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오래 전부터 프로방스로 이끈 것은 '뤼베롱 산지에서 양치는 목동의 이야기'(알퐁스 도데의 "별")였다. 그곳에 가면 사춘기 시절 나를 들뜨게 만들었던 어여쁜 아가씨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1996년 6월 파리의 '시앙스포'(Sciences Po: 프랑스 그랑제꼴의 하나인 파리 정치대학교)에서 열리는 하계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결정되었을 때 나는 "EU의 장래"라는 주제보다는 어떻게 하면 시간을 내어 프로방스 지방을 답사할 것인가에 골몰해 있었다.
내 마음은 벌써 "프로빈차, 내 고향으로"(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아리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영화 "지붕 위의 기병"(콜레라가 창궐한 프로방스 지방에서 이태리 기병장교와의 애틋한 사연을 그린 쥴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과 "프렌치 키스"(고향 프로방스에서 포도원을 일구려는 사기꾼을 사랑하게 되는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를 비디오로 보면서 로케이션 장소가 어딘가 눈여겨보기도 했다.
마침 같은 시기에 직장에서 휴가를 낼 수 있었던 집사람도 내 '꿈의 여행'에 동반하기로 했다. 프로방스 여행의 기점은 남불 휴양도시인 니스로 정했다. 여행기에 빠짐없이 소개되는 니스의 환상적인 해변 산책로, 전철을 타고 찾아간 몬테카를로(모나코) 왕궁 언덕 위에서 바라본 지중해는 바로 내일부터 시작될 프로방스 답사에 비하면 시시하게만 느껴졌다.
마르세유에서의 렌트카
제한된 시간내에 프로방스의 곳곳을 구경하려면 렌트카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마르세유까지는 유-레일 패스로 이동하고 마르세유에서 차를 빌려 엑상프로방스, 아비뇽, 아를, 생레미를 차례로 돌아보는 것으로 여정을 잡았다. 렌트카 회사는 역이나 공항 주변에 있게 마련이므로 마르세유 생샤를르역에 도착하여 역 구내에 위치한 이비스(ibis) 호텔(프랑스와 이태리 지역의 비즈니스맨을 위한 호텔 체인으로 종업원 수를 줄여 숙박비를 싸게 하는 대신 풍성한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특색)에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영어 속담을 생각하고 역 주변의 렌트카 회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들어선 나에게 '허츠'나 '유롭카'의 직원들은 실망을 안겨줄 뿐이었다. 대부분 수동식이고 내가 찾는 자동변속기가 달린 중형 승용차는 열흘 전쯤 예약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느즈막이 나타난 매니저가 예약기간에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취소된 차를 쓰겠느냐고 했다. 나는 물론 "Of course"라 대답하고 처음 보는 르노 라귀나(Laguna)를 냉큼 집어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이모저모 뜯어보니 국산 프린스와 에스페로를 합쳐 놓은 모습이었다. 거의 모든 게 자동식이어서 따로 조작법을 익히지 않아도 되었다.
"프랑스에 와서 프랑스 차를 처음 몰아 보는구나!"하는 감흥이 일기도 했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르세유의 랜드마크인 노트르담 사원도 구경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트렁크에다 짐을 싣고 태양의 고속도로(A6)를 거쳐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로 향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가속 페달을 밟으니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과속 딱지를 떼면 안되었으므로 주행차선에서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프랑스의 고속도로에는 오토바이도 함께 달린다는 점이었다. 집사람과 프로방스 여행계획을 이야기하며 가는 도중 엑상프로방스를 20여 킬로쯤 남겨놓고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라오던 오토바이가 내 차를 향해 계속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내오는 것이었다.
고속도로 상의 오토바이 강도
계기판에 이상 시그널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프랑스 고속도로상에서 차가 고장나면 큰 일이다 싶어 일단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 바퀴 돌아봤다. 별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고 오토바이 사내를 향해 어깨를 으쓱하려는 찰나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나한테 수신호를 하던 놈이 우리 차 앞문 부근에서 동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내가 "여보, 조심해!" 하고 외친 것과 그놈이 차 문을 열고 주먹으로 집사람의 얼굴을 치고 집사람 품에 안고 있던 여행 백을 가로채어 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도 뒤쫓아갔지만 발동을 걸어놓고 있던 오토바이는 범인을 태우고 전속력으로 도망쳐 버렸다.
