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팬데믹 현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해외여행 붐이 아닌가 싶다.
언론에서는 '보복 소비' 이야기를 하는데 팬데믹 기간 중 못한 것 중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말하라면 사람들은 대부분 해외여행을 첫 손에 꼽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얼마 전 괌에 태풍이 불어 발이 묶인 여행자 중에 한국 관광객이 3천명이나 된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K-팝, 한류에 편승하여 외국 관광객들을 더 많이 한국에 유치하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니 아웃바운드 해외관광에 눈을 흘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했거니와, 누가 나를 보고 해외여행을 할 때 자유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장ㆍ단점과 사례를 이야기하라면 한 시간 가지고도 부족할 것 같다.
우선 장점이라면 여행할 곳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풍부한 전문가가 여행 일정과 교통편을 어레인지해 준다는 것, 예산 범위내에서 비교적 좋은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 준다는 것, 무엇보다도 여행 중의 안전과 응급사태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 하겠다. 아무리 자유여행이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골라 다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해도 수많은 선택지를 놓고 갈등하거나 안전 상의 문제에 봉착한다면 그 여행은 악몽으로 바뀔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마침 오늘 조간신문에서 '패키지 여행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관한 칼럼을 읽었기에 내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남의 글을 퍼오지 않는다는 나 자신의 블로그 작성 원칙을 깨고 김지수 작가의 원문을 소개한 다음 내 경험담을 덧붙이기로 한다.
패키지 여행의 즐거움과 괴로움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열 살 소년과의 두 번째 여행이었다. 여행지는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린다는 베트남 다낭이었다. 코로나 이후 저가(低價) 여행은 막을 내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여행업은 ①프리미엄과 실속, 투 트랙으로 일대 호황을 이뤘다. 공항엔 연일 만원 버스처럼 빽빽하게 채워진 전세기가 떴고, 밤 비행기에서 내려 밤 비행기를 타고 떠나도록 설계된 트랙에 오른 사람들은 옵션 관광과 쇼핑 센터를 돌며 며칠간 부드럽게 지갑을 털렸다. 단체에 섞인 개인들은 대체로 순응적이었고, 컴플레인에 도가 튼 가이드들은 ②단호함과 나이스함을 오가며 국경을 넘어 들뜬 이들을 통솔했다.
낯선 문화에 몸을 던져 견문을 넓히는 ‘한 달살이’나 ‘자유 여행’과는 달리 패키지 관광에는 효율을 기준으로 깎아낸 표준의 체험, 평균의 쾌락이 있었다. 선택의 비용을 ‘0′에 가깝게 최적화한 빈틈없는 일정, 느슨한 소속감…. 그 속에 섞여 병아리가 어미 닭을 쫓듯 가이드를 쫓아 45인승 관광 버스에 ②시간 맞춰 오르내리는 것이, 나는 싫지 않았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인지력을 발휘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수동적인 편안함’, 그럼에도 막간을 틈타 장롱 속에 처박힐 게 분명한 싸구려 생활 소품을 사는 소소한 기쁨과 여행비보다 비싼 양털 이불과 영양제 앞에서 홀린 듯 카드를 긁은 후 서로의 어리석음에 안도하는 어리둥절한 순간들.
여행지는 달라져도 도시를 즐기는 루트는 대개 비슷했다. 비치와 대자연, 케이블카와 테마 파크, 성당과 불상, 잡화점과 야시장, 유람선과 야경, 그리고 베이스캠프 같은 한국 식당…. 상투적인 ②스케줄을 전투적으로 치르며 먹고 웃고 사진 찍다 보면 ‘여행을 해치운 것 같은’ 기계적인 포만감과 동지애가 쌓여간다.
현재의 패키지 꼴을 갖추기까지 여행사 프로모터들은 현지 문화와 관광객 욕망의 퍼즐을 맞춰왔다. 지금 한류는 동남아 곳곳에서 요란한 풍토병을 앓는 듯했다. 온 시내가 쩌렁쩌렁하도록 ‘미스터 트롯’ 음악을 틀어대던 한밤의 유람선, ‘강남 스타일’에 맞춰 땡볕 아래서 신들린 듯 노를 저으며 바구니 배를 돌리던 호이안의 노란 셔츠 입은 사공들을 볼 때면 ‘난 누구 여긴 어디’ 같은 초현실적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검게 그을린 순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하는 현지인 앞에서 덩달아 마음이 순해졌다.
