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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Day] 단테의 신곡과 인페르노

Onepark 2022. 10. 13. 07:30

G : 독서의 계절 10월엔 무슨 책을 소개해주실지 궁금하네요. 

P :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막혔던 해외여행이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어 관광도 겸할 수 있는 책을 골랐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인페르노》입니다.

 

 

G : 단테의 《신곡(神曲)》(Divine Comedy) 일부인 '지옥(地獄)'를 소재로 한 댄 브라운의 소설 아닙니까? 얼마 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인문학 소양을 넓히기 위해 여러 번 읽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지요.

P : 얼마 전 우리가 영화 '인페르노'(2016)를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던 만큼 그것과 겹치지 않는 범위에서 책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처음 소설을 접했을 때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질병에 관한 한 그처럼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는데 COVID-19 사태를 겪으면서 그 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지요. 비록 중국 우한에 가서 현지 조사를 하는 것은 중국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G : 그렇다면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에서는 어떤 점에 착안해서 보는 것이 좋을까요? 

P : 방금 우리가 나눈 이야기 속에 다 들어 있는데요. 이를테면 피렌체와 베니스, 이스탄불의 주요 명소를 가보는 재미, 단테의 신곡이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사고와 의식에 끼친 영향, 감염병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WHO의 역할과 기능이 소설 속에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다시 소환한 이유는 새로운 문제의식, 즉 인구가 많아서(Overpopulation)가 아니라 인구가 자꾸 줄어들고 출산이 늘지 않아서(Birthrate below 1%) 문제라는 것입니다.

 

G : 그때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 가이드도 데려가 줄 수 없는 관광명소와 그곳의 역사적 유래, 여러 회화와 조각 작품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하는 장면,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The Consortium과 Transhumanism 등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P : 네, 여기서는 두 권으로 번역 출판되었던 소설책의 내용을 부분 인용하는 식으로 말씀드리지요. 문학수첩에서 2013년 7월 안종설 번역으로 출간한 《인페르노 1》은 로마숫자 Ⅰ,  《인페르노 2》는 로마숫자 Ⅱ로 각각 표기하겠습니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교만, 탐욕 등 일곱 가지 죄악의 라틴어 두문자로 이뤄진 SALIGIA가 새겨진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Map of Hell)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산드로 보티첼리, '지옥의 지도' (1480, 1490), 바티칸 도서관.

 

지옥의 지도 (La Mappa dell’Inferno)'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진정한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이다. 지하 세계의 청사진을 정교하게 그려낸 이 그림은 지금까지 창조된 사후 세계의 풍경 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작품으로 꼽힌다. 보티첼리는 화려한 색상으로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봄'이나 '비너스의 탄생' 같은 작품들과 달리, 이 '지옥의 지도'만큼은 빨강과 세피아, 갈색으로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 .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는 사실 14세기에 등장한 한 문학작품에 바치는 헌사에 다름 아니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문학작품이자, 오늘날까지도 그 생명력이 고스란히 살아 있을 만큼 생생하고 선명한 지옥의 묘사. 바로 단테의《인페르노》였다. (Ⅰ 102-103쪽)

 

세계 문학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을 구성하는 세 권의 작품 가운데 첫 번째 작이다. 14,233행에 달하는 대서사시 《신곡》은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가 연옥을 거쳐 결국은 천국에 도달하는 단테의 숨 막히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인페로노(지옥)', '푸르가토리오(연옥)', '파라디소(천국)'로 이루어진 3부작 중에서도 이 '인페르노'가 가장 널리 읽히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가 1300년대 초에 쓴 《인페르노》는 지옥에 대한 중세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이전만 해도 지옥이라는 개념이 이토록 환상적인 방식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테의 작품은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지극히 추상적이기만 하던 지옥의 개념을 너무나도 선명하고 끔찍한 풍경으로 구체화시켰다. 그토록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는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이후 가톨릭 교회가 엄청난 교세 확장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단테 버전을 업데이트된 지옥의 풍경에 겁을 먹은 죄인들이 교회로 몰려든 탓이었다.

