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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가리왕산의 생산적인 변신

Onepark 2023. 7. 3. 07:00

* 가리왕산 운해(雲海)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 이하 사진출처: 정선군 동계올림픽 사진전

2018 동계올림픽 때 알파인 스키 경기가 열렸던 가리왕산에 다녀왔다. 마침 7월 2일은 정선 5일장이 열리는 날이어서 두 곳을 다 돌아볼 수 있었다.

가리왕산은 1380m가 넘는 높은 산임에도 장마철 무더위에 케이블카[1]를 타고 아주 편하게 올라갔다가 1시간 만에 내려올 수 있었다. 엊그제 갑자기 닥친 더위에 많은 관광객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약 20여 분간 적잖은 고통을 겪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케이블카 천정에 선풍기를 설치하는 공사가 한쪽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정선 가리왕산 가는 길은 이처럼 산이 높고 골이 깊다.

자연히 케이블카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에 시선이 갔다. 가리왕산 케이블카의 운영주체가 금년 들어 상업적 운행을 개시한 데 따른 애로사항을 설명하고 정선 군민과 타지 관광객들의 성원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를 비롯해 유명 관광지에 설치되어 있는 케이블카는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장사진을 이루고 타는데 이곳에선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이곳에서 가까운 용평 리조트에 있는 발왕산 케이블카는 왕복요금이 성인 기준 2만 5천원인데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탑승시간이 조금 더 길지만 요금은 훨씬 적은 1만5천원이고 5천원은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주었다. 그래서 우리 내외는 정선 장터에서 음식을 사먹을 때 곧장 사용했다. 

 

* 가리왕산 하봉 전망대에 비치된 사진을 보면 주변에 유명산들이 포진해 있다.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특이하게 중간 정차역이 있지만 내리지는 못하게 되어 있었다.

정상에 당도하여 주변을 살펴보고 나서야 이 모든 사정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다음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의 케이블카를 타본 전직 교수의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다.

은퇴 전 학자 시절의 관심분야는 프로젝트 금융 같은 구조화금융(structured finance)이었고, 민・관이 공동으로 주요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public private partnership: PPP)하는 방안을 오랫동안 연구하였음을 밝혀둔다. 한편으론 명산(名山)에 도로를 만들지 말고 케이블카를 설치하거나 스위스처럼 산악철도를 건설할 것을 제안하는 시론(時論)을 몇 차례 실은 바 있다.[2]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태생적인 제약을 안고 있었다.

그것은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서 평창이 3수를 하는 동안 알파인 스키경기장으로 가리왕산이 선택된 데 따른 숙명이었다.[3]

본래 알파인 스키는 경사가 가파른 알프스 산록에서 유래한 경기여서 경사도나 총 연장거리, 적설량 등 조건을 충족하는 스키장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관중석과 숙박시설, 주차시설 등을 조성할 충분한 공간도 확보하여야 했다. 그래서 일부 알파인 종목은 용평 스키장을 이용했지만 알파인 전용 스키장은 가리왕산 골짜기에 따로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설질(雪質)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 제설도 하면서 눈 표면을 살짝 얼리기 위해 물도 뿌릴 수 있는 살수기를 산 정상부분까지 설치하는 것이었다.

 

산림청과 환경부에서는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에 동의하고, 올림픽 경기를 치룬 후에는 산림을 원상으로 복구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키장 시설도 거의 완벽했고 현장에서 또 TV 중계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은 선수들의 스피드와 테크닉에서 내뿜는 박진감에 손에 땀을 쥐었다. 대부분의 알파인 종목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선수들이 휩쓸었지만 한국의 알파인 스키 선수들도 개최국의 이점을 살려 열심히 경기에 참가하였다. 

 

* 정선 알파인 스키장에서 인공제설기 겸 살수기가 알파인 스키 경기에 적합한 눈을 뿌리고 있다.
* 선수들의 스피드와 테크닉이 두드러진 알파인 스키 경기는 관중들에게 스릴 만점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개막식과 폐회식이 열린 평창의 메인 스타디움은 당초 계획대로 미련없이 철거해 버렸지만, 설상 경기에 사용된 기존 민영 스키장이 아닌 정선의 스키장이 문제였다. 특히 스키 선수들을 알파인 스키 경기의 스타트라인 즉 중간지점과 정상으로 태우고 간 곤돌라 시설은 철거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 터였다.

