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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낙엽 밟으며 시민의 숲 산책

Onepark 2022. 11. 10. 08:40

요즘같은 조락(凋落)의 계절에는 구르몽의 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브 몽땅의 "고엽(枯葉)" 노래를 들으며 낙엽을 밟고 산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침 주민센터에 민원서류를 떼러 갔다가 서초구청에서 진행하는 "도심 속 숲 서리풀 문화여행" 포스터를 보았다.

10월 중순부터 주 2회 서리풀 공원과 양재 시민의 숲에서 숲해설사, 문화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나무와 숲, 역사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에 누구나 무료로 참가(서초구 주민 여부 불문 15명 선착순) 할 수 있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전국민애도기간 중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행사가 재개되면서 나도 서초구청 홈페이지에서  참가신청을 하였다.

 

11월 9일 수요일 2시 점심을 서둘러 먹고 집합장소인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 5번 출구 앞으로 갔다.

평소 그 앞길을 지나다니면서 aT센터 앞에 코스프레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내 경우 인근 꽃시장에 들르는 정도였지 서초구에서 30년 사는 동안 시민의 숲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만추(晩秋)에 접어든 시민의 숲에는 나이든 어르신이나 반려견 데리고 산책 나온 시민들이 간혹 눈에 띌 뿐이었다.

 

양재천변 벚나무 길에서 숲해설사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이곳에 전에 와본 적이 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양재천변에 벚꽃이 만개할 때에는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온다고 했다.

벚나무를 일본의 나라꽃으로 많이들 알고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성정(性情)과 닮은 벚꽃을 좋아한다는 것이지 나라꽃, 황실의 상징은 국화(菊花)라고 했다. 미국의 인류학자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란 책을 보면 일본인은 화사한 아름다움과 평화를 사랑(국화)하면서도 상대가 마음에 안들면 칼로 베어버리는(日本刀)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벚나무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원조는 한반도이며 일본에서는 꽃이 많이 피도록 개량한 것뿐이라고 했다. 그 조상이 되는 제주도의 벚나무를 프랑스 신부인 식물학자가 발견하여 그 개량종의 번식에 힘쓰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어서 우리나라의 국화는 무궁화인데 "무궁화와 벚꽃은 어느 것이 오래 필까요?"하고 물었다. 다들 무궁화 아니냐고 반문하자 이름이 무궁화인 것은 한 가지에서 꽃봉오리가 잇달아 피어 오래 피는 것으로 보일 뿐 개화기간은 벚꽃이 무궁화보다 길다는 설명이었다. 벚나무 잎에는 꿀샘이 있어서 개미들이 벚나무를 좋아하며 진딧물도 잡아먹으니 서로 공생하는 관계라고 했다. 예쁜 나뭇잎을 두어 장 갖고 있다가 나중에 부엉이를 함께 만들어 보자고 하셨다.

  

숲해설사는 낙엽이 떨어진 호젓한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주변에 눈에 띄는 나무들의 이름과 특성을 설명해 주었다.

참가자 중에 몇 사람은 부들, 뽕나무, 느티나무. 쥐똥나무 등을 알아맞히기도 했으나 나는 느티나무, 플라타나스(버짐나무) 같은 몇 가지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낙우송, 독일가문비나무 같이 처음 보는 나무도 있었다. 손자가 나무나 꽃이름을 물어보면 구글 렌즈로 검색해보면 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부끄러웠다. 

 

숲해설사 선생님은 왕년에 교사를 하셨는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시민의 숲의 유래가 본래 강남의 슾지대로 남아 있었던 것을 하계 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정되면서 다양한 수종을 계획적으로 조림한 곳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세콰이어, 마로니에 같은 나무도 많이 심는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는 이곳이 숲과 나무를 공부하기에 좋다고 하셨다. 이른봄에 피는 산수유와 생강나무가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그 차이점도 이야기해 주셨다.

 

나는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도심공원으로 조성된 Boston Common (명사 common은 공유지, 공원이란 뜻), 뉴욕 Central Park, 런던 Hyde Park 등 모두 다녀 보았다. 비엔나의 경우 귀족들의 저택에 딸린 정원을 공원으로 만들어 놓은 곳도 가 보았다. 미국의 국립공원에서는 Park Ranger가 방문객들에게 안내와 해설을 해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미국 뉴포트에 있는 밴더빌트 같은 부자들의 호화맨션, 그리고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옆에 있는 Eisenhower Farm (거실 앞 퍼팅 연습 그린)이었다.

뉴저지에서 우리가 살았던 집 가까이에 Roosevelt Common이 있어서 아이들 데리고 가서 잔디밭에서 뛰어놀고 연못의 청둥오리와 즐겁게 놀았던 일도 생각났다. 이곳 시민의 숲은 양재천 수영장, 산책로가 붙어 있어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수 있었는데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핑계로 좋은 기회를 허송한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지금이라도 이곳의 진가(眞價)를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자주 이용하면 될 것이다. 

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 보고 등록금 비싸다고 불평하지 말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도서관 특히 학술자료 데이터베이스만 제대로 활용해도 돈 벌면서 대학 다닐 수 있다고 타일렀던 게 생각났다.  

 

이어서 문화해설사가 등장하여 시민의 숲에 있는 몇 군데 위령탑을 설명해 주었다.

