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光州) 하면 '무등산'이다.
지리산과 함께 전라남도의 진산(鎭山)으로 광주광역시와 담양군, 화순군에 걸쳐 있는 해발 1,187m의 큰산이다.
영암의 명산인 월출산[1]과는 달리 산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아 있지 않고 큰 산세가 팔을 아우르듯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웅장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얼마 전 전시회를 보러 광주에 갔을 때 광주 시내 곳곳에서 무등산을 볼 수 있었다.
세잔의 풍경화에 으레 등장하는 생트 빅투아르 산[2] 마냥 임직순 화백의 여러 풍경화에서도 묵직한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마침 인근 고창 출신인 서정주 시인이 무등산을 노래한 시가 있어서 영어로 번역해 볼 생각을 했다.[3]
그러나 인터넷을 뒤져보니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셨던 안선재 명예교수(Brother Anthony of Taizé)의 번역이 있어서 아래에 옮겨 적는다.
무등을 보며 - 서정주
Gazing at Mudeung-san by Seo Jeong-ju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스랴.
Poverty is no more than tattered rags.
Can it cloak our inborn flesh, our natural heart
like the summer mountain
that stands baring its dark green back to the dazzling sun?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As the green mountain tends to orchids under its knees,
all we can do is nurture our offspring.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Husbands and wives,
as you meet the afternoon
when life retreats and gets swept up in rough waves,
once in a while sit down,
once in a while lie next to each other.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Wives, gaze silently at your husbands.
Husbands, touch also your wives’ foreheads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Even when we lie in the pit of a thorn bush,
we should always remember that we are just gems, buried alone,
thickly covered with green moss.
시인은 먼 발치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며 올망졸망 자녀를 키우는 농사 짓는 부부를 연상했던 것 같다.
많은 식구에 살림살이가 어려워 옷차림은 남루할지라도 향기로운 꽃봉오리 같이 어린 자식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열심히 일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후에 잠시 일을 멈추고 쉴 때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남자는 여자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안쓰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해 보인다. 비록 지금은 그들이 비록 험하게 일을 하지만 이끼가 끼었어도 옥돌의 자태를 지니고 있다고 했으니, 시인의 말대로 그들의 앞날은 아주 밝아 보인다.
실제로 무등산의 이름은 불가(佛家)에서 유래한 것으로 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어떠한 등수도 매길 수 없는 무등(無等)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이런 풍수(風水)의 영향이랄까 광주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일제하 광주학생사건, 5.18 민주화 항쟁 등)을 보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진 것 같다. 광주가 대형 쇼핑몰이 없는 유일한 대도시라는 게 이해가 간다.
그런데 무등산에 실제로 올라가 보면 반전이 일어난다. 서석대에 가면 갑자기 높은 산 위에 직립한 돌기둥 무더기가 병풍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상절리(柱狀節理)는 화산이 폭발했을 때 마그마가 차가운 물에 닿아 갑자기 식으면서 다각형의 돌기둥이 형성된 지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의 해안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무등산 지역에서도 8천만년 전 마그마 활동이 있었고 그것이 바닷물에 닿으면서 주상절리가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그 후 오랜 시간 융기현상과 풍화작용이 일어나면서 해발 1000m가 넘는 산 위에 주상절리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특질을 고려하여 이미 2014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바 있는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화순 공룡화석지, 적벽 등과 함께 2018년 UNESCO 세계지질공원(Global Geopark: UGGp)[4]에 등재되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지형 보존 및 군부대 보안을 위해 요즘도 무등산의 천왕봉, 지왕봉 등 정상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위의 무등산 주상절리 사진의 출처는 광주소셜기자단과 대한민국 명산 등산기 홈페이지.
그런데 광주에서 5.18 민주화 항쟁이라는 우리 현대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무등산은 아주 달고 엄청 큰 수박으로 유명했다. 일반 수박이 끝물인 늦여름에야 나오는 데다 몇 배가 크고 아주 달기 때문이었다. 무등산 수박은 식구 많은 부잣집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값도 엄청났다.
Note
1] 영암 월출산은 해발 809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러나 해안 가까이서 평지돌출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기암괴석이 많고 산세가 매우 수려하다. 국보인 마애여래석불이 있고, 움직이는 바위돌(動石)이 있어 예로부터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알려졌으며 고을 이름도 영암(靈岩)이라 불렸다. 일본에 유학을 전수한 백제의 왕인 박사도 이 고장 출신이다.
2]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남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 아틀리에를 두고 그 인근의 나무도 별로 없는 바위산 생트 빅투아르 산을 많이 그렸다. 어느 오스트리아 작가는 세잔이 왜 그토록 석회암의 산을 즐겨 그렸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그 산에 올랐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페터 한트케 지음·이중수 옮김,《세잔의 산을 찾아서》, 아트북스, 2006.
아트북스 출판사는 2019년 페터 한트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2020년에 배두아의 번역으로 전면 개정한 《세잔의 산, 생트 빅투아르의 가르침》이란 제목의 책을 새로 출간했다. 필자도 1996년에 세잔의 '그 산'을 보기 위해 엑상프로방스를 찾아간 적이 있기에 생트 빅투아르의 풍경이 세잔의 그림이 되고, 유명 노벨상 수상 작가가 현장 답사를 통해 의식의 흐름을 상세하게 기술한 픽션 같은 에세이를 대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러한 선례가 있으니 우리도 임직순 화백의 여러 그림 속에 모티프로 들어가 있는 '이 산'을 현장답사하고 역사와 문학, 철학을 종횡무진 오가는 에세이를 기다려봐도 좋을 것 같다.
3] 영어로 번역된 아름다운 우리 시를 더 많이 읽어 보려면 이곳을 클릭
4] 우리나라에서는 UNESCO 세계지질공원(UGGp)으로 제주도, 청송, 무등산, 한탄강 등 네 곳이 등재되어 있다.
'Tra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곡] 미뇽의 노래 "그 나라를 아시나요?" (0) | 2022.07.30 |
---|---|
[반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0) | 2022.06.30 |
[Book's Day] 대하소설 「토지」와 하동 최참판댁 (0) | 2022.05.13 |
[하동] 스릴 만점의 짚라인-케이블카 (0) | 2022.05.04 |
[부산] 크게 익사이팅해진 해운대 (0) | 2022.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