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우리 부부의 이탈리아 여행을 이끈 것은 EBS의 〈세계테마기행〉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완전정복 이탈리아〉편이었다. 이탈리아에 12년째 거주하고 있는 현지 가이드 임성일 씨가 해설하는 관광지이기에 색다른 소개가 많아서 우리도 빼놓지 않고 시청하였다.
이를테면 로마에서 해 지는 로마 시내의 풍경을 보며 산책할 수 있는 곳, 티라미슈를 처음 만들어 판 레스토랑이 있는 베네치아에서 가까운 도시 찾아가기 같은 것이었다. 그 프로에서도 빼놓지 않고 소개한 돌로미티 트레킹 편에서는 트레 치메 산봉우리가 안개와 구름에 가리워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돌로미티로 간다는 것은 우리의 기대를 부풀게 만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기기묘묘한 형상의 돌산을 가까운 거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곤돌라가 5월 한 달은 보수 기간이기 때문에 멀리 원경(遠景)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우리는 베네치아 근교의 유명 아웃렛몰인 노벤타 아울렛에 들러서 면세로 선물 몇 가지를 사 갈 수 있었다.
유럽의 알프스 산맥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등 6개 나라(Alpine countries)에 걸쳐 있다. 그 중 이탈리아에 속한 면적이 스위스보다 많은 36%나 된다고 한다.
우리는 그림엽서에서 볼 수 있는 눈 덮인 알프스의 바위산 말고 엄청 큰 바위덩이가 무리지어 서 있는 돌로미티 지역을 보러 가는 것이다. 아쉽게도 트레킹 코스도 아니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보는 게 아니므로 그 중의 일부라도 볼 수 있으면 다행이라 여겨졌다.
롬바르디아의 평원 지역을 벗어나 산간 지대에 접어들자 차창 밖으로 풍광이 달라졌다. 근자에 이탈리아 정부가 많은 수의 터널을 뚫고 고가도로를 건설하여 오가는 길이 훨씬 편리해졌다고 한다.
본래 돌로미티 지역은 '신들의 거처'라 하여 일반 관광객들의 방문이 뜸하였는데 이탈리아 정부는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가 밀라노와 함께 2026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됨에 따라 인프라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후에는 돌로미티에 대한 관광 홍보에도 열을 올려 우리나라 관광회사에서도 돌로미티 트레킹을 위한 전세기를 띄울 정도의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19세기까지 큰 군대가 알프스 산맥을 넘은 것은 세 차례 있었다.
BC1세기에 카에사르가 갈리아 정복을 위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은 곳은 서쪽에 위치한 코트티아 알프스(Cottian Alps)였다. 당시 로마와 갈리아는 전쟁보다는 외교협상을 통해 관계개선을 꾀하고 있었으므로 현재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위치한 비교적 고도가 낮고 길이 넓은 콜 드 텐드(Col de Tende)를 통과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전에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알프스 산맥의 중앙에 위치한 페닌 알프스(Pennine Alps)를 택했다. 코끼리 부대까지 이끌고 험준하기는 해도 이탈리아로 가는 지름길인, 현재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위치한 생 베르나르 고개(Saint-Bernard Pass)를 통과했다.
나폴레옹은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를 격퇴하기 위해 카에사르의 역사적 업적을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카에사르의 진격로를 택했다.
옛날에도 코르티나 담페초 역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루트가 있었지만 주로 지역 상인이나 순례길에 나선 구도자가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이윽고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스위스에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덮인 바위산, 침엽수림, 목조 가옥 산장(chalet)과 첨탑의 교회가 눈 앞에 펼쳐졌다.
하늘이 맑고 높아서 해발 3000m가 넘는 설산도 정상부까지 똑똑히 잘 보였다.
코르티나 담페초의 주차장에 내리니 바람은 어찌나 상쾌한지 저절로 심호흡이 되었다.
몇 달 전 스키 시즌에는 스키어들로 붐볐을 담페초의 거리가 지금은 사이클리스트, 특히 은퇴한 60대의 모터 사이클리스트들이 지나다닐 뿐이었다.
이색적으로 이 곳 교회의 첨탑에는 금빛 장식을 한 수탉이 앉아 있었는데 사도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다가 새벽에 수탉이 울자 베드로가 울며 회개했다는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오늘의 점심 식사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운치 있는 코르티나 태버네타 레스토랑(아래 사진에서 이탈리아 국기가 걸려있는 곳이 입구)에서 3코스로 진행되었다.
우선 개인별로 얇은 피자 반 판에 이어 새끼돼지 바비큐 메인디시로, 또 티라미슈가 후식으로 제공되었다. 나 역시 알프스의 경관에 취한 나머지 맥주를 홀짝이며 돼지 족발 비슷한 양념한 돼지 다리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이게 화근이 될 줄 어찌 알았으랴! 연일 高칼로리에 高퓨린의 식사를 한 뒤라 내 혈액 속의 요산 수치는 임계점을 넘은 모양이었다. 몇 시간 후 버스에서 내릴 때에는 땅을 딛는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보행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으나 통풍의 재발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우리도 식사 후 자유시간을 이용해 2년 후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이 마을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리라 생각하고 조용한 산속 마을을 거닐었다.
높고 깊은 산 아래에서 자연의 위력을 절감하였을 이곳 주민이나 방문객들은 절로 신앙심이 깊어졌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폭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과 눈사태를 피조물인 인간이 어찌 맞설 수 있단 말인가! 가까운 교회에 나가 기도를 올리며 신의 진노가 속히 풀리기를 기원할 수밖에.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제일 큰 교회는 사도 빌립보와 야고보 성당이다. 1770년대에 처음 두 성인을 기려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2007~2009년에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고, 현재도 한쪽 외관은 진행 중이었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베네치아에서 온 장인들이 정성을 들여 벽화 제작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각종 제단과 성구, 오르간과 종탑에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었다.
교회의 팜플렛은 내부의 구조와 각 제단 벽화를 설명하는 한편 주일 예배가 이루어지는 만큼 방문객들은 교회 안에서 휴대폰을 꺼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돌로미티 산맥(이태리어 Dolomiti, 영어 Dolomites)은 이탈리아 북동부의 산맥으로 평균 높이는 3000m가 넘는다. 지형이 아주 독특하게 생긴 이곳 산지의 이름은 18세기에 이 지역의 광물을 탐사했던 프랑스의 광물학자 데오다 그라테 드 돌로미외(Déodat Gratet de Dolomieu)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우리나라가 3수 끝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던 만큼 코르티나 담페초에서도 2026년에 동계 올림픽을 무사히 개최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우리가 탄 버스는 아침에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가 내일의 목적지인 베네치아를 향해 달렸다.
돌로미티에서 케이블카가 정기 보수공사를 위해 운행을 중단되는 바람에 그 대신 베네치아에서 가까운 노벤타 아웃렛 쇼핑몰에 갔다. 미국 서부의 팜스프링이나 우리나라 여주에 있는 아웃렛 몰과 브랜드나 가격 면에서 자연 비교가 되었다. 여기서 구매한 상품은 면세 혜택이 있으므로 로마 공항에서 택스 리펀드를 받으면 된다.
⇒ 이탈리아 3. 베네치아
⇒ 이탈리아 1. 밀라노, 베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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