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창궐할 때 이탈리아 밀라노는 여러 가지로 주목을 받았다.
중국 우한에서 온 관광객이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명품을 쇼핑하였는데 그녀가 최초의 진원지가 아니었나 하는 이야기가 돌았다. 또 텅 빈 두오모 성당 앞 광장에서 안드레아 보티첼리가 관중도 없이 노래를 부를 때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이 사태가 어서 빨리 종식되기를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원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밀라노는 고령자의 코로나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곳으로 유명해졌다.
우리의 이탈리아 일주 여행 출발지는 밀라노였다. 대한항공 여객기가 착륙한 공항은 말펜사 공항이었는데 한국인 승객은 EU 회원국 시민과 마찬가지로 자동 입국수속이 가능하여 긴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한국 여권을 판독기에서 스캔한 후 출입국 심사관의 확인을 거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입국장 밖으로 나오니 공항 규모는 별로 커보이지 않았다. 2006년 워크숍 참석 차 밀라노에 처음 왔을 때에는 대한항공이 리나테 공항에 내리는 바람에 밤 9시 반 가까스로 말펜사 행 마지막 셔틀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리고 말펜사 공항으로 이동하여 워크숍 참가자 집합장소인 공항 앞 호텔에 투숙했던 기억이 났다.
서울에서부터 우리 일행과 동행한 한진관광의 오병섭 인솔자가 인원 파악을 한 후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 편으로 첫 날 투숙할 숙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1주일 이상 우리가 이용할 버스는 A+급 대형이라서 좌석도 편안했다.
첫 날 묵었던 호텔은 힐튼 계열의 더블트리 호텔로 바로 옆에 잭 니클로스가 설계한 골프장과 이웃해 있었다.
컨티넨탈 조식을 먹고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어젯밤 살짝 비를 뿌렸던 구름이 차츰 거치고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우리 일행은 8시 반에 예정대로 버스에 탑승하여 밀라노 관광을 위해 도심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역시 이탈리아의 산업 중심지 답게 송전선이 이리 저리 여러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유료 고속도로의 차선도 여러 개이고 승용차와 트럭, 오토바이가 분주하게 달리고 있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는 일정 배기량 이상의 오토바이도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게 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한 것은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러나 밀라노 시내에 진입하니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었다.
우선 신호등이 많은 데가 트램과 보행자도 함께 통행하여 한두 블럭만 가도 버스가 스톱 신호에 걸려 정차하곤 했다.
밀라노 도심에는 대형버스가 진입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탄 버스는 스포르체스코 성 밖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이미 도심 방향으로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과 다른 여행객들이 무리지어 걷고 있었다.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은 15세기에 밀라노 공작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16~17세기에 유럽에서 가장 큰 요새 중의 하나였다. 분수대가 있는 정문 광장에 서 있는 시계탑 아래에는 밀라노의 수호성인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조각상이 밀라노의 평화를 기원하듯이 서 있었다.
베르디의 <아이다> 등 명작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던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은 마침 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계가 뒤덮여 있는 건물 외양만 훑어보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에 그쳤다.
그 사이에 서울에서부터 인솔자로 동행한 오병섭 가이드는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요즘 밀라노 도심에서는 소매치기들도 성업 중이라며, 공연히 말을 걸거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현지인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이들은 3~4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이므로 우리도 혼자서 다니면 위험하고 조(組) 단위로 서로 보살피며 다니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스칼라 광장에서 두오모 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그 유명한 갈레리아 쇼핑 몰이 있었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쇼윈도우마다 명품 숍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에서는 공중화장실이 대성당 옆에 하나 있을 뿐이므로 가까운 카페에서 3유로짜리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는 것이 화장실 이용의 요령이라고 했다.
한 시간 가량 자유시간이 주어졌지만 대성당과 광장, 갈레리아 쇼핑몰을 모두 돌아보기엔 절대 시간이 부족했다.
우리 부부는 밀라노가 초행이 아니었으므로 화장실도 이용할 겸 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여행객과 쇼핑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밀라노의 점심 시간 트래픽을 빠져 나와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롬바르디아 평원을 가로질러 갔다.
