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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문학기행 2] 무이산 대홍포차와 무이정사

Onepark 2019. 5. 13. 23:00

둘째 날 5월 13일 일정은 아침 일찍 샤먼 역으로 가서 무이산(武夷山, Wuyishan) 행 고속열차를 탑승하는 일이었다. 이를테면 19세기 영국의 차 무역상이 샤먼 항을 거쳐 무이산으로 고급 차(high quality tea)를 사러 가는 길을 재연하는 셈이었다. 다만, 당시에는 며칠씩 걸리던 험로였는데 지금은 고속철도로 2시간이면 당도할 수 있게 되었다

 

본격적인 여행일정을 앞두고 버스 안에서 상미회 인솔자인 이기승 이사가 오늘의 탐방 주제인 주희와 성리학, 차(백주는 부록)에 대하여 유인물과 함께 개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주희(朱熹, 1130~1200)는 남송의 유학자로 19세에 진사에 합격하여 지방관 현직은 10년에 그쳤고, 임지에 부임할 필요가 없는 사록관(司祿官)으로서 교육 및 저술에 힘썼다. 여조겸 등 동 시대의 많은 뛰어난 학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여 불교, 도교에 비해 뒤쳐져 있던 유학(儒學)의 이론체계를 확립했다. 말하자면 윤리도덕 수준에 그쳐 있던 공맹(孔孟) 사상을 철학으로 발전시켜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의 지배적인 사상체계가 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 중국 차에 대해 설명하는 이기승 이사. 보조안전장치에 기대고 서 있다.

이기승 이사가 나눠준 유인물의 이면에는 부록으로 중국차의 종류가 소개되어 있었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무이산은 대홍포차(大紅布茶)가 유명한데 半발효차(淸茶)에 속하며 우롱차(乌龙茶)라고도 한다. 중국 차의 60% 이상을 점하는 녹차(綠茶)는 찻잎을  따는 즉시 찌거나 볶아서 발효를 막은 것이며, 윈난의 보이차 같은 완전 발효차는 흑차(黑茶), 자연상태에서 찻잎을 시들게 하여 완전 발효시킨 것은 홍차(紅茶)라고 한다.

샤먼 북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유료 고속도로를 거쳐서 가야 했다. 일찍 서두른 탓에 월요일 아침의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어 우리 일행은 여유있게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샤먼 북역에 도착한 후 역 구내까지 상당한 거리를 짐을 끌고 가야 했다. 보안 검색대를 거쳐 역사 안으로 들어가 개별적으로 승차권과 여권을 준비했다. 역사는 공항 터미널같이 엄청 컸는데 명절 때 철도 이용객 수를 감안하면 이 정도는 약과인 듯 싶었다.

고속철 개찰구는 정확히 10분 전에 열리고 3분 전에 닫혔다. 우리는 짐을 끌고 내려가 정확한 승차장소 앞에서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 2시간 30분 거리의 고속열차 1등석 운임이 5만3천원이니 한국에 비해 싼 편이다.
*우리가 탑승한 고속열차는 중국이 자체개발한 최신형 CRH380 타입이고, 아래 사진은 CRH2 타입

중국 고속열차(中国高速铁路, China Railway High-speed, CRH)는 개통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주창했던 "和諧(화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달린다.

광대한 대륙에 사통팔달의 고속철도망을 단시일내 구축한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철도망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물류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기반으로 일대일로를 추진하면서 전세계에 중국식 고속철을 수출하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중국의 최신형 CRH는 직선구간에서 최고속도가 시속 380km에 달하는데 샤먼-무이산 구간에서는 시속 300km를 넘지 않았다. 좌우 쏠림 현상이나 간헐적인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1등칸을 탔는데 승무원이 음료수와 작은 박스 안에 들어 있는 간식거리를 제공하였다.

시속 300km 가까이 질주하면서 주변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샤먼 북역을 출발한지 2시간 30분 만에 무이산 동역에 도착했다.

구름이 끼고 빗방울이 조금씩 뿌리는 가운데 역 주차장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일반 여행객의 경우 노선버스를 이용하여 목적지로 갈 수 있는 환승 센터가 있었다.

