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떠날 때 눈이 내리네
20년 가까이 학문을 한 자취도
눈 위의 발자국처럼 곧 사라지겠지
Leaving KHU, I saw snow falling.
Two decades elapsed, teaching and studying.
Scholarly trace will disappear like footprints on snow.
2월 15일 마지막 짐을 싸러 연구실을 찾았다.
2018년 8월 정년 후에도 한 학기 더 강의를 하였으므로 연구실을 임시로 이용할 수 있었으나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방을 비워야 했다.
연구실을 정리함에 있어 제일 큰 문제는 수많은 책과 자료를 어떻게 처분하느냐였다. 그래서 고심 끝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다.
첫째, 꼭 필요한 책은 집으로 옮긴다.
⇒ 그 기준은 이제 논문 쓸 일은 없지만 KoreanLII 기사작성에 참고할 만한 자료는 서재로, 다른 사람에게도 요긴한 참고자료는 아파트 도서실로 옮겼다.
둘째, 영어나 일본어로 된 외국 서적 중에서 밑줄이나 메모가 없는 깨끗한 서적은 동남아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다.
⇒ 한국인 선교사가 캄보디아에 설립한 한 대학교와 연결이 되었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항공소포만 가능하고 현지통관 시 관세가 부과된다고 해서 일단 보류했다.
셋째, 위의 기준에 해당하지 않으면 미련없이 버린다.
⇒ 몇 년씩 지난 학술지 등 정기간행물과 세미나 자료집이 1차적인 처분대상이었다.
학생들의 답안지나 발행일이 오래 지난 정기간행물을 버릴 때에는 아무런 아쉬움도 없었다. 그러나 일이 있을 때마다 A4용지에 작성한 검토의견서가 엄청난 분량이 되었다. 스테이플 침을 벗길 때 나의 땀과 눈물이 어려있구나 하는 감회에 젖어 들었다.
그 동안 내가 쓰레기통 옆에 수북히 쌓아놓은 버려진 책을 치우면서 미화원 아주머니들이 깨나 힘들었겠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크고 좋은 방에서 책더미에 묻혀 지내온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아니 지금 우리집 내 방에 수북히 쌓여 있는 헌 신문과 잡지, 책자를 속히 정리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신문 잡지를 버리지 못하는 버릇을 누구는 저장강박증(Hoarding obsession)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미니멀 라이프에서는 구질구질한 물건은 수납을 하든지 즉각 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KoreanLII라는 백과사전을 편찬하는 내 입장에서는 신문 잡지(학술지 포함)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이므로 다만 한 줄이라도 참고할 수 있다면 손 닿는 곳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연구실 서가 뒷쪽에 꽂혀있던 2000년도 월간 신동아에 실린 하이쿠 기사를 읽고 하이쿠 비슷하게 첫머리의 단상을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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