이곳 평원은 본래 토질이 비옥한 데다 수량도 풍부하고 알프스에서 불어오는 맑고 시원한 바람, 아드리아 해의 수면에 반사된 뜨거운 태양의 복사열로 모든 작물이 잘 자란다고 했다. 이곳은 밀과 각종 곡물, 특히 쌀을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포도주 만드는 포도 재배도 잘 된다고 말했다.
또 석조건물에 필요한 각종 석재와 대리석도 생산이 되어 그 만큼 건물의 통일성과 아름다움이 일정하게 보장된다고 했다. 그러니 이 곳 북부지방은 공업과 농업이 발달하여 이탈리아에서도 소득 수준이 아주 높다고 한다.
이윽고 우리가 탄 버스는 베로나에 가까이 갔다.
베로나는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구 시가지는 문화유적지로 보존되고 있으므로 대형 관광버스는 일정한 도시진입세를 물고 지정된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한다. 따라서 도심의 호텔에 투숙한다면 여러 관광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짐을 직접 끌고 가거나 소형 차량으로 여러 번 날라야 하므로 하루 밤 묵는 여행자에게는 불편하다고 했다.
베로나의 원형 경기장(Verona Arena)은 AD 30년에 건설되었으며 로마의 콜로세움, 프랑스 아를의 원형 경기장과 함께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도 콘서트, 오페라 장으로 이용되는데 그 주변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인솔자로부터 분수 정원 그리스 병사 조각상 앞으로 모이는 시간을 전달 받고 이 지역 최대의 명소라는 줄리엣의 집을 찾아갔다. 사실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의 베로나, 베네치아를 방문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어떻게 현장에 와서 본 것처럼 세밀히 묘사를 하였는지 틀림없이 와 보았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베네치아에 관한 한 셰익스피어가 현지에 왔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일본의 이탈리아 전문 작가 시오노 나나미다. 그녀는 〈오텔로〉를 일컬어 해군력 자체가 국가 기반인 베네치아에서는 유색의 아프리카 무어(Moor) 인을 해군사령관으로 임명한 것 자체가 모순이라 하고, 〈베니스의 상인〉 역시 위험관리 차원에서 배 한 척에 자기의 전 재산을 몰빵하는 베니스 상인은 없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혼잡한 인파를 헤치고, 미끄러운 골목길에 소매치기까지 신경을 쓰면서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까지 걸어갔다 오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로미오와 줄리엣〉 자체가 허구(fiction)이니 줄리엣의 생가란 있을 턱이 없는데 사람들은 줄리엣이 로미오와 사랑을 속사이던 발코니를 보러, 또 줄리엣의 금속 조각상을 만져보러 멀리서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서 그런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고 오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스토리텔링의 힘(Power of Storytelling)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렇다!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여러 장르의 예술, 엔터테인먼트 치고 스토리텔링이 부실한 것은 없다. 사람들이 그러한 스토리에 편승하여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토리에 열광하고 기꺼이 스트리의 전개에 참여하러 오는 것이다.
줄리엣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에르베 광장이 있다. 허브와 농산물을 파는 시장이 열린다고 하는데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는 수박, 오렌지 등 생과일 주스를 팔거나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의 장이 서 있었다.
광장 한 복판에 서 있는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동상이 재미있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던 그에게는 안식처가 따로 없었다. 그가 소싯적에 보았던 베아트리체를 마음 속으로 그리며, 비록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24세로 요절하였음에도, 그의 마음 속에서는 영원히 살아서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久遠)의 여인상이 되었던 것이다.
단테 동상의 표정이 영국 사람 셰익스피어의 가짜 드라마(fake drama)에 열광하는 세태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단테 역시 그가 살을 맞대고 사는 현실 속의 부인은 일체 언급하지 않고 상상 속의 여인만을 평생 사모하고 글로 찬미했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줄리엣 이야기와 오십보 백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탈리아 2. 돌로미티 알프스
⇒ 이탈리아 일주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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