전 세계 관광지 곳곳에 뿌리내린 ③한인 동포들의 상술은 날로 날렵해졌다. 라텍스, 양털, 침향, 커피에 이르기까지 타향살이 감성에 정보와 가족애를 버무린 그들의 ③④스토리텔링 쇼는 40분짜리 잘 짜인 스탠딩 공연 같다. 때론 공연료치고는 너무 비싼 값을 지불한 것 같아 가슴을 치고, 때론 ③낮은 매상에 어두워진 가이드 안색을 살피며 가슴 졸이는. 그럴 땐 내가 관광을 하는 건지, 해외 로케 스릴러를 찍는 건지 순식간에 장르의 커브를 도는 패키지 관광의 미스터리.
여전히 동포라는 말은 어딘가 애틋한 느낌을 자아낸다. 젓갈에 청국장까지 바리바리 싸왔던 시골 친목계원들, 술에 취해 호텔로 소방차까지 출두시킨 향우회 아저씨들, 무의식중에 뱀고기 쌀국수를 먹고도 “신기하게 화장이 잘 받더라니!” 호방하게 웃어넘기던 동창생 할머니들…. 고국 동포들의 온갖 해프닝을 풀어놓던 가이드가, 곤히 잠든 관광객들 앞에서 마지막 곶감 빼듯 자신의 ⑤굴곡진 이민사를 풀어놓을 땐,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차피 길 위에선 모두가 나그네. 패키지 관광의 진짜 풍경은 사람이 아닐는지. ⑦달력보다 지도 보는 인생을 살라고 이어령 선생은 충고했지만, 천성적으로 ‘길치’인 나는 길 위에 서면 사람을 본다. ⑥짧은 시간 동안 여행이라는 전투를 치른 30여 명의 연합군을, 나는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노모를 모시고 온 딸과 언니 부부,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동행한 4인 가족, 중학생 아들과 커플 룩으로 차려입은 젊은 아빠, 노부부, 중년 부부, 은발의 자매들…. 인구통계학으로만 관찰하던 대한민국의 ⑥보통 가족, 보통의 행복이 거기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출신도 모른 채 정처없이 나누는 대화, ⑥판단의 목적 없는 순전한 감탄으로 여행의 풍미는 깊어진다.
“맥주 맛있죠?” “달러 좀 빌려 드려요?” “동유럽도 좋더라고요.”
그렇게 패키지의 1/n인 우리는 차별 대우도 특별 대우도 없어 평화로운 무리 속에서, 적당히 내어주고 내어받으며 서로의 ⑦추억의 원경이 되어갔다.
<출처: 조선일보, 김지수의 서정시대, 2023. 9. 7.>
① Budget
여행할 곳의 패키지 여행상품을 고를 때 첫 번째 기준은 요금과 시기이다. 당연히 한국인들이 관광을 많이 다니는 지역이나 시기에는 요금이 올라간다. 그러나 경험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일수록 실속형보다는 품격, 프리미엄일 수록 가성비(價成比) 면에서 항공권 좌석부터 숙소, 식사에 이르기까지 대접을 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두 번 갈 것을 한 번 가는 것으로 여행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고생을 사서 하는 젊은이라면 자유 배낭여행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적은 비용으로 알차게 여행을 하고 싶다면 실속 여행상품 중에서 고르는 것도 요령이다. 주의할 점은 도저히 이 요금으로 여행사가 수지를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여행상품은 재고해야 한다. 그만큼 여행자가 가이드가 안내하는 쇼핑을 할 때 가외(加外)로 지불하는 비용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② Guide
학회에서 떠난 여행 중에 나 자신이 가이드를 한 적이 있으므로 할 말이 많다. 동행한 여행자들의 관심사를 헤아려 궁금해 하거나 상식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을 자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여행자 중에 그 분야 전문가가 있으면 그때그때 마이크를 넘겨주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프라이버시 보호와 일행 중의 다툼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손님이 마이크 잡는 것을 불허하는 여행사가 많다. 이 경우 인솔자든 로컬 가이드든 수준 낮은 해설을 할 경우 평점 낮은 후기가 달리게 될 것이다. 풍부한 현지 상식을 더해 그곳에 누구와 다녀왔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면 그는 성공적인 가이드라 할 수 있다. 2012년 초 우리 가족의 스페인 일주여행 때 두고두고 화젯거리를 안겨준 허봉도 가이드가 기억에 남는다. 이를테면 패키지 여행은 중간중간 화장실 찾아가는 것이 최대의 현안이라 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허봉도 가이드는 "버스에서 우아하게 내리시겠습니다"라 하여 우리는 마치 춤을 추는 기분으로 여행하는 것 같았다.
