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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입춘 지난 후 눈 내린 풍경

Onepark 2024. 2. 15. 07:55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다.

갑진년 새해는 입춘(立春) 절입시각인 2024년 2월 4일 17시 27분에 시작된다. 

그러므로 명리학을 궁구하는 사람은 입춘일을 맞아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주역의 괘(卦)를 뽑아 올해의 운세를 점치곤(divination) 한다.

 

* 새해 새 아침을 여는 까치
* 일찍 핀 동백꽃잎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대관령에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를 듣고 어렵사리 KTX 차표를 구해 평창(대관령)으로 갔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평창은 겨울철이면 스키어들로 붐빈다.

성큼 다가온 봄을 알리는 입춘이 지났음에도 평창의 산과 들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우리는 스키를 탈 줄 몰라도 눈을 신기해 하는 동남아 관광객들처럼 설경(雪景)을 보기 위해 평창을 찾아간 것인데 제대로 눈 구경을 하게 된 셈이었다.

 

 

입춘   - 김병훈

Ipchun  by Kim Byeong-hoon

 

입춘 (立春) 은

봄의 시작이 아니라

깊이 잠든 봄을 깨우는

알람시계의 멜로디일 뿐

Ipchun (literally means "Raising Spring"} is
not the beginning of spring,
but rather the alarm clock melody 
that wakes up the deeply sleeping spring.

 

* 용평을 흐르는 개천은 얼진 않았으나 천변에 눈이 많이 쌓여 있다.

 

강원도에서 열린 동계 유스 올림픽도 무사히 끝나고 대관령 읍내에는 설 연휴를 이용해 스키를 타러 온 사람들로 다소 붐비는 모습이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몇 번씩 지나치게 되거니와, 대관령 IC 입구에 있는 한우 고깃집 사장님이 언덕 위에 지은 작은 교회당이 눈길을 끌었다. 람보르기니 같은 럭셔리 카, 오토바이를 수집하시는 사장님이 프랑스 여행 중에 노르망디 시골에서 발견한 예배당을 보고 그대로 본떠 지어놓은 것이다. 안에 들어가 보면 강대상도 있고 피아노도 있어서 종업원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찬송도 부른다고 한다. 지붕 위에는 맑은 소리가 울리는 종탑도 있어 방문객이 직접 종을 칠 수도 있다.  

 

* 대관령 IC 바로 앞에 있는 언덕 위의 작은 교회당
* 태백산맥을 동과 서로 나누는 대관령 터널의 서쪽 입구

 

날이 꾸무럭한 첫 날 진부읍을 거쳐 오대산 월정사로 갔다.

월정사 입구의 금강교 밑 개천도 얼었고 눈이 덮여 있었다.

평소에는 옆 사람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물소리가 시끄러웠는데 오늘은 조용하기만 했다.

 

* 월정사 입구 금강교 아래를 흐르는 개천은 온통 눈이 쌓여 있다.

 

설날에 월정사를 찾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월정사는 접근성이 좋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사찰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상원사와 월정사는 계곡을 따라가는 '선재의 길' 트레킹 코스가 좋아 사계절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우리는 눈 덮인 전나무 숲길을 조심조심 걸었다. 쓰러진 전나무 고목 안에 들어가 기념사진도 찍었다.

 

*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월정사 적광전 앞의 최근 보수공사를 마친 구층석탑

 

평창에 오면 으레 들르곤 하는 로천카페로 갔다.

설날인데도 오후에 문을 열어 반색하는 손님이 우리 내외 말고도 여럿 있었다. 이 집의 시그니쳐 대추차를 시켰다.

공기 좋은 이곳에 노후 거처를 마련한 나이 지긋하신 부부가 1층을 아늑한 카페로 만들고 정원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실내에서는 잔잔한 7080 팝송 경음악이 흐르고 온갖 화초가 손님을 반겨주었다.

나 역시 어느곳보다 진하고 맛있는 대추차를 마시며 '머~엉'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하나의 정례 코스처럼 되었다.

그럴 때면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연관된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카페 정원에 장식된 조각과 인형이 실제 살아 움직이는 동물과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1]  

 

* 온갖 화초와 조각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는 로천카페에 눈이 수북히 쌓였다.
* 눈밭에서 튀어나온 듯 AI가 그린 '눈속의 여인' 초상

 

이튿날은 하늘이 차츰 개이는 것을 보고 강릉 바닷가로 갔다.