 

* 우리가 투숙할 Wuyishan Co-Resort (悅華) Hotel의 컨셉은 흰코끼리였다.

시내 화복(华福)대주점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무이산 풍경구의 관광센터로 갔다.

1999년 무이정사와 함께 9개의 계곡(구곡계), 천유봉 같은 36개의 산봉우리, 대왕암ㆍ옥녀봉 같은 99개의 암석이 모두 UNESCO 복합유산으로 지정되어 아주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자연친화적 운영을 위해 풍경구 내에서는 소형 셔틀 버스로 이동하여야 한다. 일부 구간에서는 꼬마 손님과 보호자를 위한 미니 열차버스도 운행하고 있었다.

 

* 흙탕물에 가까운 계곡물을 보니 대나무 뗏목(bamboo draft) 타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대나무 뗏목을 타고 내려갈 주변 풍경이 대강 상상이 되었다.

무이정사로 올라가는 길 주변에는 대나무 숲이 곳곳에 우거져 있었다. 대나무는 본래 땅속줄기를 통해 번식하거니와 이곳 대나무는 마치 한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하나의 그루터기에서 여러 개의 대나무가 무성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천유봉으로 올라가는 떠들썩한 중국 관광객들과 갈라져 우리는 오른 편 무이정사(武夷精舍) 가는 길로 들어섰다. 그 입구에는 주희의 좌상이 있었는데 한국의 주씨(朱氏) 연합회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희의 증손 주잠(朱潛)이 고려 말인 1224년 가솔 및 문하생을 이끌고 몽골의 박해를 피해 고려에 이주해 왔던 것이다. 그 후손은 지금까지 주희의 본관인 신안(新安, 중국 안후이성의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무이정사 안에는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외국 학자로 퇴계 이황의 초상화와 그의 저작, 도산서원 사진이 걸려 있었다. 성리학(性理學, Neo-Confucianism)이 우리나라에 끼친 공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늘과 내일 우리가 둘러볼 무이구곡과 구곡도가(九曲棹歌, 원래 '계곡의 아홉 구비 노 젓는 노래'라는 뜻)는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나 많은 아류(亞流)를 만들어 냈던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카데미를 능가하는 대학(大學)이 유럽 곳곳에 세워졌던 것처럼 이퇴계의 도산서원과 도산구곡이 중국의 오리지널 못지 않다고 평가되는 것도 사실이다. 조상을 빛나게 하는 것도 욕되게 하는 것도 후손 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정작 구곡도가의 그림에는 주인공인 노(棹) 젓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계단식 밭처럼 곳곳에 조성된 차밭과 바위 틈에 보이는 암차(岩茶)

무이산에 왔으니 수렴동(水簾洞) 폭포도 구경하고 가야 한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에 모두 따라 나섰다. 조금만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무이산에서 가장 큰 동굴과 폭포를 볼 수 있다는 말에 뒤쳐지는 사람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이곳저곳에서 가느다란 물줄기의 폭포수가 떨어졌고 절벽 위에 피어 있는 산나리꽃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몇 년 전 가보았던 뉴질랜드 밀포드 사운드의 수많은 폭포가 연상되었다.

 

* 바위절벽에 피어 있는 흰나리꽃이 경이로웠다.

이제나 저제나 동굴과 폭포가 나오나 생각하면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하얀 비둘기 떼가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모이를 기다리는 듯 주위에 포진해 있었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는 더 반가운 것이 화장실이다. 이곳에도 예외 없이 변기에 가까이 다가서서 용변을 보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여기에 쓰인 문명(文明)이라는 용어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사실 대부분의 중국 인민들에게는 자동수세식/좌식 변기가 생소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올림픽을 개최하고 관광굴기를 지향하면서 이것을 '문명화'라고 일깨우는 당국자의 모습이 가상하게 느껴졌다.

