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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뒷걸음 치다 구경한 오대산 단풍

Onepark 2022. 10. 8. 18:30

강원도 진부의 오일장은 매달 3, 8, 13, . . .일에 5일마다 열린다. 한글날 황금 연휴가 시작된 10월 8일 진부 오일장을 구경했다. 마찬가지로 그 전 날인 2, 7, . . .일에 열리는 봉평 오일장에 가면 혹시 "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시골 인심을 체험도 할 겸 오일장 구경도 하고 사과대추 등 제철 과일 몇 가지를 사고 요기삼아 순대를 사 먹었다. 주차장과 시장 주변의 큰길가엔 차를 대기가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들과 이 고장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려와는 달리 어제까지 내리던 비도 그치고 하늘은 뭉게구름이 떠 있는 가운데 맑게 개었다.

9월 말 설악산 단풍이 시작되었다기에 오대산에도 단풍이 시작되었으려니 기대를 하고 월정사로 갔다.

곳곳에 10.7 ~ 10.9 '오대산 문화축전'을 알리는 깃발이 나부꼈다. 월정사 주차장 한쪽에는 지역특산물을 판매하는 천막 판매대가 설치되어 사람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월정사(月精寺) 주변에서는 단풍이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상원사(上院寺)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선재(善才)길이라고 하는, 계곡을 따라 트래킹하기 좋은 산길이 있지만 주말에만 운행하는 월정사-상원사 셔틀버스(운임 @1500원)가 보이길래 냉큼 올라탔다.

월정사-상원사 구간은 10여 km의 비포장도로여서 내려올 때는 걸어올 수도 있지만, 우선 사람이 많고 계곡길에 주차한 차들로 혼잡하여 왕복 모두 셔틀버스 편을 이용했다. 상원사에 갈 때 백팔 번뇌를 잊어버릴 정도로 급경사인 돌계단을 올라가고 또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오대산 상원사에는 문수보살(文殊菩薩)[1]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전해 내려온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보천, 효명 두 신라 왕자가 오대산에 들어와 1만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고 한다. 장남인 보천 왕자가 속세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니 효명 혼자 환속하여 나중에 화백의 만장일치 추대를 받아 왕위[聖德王]에 올랐다.

성덕왕(재위 702~737)은 왕이 된 지 4년째인 705년 보천이 수도를 하던 곳에 진여원(眞如院)을 세우고 문수보살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에밀레종을 만들기 앞서 725년 동종을 주조하여 하늘의 소리가 오대산에 울려 퍼지도록[天音回香] 했다.[2]

그래서 지금까지도 상원사는 문수를 주존(主尊)으로 모시고 대웅전 아닌 문수전(文殊殿)에 석가모니가 아니라 목조 문수동자 좌상[국보]을 봉안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조 7대 왕 세조와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이 전해 내려온다.

 

* 문수보살상이 일반 불상과 다른 점은 머리를 두 갈래로 묶어맨 동자상이라는 것이다.

숭유척불의 사상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도 상원사 만큼은 흥성하였다.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악성 종기로 고생을 하다가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만나 불치의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임금이 관대걸이에 의관을 걸어놓고 계곡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던 중 지나가던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달라 하였는데 나중에 보니 종기가 싹 다 나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만난 동자승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진여원을 확장하여 이름을 상원사(上院寺)로 바꾸게 하는 한편  왕실의 원찰(願刹)로 정하고 목조 문수동자상을 봉안했다고 한다.

그 후 상원사는 여러 차례 중창되었고 크게 선풍(禪風)을 떨쳤는데 1946년에 실화로 동종각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가 1947년에 새로 지었다. 상원사에 머물며 탄허를 비롯한 많은 불제자를 가르친 방한암 스님은 한국 전쟁 당시 이곳을 지키고 앉아 병화(兵禍)를 입지 않도록 한 일화 또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상원사에는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신비로운 조각상이나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마당 한켠에는 곧 하늘로 비상할 듯한 극락조가 날개를 펴고 횃대 위에 않아 있으며, 동종각에는 동종 본체 위에 새겨놓은 두 선녀가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로 오르는 조각[飛天像]이 석비로 세워져 있다.

그리고 사찰로 올라가는 입구 양쪽에는 괴수 두 마리가 법보(法寶)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영험 많은 상원사
깨달음 여부는 각자의 몫

Whether one gets awakening
at the Temple of Vortex [3]
depends on one's will.

 

* 상원사 동종 옆면에 새겨진 선녀가 악기를 타며 하늘로 오르는 모습
* 문수보살의 염력이 통해서일까 한 뿌리에 큰 줄기가 둘인 전나무가 상원사 입구 계단 앞에 서 있다.

 

상원사에 이르는 계곡 주변에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탄성이 절로 나왔다. 황금 연휴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버스와 승용차를 타고 몰려 들어 도로와 주차장은 매우 혼잡하였다.

그러나 상원사 표지석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길을 따라 걸어가니 일순 적막이 감돌았다. 숲속에는 아름드리 전나무가 많았다. 상원사 입구는 온갖 번뇌를 잊게 할 만큼 급경사를 이룬 돌계단 위에 있었다.

역사가 오래 된 사찰답게 방문객들에게 경각심과 함께 오대서약(五臺誓約)[4]을 요구하는 게시판이 길가에 서 있었다.

 

* 상원서 입구에는 사천왕 대신 고개를 쳐들거나 거울을 통해 보아야 하는 36 모습의 문수보살이 있다.

