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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한여름의 온/오프 순례길

Onepark 2022. 8. 10. 09:30

아파트 단지의 배롱나무 꽃들이 활짝 피었다.

木백일홍이라는 이름처럼 새로 작은 꽃이 피면 묵은 꽃이 지므로 한 무리의 꽃이 계속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똑같이 한여름에 피는 무궁화 꽃이 한 줄기에서 새 꽃이 피고 묵은 꽃이 지는 것을 여름내 반복(無窮)하는 것과 비슷하다.

거실 창 아래 만발해 있는 배롱나무 꽃을 내려다 보니 마치 화분에 심은 것처럼 보였다.

 

* 아파트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배롱나무 꽃

순간 창 밖으로 새가 되어 두둥실 날아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 프랑스 고성(古城) 순례 패키지 투어를 신청했다가 여행사가 현지 사정으로 여행일정을 취소하는 바람에 실망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 코로나가 진정되어 해외여행이 재개되면 곧장 가려고 마지막까지 예약금 환불 요청을 하지 않고 기다렸었다.

 

지금이라도 그곳으로 랜선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마침 집에 있는 항공사 잡지를 보니 파리에 가서 "파리 주민인 양 지내보세요"(Be a parisian, not a traveler)라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 대한항공의 Morning Calm에 실린 Fly to PARIS Ad 사진을 AI 지우개로 수정했다.

그때 프랑스 일주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가 몽생 미셸이었다. 

제방 위로 새로 난 연륙교를 건너가 바깥에 펼쳐진 경관도 구경하고 수도원 내의 성당에도 들어가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시시각각으로 색깔이 바뀌는 주변 바다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썰물이 빠진 뒤에 드러나는 광활한 갯펄을 바라보는 것도 일대 장관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몽생 미셸에 간다면 저녁놀과 야경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케이블 음악전문 채널 ARTE에서 8월 초에 프로그램 막간에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과 함께 몽생 미셸 성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오미크론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비용 들여서 현지에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카메라는 자상하고도 친절하게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 아래의 몽생 미셸 사진은 2022년 8월 초 ARTE 채널의 음악방송 배경화면을 캡쳐한 것임

 

한참 보고 있으려니
너무나 익숙해진 광경.
실제 가보더라도
재탕 영화 보는 것 같겠지~

After glancing a while,

I became accustomed to the scenery.

Some day when I go there in person,

the sight must be a lukewarm view.

 

랜선 여행은 보는 순간은 즐겁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실제 여행 다닐 때에도 멋있는 경관을 보는 것은 잠깐일 뿐이다. 그보다는 장시간 차를 타고 가거나 숙소와 음식 때문에 고생한 것이 두고두고 추억에 남고 이야깃거리도 많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침 7월 말 유치원 다니는 손주가 방학을 맞아 할아버지ㆍ할머니로서 어디든 피서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삼복더위에 갈 만한 곳이라면 바다와 계곡이다. 또 소문난 음식점도 찾아 다녀야 한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어린 손자가 신나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 강원도 평창 가리왕산 아래 장전계곡
* 강릉 안목해변에서 모터보트의 스피드를 즐기는 어린이

사실 숙소 주변에도 더위를 쫓고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숲길의 산책로, 수변공원, 개망초 같은 들꽃이 피어있는 들판 등 가는 곳마다 힐링이 되는 기분을 안겨주었다.

 

꼭 가보고 싶은 곳

Gorgeous Places to Go

 

유칼리[1], 유토피아 뭐라 하든

그런 곳은 [세상에] 없네

가고 싶은 간절함이

만들어낸 신기루일 뿐

Whatever it's called, Youkali or Utopia,
it never exists [on this earth].
It's an imaginary creation
out of the earnest wishes.

 

8월 들어서는 비 오는 날이 많아졌다.

제2차 장마라고 하는데 기후변화 탓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급기야 7일과 8일 서울 지방에서는 요란한 천둥번개와 함께 100년만의 폭우가 쏟아져 곳곳에서 물난리가 났다.

 

이런 빗속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강남대로를 질주하는 젊은 남녀가 화제를 모았다. 소낙비로 샤워하는 기분을 냈다지만 여성은 노출이 심한 비키니 차림이어서 경찰은 이 커플을 경범죄[2]로 입건할지 여부를 고심하는 눈치였다. 우리 소싯적에는 알몸으로 거리를 뜀박질하는 스트리커가 많았는데 지금은 고급 오토바이와 SNS 실시간 방송 카메라가 동원되는 것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마침내 입추가 지나자 시골에서는 날이 개이면서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닌다고 진안에 사는 친구가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사진을 보내왔다.

 

* 출처: 지인에게서 전송받은 Play Joker에서 캡쳐
* 날이 개이자 벌써 가을을 재촉하는 고추잠자리떼. 사진제공: 유양수

Note

1] <서 푼짜리 오페라 (Threepenny Opera)>로 유명한 독일의 작곡자 쿠르트 바일은 꿈속에 보았던 'Youkali'라는 섬을 늘 예찬하고 동경해마지 않았다. 하지만 유태인인 그는 독일에서 쫓겨나 유랑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탱고가 유럽을 떠나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듯이 쿠르트 바일은 탱고 음악인 '유칼리'(Youkali, 1934) 노래를 통해 그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것은 오페라나 영화 같은 꿈에서 속히 깨어나는 길밖에 없다는 탄식 소리 같았다. 그럼에도 잠재의식의 심연 속에 자리잡은 유칼리 섬은 하나가 사라져도 또 다른 섬이 생겨나 우리로 하여금 꼭 찾아가 보고 싶게 만드는 게 아닐까?

 

2] 해변가가 아닌 도심 대로상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다니는 것은 경범죄 처벌법 제3조의 제33호 저촉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33. (과다노출)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ㆍ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

이 조항은  종전에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라는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2016년 11월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결정에 따라 2017년에 새로 개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