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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을 들녘 - 고창 상하농원

Onepark 2023. 9. 11. 22:00

9월도 중순에 접어들었으니 소슬 바람 부는 가을 들녘으로 나들이를 떠나고 싶었다.

아내와 상의하여 요즘 SNS의 핫플레이스로 등장한 상하농원에 가보기로 하고 그곳 파머스 빌리지 호텔로 갔다.

다행히 아내가 오래 전에 이런 용도로 예약을 해 놓은 터라 기가 막히게 타이밍이 좋았다. 

 

* 천안-논산 고속도로 정안 휴게소의 쉼터
* 지방으로 촬영을 가는지 고속도로 휴게소를 화사하게 만들어준 동서양의 모델 일행

 

주말이라서 고속도로는 벌초와 이른 성묘하러 가는 사람들과 우리 같은 행락객들의 차량들로 메워졌다. 그런데 호남지방에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소통이 원활해졌다. 비로소 가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추수를 앞둔 들판은 파아란 하늘 아래 벼가 노랗게 무르익고 있었다.

전북 고창군 상하면에 위치한 상하농원은 매일유업이 유기농 축산을 위해 건설한 농원 겸 목장이다. 

 

* 매일유업에서 운영하는 유기농 상하농원의 파머스 빌리지
* 객실 내부와 테라스 바깥 풍경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호텔의 예약한 객실에 들어가니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농장 풍경이 테라스 밖에 펼쳐졌다.

일단 여장을 풀고 농원을 한 바퀴 구경하기로 했다.

완만한 경사의 구릉을 내려가니 양떼 목장이 있고 젖소 목장과 미니 돼지 등 여러 동물이 모여 사는 동물 농장이 나왔다.

주말에 농장과 동물, 치즈 공장을 체험하러 온 어린 자녀를 동반한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 같은 노년의 부부와 동년배의 어르신들이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곳에서는 소와 양, 닭을 키우고 우유과 고기를 가공하여 직접 판매하는 한편 소비자가 그 가공과정을 체험한 후 구매할 수 있게 해놓았으니 1차 × 2차 × 3차 산업 = 6차 산업을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 상하농원의 체험형 양떼 목장
* 강선달 저수지의 산책로, 연꽃과 수련

 

조금 더 내려가니 강선달 저수지에 연잎이 무리지어 있었다. 연꽃은 지고 없어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사한 연꽃 향이 피어났을 것이다.

어느덧 하늘에는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가까운 길섶을 보니 이맘때 피기시작할 코스모스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대신 그보다 더 연약해 보이는 나비바늘꽃(구글렌즈는 Gaura, Lindheimer's Beeblossom이라 소개함)이 하늘하늘 피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들판에서는 어느 사이에 개망초, 금계화, 나비바늘꽃 같은 외래종이 휩쓸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 진안 마이산 부근의 코스모스 꽃밭. 1년 전 사진제공: 유양수[2]

 

살사리꽃  -  정봉렬

Salsari flower - Chung Bong-ryeol

 

엄마!

저 꽃 이름이 뭐야?

살사리꽃이란다

코스모스라고도 부른단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란다

 

솜사탕처럼 입에 살살 녹는 이름

신비하고 아련해지는 또 다른 꽃이름

저 아득한 시공의 언덕 너머

마야의 신전 뜨락에서 피어나던

우주를 머금은 형형색색 신비로운 꽃

 

Mommy!
What's the name of that flower?
It's a salsari flower.
It's also called cosmos.
It's mom's favorite flower.

 

It’s the name that melts in mouth like cotton candy,
Another mysterious and wistful flower name.
Beyond the hills of time and space,
It blossomed on the ground of the Mayan temple.
A colorful, mysterious flower that embraces the universe.

 

언제 어떻게 이 땅의 산하에

이름보다 먼저 와서

가을하늘보다 먼 그리움을 불러오고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가

 

삶이라는 사람들의 세상살이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

만나고 살을 맞대고 헤어지고

또 기다리면서 그리워하는 것이다

 

No one knows when it came to this land.
It arrived here before its name.
It brings here longing farther than the autumn sky
and is swaying gently in the wind.

 

The worldly life of people called life
is to be swayed by the slightest breeze.
Meeting with flesh and blood, then parting
and waiting and missing again.

 

뜨거운 살에라도 데인 듯

고추잠자리가 살짝 스쳐간 꽃잎에

노을을 빠져나온 하늬바람이 전하는

가을의 숨소리에 쫑긋 귀를 세운다

 

그립습니다 ᆢ

사랑합니다 ᆢ

 

It’s like scalding hot flesh
To the flower petals that the red dragonfly has grazed slightly.
West wind coming out of evening glow gives me a message,
Autumn's breathing, I listen closely.

 

I miss you. . .
I love you. . .

 

* 저녁 노을이 질 때쯤 어느 먹방도 부럽지 않은 흑돼지 바비큐 만찬

 

이튿날 아침 일찍 스파에 가서 목욕을 하였다.[1]

아니 바깥 노천탕에 들어앉아 점점 밝아오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멍 때리고 있었다.
"무념무상, 무념무상" 하고 입속으로 되뇌이니 17음절의 단시(短詩, haiku, senryu)가 저절로 떠올랐다.

