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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핑크 마티니의 헐리웃 볼 공연

Onepark 2007. 9. 18. 08:36

LA에 살면서 꼭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여름철에 헐리웃 볼(Hollywood Bowl)에서 열리는 공연 관람이라고 한다. '보시기(bowl)'라는 말 그대로 헐리웃 언덕의 경사면에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공연장(amphitheater)이다.

 

헐리웃 볼에서는 주로 가벼운 분위기에서 들을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이 많은데 종종 한국 가수들이 교포 위문공연을 갖기도 한다. 그 동안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아파트단지의 ESL 회화선생으로부터 여름 시즌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가는 게 자기네 가족의 전통이라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티켓을 예약하였다.

 

여름 마지막 공연을 보름 앞둔 터라 거의 매진된 상태였는데 핑크 마티니(Pink Martini)라는 재즈 그룹의 연주를 인터넷을 통해 예매할 수 있었다. 헐리웃 볼은 멀찍이 차를 주차해 놓고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하므로 집에서 가까운 헐리웃 불르바드/하이랜드 애브뉴 환승주차장에 차를 세우기로 했다.

 

* 헐리우드 차이나 극장 앞의 거리 풍경

9월 14일(금)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헐리웃 거리부터 구경에 나섰다. 마침 주차장이 마침 차이나 극장(China Theater) 바로 옆이어서 구경거리가 많았다.

극장 앞 보도에는 유명한 배우들의 손바닥과 구두를 찍어놓은 기념패널이 즐비했고, 인기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분장을 하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었다. 정말 조니 뎁 비슷하게 생긴 캐러비언 베이의 '스패로우 선장'도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이날 공연은 흑인 지휘자 토마스 윌킨스(Thomas Wilkins)가 지휘하는 헐리웃 볼 오케스트라(LA교향악단을 야외공연에 적합하게 편성한 것)가 경쾌하게 카르멘 환상곡(Carmen Miranda Fantasy) 등 클래식 소품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휘자는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간단한 해설을 곁들였다.

헐리웃 볼의 앞쪽은 테이블까지 있어 웨이터가 음식 시중을 들고 있었고, 우리가 앉은 뒤쪽은 나무 벤치에 앉아 피크닉 박스에 채워 온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먹으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피자를 여러 판 들고 와서 함께 나누어 먹는 그룹도 많았다. 헐리웃 볼은 음향도 썩 좋았지만, 무대 양옆으로는 대형 스크린이 두 개씩 무대를 보여주고 있어 뒤에서도 관람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드디어 오늘 공연의 주인공인 14인조 핑크 마티니(www.pinkmartini.com)가 등장했다. 이 그룹은 대표 겸 피아니스트인 토마스 로더데일(Thomas Lauderdale)이 하버드대학 동창인 차이나 포브스(China Forbes)를 보칼로 하고 관악과 현악, 타악을 적절히 배합하여 1994년에 창단한 밴드이다.
이들은 흘러간 빅밴드 뮤직을 영화음악으로 많이 편곡하여 세계적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오늘의 레퍼토리는 옛날 코코넛 그로브에서 연주되었던 193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음악과 영화음악들이었다.

 

* 헐리웃 볼 공연 엔딩작이 연주될 때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

핑크 마티니는 하버드 출신답게 구사하는 언어만 해도 영어는 물론 불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등 종횡무진이었다. 이들은 대표곡 "Hey, Eugene"도 열창하였는데, 처음에는 연인의 이름 "Eugene"을 "You're cheating"(거짓말이야)으로 잘못 알아들었음에도 뜻은 대강 통하는 것 같았다. 또 "Amado Mio"를 부를 때에는 옆자리의 동반자에게 "Amado Mio"하고 속삭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중간에는 80, 90이 넘은 왕년의 명가수 할아버지(Henri Salvador)와 할머니(Carol Channing)가 나와 노익장을 과시하였는데 우리는 그들의 곡을 알 수 없었지만 노.장년층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매우 흥겨워했다.

 

이날의 클라이맥스는 라벨의 볼레로(Volero) 연주에 맞춰 불꽃과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큰 스케일의 폭죽놀이는 아니었지만 효과음악처럼 음악에 맞춰 불꽃들이 계절이 바뀌는 밤하늘을 수놓았다.
오늘 공연은 밤 8시 반에 시작하여 10시 50분에 모두 끝났다(중간에 20분 인터미션). 우리가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헐리웃 불르바드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주차시간이 늘어난 탓에 주차요금으로 10불을 내야 했다(위쪽에 자리한 L석 티켓은 1인당 $27+수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