보티첼리가 그려낸 단테의 지옥은 깔때기 형태의 지하 세계로 묘사되어 있다 층층이 자리한 불, 유황, 똥물, 괴물 등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죄인들에게 선서하며, 그 핵심부에는 사탄이 직접 대기하고 있다. 이 지옥의 구렁텅이는 아홉 개의 단계, 즉 ‘지옥의 아홉 고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죄인들은 자기가 지은 죄의 깊이에 따라 각각의 고리에 배치된다. 제일 위쪽의 ‘육욕의 죄인들’은 끊임없는 폭풍우에 시달리는데 이는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그 밑에 위치한 ‘탐식’ 단계의 죄인들은 출렁이는 똥물에 얼굴을 처박은 채 지내야 한다. 자신의 무절제에서 비롯된 배설물이 또다시 그들의 입속을 가득 채우는 셈이다. 더 밑으로 내려가면 이교도들이 불타는 관에 갇혀 영원한 불 속에서 몸부림친다. 이런 식으로 한 단계씩 내려갈 때마다 고통은 더욱 더 심해진다.

단테가 묘사한 지옥의 풍경은 7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음은 물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롱펠로, 초서, 마르크스, 밀턴, 발자크, 보르헤스, 심지어는 몇 명의 교황들까지 단테의 《인페르노》에 바탕을 둔 작품을 썼다. 몬테베르디, 리스트, 바그너, 차이코프스키, 푸치니는 단테의 작품에 기초한 음악을 만들었고, 이는 랭던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 음악가 로리나 맥케니트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비디오게임과 아이패드 어플들 중에도 단테와 관련된 작품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Ⅰ 105-107쪽)

 

G : 영화에서는 생략되었던 회화 작품이 소설 속에는 또 무엇이 있나요.

P : 바로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댄 브라운의 참고자료 목록들입니다. 단테의 《인페르노》가 영감(靈感)을 불어넣은 명작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William Bouguereau, '지옥에 있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1850), 파리 오르세 미술관.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는 물론, '세 그림자'에서부터 '지옥의 문'에 이르는 로댕의 영원한 걸작들…… 스틱스 강의 시체들 사이로 노를 젓는 플레기아스의 모습을 그린 스트라다누스의 적품…… 영원한 폭풍우 속에서 신음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육욕의 죄인들…… 벌거벗은 채 싸움에 몰두하는 두 남자를 바라보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모습을 그린 부그로의 묘하게 선정적인 그림……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불덩어리 속에서 몸부림치는 영혼들을 그린 바이로스의 작품……살바도르 달리의 독특한 수채화와 목판화들…… 하데스의 입구에서부터 날개 달린 사탄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도레가 남긴 다양한 흑백 에칭화.  (Ⅰ 109-110쪽)

 

변형된 '지옥의 지도'에서 말레볼제의 구덩이 열 개에 적혀 있는 글자들 – CATROVACER. 철자를 이리저리 옮겨 보면 “Cerca Trova” 성경에 나오는 “구하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라는 말과 똑같아진다.  (Ⅰ 177쪽)

바사리는 Very Sorry(사과)가 아니라 Vasari였다. 바로 자신의 벽화 속에 cerca trova라는 문구를 숨겨놓은 화가의 이름이었다.  (Ⅰ 185쪽)

 

16세기의 화가 겸 건축가이자 저술가이기도 한 조르조 바사리는 세계 최초의 미술사학자라 불리기도 한다. 바사리는 수백 점의 그림을 그리고 수십 채의 건물을 설계하기도 했지만, 그가 남긴 최고의 유산은 아마도 《가장 뛰어난 화가와 조각가, 그리고 건축가들의 생애》라는 제목의 기념비적인 저서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여러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전기를 모은 이 책은 오늘날까지 미술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바사리는 약 30년 전, 베키오 궁전의 500인의 방에 있는 벽화 '마르시아노 전투'의 한쪽 구석에서 ‘케르카 트로바’라는 비밀 메시지가 발견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치열한 전투 장면 속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도 않는 초록색 깃발 위에 이 조그만 글자들이 적혀 있다. 바사리가 왜 이 이상한 메시지를 자신의 벽화에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전히 이론이 분분하지만, 이 벽의 3센티미터 뒤쪽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프레스코화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후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단서를 남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Ⅰ 185-186쪽)

