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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미뇽의 노래 "그 나라를 아시나요?"

Onepark 2022. 7. 30. 21:57

'예술가곡' 하면 슈베르트의 650편이나 되는 리트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차이콥스키의 "오직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를 들을 때에는 '러시아 로망스'[1]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이 전해져 왔다.[2]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처럼 절절하게 표현한 노래가 또 어디 있을까?

더욱이 차이콥스키 말고도 베토벤, 슈베르트, 볼프 같은 대가들이 다투어 곡을 붙였다면 그 노랫말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독일어 'Sehnsucht' 나 포르투갈의 가요  파두에 나오는 'Saudade' 같은 말은 영어의 'Longing'만 가지고는 채워지지 않는 원망(怨望), 갈망(渴望)을 내포하는 복잡미묘한 감정이다. 그래서 원문은 독일어인데,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글로 옮겨 보았다. 괴테의 소설과 시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고 전파되면서 '저 남쪽 나라'가 어디인지 찾아보는 세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Nur wer die Sehnsucht kennt

None but the Lonely Heart

오직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Nur wer die Sehnsucht kennt,

Weiß, was ich leide!

Allein und abgetrennt

Von aller Freude,

Seh ich ans Firmament

Nach jener Seite.

Only those who know longing

Know what sorrows me!

Alone and separated

From all joy,

I look into the sky

To the yonder side.

오직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나의 슬픔을 알거예요
나 홀로
모든 기쁨을 멀리하고
하늘 저편을 멀리
바라보아요

Ach! der mich liebt und kennt,

Ist in der Weite.

Es schwindelt mir, es brennt

mein Eingeweide.

Nur wer die Sehnsucht kennt,

Weiß, was ich leide!

Ah! the one who loves and knows me

Is in the distance.

It dizzies me, it burns

my guts.

Only those who know longing

Know how I suffer!

아! 나를 사랑하고 알아주는 이는
저 멀리 있어요
내 눈은 어지럽고
가슴은 타들어 가네요
오직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나의 괴로움을 알거예요

 

이 노래의 사연을 알게 될수록 괴테의 연작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수업》(Wilhelm Meisters Lehrjahre, 1796)과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Wilhelm Meisters Wanderjahre, 1829)를 다시 보게 되었다.[3] 빌헬름이라는 독일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 영국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몰입한 나머지 순회극단에 들어가 연극배우로서 수많은 인간 군상을 만나면서 희노애락을 느끼고 인격적으로 성숙해간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는 수많은 액자소설(frame stories)[4]이 나오는데 위 노래의 주인공 미뇽은 그 중의 하나에 등장한다. 사연인즉 부모가 이복남매인 것으로 드러나 가정이 파탄이 나고 서커스단에 팔려온, 귀엽다는 이름과는 달리 애처로운 신세이다. 미뇽이 곡예사 훈련을 받으며 단장에게 학대를 받는 것을 보고 빌헬름이 몸값을 지불하고 남자아이 같이 생긴 소녀를 구해준다. 빌헬름은 그 후 보호자로서 그녀를 보살피지만 사춘기에 이른 미뇽은 아버지 이상으로 빌헬름을 연모하다가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 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수업(1796) 독일 초판본

 

마이스터란 중세 유럽의 길드 조직에서 그 분야 최고의 장인을 일컫는 말인데 이 소설에서 빌헬름은 셰익스피어의 이름과 같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연극에 매달린다. 그러나 가지각색의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극단을 떠난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든다는 각오 아래  '탑(塔, Freemason)의 결사'에도 가입한다. 유럽 사회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인간관계와 다양한 사람살이를 경험한다. 그러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유럽을 떠나 새로운 시대를 예견하고 신대륙으로 건너갈 결심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미뇽이 부르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Kennst Du das Land?)는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러한 사연을 모르고 들었을 때는 미지의 땅에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자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괴테 원작인 줄 알았더라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쌍벽을 이루는 감미로운 가사로 이해했었다.

전자가 열혈(熱血) 젊은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과는 달리 후자는 귀엽게 생긴 어린 소녀가 "따뜻한 남쪽 나라"를 그리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필경 이것이 여러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 빌헬름 본 샤도우, 류트를 타는 미뇽 (모델은 유명 배우 Constanze Le Gaye), 1828.