황당했던 순간이 지나고 수습책을 마련해야 했다. 피해물품은 집사람의 여권과 항공권, 약간의 비상금 그밖에 개인 여행용품이었으므로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었다. 여권·항공권은 파리에 가서 재발급 받으면 되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파리 대사관이나 KAL 지사에는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건을 목격하고 차를 세워 조언해준 프랑스 사람들의 말에 따라 액상프로방스 시내로 들어가 경찰에 신고부터 하기로 했다.
저 멀리 세잔느가 즐겨 그렸던 생트 빅투아르산이 보였지만 강도한테 얻어맞고 여행 백까지 빼앗긴 집사람은 프로방스 여행이고 뭐고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 경찰관은 친절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결방법은 간단했다. 데스크 위의 미니텔(프랑스 국영 온라인 통신망)을 누르니 금방 영어를 하는 통역자가 나와 3자간에 스피커폰으로 이야기했다. 통역은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느냐고 묻고 나서 범인의 인상착의와 사건정황, 피해물품과 피해액 등을 물어보고 경찰관은 컴퓨터로 양식이 미리 입력되어 있는 사건조서를 작성하였다.
호텔에서 쉬고 싶다는 집사람을 가까스로 달래 제한된 일정이나마 프로방스를 한 군데라도 더 돌아보기로 했다. 세잔느의 그림에서 보았던 생트 빅투아르산은 전혀 아기자기한 맛이 없고 석회암으로 된 허연 바위산에 불과했다.
태양의 고속도로(A6)를 따라 뤼베롱 산지를 옆으로 끼고 아비뇽에 있는 교황청을 찾아갔다. 론 강 위의 중간에 끊겨진 '퐁 생 베네제' 다리까지 가 보았으나 연극제 시즌이 시작되기 전이라 교황청 구내에는 볼만한 구경거리가 없었다.
조금은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미국에서의 초장기 베스트셀러인 피터 메일이 쓴 "프로방스에서의 1년"에 나오는 여러가지 에피소드, 그리고 세잔느와 고흐의 풍경화를 연상하면서 귀로는 국도(N7)를 택하였다. 과연 고속도로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나타났다. 양켠에 두 줄로 심어진 플라타나스 가로수길이 줄곧 이어졌다. 주변 들판에는 고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올리브 나무와 삼나무(cypress)가 서 있는 풍경이 계속 펼쳐졌다. 5월쯤 왔더라면 '태양이 가득한 대지' 위에 향수 채취용으로 재배하는 꽃들이 만개해 있는 그림 같은 황홀한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여기저기 멍들어 있는 집사람의 기분을 도외시한 채 나보다 100년 앞서 태어난 천재화가 고호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아를이나 생레미를 관광하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긴장이 풀리자 나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로 주문한 프로방스식 요리를 맛보기도 전에 프로방스산 레드와인에 취해 버리고 말았다.
프랑스의 인종 문제
마르세유의 치안 문제를 알게 된 것은 프로방스에서 주말을 보내고 파리로 돌아와 시앙스포에서 유럽의 인종갈등에 관한 강의를 들을 때였다. 역대 선거 때마다 인종 문제를 내걸었던 국민전선(National Front)의 르팽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던 것도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회교도들이 크고 작은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서야 마르세유 생샤를르역 앞의 알지에 항공사 부근에 수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 서 있는 가운데 (렌트카를 구하느라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지만) 수염 많은 알제리 남자들의 험상궂은 모습(사실 1998년 프랑스에 월드컵을 안겨준 국민영웅 지단도 호감이 가는 얼굴은 아니다)이 우리 차를 세우고 여행 백을 강탈해 간 범인의 인상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를 돈 많은 일본 관광객으로 생각하고 마르세유에서부터 뒤쫓아 왔음에 틀림없었다.
사실 파리에서는 미국의 흑백 문제 이상으로 인종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북아프리카인, 흑인, 중국인에 따라 거주지역, 교통편, 애용하는 음식료품이 다르고 직업에 있어서도 차별화가 두드러져 보였다. 실제로 EU 회원국에서 여론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프랑스인들은 EU 평균보다 높게 인종 문제(ethnocentricism)를 의식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자기 나라에 외국인들(관광객은 제외)이 너무 많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프랑스의 경우 88년 45%, 92년 52%, 94년 55%로 EU 평균치인 37%, 50%, 43%보다 훨씬 높았다. 외국인의 존재를 거북하게 느끼는 만큼 "외국인 근로자를 추방하자"는 정강(政綱)을 내건 르팽의 정책노선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마르세유에서 프로방스 여행을 시작한 것은 어설픈 정보에 기인한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파리 시내에서 할 일 없이 접근해 오는 집시 청소년이나 동유럽 걸인들을 조심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에도 출입문 앞자리에 앉는 것은 피했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가방을 가로채 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젊은이의 옆자리도 애써 피했다.