 

피렌체에는 바사리가 남긴 가장 큰 작품이 걸려 있다. 메디치 일가가 피티 궁과 베키오 궁 사이를 은밀히 오갈 수 있게 만든 길이 1킬로미터에 달하는 바사리 통로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요즘도 특별대우를 받는 손님들은 그 통로를 이용할 수 있다. 베키오 궁에서 보볼리 정원의 북동쪽 모서리까지 이어지는 이 통로 전체가 엄청난 규모의 미술관이다.  (Ⅰ 281쪽)

 

G : 피렌체 하면 메디치 가문이 대대로 이 도시를 다스리면서 이름 그대로 꽃을 심어 아름답게 꾸미고 그리스 학자와 예술가들을 우대하여 문예부흥(Renaissance)을 일으켰습니다. 단테, 마키아벨리 등이 이 고장으로 출신이었고, 또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뮤즈(Muse)'였어요. 그래서 피렌체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베아트리체를 뮤즈 삼아 영구불변의 대작을 남긴 단테처럼 그로부터 영감이랄까, 영력을 받으려고 한다면서요?

P : 피렌체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제일 큰 도시임에도 사람들은 관광은 둘째 치고 두오모 성당의 돔 꼭대기에 올라가고 베키아 다리를 서성인다고 해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도 여러 장면이 나오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뭔가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오는 것 같습니다.

 

* Henry Holiday, 'Dante and Beatrice' (1884), Bridgeman Art Gallery, London.

 

단테의 사랑는 오로지 베아트리체 프로티나리뿐이었다. 사실 단테는 이 여인을 잘 알지도 못하는 처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혼령이 제공해준 영감에 힘입어 필생의 역작을 완성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다고 한다.

단테의 유명한 시집 《새로운 인생》은 ‘축복받은 베아트리체’에 대한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신곡》은 베아트리체에게 단테를 천국으로 안내해줄 구원자의 배역을 맡기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단테의 열망이 빚어낸 걸작들인 셈이다.

본명이 산타 마르게리타 교회인 단테 교회는 요즘 짝사랑으로 고통받는 영혼들의 성소와도 같은 곳이 되었다. 24세로 요절한 베아트리체의 무덤이 바로 이 교회 안에 있다. 그녀의 수수한 무덤이 단테 애호가뿐만 아니라 사랑의 상처를 품은 연인들의 순례지로 자리 잡은 것이다.  (Ⅰ 365쪽)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아침에도 베아트리체의 무덤 옆에는 수수한 버드나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아침에도 그 바구니에는 정성스레 접은 종이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 교회를 찾은 사람들이 베아트리체에게 쓴 편지들이었다.

베아트리체 프로티나리는 언제부터인가 불행한 연인들의 수호천사와도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에 의하면, 베아트리체에게 올리는 기도를 손으로 직접 써서 이 바구니에 넣으면 글쓴이의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상대방이 나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 수도 있고, 진정한 사랑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세상을 떠난 연인을 잊는 힘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랭던은 여러 해 전에 미술사에 대한 책을 쓰다가 너무나 지친 나머지 자료 수집차 피렌체에 왔다가 이 교회에 들러 버드나무 바구니에 쪽지를 남긴 적이 있었다. 진정한 사랑은 못 찾아도 좋으니, 단테로 하여금 그 방대한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인도한 영감을 나에게도 허락해달라고 간구하는 내용이었다.

“여신이여, 내게 노래해주세요. 나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세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도입부가 상당한 효험을 발휘한 듯, 미국으로 돌아간 뒤 놀랄 만큼 수월하게 집필을 마친 랭던은 자신의 쪽지가 베아트리체의 신령한 영감을 자극한 것이 틀림없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Ⅰ 367-368쪽)

 

* 외젠 들라크루아,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는 제4차 십자군' (1840), 루브르 박물관.

