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겨울방학을 이용해 열흘간 스페인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큰아이 전역에 때맞춰 기념할 만한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2월 17일 밤 인천공항의 지정 카운터에는 우리말고도 여행사의 패키지투어를 떠나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스페인 현지에서도 한국의 관광객 여러 팀을 만났다.
그러니 나만의 여행기를 쓰는 것보다는 우리가 스페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을 소개함으로써 스페인에 관한 정보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필자는 모두투어의 7박 10일(기내에서 2박, 스페인 국내선 2회 이용) 스페인 패키지 투어를 이용하였으며, 이 글을 쓸 때 현지 가이드인 허봉도 선생의 해설을 많이 참조하였음을 밝혀둔다. 유머러스하고도 박학다식한 허봉도 선생의 해설로 인하여 자칫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칠 뻔했던 스페인의 문물이 아주 새롭게 다가왔다.
옛 광영(光榮)은
사라지고
떠들썩한 관광객들 뿐
The old Empire’s glory
Fade away
Producing joyful tourists.
* 17-syllable English Haiku
우리는 스페인 어느 곳에 가든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콜럼버스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스페인 일주여행을 하였다.
2월 17일 (금) 자정 가까운 시각에 인천공항 출발
- 18일 (토) 새벽에 마드리드 도착 후 톨레도에서 조식, 톨레도 구시가지와 마드리드 시내 관광
- 19일 (일) 돈키호테 콘수에라 마을, 코르도바를 거쳐 세비야 도착
- 20일 (월) 세비야 카테드랄 관광 후 론다로 이동, 원조 투우장과 플라멩코 춤 구경
- 21일 (화) 알함브라 궁전을 둘러본 후 지중해변 언덕 위 하얀집으로 유명한 미하스 관광
- 22일 (수) 말라가에서 항공편으로 바르셀로나로 이동, 버스와 푸니큘라로 몬세랏 수도원 관광
- 23일 (목)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 몬주익 올림픽 경기장,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과 카사밀라 아파트 구경
- 24일 (금) 마드리드 1박 후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수녀원 방문, 프라도 미술관과 소피아 미술관 방문
- 25일 (토) 아침 일찍 마드리드 출발, 암스테르담 경유 인천 행
- 26일 (일) 기내영화를 여러 편 보면서 10시간 만에 인천공항 무사히 도착
o 스페인은 투우와 플라멩코의 나라인가?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동물보호협회 등 여론의 반발이 심해 2012년부터 투우 경기가 전면 금지되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부활절부터 여름철까지 일요일마다 6라운드의 투우 경기가 열린다. 다시 말해서 한 투우장에서 매 주일 6마리의 황소가 희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멩코는 본래 집시들이 추던 그들의 한이 서린 춤이었으나, 오페라 [카르멘]에서 보듯이 스페인 전국민 아니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춤이 되었다. 우리 일행은 그라나다에 도착한 날 밤 알바이신 구역(과거 무슬림 거주지역이었으나 그들이 떠난 후 집시들이 차지했다고 함)에 있는 플라멩코 극장에 가서 70여 분간의 스토리가 있는 플라멩코 춤을 관람하였다.
가까이서 보니 플라멩코는 기타와 손뼉(캐스터네츠는 필수가 아님)의 정열적인 반주에 맞춰 추는 아주 역동적인 춤이었다. 그리고 무용수가 심하게 발을 구르기 때문에 무릎에 손상이 가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1년에 두 달은 의무적으로 쉰다고 한다.
o 같은 미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했음에도 영국과 스페인은 왜 식민지 경영방식에 차이가 났는가?
콜럼버스는 본래 이태리 사람이었으나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스페인은 식민지를 일종의 벤처사업처럼 운영하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며 금은보화를 약탈하기에 급급했다.
반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왔기에 원주민들과 공생하는 방식(partnership)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은 다른 지역에서도 약탈과 파괴 대신 공존 공영방식을 도모하였기에 과거의 식민지들이 독립한 후에도 영연방(British Commonwealth)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톨레도는 본래 이베리아 반도에 건너온 무어인들이 세운 도시였다. 강을 끼고 있는 고지대에 축조한 성채로서의 역할을 다하였고 스페인 내전 당시에도 격전이 벌어졌다. 강 건너 언덕위에 스페인 육군사관학교가 있다. 이곳을 아침에 통과할 수밖에 없어 인물이 응달져 보인다.
o 이사벨 여왕은 왜 유대인을 추방하였는가?
1492년 무어족을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이사벨 여왕은 정치적 입지가 취약하였기에 민심을 얻고자 그들의 질시 대상이었던 유대인들의 추방에 나섰다. 남은 유대인들도 개종하지 않으면 종교재판에 회부했다. 이에 따라 10여만 명의 유대인이 스페인을 떠나 포르투갈이나 영국, 신대륙으로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들의 후손 중에 영국의 디즈레일리 수상같은 위인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이사벨 여왕처럼 극적인 인생을 산 왕족도 드물 것 같다. 그녀는 초년에 귀족들의 모함으로 왕궁에서 쫒겨나 소녀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으며, 결혼할 때에도 국왕이 정해준 혼처가 아닌 자신이 선택한 아라곤 페르난도 왕자에게 청혼하여 보쌈 같은 결혼을 하였다. 또한 모두들 사기꾼이라고 상대도 해주지 않던 콜럼버스를 믿고서는 거액의 항해자금을 쾌척하였다. 이사벨 여왕은 찬란한 위업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80년 후에 태어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역사의 왕좌(historical publicity)를 넘겨주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유대인이 맡았던 스페인 왕실의 금고지기(treasurer)를 대부분 계산이 밝은 화란인들이 차지했는데 이들은 유대인들과는 달리 언제든지 고국으로 돌아갈 작정으로 딴주머니를 차기 일쑤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스페인이 처음부터 유대인 융화정책을 폈더라면 스페인이 유대인들의 지력과 재력을 발판으로 영국과 미국을 능가하는 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마드리드는 과거의 영광에 묻혀 있지 않고 현대식 고층건물과 피사의 사탑을 연상케 하는 쌍동이 은행 건물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뭐니뭐니해도 마드리드하면 호날두 선수가 뛰는 레알 마드리드 구단이 떠오른다. 마침 레알 마드리드와 산탄데르팀 간에 축구경기가 열릴 예정이어서 일행 중의 젊은이 몇 사람은 용케도 티켓(80유로)을 구해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과거의 영화가 자취만 남은 코르도바의 옛 시가지 유대인 거주지역에 있는 골목길도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아둘 만했다. 벽에 걸려 있는 화분에는 온갖 종류의 화초가 꽃을 피우고 있었고 좁은 골목길에 아기자기한 장식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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