경포 해변에 눈은 쌓이지 않았으나 동해 바다의 포말이 마치 눈이 뿌리는 것 같았다.

겨울에 바다를 보는 것은 또 다른 감흥을 안겨주었다.

 

경포 해변에
즐비하던 횟집이
[2]

선남선녀 찾는 카페 거리로

On the Gyeongpo Beach,

Advancing cafes have driven out
Sashimi cooks.

 

* SNS 인플루언서인 정용진 회장이 강추하는 퓨전 스타일 건도리 횟집

* 경포호와 스카이 베이 호텔

 

경포대는 본래 달밤에는 하늘과 호수와 술잔에 달이 뜬다는 운치 있는 경포호로 이름을 날렸다. 그래서 이곳의 명물이 경월(鏡月)소주[3] 아니었던가! 지금도 소나무와 벚나무가 늘어선 호반 산책로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시민들이 많았다.

경포대 해변과 호수 사이에 들어선 스카이 베이 호텔이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연상케 했다.

 

이날 밤에는 마침 지인이 단톡방에 올린 싱가포르 춘절의 청룡축제 야간 드론 쇼(아래 동영상)를 구경했다.

같은 중국의 명절이라도 대륙에서는 폭죽소리로 악귀를 쫓는다고 요란스럽게 불꽃놀이를 벌인다. 이 때문에 사건도 많이 일어나고 미세먼지가 폭증했다고 한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시민들이 해변에 조용히 앉아서 변화무쌍 현란한 드론 쇼를 감상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운영하는 온라인 법률백과사전 KoreanLII에 싱가포르 게스트들이 하루에 2~3만 명(Visit 數 기준)이 접속하고 있어 트래픽이 초과되지 않을까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사정을 알아보니 우리나라 인구의 1/10도 안 되는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법제가 궁금해서 찾는 게 아니었다. 이곳에 소재하는 다국적 기업의 서버와 데이터센터가 날마다 AI (인공지능) 학습용으로 KoreanLII에서 업데이트되었거나 수정된 부분을 찾아내 퍼가는 것임을 알았다. 동역자, 후계자도 없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웹사이트인지라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고 여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Note

1]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이젠 생각한 것이 곧바로 그림과 동영상으로 바뀌는 세상이 되었다.

챗GPT를 만드는 오픈AI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AI ‘소라(Sora)’를 공개했다. "검은 가죽 재킷과 빨간색 롱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쿄의 번화가를 걷는 모습을 그려줘"라는 텍스트를 Sora에 입력(Text to Video) 하자 불과 수초 만에 쇼츠 동영상을 보여줬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매일경제, 2024.2.16자.

 

2] 전에 경포대에는 호텔 현대경포대가 있어서 현대건설의 신입사원들은 이곳 하계연성장에서 연수를 받았다. 해변 모래밭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원들과 씨름을 하며(사진) 특유의 기업문화를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王회장은 고향인 강원북부 통천면 아산리(峨山里)에 가까운 경포대를 즐겨 찾았다. 옛날 씨름터 모래밭 바닷가에는 의자 모양을 한 바위가 있어 이를 '정주영 의자 바위'라 부른다.

 

현대중공업은 옛 현대경포대 자리에 저탄소 녹색호텔을 지향한 최고급 씨마크(SEAMARQ) 호텔을 세웠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미국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에 참여했다고 한다.

한편 2018년 1월 개관하여 북한측 올림픽 사전점검단이 묵었던, 독특한 외양을 가진 스카이베이는 세계 곳곳에 1200여개 호텔을 보유한 유럽계 루브르호텔 그룹이 골든튤립 체인으로 운영하고 있다. 

 

3] 경월소주는 강릉의 향토소주로 첫 선을 보였고 1993년 초록색 소주병에 담아 판매하여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같은 해 소주 시장을 노리던 동양맥주(OB)에 전격 인수되었다가 두산 그룹의 기업구조재편 과정에서 2008년 롯데주류에 팔렸다. 롯데는 진로의 아성을 피해 수출에 주력하여 다른 음료나 녹차에 섞어 마시는 일본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도수를 16도로 크게 낮추고 아세로라 추출물을 첨가하였다. 그리하여 이름도 '사뿐하고 산뜻한(ふんわり) 鏡月'로 바꾸고 판촉에 주력하여 현재 일본 시장에서 희석식 소주 판매고 1, 2위를 다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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