 

G : 그런데 이 소설은 왜 그 무대가 베니스로 또 이스탄불로 확장되는거지요? 조브리스트가 꾸민 계획에 의하면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절멸(정확히는 불임, infertility)시킬 바이러스 폭탄은 이스탄불의 유서 깊은 지하 물의 궁전에서 터질 예정이었거든요. 

P : 트랜스휴머니스트인 조브리스트는 단순한 생물학적 테러리스트가 아니었어요. 단테의 《인페르노》에 의하면 지옥에서도 가장 엄중한 벌을 받는 자는 교만과 탐욕에 가득찬 사람입니다. 랭던 교수가 그를 구해주었다고 믿은 닥터 시에나 브룩스에게 배신을 당하고 속수무책으로 주저 앉은 곳이 베니치아 궁전 안이었어요. 랭던 교수가 어렵사리 푼 수수께기 암호에 의하면, 문제의 발단은 베네치아에 있고 그 파국적인 결말은 이스탄불 물의 궁전(Basilica Cistern)에서 터지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워낙 쫓고 쫓기는 장면의 연속이라서 정신 없이 전개되지만, 이러한 설정은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주창에 따라 1201년에 개시된 제4자 십자군 원정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당시 십자군 이집트 원정대에 베네치아가 수송선과 보급품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인원미달의 원정대가 그 대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자 베네치아의 탐욕이 십자군의 진로를 바꾸어 버립니다. 동방무역로 확보를 위해 1202년 크로아티아에 위치한 헝가리 제국의 도시 자다르(Zadar)를 공격하고 급기야 1204년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 공격하여 함락시킵니다.

그러한 연유로 이스탄불을 유린했던 베네치아의 도제(Doge, 국가수반) 엔리코 단돌로의 묘가 그곳에 안치되었던 겁니다.

1453년 오스만 튀르크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를 함락한 직후 그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그의 무덤을 파헤치고 유골을 거리에 내던졌다고 하지요. 지옥에 갈 것도 없이 이 땅에서 벌을 받은 것입니다.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 일 두오모.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캡쳐.
* 피렌체의 명물 아르노 강 위의 베키오 다리

 

일 두오모 – 공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다.

광장의 남쪽 가장자리에 다다른 랭던과 시에나는 초록색과 분홍색, 흰색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의 외관과 마주쳤다. 건물 자체가 품고 있는 예술성도 예술성이지만, 건물의 폭 역시 워싱턴 기념탑을 옆으로 눕혀놓은 것과 맞먹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례적이라 할 만큼 화려한 색상의 조합을 선택해 단색의 석조 건물들이 갖는 전통미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구조 자체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랭던은 솔직히 처음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 건물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지 않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뒤로 여러 차례 이탈리아를 찾을 때마다 몇 시간씩 이 건물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보면 볼수록 그 미학적 영감에 매료되어 지금은 그 눈부신 아름다움을 한껏 찬양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일 두오모는 . . . 피렌체의 영적 중심지이자 수많은 드라마와 음모의 중앙 무대로서 여러 세기에 걸쳐 남다른 명성을 쌓아왔다. 이 건물의 파란만장한 과거는 돔 안쪽에 그려진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바사리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을 둘러싼 논란에서부터 …… 돔 자체를 완공할 건축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치열한 경쟁까지를 두루 아우르고 있었다.

결국 당시만 해도 세계 최대의 규모로 알려진 그 대역사를 떠맡아 돔을 완성할 책임자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선택되었고, 한 점의 조각 작품으로 변신한 이 브루넬레스키는 지금도 카노니치 궁전 앞에 앉아 자신의 걸작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Ⅱ 6-7쪽)

 

오, 건강한 지성을 가진 그대들이여, 이 신비로운 시구들의 베일 아래……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시오. (O you possessed of sturdy intellect, observe the teaching that is hidden here……beneath the veil of versesso obscure.)

물에 잠긴 궁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라…… 이곳의 어둠 속에…… 소닉몬스터(Chthonic monster)가 기다린다.  (Ⅱ 42, 44쪽)

 

* Basilica Cistern의 한 기둥 아래 물에 잠겨 있는 메두사의 눈길이 닿는 부분이 Ground Zero였다.

