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상미회(clubsangmi.com)에서 주관하는 중국 강남의 시문학 유람에 참가했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 중국에서 공기가 제일 맑다는 우이샨(武夷山)과 루산廬山)에 오르고 유학의 본산인 백록동 서원과 악록 서원을 방문하는가 하면 또 당송(唐宋) 시문학의 경연장이었던 등왕각, 악양루, 황학루를 모두 찾아보는 문사철(文史哲) 탐방 여행이었다.
5월 12일 아침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모인 문사철 유람단은 대부분 은퇴한 공무원과 의사, 교수 부부들이었다. 인솔자인 상미회 이기승 이사가 자기 빼고는 다 박사님들이라 제대로 안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조크를 할 정도였다.
이륙 후 2시간 반만에 우리가 탄 비행기는 샤먼(厦门, Xiamen)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식 점심식사를 하고 최신 기내영화 한 편 보고나니 착륙할 시간이 되었다. 푸젠성(福建省)은 타이완에 면해 있는데 일찍이 해외로 진출한 화교들이 많았고 샤먼은 그 중심인 무역항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대리석 등 석재를 수입해 오는 국내 기업이 다수 진출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현지 채석장이 대부분 문을 닫아 국내 기업들도 철수한 상태이다.
샤먼 시는 본래 무역항이었지만 가로수도 야자수가 많고 대로의 중앙분리대까지 형형색색의 화초로 가꿔놓은 아열대 지방의 관광휴양도시였다.
우리는 체크인하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지만 켐핀스키(Kempinski) 호텔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가벼운 차림으로 시내관광에 나섰다.
중국 샤먼 땅에 발을 딛고 나서 알게된 사실은 외국인은 누구나 예외없이 입국수속을 밟을 때 10손가락 지문과 얼굴 사진을 찍고, 호텔숙박ㆍ열차탑승을 하거나 주요 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여권을 제시해야 하는 감시사회(surveillance society)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데이터가 집중된 기관에서는 내 여권번호만 넣으면 중국 체류 중에 어디서 묵고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소상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Google, Naver 같은 해외 검색 사이트가 모두 차단되어 있어 그때 그때 필요한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큰 애로사항이었다. 중국 USIM 칩을 써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도시의 어트랙션 포인트는 고랑서(鼓浪嶼, Gulangyu or Kulangsu)라 할 수 있다. 파도 치는 소리가 북을 두드리는 소리 같다는 섬 이름도 특이하지만 중국 개항 초기에 영국과 일본이 조차해서 개발하였기에 이국적인 경관이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여전히 자동차가 없는 섬으로 수많은 관광객과 샤먼 주민들이 나들이 삼아 페리 보트를 타고 이 섬을 찾고 있었다.
페리 보트 선착장은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절실히 체험한 것이지만 현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가 그리 했던 것처럼 사람들도 먹고 살 만하니 관광 나들이에 관심을 쏟는 모양이었다. 나들이 인파 중에는 웨딩 화보를 찍으러 가는 신혼부부도 여러 쌍이 눈에 띄었다. 승객을 400여 명 태운 페리 보트는 25분 만에 고랑서 부두에 도착했다.
고랑서는 마카오 같은 관광지와는 다른 스토리텔링이 엿보였다.
아편전쟁 후 서구 열강의 압력으로 개항을 하였지만 타국으로 돈 벌러 나간 푸젠 사람들이 성공을 거두고 금의환향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듯 했다. 이 섬의 중심부에 세워져 있는 동상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푸젠 출신의 성공한 화교로서 '싱가포르의 고무왕'로 불렸던 진가경(陳嘉庚, Tan Kah Kee)은 조국의 발전을 위해 억만금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했다고 한다. 세무 회계 분야의 중국 명문대로 손꼽히는 샤먼대학교도 그가 설립하였다.
고랑서의 상가 점포도 타이완의 상인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이국적인 맛과 멋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 섬에는 다른 나무에 기생해 자라다가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크게 번성하는 반얀트리가 많았다. 하와이에서도 많이 보았던 그 나무였다.
이 나무는 줄기에서 뿌리가 내려오므로 그 왕성한 생장력으로 이 나무를 상징처럼 쓰는 기관, 호텔이 많다고 했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즈음 우리 일행은 고랑서에서 나와 이번 여정의 첫 번째 식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푸젠성의 별칭을 민(閩)이라고 하는데 민채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음식점이라고 했다.
14명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아 중앙의 원판 위에 코스 요리를 올려놓으면 이것을 한 방향으로 돌려가면서 자기 접시에 조금씩 덜어먹는 식이었다.
여기에 빠진 수 없는 것은 중국의 백주와 차라고 할 수 있다. 뜨거운 물은 무료 제공되지만 질 좋은 차는 따로 주문하여야 했다. 인솔자가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천지람(天之藍)이란 술이 반주로 제격이었다.
문사철(文史哲) 여행의 출발점이 샤먼이라는 게 처음엔 의아했으나 여행사의 기획의도가 이해가 되었다. 명나라 유신 정성공이 청나라에 대항해 싸우다 타이완으로 옮겨갔고 개항 후에는 낭만적인 조그만 고랑서 섬에서 무이산 차의 수출 무역이 이루어졌다. 오히려 수많은 주민이 살길을 찾아 타국으로 떠나는 항구로 유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로 하늘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업차 관광휴양차 몰려드는 도시로 반전(反轉)이 이루어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호텔 객실에 들어 왔다. 켐핀스키 호텔의 타원 곡선을 이루는 건물 실루엣이 야간 조명으로 빛났다.
깨끗하게 정돈된 객실은 여느 특급호텔이나 다름 없었으나 욕실의 한 쪽 벽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자못 핑크빛 감도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욕조에 앉아서 TV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현지인들에게 어필하는 장점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욕실 문을 닫아 놓고도 천정의 스피커에서 TV방송이 또렷이 들렸다.
이렇게 해서 중국 시문학 기행의 첫날 밤이 지나갔다.
민초(民草)가 살길 찾아 떠나던 항구가
사업과 관광의 중심도시가 되었네
이게 천지개벽(天地開闢)이 아닌가!
Xiamen was once a port of Chinese diaspora.
Now it's a bustling town of business and tourism.
Isn't it a creation of new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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