이것을 발왕산 케이블카처럼 재활용할 수만 있다면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겠는가! 

정선군과 강원도가 나서서 중앙정부를 설득하였다. 그리하여 2024년 말까지 한시적 이용을 허용하되, 방문객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것과 관광객들이 산림자원을 해치지 않도록 최소한의 데크 공간만 허용하고 산림체험이나 트레킹은 일체 불허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의 폐막식 장면
* 올림픽 개최 후 업그레이드된 도로 인프라. 여기서 직진하면 정선 아우라지, 레일바이크 역이 나온다.

그리하여 정선군청은 알파인 스키 곤돌라 시설을 보강하여 케이블카를 운행하기로 하고 2022년 말 시운전을 거쳐 2023년 초부터 상업적 운행을 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시점에 현장에 가서 목격한 상황은 여러 모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리왕산 하봉의 휴게소 시설이 너무 빈약했다. 당초 곤돌라 정상부 종점 기계실로 건설되었기에 마땅한 휴게시설이 없고 음료수나 컵라면도 자판기에서 꺼내 먹어야 했다. 관광객들이 걷거나 쉴 수 있는 공간도 난간이 있는 데크(아래 사진)로 한정해 놓았다. 이는 산림청 등 중앙정부의 허가 조건에 따른 것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천혜의 공간을 "죽도 밥도 아닌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 가리왕산 케이블카 스테이션 내부. 오른쪽이 매표창구, 저 안쪽에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 가리왕산 정상부에는 편의시설이 없고 이런 데크 시설 뿐이다.
* 강원도와 정선군에서는 순천시 같은 국가 '산림'정원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만이 희귀 자생식물을 보존하는 길인가? 아니면 인공적으로 식물자원을 재배치하고 정상 부근에 양묘원을 조성하여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관광객들이 4계절 야생화를 즐길 수 있는 꽃밭으로 만들 수는 없단 말인가! [4]

바로 지척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오대산 한국자생식물원과 봉평 허브 농원이 있어서 희귀한 식물을 일상의 반려식물로 만든 사례를 참조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생태계의 유지와 보존에 있어서도 '자연'에만 맡기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고 취약지점에는 어느 정도 '돈'을 써야 함을 일깨워준다.

 

쉽게 올라갈 수 없는 높은 산에 케이블카를 건설하여 일반 시민도 노약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 외국의 사례를 필자가 다녀본 곳 중에서 몇 군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카자흐스탄 알마티 심불락 스키 리조트

* 뉴질랜드 퀸즈타운 스카이라인

* 스위스 루체른 필라투스산

 

강원도에는 이러한 견지에서 성공한 사례가 아주 많다. 갈 때마다 놀라는 일이지만 강릉이 이처럼 핫플(Hot place)이 된 것은 단연코 경포와 안목 해변의 솔밭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선견지명을 가진 조상들이 해안가에 소나무를 심고 정성으로 가꾸었다. 그 덕분에 우리가 강릉에 자주 가고 있는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보다 하얀 백사장에 나란히 푸른 소나무 숲이 길게 뻗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 앞 해변 솔밭에 서있는 익살스러운 남녀 동상

그러므로 케이블카 안 모니터에서 눈물 나도록 호소한 것처럼 중앙정부에 맞대응하는 것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럴 게 아니라 2030 MZ세대의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하여 그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을 가리왕산 주변에 조성[4]해 놓을 필요가 있다. 누구 말처럼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결코 솔루션을 찾을 수 없다.[5]

이게 만일 성공한다면 곤돌라 이용객 수에 일희일비할 것 없이 가리왕산을 전국에서 손꼽는 핫플로 만들고 다음 세대에도 귀중한 관광자원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4]   

 

Note

1] 공중에 설치한 케이블에 캐빈을 매달아 사람과 물건을 운반하는 수단을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케이블카'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곤돌라(gondola)' 또는 '로프웨이(ropeway)'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곤돌라' 하면 베니스의 긴 배를 연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케이블카는 경사면 레일 위에서 케이블로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차량(funicular)을 말한다. 일본 고베 로코산의 케이블카가 이런 식이다. 스키장, 루지 코스의 의자만 있는 공중이동 수단은 '리프트(lift)'라고 부른다.

