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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고선생 음식점 운영의 혁신

Onepark 2023. 7. 2. 08:45

전에 대학 강단에서 상법을 가르쳤기에 나는 기업경영에 관심이 많고 학생들에게 좋은 기업, 훌륭한 기업경영인을 소개한 적도 있었다. 

집밥을 좋아하다 보니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 아주 이색적인 경험을 한 음식점을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SNS에서 많이들 소개하는 맛집이 아니라 첨단 경영기법을 도입한 강릉의 한 생선구이집 고선생이 주인공이다.

지인의 추천을 받고 처음 찾아간 우리는 그동안 많이 가보았던 여느 생선구이집이려니 생각했다.

 

* 강릉 경포호 세인트 존스 호텔 옆에 위치한 생선구이집 고선생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대기자 명단에 인원과 연락처를 기재하도록 했다. 바로 테이블링이라는 디지털 기기였다. 스마트폰에 해당 앱을 설치하면 더 많은 혜택이 있다고 했다. 방문예정 시간에 맞춰 스마트폰에 미리 입력을 해놓으면 긴 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우리 앞에 두 팀 정도 남아 있을 때 내 휴대폰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메시지가 떴다. 대기하고 있으니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매장 앞에서 줄을 서 있거나 새치기 싸움을 할 필요 없이, 은행 창구의 번호표처럼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 되었다. 더욱이 이 집은 애견족이 좋아하게끔 반려견도 캐리어에 넣어서 오면 동반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 피자집에 있을 법한 대형 화덕이 홀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 좌석으로 안내 받아 간 다음에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선 테이블 위의 단말기에서 메뉴를 고르고 주문하는 등 모두 자동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카트에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한가득 실려서 왔다. 종업원이 한손에는 3층으로 된 상추와 배추, 쌈장 등 쌈거리를 들고 왔다.

홀 안의 테이블 배치가 여유롭게 되어 있어서 서빙용 로봇의 동선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 보였다.

 

* 홀 내부는 조만간 서빙 로봇을 도입할 계획이 있는지 통로를 널찍하게 확보해 놓았다.

이 집의 특징은 생선을 주방에서 굽지 않고 홀 한쪽의 대형 화덕에서 구워낸다는 점이었다.

사실 주방에서 제일 많은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것이 고등어같은 생선구이라고 하는데 이 집에서는 그런 걱정이 없었다.

대신 생선의 기름기를 쫙 빼서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겉빠속촉)한 생선의 맛을 볼 수 있었다.

 

* 고선생의 대표메뉴인 영양솥밥과 생선구이 쌈밥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었다.

화덕이라면 피자의 도우(dough), 인도의 난(naan) 같이 발효된 밀가루 반죽을 굽는 용도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고선생은 그동안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겠지만 화덕을 생선 굽는 용도로 개발한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주된 메뉴는 인근 수산물 시장에서 조달한 생선 세트를 이 화덕에서 구워 큰 식판에 보기 좋게 진열해 내놓았다. 밥은 메인이 여주 이천 쌀로 지은 영양 솥밥이었으며, 여기에 추가되는 오징어 등 식재료에 따라 값을 조금씩 올려 받았다.

한마디로 거의 모든 메뉴가 표준화, 정형화되어 있었다. 그만큼 음식물 조리와 서빙에 드는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고 인건비를 줄일 수 있겠다 싶었다.

 

* 오징어 먹물 영양솥밥

전에 학생들에게 소개하였던 인도의 어느 안과병원(Aravind Eye Hospital) 사례가 생각났다.

인도의 안과 의사가 미국에서 맥도날드에 갔다가 맛있는 햄버거를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안과병원에서도 환자를 접수하고 병증을 검진한 다음 증세에 맞게 치료하고 수술하는 것을 분업화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비싼 병원비 때문에 백내장으로 실명하는 일은 막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도에 돌아온 그는 1976년 의사와 간호사, 직원들을 분업 체제로 새로 조직하는 한편 진료시설도 병렬식으로 재배치한 아라빈드 병원을 세웠다. 그 결과 질 좋은 의료 서비스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가난한 환자들도 제때 백내장 수술 등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강릉의 화덕 생선구이집은 안과병원과는 서비스 대상이나 내용이 다르다.

하지만 화덕을 밀가루 반죽이 아닌 생선을 굽는 데 이용함으로써 사람들이 좋아하는 생선류를 세트로 구워서 '겉빠속촉' 균일한 맛을 보장하고 조리 과정에서 생기는 미세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성과가 있었다. 반찬 가짓수를 표준화하고 양이 부족하면 샐러드 바에서 추가로 가져다 먹을 수 있게 하여 잔반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당장은 무인화, 자동화를 위해 초기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겠지만 요즘같이 사람 구하기 힘들 때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종업원 수를 줄이고 인건비를 크게 낮출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음식의 질과 값에 있어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