 

* 이기승 이사의 즉석 태극권 지도 장면

수렴동 폭포의 장관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것을 보면 누구나 이백의 "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 三千尺)이라는 시구를 떠울리게 된다. 중국식 과장법의 대표적 사례이지만 힘들게 걸어와 구경하는 폭포인 만큼 그러한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황진이는 이백이 읊었던 '뤼샨(廬山)의 폭포' 보다도 개성의 박연폭포를  으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날리는 우박, 치닫는 우레소리 골짝에 가득 차고
구슬같이 치솟고 옥같이 부서져 푸른 하늘까지 꿰뚫는구나
나그네여, 여산(廬山) 폭포만 좋다고 마소
깍아지른 이 폭포가 해동 으뜸이라오"

 

 

운무(雲霧)에 덮힌 무이산을 뒤로 하고 오늘 밤 장예모 감독의 "인상 대홍포차" 공연을 기대하며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오늘도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이곳 특산이라는 병맥주가 아주 시원하고 맛이 좋았다. 음식점 이름이 堂宴 老武夷本地菜인 것 처럼 무이산에서 나오는 야채와 죽순, 버섯 등으로 노련한 주방장이 정성껏 만든 요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이산 쇼는 장 감독의 인상(印象, Impression) 시리즈 다섯번째 작품이며, 이곳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사용하고 관람석이 360도 회전하는 호화 쇼라고 가이드가 설명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쇼를 보는 동안 제발 비만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기원하고는 달리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는 듯했다. 극장 측에서는 취소하지 않고 입장객들에게 모두 비옷을 나눠주었다. 뒷사람 시야를 가리므로 우산을 쓰지는 못하고 비로 인해 쇼가 망치지 않도록 바라면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결과적으로 적당히 내리는 비는 극의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오히려 뒷자리에 앉은 중국인 가족들이 서로 내용을 설명해주며 크게 떠드는 소리가 몰입을 방해하였다.

 

드디어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차밭 한 쪽에 자리잡은 양옥집에서 역시 현대식 복장을 한 젊은이가 차를 마시며 차의 특성과 유래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곧 이어 대홍포차에 얽힌 전설 - 백마 탄 과거 시험보러 가는 서생과 그가 암차를 마시고 병을 고친 이야기가 영상으로 펼쳐지는가 싶더니 호화로운 대주점에서 홍포를 입은 여자들이 춤을 추며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장면이 나왔다.

곧 이어서 대나무 숲 속에서 흰옷을 입은 두 젊은이가  대결하는 장면이 나오고, 젊은 아낙이 무이계곡에서 대나무 뗏목을 미는 장면이 등장했다. 이 때 객석이 움직여서 마치 뗏목을 타고 계곡류를 타고 가는 4차원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층층이 조성된 차밭에 나와서 찻잎을 따고 말리고 덖는 장면이 매스 게임처럼 펼쳐졌다. 증산에 성공한 대홍포차가 명물 차로서 인기를 끌고 모든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어로 진행되어 우리 같은 외국인은 그저 상상 속에서 스토리를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지 가이드에게 들었던 백마 탄 서생의 이야기, 차나무에 홍포(紅布)를 두르게 된 연유,  무이구곡의 옥녀봉과 대왕암에 얽힌 전설 등이 믹스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스토리에는 정설(定說)이 없고 보는 이의 주관(主觀)이 작용하는 만큼 아무래나 좋았다.

 

장예모 감독의 인상(印象) 쇼는 예상한 대로 스케일이 크고 액션도 음악도 다이내믹했다.  배우들이 객석에 들어와 차를 마셔보라고 직접 관객들에게 찻잔을 나눠주기도 했다.

쇼 후반부에서 차밭에 줄지어 서서 찻잎을 따고 말리고 덖는 장면은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夢, 1990)에 나오는 복숭아밭 장면을 오마쥬(Hommage)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 장면은 쿠로사와가 10대 시절에 꾸었던 꿈에 나온다(이 영화의 명장면은 그가 20대에 프로방스에 가서 반 고호를 만나 그림 그리기의 충고를 듣고 고호의 까마귀 나는 밀밭으로 가는 대목임). 여자 어린이의 하나 마쓰리에 쓰이는 인형들이 모두 살아나서 택지개발업자의 손에 베어진 복숭아 과수원에서 춤추는 장면(아래 사진)과 비슷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웅장한 오르간 음악이 흘러 나오면서 벚꽃잎이 무수히 흩날리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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