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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프라도 미술관과 세르반테스 정신

Onepark 2012. 3. 1. 12:49

프라도 미술관 내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위의 사진은 Thomas Struth라는 사진작가를 위해 연출된 장면이다.

아래의 그림 사진을 포함한 출처는 ‘Las Meninas by/after Velasquez (Prado)’

 

o 예술작품의 변형(variation)은 무죄?

 

마드리드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프라도 미술관과 소피아 미술관이다.

이번 여행에서 전자는 일정에 들어 있었지만 후자는 옵션이었기에 다른 일정을 줄이고 각자 20유로씩 내고 가보기로 했다. 1992년 올림픽을 계기로 마드리드 역 앞의 병원을 개조하여 소피아 왕비의 이름을 따서 만든 현대 미술관인데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비롯한 현대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 히틀러의 신형 폭격기에 의해 게르니카가 무차별 폭격 당하는 참상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
* 후안 미로의 조각 작품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낡은 병원 건물을 현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실내에서는 사진촬영이 일체 금지되어서 소장품은 인터넷을 통해 사진을 구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중정에는 후안 미로 같은 현대작가의 조각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허봉도 가이드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El Juicio de Paris)" 세 작품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허봉도 선생은 이들 고전주의 회화를 감상하는 요령이 세 가지 있다고 말했다. 이 원칙은 바로 아레 코르도바 산토 토메 성당에 걸려 있는 엘 그레코(그리스 사람이란 뜻의 이름)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The Burial of Count Orgaz)"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엘그레코는 성 오거스틴과 스테판 성자가 등장하는 이 영광스러운 그림 속에 화가 자신은 물론 아들까지 그려 넣었다.

 

*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첫째, 우선 그림을 반으로 접었을 때 중심에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둘째, 빛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오며 그림자도 같은 방향으로 생긴다.

셋째, 그림 속에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 화가도 자신의 PR을 위해 그 안에 들어 있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보면 벨라스케스 그림의 주인공은 마르가르타 공주가 아니라 뒷벽의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이고, 왼편에 서 있는 화가는 왕과 왕비의 초상화 그리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빛이 왼편이 아니라 오른편에서 비치고 있으므로 거울을 통해 본 모습임을 보여준다.

 

"시녀들(Las Meninas)"은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비디오를 통해 40개가 넘는 변형작을 보았기에 그 원작을 보는 감동은 몇 배로 컸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회화는 물론 사진으로도 수많은 변형작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는 심지어 벨라스케스의 수염을 본떠 콧수염을 기르기까지 했다. 요즘 학계, 예술계를 막론하고 표절 시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이와 같이 공공연히 변형하여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히면 좋을 것 같았다.

 

* Lluis Barba의 패로디 작품을 보면 "명화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나올 것 같다.

o 스페인의 자랑 세르반테스의 정신이란?

 

필자가 미국 댈러스에서 유학할 때 뮤지컬 "라만차의 사나이(Man of Lamancha)"를 보고 특히 “Impossible Dream” 노래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돈키호테(Don Quixote)"는 세르반테스 자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학력에 따른 차별이 없는 군대에 들어갔으나 운이 없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승리한 레판토 해전에서 그는 왼팔을 잃었고, 귀국하는 도중 해적에 붙잡혀 알제리로 끌려갔다가 몇 차례의 탈출 기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귀국해서는 생계가 막연하여 닥치는 대로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겨우 세금징수관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비리 혐의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뮤지컬에도 나오지만 그는 감옥 안에서 머리가 이상해진 기사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라만차의 풍차가 있는 마을은 호기심 많은 관광객과 사이클리스트들이나 지나갈 뿐 매우 한적한 시골이었다.

가운데 돈키호테 동상이 서 있고 건너편 상점의 벽에도 돈키호테와 산초판자의 출정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마드리드 시내 스페인 광장의 한복판에 앉아 있는 세리반테스는 생전에 누리지 못했던 호사를 사후에 누리고 있는 셈이다.

 

세르반테스가 57세 때인 1605년 "돈키호테"를 출간하여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생활고로 출판업자에게 판권을 넘겨버린 까닭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대중의 인기를 업고 짝퉁 속편이 나오는 바람에 정작 본인이 쓴 "돈키호테 2부"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말로 '억세게 재수 없는 사나이'였다.

 

그도 마지막에는 행운을 누렸는데 1616년 4월 23일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영면하여 당대의 영화를 누린 문호와 저승길을 동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그의 소설이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를 받고, 그 자신 꿈도 꾸지 못했을 스페인을 대표하는 위인으로 추앙을 받게 된 것은 무슨 아이로니일까? 그것은 관습과 제도의 틀을 깨부수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혼의 빛이 될 책을 읽으며 주위(산토 판자)의 현실적인 조언을 귀담아 듣는 균형잡힌 사고라 할 수 있다. 속편에서 돈키호테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고향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과거와 현재의 풍차가 공존하는 라만차 지역에 느닷없이 빨간색 페라리 승용차가 나타나 관광객들의 혼을 빼놓았다. 콘수에그라 언덕의 풍차는 돌아가지 않는 전시용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