제일 크게 조성된 곳은 1995년에 발생한 서초구 관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실종자의 위령탑이었다.  뒷면에는 그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유족회에서 유가족들의 연락을 바란다는 메시지도 붙어 있었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600명에 육박하므로 9.11 테러로 인한 뉴욕 쌍둥이빌딩(World Trade Center) 붕괴사고 못지 않게 우리에게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는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 땅속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분수대를 만들고 빙 둘러서 검은 대리석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을 직접 가보았다.  

 

이색적으로 시민의 숲에는 88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에 북한이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수년간을 준비하여 결행한 KAL기 폭발 사고 희생자 위령탑도 서 있었다. 중동에서 귀국하던 건설근로자들이 북한의 테러리스트가 항공기 내에 설치한 시한폭탄이 버마 상공에서 터지는 바람에 외국인 2명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몰살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기체 일부 외에는 피해자들의 시신을 인도양 해역에서 한 구도 건지지 못한 아주 참담한 사건이었다.

중간 기착지에서 KAL기에서 내린 북한 요원 한 명은 체포 즉시 음독 자결하고 다른 한 명은 음독에 실패하여 서울로 압송되었다. 생포된 여자 요원은 나중에 전향하여 북한의 테러 계획을 낱낱이 밝히고 그녀를 지켜주던 중정 요원과 결혼했다는 비화를 남기기도 했다.

 

1995년에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났는데 그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은 다리 북단의 성수동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2010년 여름 우면산 산사태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애도하는 위령비를 세웠다. 당시 태풍 곰파스가 불어닥치면서 서울 지역에는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내려 우면산 일대에 산사태가 일어난 것을 나도 목격한 바 있다. 어디서 엄청난 크기의 바윗돌이 쓸려 내려왔는지? 그 앞 새 아파트에서 인티리어 공사하던 인부들이 즉사한 사건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같은 위령비, 위령탑은 그때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 못지 않게 그러한 끔찍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의미가 크다. 이번 핼러윈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은 어디에 위령탑을 세울지 궁금해졌다. 

 

이러한 견지에서 시민의 숲에는 우리가 대대손손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위대한 애국자의 기념관이 있다.

바로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과 전쟁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일본 정부 요인들에게 폭탄을 던지고 순국한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 1908~1932) 의사의 기념관이다. 기념관 내부에는 태극기 앞에 윤봉길 의사의 좌상이 있고 홀마다 그가 언제 태어나 자랐고 애국심에 불타게 되었는지 각종 시청각 자료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윤 의사는 일제 교육을 거부하고 고향인 예산에서 심훈의  「상록수」와 같은 농촌 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러다가 뜻한 바 있어 부모와 처자를 내버려 두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투쟁을 벌였다. 상하이로 가서 김구 선생을 만나 자신의 의거 계획을 밝히고 실행에 옮겼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와 같이 윤봉길 의사도 한문과 근대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실천적 독립운동가였던 것이다.

 

문화해설사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감명을 받은 장제스(蔣介石)가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정상들에게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장제스는 중국엔 한 명도 없는 의사(義士), 열사(烈士)가 한국에는 숱하게 많다며 한국의 젊은이들을 중국 사관학교에 입교시켜 항일 대열에 동참시키도록 지시했다는 말도 전했다.  최근 '양재 시민의 숲'을 '매헌 시민의 숲'으로 고쳐 불러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정신을 이어받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할 수 있었다.

 

매헌 기념관 앞에는 우리 말고도 숲나무와 역사를 공부하러 온 그룹이 여럿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곳은 서초구 뿐만 아니라 서울과 한국의 자연, 역사문화를 공부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이 지역을 어떻게 개념정의하느냐에 따라 단순한 휴식공간이 시민들의 의식을 깨울 수 있는 장소로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숲해설사, 문화해설사 선생님 두 분은 남은 코스는 양재천이라면서 지난 여름 수해 복구공사가 진행 중이므로 영동교 부근까지만 갔다 올 거라고 말했다. 영동이란 지명은 강남 개발 전에 현재의 강남대로 서쪽은 영등포구에 속했으므로 그 동쪽 지역은 영등포의 동쪽, 즉 영동(永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양재천 가까운 곳에 칸트 기념비와 사색의 길이 있지만 그 초입까지만 가서 보고 나머지는 서울에 사는 분들이므로 언제든지 와서 거닐면 된다고 했다.

 

수해복구 작업이 한창인 양재천 수영장 부근 천변(川邊)에는 갈대와 억새 풀밭이 보기 좋게 가꾸어져 있었다.

갈대는 물가, 산속에는 억새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숲해설사 선생님은 우리가 가을풍경 사진에서 많이 보는 것은 억새이고 물가의 갈대는 억새만큼 볼품이 없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나란히 놓고 보니 확실히 식별이 되었다.

 

* 서울 양재천 갈대밭
* 서울 양재천 억새밭

양재천 칸트 사색의 길 앞에서 오늘의 참가자들이 귀가하기에 편리하게끔 일단 해산을 하였다. 나머지 일행은 처음 출발장소인 지하철 시민의숲 역으로 갔다.

나로서는 처음 참가한 서초구 문화행사가 참으로 유익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를 작성하거니와 은퇴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서초구에 세금을 많이 냈던 것 이상으로 이런 기회를 좀더 많이 활용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서울의 문화유적지
해설 들으며  누리는 호사

Plenty of Cultural Sites in Seoul,
Guided tour will make
You happy.

찾는 이마다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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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우릴 향해 외치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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