 

다른 사찰의 천왕문에서 무서운 모습의 사천왕이 지키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는 문수보살의 탱화가 인자한 미소를 짓고 방문객을 맞아 주었다. 상원사의 문수전 석탑 주변에는 신자들의 소원을 비는 연등이 걸려 있었다.

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범종[國寶]이어서 유리문으로 보호되어 있고 그 옆에 복제품이 설치되어 예불을 올릴 때 타종을 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 위의 절 마당에는 금박을 한 극락조가 당장 비상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주 모던하게 꾸며놓은 청량다원에 들어가 오대산의 정기를 받아 끓였다는 오대산 원기차와 함께 민들레 환, 아주 진하게 우린 대추차를 마셨다.

 

* 상원사 입구 청량다원의 인테리어는 아주 모던해 보였다.
* 아래 거울에 반사되어 비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36가지 모습의 문수보살상(36化現圖)이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월정사로 내려오니 야외 음악회 소리가 들렸다. 다름 아닌 '오대산 문화축전'의 일환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끓여서 주는 국화차를 마시며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국내의 내로라 하는 불교 합창단이 차례로 나와 찬불가와 "시월의 마지막 밤에" 같은 노래를 불렀다. 잠시 후 이곳에 보름을 며칠 앞둔 달그림자가 비칠 때쯤에는 소란스러움도 그치고 '월정(月精)'이라는 본래의 이름대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상원사 위의 적멸보궁에 봉안)[5] 오대산의 사찰답게 적멸(寂滅, Silence)이 지배할 것이다.

 

가을 빛이 물들기 시작한 오대산을 빠져 나오면서 올들어 처음으로 단풍구경을 하였다는 기쁨이 적지 않았다.

아울러 상원사의 유래와 함께 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을 만나러 가는 수행의 의미를 깨달은 소중한 기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계획 없이 갔다가 마치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은 격"으로 많은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가을 산행이었다.

 

* 붉게 물든 단풍나무 앞은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이었다.

 

Note

1]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석가모니의 입적 후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하고 《반야경(般若經)》을 편찬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세상 속에서 실천적 구도자로서 활동할 때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표상이 되었다.

중국 산시성[山西省]의 우타이산[五臺山]에 있던 문수보살이 바다 건너[海東] 강원도 오대산에 나타나 여러 이적을 행한 것으로 전해 온다. 불가의 전승에 의하면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가 선덕여왕 3년(636년)에 불법을 구하려 당나라에 갔을 때 중국 우타이산(청량산)에서 그의 간절한 기원 끝에 문수보살을 뵌 후 석가모니 진신사리와 장경(藏經) 일부를 받아가지고 왔다 한다. 자장율사는 호국정신과 백성교화를 위해 불법의 전파에 힘쓰는 한편 왕에게 간청하여 황룡사 9층탑을 세우고 명산을 찾아다니며 사찰을 개창했다. 중국의 우타이산과 닮은 한국의 오대산에는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짓고  월정사를 세웠다.

 

2] 신라 33대 왕인 성덕왕은 702년 즉위 후 축성과 민생안정 사업에 주력했다. 잦은 수해와 전염병이 만연해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토개발에 힘썼고, 당나라의 균전제를 본뜬 정전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과 농업 생산의 증대를 꾀했다. 당시 발해와 당이 대립하는 것을 기화로 당에 지원군을 파견하는 등 당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패강 이남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확고히 인정받았다. 유교적 의례와 법제[禮制]를 정비하는 한편 국가적으로 불교를 숭앙하고 이를 백성들에게 고취하였다. 그 결과 성덕왕은 신라 천년의 역사 중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성덕왕 (聖德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필자가 상원사에 다녀온 소감을 짧은 시 [국ㆍ영문 하이쿠]로 지을 때 '영험(靈驗)이 많은 절'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의 산사(山寺)는 대부분 고려 초 도선(道詵)의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에 의해 지정되거나 건립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풍수이론에 의하면 오대산은 암석이 적은 토산이어서 명당이긴 해도 특별히 지기(地氣, vortex)가 승한 곳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보다는 삼국유사에 적힌 대로 중국 우타이산과 흡사한 지형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고, 신라의 두 왕자가 수도를 하였던 곳이며, 그 대상이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이라는 점에서 'Temple of Vortex'라고 단순하게 옮겨 보았다.

그러므로 불교계(조계종)에서도 이러한 전통에 따라 상원사를 찾는 사람은 적어도 월정사부터는 선재길을 따라 나름대로 구도(求道)하는 심정으로 걸어올라 갈 것을 바라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원사를 찾는 나이 많은 분을 위해 진부에서 출발하는 공영버스 외에 주말에는 두 사찰만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상원사 진입로는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하지 않은 채로 남겨놓고 있는 것인데 상원사까지 승용차를 타고 편하게 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원사를 찾아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의지가 중요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4] 상원사를 단순 방문하는 사람도 수도자 못지 않게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 할 것을 요구하는 계명이다. 임전무퇴, 살생유택 등 화랑 5계 비슷한 것으로, ①생명 존중  ②탐욕 금지  ③바른 행동  ④과묵 권장  ⑤밝은 생활 등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5] 절에 불상이 아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직접 모셔놓은 곳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한다.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는 속초 설악산 봉정암, 평창 오대산 상원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 함백산 정암사, 양산 영취산 통도사 등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 유학 갔다 귀국할 때 가져온 석가모니 사리와 정골(頂骨)을 모셔놓은 사찰이다. 월간 山, [5대 적멸보궁 산행 - 오대산] "천하 명당에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 정상 비로봉과 절묘한 앙상블!", 20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