③ Shopping
가이드가 안내하는 현지 쇼핑센터나 선물가게에서 그에게 어느 정도 리베이트가 있으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저가 여행 상품일 수록 그 비중이 크게 마련이다. 고품격 상품은 그런 여지를 줄였으므로 쇼핑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로컬 가이드에게 선물 살 곳을 안내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생긴다.
손님들이 고가의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에는 부가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가이드가 그 요령과 절차를 안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쇼핑 안내에 관한 한 가이드가 솔직하게 자기 부모님, 친구들에게 이런 상품을 선물하여 칭찬을 들었다라고 해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④ Life story
동행자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무한 패키지 여행의 경우 버스 좌석이나 식당 좌석을 잡을 때는 서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엔 서먹하다가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면 며칠 지나는 사이에 그 사람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신비주의로 무장한 사람일지라도 몇 마디 말에 구글 검색으로 신상을 털릴 수 있다.
패키지 여행을 많이 다녀보니 생김새, 거주지, 학력, 직업이 모두 달라도 짧은 기간 같은 곳을 여행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반대로 저 사람처럼 하면 안 되겠다는 반면교사를 만나기도 한다. 마침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생일 또는 기념일이라고 맥주나 와인을 돌리기라도 한다면 동반 여행자의 라이프 스토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그 여행이 즐거워지곤 하였다.
⑤ Living abroad (Immigration)
패키지 여행 중에 제일 많이 접촉하는 사람은 인솔자와 현지 가이드이다. 아무래도 여행 정보 외에 사이사이 자신의 히스토리를 들려줄 때가 많다.
로컬 가이드는 현지 관광해설사 자격을 취득한 한국 교포가 맡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면 어떻게 이 나라에 오게 되었느냐, 결혼은 했느냐, 자녀교육이나 살림살이는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청문회 같은 질의와 답변이 벌어지기도 한다. 요즘은 소그룹 여행자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지식과 학식을 갖춘 전문가를 가이드(Butler service)로 섭외하게 되는데 잘 고른 가이드가 여행성과를 높여주었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내 경우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과 아말피 해안을 여행할 때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해주었던 성악가 유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⑥ Accidental tourist
패키지 여행을 통해 우연히 만난 사람은 투어 당시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명함까지 교환했더라도 귀국한 다음에 소원해지기 일쑤이다. 한두 번 만나기도 하지만 교유가 오래 지속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여행에서 돌아와 사는 일이 바빠서 그렇지만 만남을 지속할 수 있는 유대감이 기대치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동반한 부인들이 서로 의기가 투합하였거나, 아이들이 서로 친해진 경우에는 인연이 오래 갈 수 있다.
⑦ Travelogue
아무리 좋은 곳을 많이 다녔더라도 사진이나 여행기를 남기지 않으면 여행 연도와 일정이 뒤죽박죽이 된다. 그 당시의 기억을 현장감 있게 되살리려면 사진첩을 만들어도 되지만 사진과 함께 간단한 여행기를 남기는 방법이 제일 좋다.
내 경우 일찍이 경주에서 교사를 하는 분이 방학 때마다 동남아와 인도, 중남미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인터넷에 올린 여행기를 즐겨 보았다. 그러는 가운데 내 자신이 여행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많았다.
실제로 다닌 곳이 늘어나다 보니 심심할 때면,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는 전에 여행 다녔던 곳을 마치 복기하듯이 다닌 것으로 해외여행의 갈증을 풀곤 했었다. 견문을 넓혔던 만큼 그 지식과 정보를 여행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 필자가 꼽은 다시 가고 싶은 인상적인 해외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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