로 없어서 이러한 고층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했다는 것이 아주 경이롭게 느껴졌다.
BMW 자체 생산 차종 뿐만 아니라 BMW가 인수한 미니, 롤스로이스 차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 Mini의 진가는 영화 Italian Job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 Mini 대시보드를 보니 모두 동글동글한 것이 특징이었다.
* 영국의 롤스로이스도 BMW가 인수한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이다.

구름다리를 통해 건너간 BMW 박물관에서는 생산연대별 차종은 물론 자동차 설계과정, 엔진 등 제작공정, 미래의 컨셉트카까지 전시하고 있으며, 즉석에서 세미나를 열 수 있는 시청각실도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BMW의 원조인 오토바이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 1955년에 생산된 이 미니카는 출입문이 핸들 앞쪽에 달려 있는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 007 영화에 나왔음직 한, 헤드램프를 감춘 아주 날렵해 보이는 BMW 세단
* 미래 컨셉트카의 설계 과정을 이렇게도 보여주었다.

밖에 나오니 BMW와 같은 자동차, 나아가 기계산업이 독일 경제를 부흥 발전시키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었다. 전시관 건물부터 현지 소비자, 잠재 구매자들에게 자긍심과 꿈을 불어넣어주게끔 설계된 것이었다.

새 차를 인도 받아 떠나는 일가족을 보면서 우리 일행도 뮌헨 시내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바이에른의 유서 깊은 중심부 관광을 하기로 했다.

 

* 우리 보란듯이 1950년대에 생산되었던 미니카가 돌아다니고, 한 가족이 새 차를 인도 받아 출발했다.
* 전혜린의 수필로 유명해진 뮌헨대학교 부근의 슈바빙 거리와 영국 정원
* 건물 벽의 조형물은 구시가지에 있었던 베네딕트 수도원의 어린 수도사(Little Monk) 모습이다.
* 뮌헨의 명소인 호프브로이 맥주 연회장(Biergarten)
* 바이에른 비어가르텐은 축제와 토론의 장소로 독일의 여론이 대부분 이곳에서 생성된다.
* 옥토버페스트는 끝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어가르텐 홀 안과 밖에서 맥주를 즐기고 있다.
* 이렇게 담쟁이 넝쿨로 뒤덮힌 집이 뮌헨의 최고급 호텔이다.
* 나폴레옹 전쟁 후 바이에른 선제후에서 초대 왕이 된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의 동상

뮌헨 도심을 걷는 것은 좋았지만 아침부터 너무 많이 걸은 뒤라 오데온 광장에 와서는 독일 장군들의 동상 앞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곳은 "원수(元帥)의 홀(Feldherrnhalle)"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관우사당(東廟) 같은 곳이다.

히틀러도 30년 전쟁 때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틸리 백작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1923년 11월 이 부근 맥주홀에서 기관총을 든 SA 친위대를 앞세워 정부 요인을 사로잡고 쿠데타(Putsch)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바이마르 국방군에게 진압되어 부하들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히틀러가 뮌헨의 감옥 안에서 "나의 투쟁(Mein Kampf)"을 쓴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 군대가 탱크를 앞세워 전격작전(Blitzkrieg)을 벌인 것도 틸리 백작의 전술을 연구한 결과라고 한다.

 

* 30년 종교전쟁 때 신교도들을 무차별 학살한 것으로 악명 높은 틸리 백작(Graf Tilly)의 동상
* 오후 5시가 되자 마리엔느 광장의 시청 시계탑이 시종을 울리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광장에 모여들었다.
* 시청사 뒷편에 보이는 두 개의 종탑은 독일출신 베네딕트 전 교황이 시무했던 프라우엔 성당이다.
* 광장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주변 상점과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 뮌헨 도심의 거리에서 집시 악사들이 피로에 지친 우리 일행에게 청량한 음악을 선사했다.
* 이날 저녁 투숙한 매리오트 호텔의 객실은 아주 널찍하고 쾌적했으나 욕실의 벽에 피핑톰(?)이 있었다.
* 바이에른 음식에서 돈가쓰와 소시지, 감자튀김은 빼놓을 수 없다.
* 호텔 로비에 겨우살이 땔감과 건초더미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