 

Kennst Du das Land?

Do You Know the Land? [5]

그 나라를 아시나요?

 

Kennst Du das Land?

Kennst du das Land, wo die Zitronen blühn,

Im dunklen Laub die Gold-Orangen glühn,

Ein sanfter Wind vom blauen Himmel weht,

Die Myrte still und hoch der Lorbeer steht,

Kennst du es wohl?

Dahin! Dahin

Möcht’ ich mit dir, o mein Geliebter, ziehn.

Do you know the land where the lemons bloom,

The golden oranges glow in the dark foliage,

A gentle wind blows from the blue sky,

The myrtle stands still and high the laurel,

Do you know it?

There! O There

I would like to go with you, O my beloved!

레몬꽃 피는 그곳, 그 나라를 아시나요?
황금빛 오렌지는 진한 푸른잎 속에서 빛나고,
푸른 하늘 아래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예요.
머틀 나무가 조용히, 월계수 나무는 높이 서 있는
그곳을 알고 계신가요?
그곳으로! 그곳으로!
사랑하는 이여, 당신과 함께 그곳에 가고 싶어요.

 

Kennst du das Haus? Auf Säulen ruht sein Dach,

Es glänzt der Saal, es schimmert das Gemach,

Und Mamorbilder stehn und sehn mich an:

Was hat man dir, du armes Kind, getan?

Kennst du es wohl?

Dahin! Dahin

Möcht’ ich mit dir, o mein Beschützer, ziehn.

Do you know the house Its roof rests on pillars,

The hall shines, the room shimmers,

And marble pictures stand and look at me:

What has been done to you, you poor child?

Do you know it?

There! O There

I would like to go with you, my protector.

여러 기둥 위에 지붕이 번듯한, 그 집을 아시나요?
큰 홀은 눈부시고, 작은 방들은 은은히 빛이 나지요.
그리고 서 있는 대리석상들이 나를 바라봐요.
가엾은 아이야,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것을 알고 계신가요?
그곳으로! 그곳으로!
나의 수호자시여,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

 

Kennst du den Berg und seinen Wolkensteg?

Das Maultier sucht im Nebel seinen Weg;

In Höhlen wohnt der Drachen alte Brut;

Es stürzt der Fels und über ihn die Flut,

Kennst du ihn wohl?

Dahin! Dahin

Geht unser Weg! o Vater, lass uns ziehn!

Do you know the mountain and its cloud walkway?

The mule looks for its way in the fog,

The dragon lives in caves, old brood,

The rock falls and the flood falls over it:

Do you know it?

There! O There

Go our way; oh father, let's go!

오솔길 위로 구름이 덮인, 그 산을 아시나요?
안개 속에서 노새가 길을 찾고,
동굴 속에는 용들이 살고 있어요.
절벽으로 바위가 구르고 물이 그 위로 떨어져요.
당신은 그곳을 아시나요?
그곳으로! 그곳으로!
오 아버지, 우리 길로 가요! 어서 가요!

 

놀라운 것은 괴테가 남긴 많은 시와 소설이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볼프 등에게 예술가곡(Lied)이나 오페라 작곡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베토벤은 미뇽의 "그 나라를 아시나요"(Op.75),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未출간 WoO.134), 슈베르트는 미뇽의 노래 중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D877)와 "그 나라를 아시나요"(D321)가 여러 버전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또 괴테의 "파우스트"를 음악적으로 구현하고자 애썼던 슈만도 소설 속 미뇽의 장례식 장면을 "미뇽을 위한 레퀴엠"(Op.98b)으로 작곡하였다.