 

G : 이제 보니까 '신비로운 시구'란 단테의 《인페르노》에 나오는 교만과 탐욕에 어떠한 징벌이 내릴 것인지, 또 '물에 잠긴 궁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네요. 이스탄불 시스턴 궁 지하수조의 메두사 괴물이 눈을 부릅 뜬 기둥이 연상되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소설 속의 버트란드 조브리스트는 막강한 부를 가진 천재인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꿔놓은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를 연상케 합니다. 위의 시구에 매료된 건가요?  조브리스트는 오늘날의 인구문제를 오직 인구의 절대숫자를 줄이는 데만 집착한 데다 그 계획이 파괴적이어서 결국 수포로 끝났지요. COVID-19로 인해 전세계에서 650만명 이상이 죽었으니 그가 예견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P : 동감입니다. 인구가 갑자기 줄면 일본과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것처럼 경제, 사회가 발전하기는커녕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처럼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고령자가 늘고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게 되면 복지비용이 급증하여 세금부담이 크게 늘어나고 소비지출이 급감하여 경제의 모든 부문에 충격이 가해지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인구절벽이 닥치면 학생 수가 줄어드니 학교도 선생님도 넘쳐나고 주택 수요가 감소하는 데 따른 부동산 경기와 부동산 담보금융도 얼어붙게 되지요. 돈이 돌지 않으니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되고 복지수요의 증가로 세금이 늘어나 사람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질 겁니다. 

오늘날 좀더 영민한 조브리스트라면 인공지능(AI), 로봇 등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은퇴 후에도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슈퍼컴퓨터와 5G 통신을 기반으로 AI를 장착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인 '옵티머스'를 2만달러(약2900만원) 이내로 대량생산하여 보급할 계획이라고 했다지요? 그 당시 이탈리아에도 산타 루치아 성녀가 그 같은 이적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 자신의 눈알을 올려놓은 쟁반을 들고 있는 성녀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장님들의 성인!

루치아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남자들이 그녀를 보기만 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그래서 루치아는 하느님 앞에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눈을 뽑아버렸다.

그런 희생의 대가로 하느님은 루치아에게 더욱 더 아름다운 눈을 선사했어요. . . 스무 명도 넘는 유럽의 대가들이 작품 속에 남긴 산타 루치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자신의 눈알을 쟁반에 담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루치아는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자신의 눈알을 뽑아 쟁반에 담고는 고집스러운 구혼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 그대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을 가지세요. 부디 간구하오니, 나머지는 제발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묘하게도 루치아의 자해(自害)를 유도한 것은 바로 성경이었다. 루치아라는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그리스도의 유명한 훈계가 따라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는 빼어내 버리라.” (마태복음 18:9)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름다운 루치아가 어느 권세가의 청혼을 거절하자 그는 루치아를 말뚝에 묶어 화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는데, 그녀의 육신이 불에 타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유골은 특별한 힘을 가졌으며,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비정상적으로 긴 수명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 . 그래서 루치아의 유골이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되었다. 2천 년에 걸쳐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은 산타 루치아의 유골을 손에 넣어 노화와 죽음을 막으려 했다. 많은 사람들이 루치아의 유골을 훔치고, 훔친 걸 또 훔치고, 장소를 옮기고,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 . 루치아의 유골은 최소한 막강한 권력자 열두 명의 손을 거쳤다.  (Ⅱ 118-119쪽)

 

G : 이 소설의 결말에서 조브리스트가 이스탄불의 유서 깊은 지하 시스턴 궁전에서 전세계에 감염병을 퍼뜨릴 음모를 꾸미고 그의 연인이었던 닥터 브룩스가 이를 실행한다는 설정이었어요. 하지만 랭던 교수의 노력으로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요?   

P : 단순하게 보면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계획을 꾸미는 자들을 단테의 《인페르노》를 빌어 꾸짖은 것이라고 할까요? 소설 속의 표현을 빌리면 교만하고 오만한 자들은 '부인'을 당하고 그들이 먼저 지상에서 축출될 것이라며 경종을 울린 것입니다. 댄 브라운은 이것을 '아가투시아'라고 불렀어요. 