파리에서의 연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암스테르담 스키폴(Schipol, 발음은 쉬폴) 공항을 거쳐 귀국하는 길에 시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 들렀다. 나보다 백년 전에 태어나서 파리를 방문한 것도 정확히 100년간의 시차를 두었던 네덜란드 사람의 작품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 입구의 한 작품이 내 발걸음을 끌어당겼다. 고흐가 그린 "먹구름 아래의 밀밭 풍경"이 며칠 전 프로방스에서 느꼈던 바로 그 감회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방이 어두컴컴해지고 금방이라도 소낙비가 퍼부을지 모르는데 화필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을 고호의 모습이 나하고 영락없이 닮아 있었다.
내가 오랜 기대와 준비 끝에 프로방스를 찾아갔지만 뜻하지 않은 위험에 부딪혔던 것처럼 고호 역시 프로방스와는 달리 낯선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의 들판에서 웬지 모를 불안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Annex 프로방스에서의 식도락
서울에서도 자유로를 따라 가다 보면 헤일리 마을 옆에 프로방스 레스토랑이 나온다.
주변 경치도 좋고 인티리어도 근사하다. 물론 진짜 프로방스의 식도락을 즐기려면 프랑스 현지로 가야 할 것이다.
프로방스 음식은 파리의 일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예술적으로 치장된 음식들처럼 보기에 산뜻하진 않지만 영양과 정이 듬뿍 담긴 전형적인 시골음식이다.
계절의 요리 재료
특히 여름철 음식은 맛이 있기로 정평이 나 있다. 재료야 특별할 것도 없지만 프로방스의 뜨거운 햇빛을 피해 시원한 그늘에 앉아 먹는 음식은 더위를 잊게 하고도 남는다. 그 재료만 열거해 보자. 멜론, 복숭아, 아스파라거스, 호박, 가지, 고추, 토마토, 아이올리, 부야베스(남프랑스 지방의 생선요리), 기막힌 맛의 올리브 샐러드, 멸치, 다랑어, 삶은 계란, 기름을 발라 번들거리는 갖가지 색의 양상추를 깐 위에 올려놓은 얇게 저민 감자, 신선한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
그런데 겨울은 겨울대로 몸을 훈훈하게 해주고 힘을 돋워주는 훌륭한 메뉴가 있다. 멸치와 버섯, 치즈를 듬뿍 넣은 피자. 토끼와 멧돼지 고기로 만든 파테(잘게 썬 고기를 양념하여 질그릇에 끓여서 그대로 식혀 먹는 요리), 마르(포도 찌꺼기로 만든 브랜디)를 가미한 돼지고기 테린느(단지에 넣어 보존한 고기), 통후추 열매가 점점이 뿌려진 큰 소시지와 토마토 소스에 적신 자그맣고 달콤한 양파 요리, 야생버섯에 둘러싸인 까만 육즙 소스가 뿌려진 구운 오리 요리(마그레트), 토끼고기 스튜, 올리브 기름에 마늘을 넣고 튀긴 빵조각 넣은 야채 샐러드, 아몬드 케이크 등.
외식하는 즐거움
프로방스 산골벽지의 식당에서도 적은 돈으로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보뉘유에서 16 킬로미터쯤 떨어진 첩첩산중의 뷔유 마을에 있는 루브 식당을 소문만 듣고 찾았을 때에도 놀라운 경험을 했다.