 

2] 예를 들자면, 한국경제신문, "관광지 인프라는 철도 중심으로",  2000.10.7; 중앙일보, "SOC 사업이 돈먹는 하마는 아니다", 2004.11.25; 한국경제신문, "적도원칙 준수할 때다", 2006.8.9.  

 

3] 2018 동계올림픽 때 알파인 스키 경기가 벌어졌던 가리왕산이 과연 '흰코끼리(white elephant)'로 남을지 논란이 되고 있다.

본래 가리왕산은 생태 자원의 보고로 환경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산림청은 노랑무늬분꽃도깨비부채 등 희귀 식물의 자생지인 가리왕산을 2008년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다만 올림픽이 끝난 뒤 복원 을 전제로 보호구역 일부(78만3천㎡)를 한시적으로 해제했다. 알파인 경기장은 해발 1370m의 가리왕산 하봉 을 시작점으로 스키 슬로프(6.23km)와 곤돌라(3.5km)-리프트(2km)·운영도로(4.7km) 등으로 조성했다.

가리왕산이 조선 시대부터 500년 넘게 보호해온 천연림 지역인 만큼 올림픽 이후 곤돌라, 리프트 등 시설물은 철거하고 훼손된 지형과 물길은 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막상 올림픽이 끝나자 강원도는 입장을 바꿨다. 강원도는 정선 주민들이 경기장 시설 존치를 원한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당초 약속대로 복원을 요구하는 환경단체와 관광자원 활용을 주장하는 주민들의 첨예한 갈등이 이어졌다.
결국 정부는 2021년 6월 곤돌라의 한시 운영이란 타협안을 마련했다. 일단 2024년 12월 말까지 곤돌라 운영을 허용하고 그때 가서 곤돌라의 철거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곤돌라 운영과 관련한 비용은 정선군이 부담하고 편의시설은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설치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정선군이 곤돌라 운행을 재개하더라도 가리왕산 생태계의 추가 훼손을 막으려면 곤돌라 관광객의 동선을 철저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단순히 곤돌라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만으로는 관광객들이 만족하기 어렵다. 가리왕산 주변에 다른 관광자원도 빈약하다. 산 정상에 올라간 관광객들이 멋대로 돌아다니며 주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가리왕산은 "관광객의 접근을 보장하는 국립공원이 아니라 학술적 목적으로만 개방하는 산림 보호구역"이다. 고지대에 위치해 희귀 자원이 많은 가리왕산 생태계는 한 번 파괴하면 회복되기 어려운 점을 케이블카 운영자나 이용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개·폐회식장은 철거, 가리왕산 복원은 차기 정부로", 2022.2.16.

 

4] 가리왕산 케이블카 스테이션 앞에는 HDC그룹에서 운영하는 4성급 호텔 PARK ROCHE Resort & Wellness가 있다. 2018년 동계올림픽 직전에 개관하여 올림픽 대회 기간 중에는 미국 대표단으로 내한한 트럼프 대통령의 영애 이방카가 머물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알파인 스키장이 폐쇄됨에 따라 파크로슈는 그 영업 전망이  매우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2030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여 지금은 MZ세대의 호캉스 최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주변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텔 옆 대형 인공호수(위의 사진)를 보고 그 용도가 무척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갔다 온 후에 왜 그같은 대형 저수조가 필요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연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규격에 맞는 알파인 스키장을 조성하기 위해 분투 노력했을 대회 관계자 및 시공사 관계자들에게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정상부까지 설치해 놓은 엄청난 규모의 제설 및 살수기에 공급할 깨끗한 물을 마련하느라 그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바로 이러한 스피릿이 정몽규 HDC회장의 할아버지 정주영 왕회장이 중동 건설수출의 신화를 이룩한 원동력이었구나 수긍이 되었다.

 

5] 조선일보, [김윤덕이 만난 사람] "인구도 늘게 한 백종원 ‘예산 기적’…공무원들 날 죽이고 싶을걸유?", ‘예산시장’ 돌풍 일으킨 백종원, 2023.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