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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2] 순례자의 길과 알함브라 궁전

Onepark 2012. 2. 29. 23:17

o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800km를 모두 걸어야 하는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El Camino de Santiago)은 예수님 12사도 중의 하나인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가 스페인에서 복음을 전할 때 걸었던 길이다. 순례자의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어느 것이나 종착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별들의 벌판'이란 뜻) 성당이다. 야고보 사도가 팔레스타인에서 헤롯 아그리파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 후 그 제자들이 스승의 유해를 돌 운반선에 모시고 와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콤포스텔라 부근으로 추정)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순례자의 길은 본래 가톨릭 신도들이 예루살렘이나 로마처럼 성지순례를 하는 길이었다. 우리들에게 <연금술사(Alchemist)>로 잘 알려진 파울루 코엘료가 1986년 이 길을 걷고나서 우화소설 <순례자(Pilgrimage)>를 발표한 뒤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젊어서 우울증에 빠져 정신병원을 드나들던 그가 회심을 하고 작가로서 성공을 하게 된 계기가 이 길에서였다고 한다.

 

코엘료가 걸었던 프랑스 길이 제일 유명하며, 프랑스 역내인 생장-피데-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를 한 달여에 걸쳐 걷는 코스이다.

순례자들은 매일 25~30km를 걷고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에서 스탬프를 받게 된다. 최근에는 바쁜 사람들을 위해 도보로 100㎞, 자전거로 200㎞ 이상을 순례한 다음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에서 크리덴시알이라는 여권을 순례자협회에 제출하면 증명서를 발급해주기도 한다.

 

* 여러 갈래의 스페인 순례자의 길
* 저 황량해 보이는 고갯길도 노란 조개 표시 순례자의 길 중 하나이다.
* 가톨릭 성지인 아빌라 성의 테레사 수녀의 조각상

 

아빌라 성의 테레사 수녀는 종교개혁에 맞서 수도원/수녀원의 쇄신운동을 일으켰다. 노란 조개 표시에 화살표가 그려진, 아빌라 성을 지나는 순례자의 길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영성훈련의 4 관문에서 심장에 불화살을 맞는 환각체험을 하고 영성훈련에 매진했다고 한다. 정작 아빌라 교구장은 시큰둥했으나 테레사 수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순회강연과 집필활동을 통해 검소와 절제를 강조하는 가톨릭 쇄신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했다.

 

스페인 여행의 현지 가이드인 허봉도 씨가 은근한 입담과 박학다식한 스페인 경험담으로 단연 인기였다. 그는 뜻한 바 있어 산티아고에서 300km 떨어진 레온 근방에 정식 허가를 받고 알베르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침상이 모두 32개이며 성직을 가진 순례자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오는 5월에 오픈하면 순례자를 위한 특식으로 저녁은 김치 불고기 백반, 아침은 사발면을 제공할 예정(식대는 자율납부)이라고 한다.

 

그런데 허봉도 씨가 당부하기를 순례자의 길을 걸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전혀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지도와 숙소, 편의점의 위치 등 최소한의 정보만 입수한 후 자신의 삶의 무게를 느끼며 홀로 마음을 비우고 걸어야지 다른 사람의 주관적 체험을 따라 걸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다음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최윤희 시인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읽어두면 좋을 것 같다.

세고비아에 있는 알카사르 성은 월트 디즈니의 영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 세고비아에 있는 알카사르 성

 

o 스페인에 가면 알함브라 궁을 꼭 봐야 하는가?

 

우리에게 타레가의 기타 곡으로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스페인식 발음으로는 알람브라)을 마음속으로 뇌이며 알함브라 궁을 찾아갔다. 스키 리조트로도 유명한 그라나다에서 일박하고 아침 일찍 찾아나선 참이었다. 알함브라 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급증하는 관람객을 통제하기 위해 시간대 별로 입장객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현지 스페인 가이드에게 입장권 구입을 부탁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궁 안으로 들어갔다.

 

1492년 초 이사벨 여왕에게 항복할 때까지 이슬람 왕국이 알브라 궁에서 그라나다 일대를 통치하였다. 그래서 궁전의 건축은 이슬람 식이고 장식은 타일 문양이며 곳곳에 무슬림이 낙원에 존재한다고 믿는 수로와 분수대, 작은 못이 조성되어 있었다.

 

* 스페인 광장에서 타일 제작에 대해 설명하는 허봉도 가이드

 

스페인 현지 가이드 허봉도 씨가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에서 알폰소 국왕이 스페인의 국가적 통합을 위해 무어식 벽돌과 타일 공법으로 6개월 만에 기념비적 건축물을 건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바르셀로나 구역인데 미리 만들어 놓은 타일을 벽체에 붙임으로써 신속히 완성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 곳곳(UCLA와 스탠포드 캠퍼스, 게티 맨션 등)에서 이 비슷한 건물을 많이 보았기에(캘리포니아가 본래 스페인의 식민지였기에 당연한 현상이리라) 특별한 감흥은 일지 않았다. 그러나 수로에서 몇 단계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를 듣고서 실연당한 슬픔을 기타 곡으로 작곡한 타레가나, 이곳을 여행하다가 폐허가 된 왕궁의 인상기를 미국 언론에 기고하여 알함브라 궁을 세계에 널리 알린 미국의 외교관 워싱턴 어빙(우리에게는 [립 반 윙클]의 작가로 더 유명함)의 느낌이 서서히 가슴에 밀려 왔다.

 

더욱 비감에 젖어 들게 한 것은 당시 스페인 군대에 맞서 절벽 위의 성채에서 장기 농성을 벌이던 무슬림 군사들이 성안의 한 집시가 스페인 군에 매수되어 성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이었다. 전날 밤 플라멩코 춤을 보았던 알바이신 구역은 무슬림 주민들이 살다가 정복군에게 무참히 도륙을 당하는 바람에 산위에 살던 집시들 차지가 되었다고 한다. 아래 사진에서 전형적인 무슬림 양식의 알브라 궁전의 창 밖으로 언덕 위에 흰집들이 늘어선 알바이신 구역이 보인다.

알함브라 궁전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이슬람 궁전 하나만이 아니가. 그 후에 카를로스 5세가 별궁으로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의 부조화(바깥은 사각 건물인데 안에는 원형 광장이 있으며 종종 공연이 열림)는 스페인의 역사적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 알함브라 궁전의 창 밖으로 보이는 집시들이 사는 카사 비앙카

 

o 스페인에는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혼재하는가?

 

711년 수니파 무슬림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와 이베리아 남서부를 점령한 후 스페인 전역에 걸쳐 이슬람 왕국을 건설했다. 처음에는 기독교인과 유대인들도 알라신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종교세를 납부하면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지중해 무역과 이슬람 문명이 번창하자 스페인 일대에는 카키색의 벽면과 붉은 지붕을 하고 열쇠 구멍 모양의 창과 출입문을 한 크고 작은 건물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국토회복 운동(Reconquista)을 벌이면서 무슬림 건축물을 개조 증축하는 식으로 교회와 공공건물을 건설하였다. 기독교 세력이 접수한 무슬림 건축물을 완전히 파괴한 것은 아니고 상징적인 부분만 변형시켜 스페인 고유양식으로 전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무슬림 성전인 모스크 안에 카테드랄을 축조한 코르도바의 메스키따 사원이다. 그러므로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공존한다기보다는 이슬람 문화 위에 기독교 문화가 덧씌워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코르도바의 메스키따 사원

 

코르도바의 메스키따 사원은 본래 이슬람 사원이었으나 여러 차례 개조 증축 과정을 거치면서 최대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카테드랄 주교사원으로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