 

괴테 소설 속의 미뇽은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암브루아즈 토마(1811-1896)에 의해 오페라 "미뇽"(1866)으로 재탄생하였다. 무대에 올려진 오페라 <미뇽>의 인기는 엄청났다고 한다(위의 미뇽 그림 참조). 프랑스는 물론 독일어권의 여러 나라에서도 인기리에 상연되었다. 당시 관객들의 줄기찬 요청에 따라 토마는 원작의 비극적인 결말을 해피 엔딩으로 수정한 오페라를 새로 작곡해야만 했다. 수정된 결말에서는 미뇽과 함께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이중창을 부르는 하프 타는 노인이 미뇽의 아버지인 것으로 밝혀지고, 미뇽과 빌헬름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6] 토마의 오페라에서는 미뇽의 아리아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Connais-tu le pays)이 지금도 듣는이의 기분에 따라 기쁘게 혹은 애절하게[7] 들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 토마의 오페라 <미뇽> 제1막의 아리아를 부른 Magdalena Kožen&aacute;

Note

1] 러시아 로망스(Russian Romances) 하면 푸시킨의 단편소설 <눈보라>를 토대로 만든 동명의 영화에 나오는 "눈보라(Snow Storm)"를 연상케 된다. 하지만 가사까지 고려한다면 러시아 최초의 낭만주의 시인작가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나 홀로 길을 가네"(Выхожу один я на дорогу)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 시의 원문과 영어 및 한글로 번역한 것, 최고의 명곡으로 꼽히는 안나 게르만의 노래는 KoreanLII의 Romanticism 항목을 클릭해서 보세요.

 

2] YouTube에서 찾아보면 이 노래는 여러 성악가가 불렀다.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Dmitri Hvorostovski, Fritz Wunderlich가 부른 것보다 Gerald Moore의 반주로 Elisabeth Schwarzkopf가 부른 것이 훨씬 마음에 와 닿는 것 같다. 기왕이면 위에 소개한 독일어 가사와 함께 듣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3] 괴테 소설의 영문판에서는 Wilhelm Meister's Apprenticeship, Wilhelm Meister's Journeyman Years로 각기 번역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민음사가 오래 전에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과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2》를 펴낸 바 있다.

 

4] 액자소설(額子小說, frame story)이란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액자처럼 끼어들어 있는 소설을 말한다. 필자가 처음 접했던 액자소설은 소싯적에 Summing Up으로 유명했던 서머셋 몸(Somerset Maugham)의 《크리스마스 휴가》(Christmas Holiday, 1939)였다. 성년이 된 영국의 귀한 집 도련님이 친구와 함께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러 파리로 간다. 그러나 레닌과 함께 볼세비키 혁명을 이끌었던 체르친스키를 존경한다며 세계관이 달라진 친구를 보고 크게 놀란다. 그런데 에스코트 받으라며 소개해준 가련한 러시아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역시 가치관이 바뀌어 버린다.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내는 동안 짜르 치하에서 귀한 집 딸로 자랐음에도 혁명이 일어나자 빈몸으로 파리로 피난을 온 이야기를 듣는다. 그 후 질이 나쁜 프랑스 남자를 만나 결국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창녀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주인공이 딛고 서 있는 땅이 온통 흔들리는 것처럼 느꼈다는 말에서 "나도 만일 그런 입장에 처한다면?" 액자소설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체호프의 연극이 빠져서는 안될 소품처럼, 또 스토리의 전개를 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5] 출처: Mignon (Poem), Oxford Lieder

6] 오주영, "미뇽 - 소녀가 품은 그리움", 오페라 속 여인의 삶과 사랑 23,  월간 객석, 2022.08.

 

7] 오페라 1막에서 근친혼과 인신매매, 고용주 가혹행위의 피해자였던 미뇽을 구해준 빌헬름이 "네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미뇽은 "레몬꽃이 피고 황금빛 오렌지가 열리는 남쪽 나라"라고 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

비록 가상의 소설 속 인물이지만 아동 인신매매(child trafficking)의 희생자였다는 점에서 필자가 운영하는 KoreanLII에 Human trafficking 항목을 새로 만들고 관련 시 코너에 괴테의 "Kennst Du das Land?"를 영어 및 한글로 번역한 것과 나란히 올렸다. 법적으로는 한국이 UN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가입하여 2015년 12월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인신매매의 처벌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는 것, 또 2022년 7월 미 국무부의 연례보고서 Trafficking in Persons (TIP) Report에서 한국이 2등급으로 떨어진 사실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