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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오솔길을 걸으며

Onepark 2024. 3. 9. 22:50

종심소욕( 從心所欲)의 나이가 되자 이제 자연(自然)에 회귀할 날이 가까워졌음을 알게 된 탓인지 조용히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아졌다.

문태준 시인의 '오솔길'을 읽었을 때 처음엔 오솔길을 걸으며 새로 돋은 잎사귀, 고운 새소리에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뭇잎 그림자가 묵화를 보는 것처럼 연상되는 것이었다. 이 생각이 에스컬레이트되면서 급기야  숲속 옹달샘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이 샘물이 수풀이 유지되고 오솔길로 사람을 이끄는 원천임을 깨닫는다는 내용이었다.

 

* 정읍 성황산의 오솔길. 사진출처: Naver 레인메이커(iamcan) 블로그

 

오솔길 - 문태준[1]

Trail  by Moon Tae-jun

 

오솔길을 걸어가며 보았네

새로 돋아난 여린 잎사귀 사이로 고운 새소리가 불어오는 것을

오솔길을 걸어가며 보았네

햇살 아래 나뭇잎 그림자가 묵화를 친 것처럼 뚜렷하게 막 생겨나는 것을

오솔길을 걸어가 끝에서 보았네

조그마한 샘이 있고 샘물이 두근거리며 계속 솟아나오는 것을

뒤섞이는 수풀 속에서도 이 오솔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네

 

I saw it while walking along the trail:

The lovely birdsong was blowing through the newly sprouted leaves.

I saw it while walking along the trail:

The shadows of the leaves in the sunlight were clearly emerging like a b&w silhouette.

I walked down the path and saw it at the end:

There's a little spring, and it's pulsing and bubbling.

I could see why this trail would never disappear in the midst of shuffling forest.

 

* 산림욕을 하며 피톤치드 샤워를 하다

 

마침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1960-70년대까지 명상은 히피나 하는 것 취급을 받았으나 1979년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에 스트레스 완화(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 8주 프로그램이 개설되면서 사회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 선구자가 MIT에서 분자생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존 카밧진(Jon Kabat-Zinn, 1944~ ) 박사였다.[2] 그의 마음 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의 아이디어는 고대 불교 명상 수행법에서 불교 색채를 빼고 의학 및 건강관리의 주류로 가져온 것이 핵심이다.

초기에 그는 불교 선사와 인도의 요기, 한국의 숭산 스님, 베트남 틱낫한 스님을 만나 가르침을 듣고 좋은 방법이 있으면 즉각 실행에 옮겼다.

 

존 카밧진 교수는 매사추세츠 의과대학(University of Massachusetts Medical School)에서 일하면서 통증 클리닉, 정형외과 의사 세 명과 함께 학교의 승인을 받아 의학적으로 더 이상 도울 방법이 없는 환자를 돌보는 클리닉을 만들었다. 그런데 8주 과정의 MBSR을 거치면서 환자들 가운데 통증과 우울증이 가라앉는 경우가 나왔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명상 프로그램의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비롯해 각종 디지털 기기에 주의를 빼앗기고 있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알아차림으로 가는 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명상이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아니다. 명상은 아무것도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서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되면 문제도 사라지고 고통도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의 진정한 본성은 이미 깨어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는 생각은 내버려둔 채 알아차리면 된다.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실제 우리 자신이 아니다. 침대에서든, 걸을 때든 달리기할 때든 현재 순간을 즐기며,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즐기면 된다.

국내에서도 한국 MBSR 연구소(소장 안희영)가 마음 챙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카밧진 교수의 책 「내 인생에 마음 챙김이 필요한 순간」이 불광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 명상에 잠긴 윤종모 성공회 주교. 출처: 조선일보, 2024.1.17.

 

대한성공회 윤종모(75) 주교는 기독교 성직자로는 드물게 오랜 기간 명상 수행을 하면서 강의와 저술, 기고를 통해 명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알리고 있다.[3]

 

윤 주교가 명상을 처음 접한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 사제 서품을 받고 캐나다 에드먼턴의 앨버타대에서 영성신학 박사과정을 밟을 때였다. 숙소인 성공회 피정 수녀원 북쪽 끝에 ‘명상실’이 있었는데 어디 외출할 곳도 없어 명상실 벤치에 앉으면 통유리창을 통해 고요 속에 설경(雪景)을 볼 수 있었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그는 명상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처음엔 30분쯤 앉아 있다가 차츰 시간을 늘렸다. 오전 10시쯤 앉았다가 ‘이제 뭘 좀 먹어야겠다’고 눈을 떠보면 오후 3~4시가 돼 있곤 했다. 침묵 속에 의식이 또렷해지고 흐트러짐이 없는 마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생각이 들어왔다가도 금방 사라졌다. 어렸을 때 느꼈던 상처나 걱정, 생활고 같은 것을 완전히 잊고 미움과 갈등이 사라지고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이 충만해지는 걸 경험했다.

 

어렸을 때 알콜 중독자였던 부친에게 받은 트라우마로 그를 괴롭히던 우울증을 무서워할 게 아니라 안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게 굉장히 효과가 있었다. '욱'하던 성미도 명상을 한다고 단번에 고쳐지지는 않았다. 명상을 시작하고도 ‘욱’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될 때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지금은 ‘욱’ 하는 동시에 바로 알아차리고 화를 내지 않거나 바로 사과하고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명상=불교’라는 선입견 때문에 명상을 배척하는 분위기도 있다. 윤 주교는 “명상은 도구일 뿐, 기독교 신앙과 충돌하지 않는다”며 “신학교에서 명상 강의를 하면 처음엔 거부감을 느끼던 학생들도 학기가 끝날 때쯤엔 오해를 풀곤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 역사에도 오랜 명상의 전통이 있다고 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전해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였다. “렉시오 디비나를 할 땐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있으면 읽기를 멈춘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그 문장을 되뇌며 의미가 의식 깊숙이 스며들게 하는데, 이 단계가 메디타시오(Meditatio: 묵상)이다. 오래 묵상하다 보면 깨달은 것을 하나님, 예수님께 고하고 싶은 마음이 생간다. 이를 오라시오(Oratio: 기도)라고 한다. 기도가 무르익으면 더 이상 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는 콘템플라시오(Comtemplatio: 공존)의 경지를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심호흡을 하면서 들숨에 ‘그리스도여’, 날숨에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반복하는 것도 호흡 명상이 되는 것이다.

 

Source: Wikipedia "Lectio Divina"

 

윤 주교는 “예수님도 명상가였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 계셨을 때나, 새벽 이른 시간에, 또 제자들을 떠나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셨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 내가, 내 안에 하나님’을 느끼고 계셨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Note

1] 문태준,『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2018.

2]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존 카밧진 교수 인터뷰, 2023.12.27.

3]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윤종모 주교 인터뷰, 2024.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