 

시에나는 반박했다. “안됐지만 그건 당신 생각이 틀렸어요. ‘부인’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예요. 만약 그런 게 없으면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의 목숨을 앗아 갈지도 모를 오만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못 할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스트레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런 실존적인 공포를 차단해버려요. 이를테면 어떻게 해야 지각하지 않고 출근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세금을 무사히 납부할 수 있을지 하는 고민들 말이에요. 그보다 더 심각한 실존적 공포가 닥치면 재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보다 단순하고 일상적인 고민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랭던은 어느 유명 대학에서 학생들의 인터넷 사용 습관을 연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연구에서는 굉장히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용자조차도 시에나가 말하는 ‘부인’에 해당하는 본능적인 경향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극지방의 얼음이 녹는다거나 종의 멸종이 가속화된다는 등의 부정적인 기사를 클릭한 다음에는 재빨리 그 페이지를 벗어나 마음속의 두려움을 몰아내 줄 가볍고 사소한 기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하이라이트나 재미있는 고양이 동영상, 유명 인사를 둘러싼 스캔들 따위가 대표적이다.

고대 신화에서는 교만하고 오만한 자들이 ‘부인’의 대상으로 낙인찍히곤 했다. 세상의 위험이 자신에게만은 닥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면 그보다 더 큰 교만이 어디 있겠는가. 단테도 이런 입장에서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악 중에서도 교만을 가장 나쁜 것으로 보고 그런 자들을 지옥의 제일 깊은 고리에서 벌주고 있다.  (Ⅱ 350쪽)

 

아가투시아(Agathusia) - '좋은 희생'? 파산한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남기려고 자살하는 경우, 혹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연쇄 살인범이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게 될까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랭던이 기억하는 가장 섬뜩한 사례는 1967년에 발표된 《로건의 탈출》이라는 제목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이 소설은 모든 사람이 스물한 살이 되면 자살하기로 동의한 미래 사회를 묘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젊은 시절을 온전히 즐기고, 지구의 한정된 자원에 인구 과잉이나 노인 부양이라는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랭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작품의 영화 버전에서는 종료 시점이 스물한 살에서 서른 살로 연장되었는데, 이는 박스오피스의 단골손님 연령대인 18세부터 25세 사이의 영화팬들을 붙잡으려는 상업적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Ⅱ 353쪽)

 

G : 《인페르노》를 먼저 영화로 보아서 그런지 유럽의 관광명소를 돌아본 것은 좋았지만 내용은 암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대했던 러브 라인도 틀어져 버렸고 ······.

P :  단테의 《신곡》이 천국에서 끝나는 것처럼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봐야겠지요. 저자도 소설의 말미에 희망적인 어록을 늘어놓았습니다.

 

오늘 밤을 기억하라…… 오늘이 영원의 시작이니. (Ⅱ 368쪽)

그는 영생을 얻었다. 랭던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명성에 대한 견해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그대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한 그대는 결코 죽지 않는다. (Ⅱ 370쪽)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랭던에게 이 말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온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위기의 시대에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

랭던은 자신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죄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부인’은 온 세상을 휩쓴 거대한 전염병이 되어버렸다. 랭던을 절대 이것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 .

머리 위의 독서등을 끄는 순간, 그의 눈이 다시 한 번 하늘에 닿았다. 지금 막 내리깔린 어둠 속에,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늘은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한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되어 있었다.  (Ⅱ 375쪽)

 

G : 책을 읽을 때면 이렇게 독서 메모를 하십니까? 부분적으로나마 책 내용을 읽어보는 것은 좋지만, 너무 힘들진 않으신가요?

P : 사실 그렇습니다. 저도 이제 책 읽기가 힘든 나이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Book's Day인 13일에 독후감 기사를 올리겠지만 매월 하지는 않고 준비되는 대로 간헐적으로 할 작정입니다. 그리고 범위를 넓혀 좋은 책이나 시집, 그림 화보집까지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