 

구름이 하늘에 그림을 그린다고? 
무념무상(無念無想)

그건 내 마음이 보고 싶은 것일뿐
종심소욕(從心所欲)

나이 일흔을 넘기니 무리함이 없네
불유구(不踰矩).

* 子曰: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I can't believe clouds make pictures in the sky.  
Calm down your confused mind. 
It's just what your mind wants to see.
Your mind reflects on the sky picture
At seventy years of age, we're not driven by
Anything else in the world.

 

무심하게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은퇴한 삶임에도 여유 없이 바쁘게 지내오지 않았나 반성이 되었다.

객실에서 잠시 쉬었다가 아침식사를 하려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느새 이 많은 사람이 파머스 빌리지 호텔에 묵고 있었는지 놀라우리만치 많은 어른과 아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 스파의 노천탕에 앉아 흰구름 떠가는 하늘을 멍 때리며 바라보았다.

 

오늘의 일정은 고창의 자랑 선운사를 둘러보고 최근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지를 보러갈 참이다.

고창읍은 더 이상 전라북도의 변방이 아니었다.[2]

5월의 청보리밭, 9월의 선운사 꽃무릇 축제, 고인돌 유적지의 별빛 축제, 그리고 4계절 풍천장어 등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가 많았다. 그리고 모두 향토색이 짙은 행사라 할 수 있다.

 

* 고창읍으로 가는 길의 기이한 모습의 산봉우리
* 고창읍내 회전교차로 중앙에 늠름하게 서있는 거수 반송
* 고창 고인돌 박물관과 UNESCO 지정 고인돌 유적지
* 자연석도 아닌 이 무거운 바위들을 언덕백이로 끌어올린 주인공은 UFO?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구경하는 동안 옛날 나 어렸을 적의 시골하고는 사뭇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가을 소풍갈 때 지천으로 피어 있던 코스모스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금계화, 나비바늘꽃, 구절초 등으로 풍경이 바뀌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 상하농원 스파 앞에서 발견한 이름도 예쁜 핑크빛 '꽃범의 꼬리'
* 선운사 가는 길목을 지키고 는 키 큰 나무
* 2016.6. 선운사 가는 길을 버스 시간 때문에 25분 만에 주파한 적이 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 새만금 잼버리 때 선운사에서 템플스테이한 스카웃 단원들이 소원을 적어놓은 소원지[3]
*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선운사 꽃무릇 군락지. 1~2주 기다리면 꽃이 만개하고 축제가 벌어질 것이다.

Note

1] 상하농원 스파는 완전 무인(無人)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남탕 여탕이 아담한 사이즈인 것은 좋은데 그 때문인지 뭔가 부족한 점이 느껴졌다. 도착하자마자 스파에 다녀온 아내도 뭔가 2%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 목을 축일 수 있는 음료 정수기나 자판기는 그렇다 쳐도 화장품은 Body Lotion 하나 뿐이었다.

노천탕 옆에 있는 건식 사우나는 전기 시스템 고장이라며 폐문 상태였다. 노천탕 밖에 나와 쉴 수 있는 의자 하나 없이 나무마루만 덩그러니 만들어 놓았다. 차라리 작년 가을 가루이자와 갈 때 들렸던 마츠노이 온천 호텔의 상쾌한 느낌을 자아내는 윈드 차임벨이라도 달아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장수에서 감 농원을 운영하는 멋장이 유양수 친구가 진안의 가을 들판을 전경(前景)으로 한 名山 마이산 사진을 보내왔다. 외국에서 오래 살고 있는 무진장(전라북도의 山이 많은 세 郡 무주 진안 장수를 함께 일컫는 말) 출신 교포가 본다면 가슴이 뭉클해질 경치여서 우리끼리만 보긴 아쉽다 생각되어 여기 소개한다. 

손수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 유양수 친구는 "숫마이봉의 동쪽 측면을 바라보니 아무에게도 감히 오름을 허락하지 않는 숫봉의 위용과 품격에 절로 경외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 지금 여름 龍角봉에서 가을 馬耳봉으로 옷을 갈아 입는 마이산의 동쪽 풍경
* 알프스의 영봉 마테오른 못지 않게 장엄해 보이는 숫마이산

 

3] 일본 신사(神社)에서 사람들이 자기의 소원을 적어 놓고 비는 소원지 코너가 한국의 사찰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전에는 비싼 연등(燃燈)이나 신축 건물용 기와에 소원을 적어 기원을 했지만 이젠 5000원만 내면 좀더 자세히 적고 소원을 빌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 소원은 그 다름 사람이 읽어보고 빌어주는 것 같다.

선운사에는 이번 새만금 잼버리에 참가한 외국의 스카웃 대원이 영어로 적어놓은 게 많았다. 한글로 적어놓은 소원지에는 "우리 식구 모두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우리 아빠 로또가 1등 당첨되기를" 바란다는 것도 적지 않았다.

반면 네덜란드에서 온 어느 여학생은 매우 高차원적으로 "내년부터는 동물들이 害를 입지 않고 우리집 고양이가 자기를 반겨주기를, 기후위기가 늦춰지고 양성평등이 보다 진전되기를, 또 다른 문화에 대한 존경심을 더 많이 갖게 되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아주 빽빽하게 적은 다음 자기 이름 Julia를 즉석에서 배운 한글 '주리ㅏ'(아래 사진)로 표기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