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eople

Travel

[루미]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

Onepark 2024. 2. 1. 11:15

 

요즘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을 말끔하게 정리해준 시 한 편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뜻밖에도, 그 시를 쓴 '루미'라고 하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가진 시인은 여성이 아니라 13세기 페르시아에서 활동했던 이슬람 학자, 신비주의 철학자였다.

그의 본명은 Jalāl al-Dīn Muḥammad Rūmī (1207 - 1273, 페르시아 어 جلال‌الدین محمّد رومی)이며, 영어권에서는 Jelaluddin Rumi 또는 Rumi로 알려져 있다. 루미는 튀르키에 중부 콘야에 있는 이슬람 수피 파의 종교지도자로서 활약하며 수천 편의 시를 남겼다. 이슬람 문명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그 당시 페르시아에는 오마르 하이얌의 4행시 루바이야트만 있는 게 아니었다.

 

* 13세기 루미의 학교를 찾아 온 신비주의 철학도들. 출처: Wikipedia

 

Say I Am You [1]  by Jelaluddin Rumi

내가 누군지 말하라 [2] - 잘랄루딘 루미

 

I am dust particles in sunlight.

I am the round sun.

To the bits of dust I say, Stay.

To the sun, Keep moving.

I am morning mist, and the breathing of evening.

I am wind in the top of a grove, and surf on the cliff.

Mast, rudder, helmsman, and keel,[3]

I am also the coral reef they founder on.

I am a tree with a trained parrot in its branches.

Silence, thought, and voice.

The musical air coming through a flute,

a spark of a stone, a flickering in metal.

Both candle and the moth crazy around it.

Rose, and the nightingale lost in the fragrance.

I am all orders of being, the circling galaxy,

the evolutionary intelligence, the lift,

and the falling away. What is, and what isn't.

You who know Jelaluddin, You the one in all,

say who I am. Say I am You.

나는 햇빛에 비추이는 티끌

나는 둥근 태양

티끌에게는 가만 있으라고

태양한테는 움직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침 안개 그리고 저녁의 숨결

작은 숲 위로 부는 바람, 벼랑에 부딪히는 파도

모든 것[3]인 당신이여

나는 그들이 서 있는 산호초이기도 하고

길들여진 앵무새가 그 가지 위에 앉아 있는 나무

침묵, 생각, 목소리

피리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 소리

돌의 부딪힘, 금속의 반짝임

촛불 주변을 날아다니는 나방

장미꽃, 그 향기에 취해 길 잃은 밤꾀꼬리

나는 모든 존재의 질서, 돌고도는 은하

진화하는 지성, 상승했다가

추락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젤랄루딘을 아는 당신, 모든 것이기도 한 당신

내가 누군지 말하라

내가 당신이라고

 

* 튀르키에 콘야에 있는 Center of Sufism에서의 수피 댄스 공연. 출처: Magnificent Travel

 

루미는 수피즘 신비주의 철학자답게 정녕 자신을 성찰할 줄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먼지 같은 존재로 여기다가도 태양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아침 안개, 저녁 산들바람, 바닷가의 거센 파도 모두 그의 탐구와 사색의 대상이었다.

손에 잡히는 장미꽃부터 코와 귀, 눈을 통해 접하는 꽃향기, 나이팅게일 지저귀는 소리, 밤하늘의 은하수 등 모든 것이 사색과 명상을 이끄는 소재였다. 그러한 사색의 끝에서, 육신을 벗어나, 내가 곧 당신이 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누구를 말함인가? 이 시에서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입신(入神)의 경지인가? 이 시를 쓴 루미의 수피즘 신비주의 철학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경지는 콘야 (Konya)에서 수피파 이슬람 교도들이 한없이 빙글빙글 도는 명상 춤 (Sema whirling dance)을 통해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도 유교, 도교를 막론하고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이상적인 경지로 보았다. 유교에서는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경지(天人合一)를 궁극적인 목표로 추구하였다. 또한 도가에서는 자연이란 아무런 목적 없이 무위(無爲)의 상태에서 운행하는 만큼 인간도 자연의 질서에 따라 무위의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4]

다만, 여기서는 루미의 시를 되풀이 읽음으로써 그 비슷한 체험[5]을 해보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Note

1] 이 시의 원문은 페르시아 어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인터넷판 Good Reads의 영역본을 인용하였다. 루미의 시 세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표시에는 "인생은 여인숙, 날마다 새 손님을 맞는다"는 The Guest House (여인숙)가 있다.

 

2] 이 시의 우리말 번역은 KBS 1FM [윤유선의 가정음악]의 김경미 작가가 프로그램(아침의 가정법, 만약에) 중에서 시의 전반부만 소개한 것을, 필자가 위의 영역본을 토대로 나머지 '산호초' 대목부터 재번역한 것이다.

 

3] 원문에서 mast, rudder, helmsman, and keel (돛대, 방향타, 조타수, 용골)이라고 한 것을 시의 문맥상 (항해하는 배의) '모든 것'이라고 번역했다.

 

4] [네이버 지식백과] 천인 합일과 무위 사상 (2007. 12. 15, 한림학사)

 

5] 곧잘 인용되는 루미의 시에는 수피즘의 포용성을 강조한 것도 있다. 힌두교, 배화교, 기독교 등 페르시아 주변의 모든 종교 믿는 자들을 망라하였다. 자기가 한 맹세를 1백 번을 깬 사람이라도 들어오라고 권하는 품이 오늘날 작심삼일을 괴로워하는 사람도 대상으로 하는 것 같다. 

 

Come, come, whoever you are,
Wanderer, worshiper of fire, idolater, it doesn't matter.
Ours is not a caravan of despair.
Come, even if you have broken your vow a hundred times.
Come, come again, come.

오라, 오라, 당신이 누구든지.
방랑자든, 배화교도든, 우상숭배자든 상관없다.
우리 학교는 희망 없는 캐러밴이 아니다.
맹세를 1백 번이나 깨뜨린 사람도 좋다.
오라, 다시 오라,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