※출처: 피터 메일 지음, 송은경 옮김, 진선출판사 펴냄, 「프로방스에서의 1년」
우리는 110프랑(1만8천원 상당)짜리 요리를 주문했다. 일요일에만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젊은 아가씨가 큰 쟁반을 들고 와 열 네 가지 요리를 식탁에 늘어놓았다. 아티초크(엉겅퀴), 버터에 구운 자그만 정어리, 향료 뿌린 타불레(밀가루, 파슬리, 박하, 양파, 다진 토마토를 넣은 후 올리브 기름과 레몬 주스를 쳐서 먹는 요리), 크림 소스를 얹은 대구, 마리네이드 소스에 적신 버섯, 새끼 꼴뚜기, 타페나드, 신선한 토마토 소스에 담근 자그만 양파, 샐러리와 이집트 콩, 무와 체리 토마토, 차게 요리한 홍합, 날라 온 접시들 맨 위에 얇게 썬 파테 조각과 작은 오이들, 올리브와 고추 요리가 담긴 접시들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얹혀 있었다. 빵은 껍질이 바삭바삭했다. 얼음 통엔 백포도주가 담겨 나왔고, 샤토눼프 뒤 파프 한 병도 한쪽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주요리가 나왔다. 마늘로 요리한 얇게 썬 포도주빛 양고기. 어린 강낭콩과 금빛 감자와 양파로 만든 케이크였다. 샤토눼프 뒤 파프는 '맛을 보장하는 포도주'라는 식당 주인이자 주방장인 모리스의 말대로 그윽하고 짜릿한 맛이었다. 포도 잎사귀에 싸여 촉촉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바농산 치즈에 이어 세 가지 맛과 감촉의 디저트가 나왔다. 레몬 소르베, 초콜릿 얹은 타트, 접시 가득 넘치는 생크림, 커피에 이어 지공다스산 랜디 한 잔, 모두 만족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 이렇게 포식할 수 있는 곳이 이 곳 말고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어쩌면 이탈리아라면 있음직 하지만, 결코 많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친 실내장식으로 어지러운 런던 식당의 테마 요리와 괴이한 가격에 길들여진 친구들에게 모리스의 식당은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그것은 늘상 식도락을 즐기는 프랑스 사람을 서브해야 하는 식당과 어쩌다 한 번 외식을 하는 영국 사람에게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기억을 남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는 식당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했다.
모리스가 다가오더니 자신의 요리가 만족스러웠는지 물었다. 그가 자리에 앉더니 계산서에 값을 적어 넣었다. 650프랑을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런던의 풀햄에서 두 사람이 좀 근사한 점심을 먹고 지불할 정도의 가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방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먹는 것을 즐기며 느긋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빵을 고르는 법
프랑스에서는 빵도 예술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프랑스에 살게 되면서 빵집(patisserie & confiserie) 애용자로 변했다. 매일 빵을 고르고 사는 일이 몹시 즐거웠다. 대부분의 빵집들은 대량 생산된 슈퍼마켓의 빵과는 구별되는, 자기 가게만의 솜씨가 깃든 빵을 구어 낸다. 전통적인 모양에 약간씩 변형을 주기도 하고 빵 표면에 나선형 장식을 넣기도 하는데, 아무튼 빵 굽는 예술가들은 모양에 공을 들여 자신의 작품임을 표시한다. 얇게 잘라 포장되어 나오는 기계로 만든 빵 따윈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카바이용(프로방스 아비뇽 부근의 소도시)에 있는 열일곱 군데 제과점 중에서 '빵의 성전'이랄 수 있는 셰 오제 빵집을 소문을 들어 찾아갔다. 날씨가 따뜻할 때면 탁자와 의자들을 가게 바깥 보도로 내놓고, 카바이용의 사모님들이 앉아 뜨거운 초콜릿 아몬드 비스킷, 딸기 파이를 먹으면서 점심이나 저녁에 먹을 빵을 고를 수 있게 해준다. 카운터에 놓여 있는 가이드북 [카르트 데 뺑]은 선택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이 책에 의하면 아페리티프와 어울리는 것으로는 '토스트'란 이름의 자그만 네모진 빵이나, 잘게 다진 베이컨을 얹어 먹으면 풍미가 더할 뺑 쉬르프리즈, 냄새 좋은 페이예 살레(소금 간한 얇은 빵) 가운데서 고르면 된다. 그러나 식단 자체를 선정하고자 할 땐 빵 고르는 일이 좀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크뤼디테(날 것 요리)로 시작하고 싶다고 하자. 이 경우 곁들여질 수 있는 빵에는 네 가지가 있다. 양파 빵, 마늘 빵, 올리브 빵, 양젖 치즈 빵. 그러나 해산물 요리라면 얇게 썬 호밀 빵 한 가지만 추천된다.
샤르퀴트리(돼지고기)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빵은 따로 있다. 거위 간, 수프, 붉은 살코기와 흰 살코기, 깃 달린 짐승과 털 달린 짐승, 훈제고기, 야채 샐러드, 믹스트 샐러드, 굳기에 따라 구분되는 세 종류의 치즈 등과는 어떤 빵을 곁들여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빵의 종류도 수십 가지나 된다. 오제 빵집에서는 백리향 빵에서부터 후추 빵, 견과류 넣은 빵, 밀기울 넣은 빵까지 갖가지 빵을 날마다 구워내고 있었다.
오제의 주인 마담은 메뉴의 다섯 가지 코스에 따라 각기 다른 빵을 제공하는 주방장이 있는 레스토랑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 집 주방장은 진짜 빵을 알고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말했다. 일부 무식한 사람들하곤 다르다. 오제 빵집을 나오면서 나도 덩달아 조금 유식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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