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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斜風細雨(비낀 바람 가는 비)

Onepark 2024. 4. 24. 08:15

지난 3월 하순 온천 여행을 떠난 친구가 노천탕 위로 비낀 바람 가는 비가 내린다는 짧은 시를 보내왔다.

산들바람 속에 소리 없이 내리는 사풍세우(斜風細雨)는 전형적인 봄철의 날씨이기에 예로부터 시인묵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나라 때 향리 江湖에 은거하며 고기를 낚고 세월을 보낸 장지화(張志和, 732-774)가 그의 원조(元祖) 격이다.

 

* 출처: 서울의대동문 홈피 자유게시판, 정관호(63)

 

 

漁歌子 - 張志和

 

西塞山前白鷺飛

桃花流水鱖魚肥

青箬笠, 綠蓑衣,

斜風細雨不須歸

 

霅溪灣裡釣魚翁

舴艋爲家西復東

江上雪,浦邊風,

笑著荷衣不嘆窮.

 

낚시꾼의 고기잡이 노래 - 장지화

 

서새산의 앞쪽으로 흰 백로가 날아가고

복사꽃이 떠가는 강물에 쏘가리는 살 올랐네

청약립(青箬笠), 녹사의(綠蓑衣)를 쓰고입고 했으니

비낀 바람 가는 비에 되돌아갈 필요없네

 

삽계만 안에서  낚시하는 노인은

거룻배를 집 삼아 동과 서를 왔다 갔다 하네

강 위에 눈 내리고 강가에 바람 불어도

연옷을 입었어도 미소 지으며 가난해도 불평하지 않네

 

여기서 西塞山(서새산)과 霅溪灣(삽계만)은 시인이 사는 중국 절강성의 지명이다.

鱖魚(궐어)는 쏘가리 같은 민물고기를 말하고, 청약립(青箬笠), 녹사의 (綠蓑衣), 하의(荷衣, 연잎으로 만든 비옷)는 현지에서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대충 만들어 쓰는 일회용 장비를 뜻한다.

가난한 살림에 나름 비바람에 대한 대비를 했으니, 봄비를 맞으며 계속 낚시를 하겠노라는 의미이다.

 

* 호수 저편을 응시하는 여성. 사진제공: 김종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남녀노소, 강과 호수, 바다 불문하고 낚시하기를 좋아하는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낚시에 관한 TV 유선방송, YouTube, SNS가 넘쳐날 정도이며, 가볍고 튼튼한 낚싯대, 물고기를 현혹시키는 미끼 등 관련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기서는 고기잡이하는 것보다 봄날의 정경, 날씨와 분위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우선 '비낀 바람 가는 비(斜風細雨)'를 이런 분위기에 맞게 어떻게 영어로 옮길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spring rain with obliquely blowing wind"로 번역해 보았다. 가는 비는 '소리없이 내리는 봄비'를 가리키니까.[1]

 

Fisherman's Song  by Zhang Jihua

 

The white egret flies in front of Seosae Mountain

In the river where the peach flowers float, the fish is alive and well.

Being dressed in a blue hat and green raincoat,

He need not go home owing to spring rain with obliquely blowing wind.

 

An old man fishes in the bay of Sapgye.

He goes back and forth between east and west, with his boat as residence.

Snow falls on the river and wind blows at the riverside.

Tho' dressed in lotus leaves, he smiles not complaining his poverty.

 

그렇다면 낙화유수(落花流水)처럼 사풍세우(斜風細雨)를 빌려서 지은 한시를 좀더 알아보기로 한다.

송나라의 대문장가 소동파(東坡 蘇軾, 1036∼1101)가 이 지역에서 귀양살이를 했으니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두 편의 사(詞)를 찾아볼 수 있었다.

사(詞)는 기존 곡조에 맞춰 쓴 일종의 대중가요 가사로, 시문을 중시하는 정통 문인들은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모두에 능했던 소동파는 문학적 가치가 높아 약 350수의 사를 남겼다. 이를 모아놓은 사집(詞集) 중에 사풍세우(斜風細雨)가 들어간 것은 장지화의 漁歌子를 개작한 것과 "보슬비 비낀 바람에 새벽녘 썰렁하고" (細雨斜風作曉寒)로 시작하는 완계사(浣溪沙)가 있다.[2]

 

* 구로카와 온천마을에서 가장 큰 노천탕(야마비코 료칸의 선인탕). 출처: 구로카와 온천 료칸조합

 

비낀 바람 가는 비 (斜風細雨)를 패로디하여 소동파 못지 않게 봄비 내리는 노천탕의 정경을 보여준 진수인 친구의 짧은 시를 소개한다. 그곳은 일본 규슈 구로카와(黑川)에 있는 유명 료칸이라고 한다.

 

아소산(阿蘇山) 자락에 동백꽃 피고

매화꽃 흐르는 물에 노옹 동심(老翁童心) 살찌네

푸른 대나무 찬바람에 료칸 온천물 뜨신데

비낀 바람과 가는 비에 집에 돌아갈 마음 미루네

 

Note

1] 위의 漁歌子에서 연상되는 한시(漢詩)는 도연명의 "도화유수(桃花流水)"와 두보의 호우시절(好雨知時節: 春夜喜雨)에 나오는 다음의 시 구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어 초목이 싹트게 하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 봄비에 꽃을 피운 매화 나무

 

2]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류종목 명예교수가 소동파의 사 중에서 대표적인 것 64수를 선정하여 번역하고 자세한 주석과 해제를 붙인 《소동파사선》(蘇東坡詞選, 커뮤니케이션북스)이 2023년 7월 출간되었다. 소동파 사집에서 완계사(浣溪沙: 당나라 때의 노래인 교방곡명, 후일 詞牌名)를 제목으로 한 것이 위의 두 편을 포함해  10수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