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eople

In English

[번역] Non nobis, Domine (시편 115)

Onepark 2021. 8. 4. 08:00

8월이다.

아파트 뜨락의 배롱나무[1]도 때맞춰 붉은 꽃을 피웠다.

더위도 물리칠 겸 국ㆍ영문으로 17음절의 짧은 시를 지어보았다.

 

염천(炎天)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One hundred days of scorching summer
Aren’t enough for
Crape myrtle flowers.

한여름 땡볕에도
숨길 수 없는
님 향한 단심(丹心)

Red petals can’t conceal
Secret but steadfast mind
Toward Apollo.

 

* 우리 아파트 앞의 만개한 배롱나무와 우리집 강아지 쁘띠.

 

여름 휴가 피크시즌이기에 동해안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연일 차들로 메워진다고 한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인해 숙소를 잡기도, 바닷가에 가기도 꺼려진다. 아니 은퇴자에게는 1년 열두 달이 휴가인 셈이니 굳이 지금 휴가를 떠날 필요도 없다.

대신 바람 잘 통하는 집안에서 휴가 기분을 낼 수 있는 소설책이나 시집을 펴들면 그만이다.

 

예이츠의 이니스프리도 정작 가 보면 초라한 섬
유토피아가 이 세상엔 없어도 누구나 꿈꾸듯
현실은 각박해도 상상 속에선 아늑한 행복의 낙원

Even if Yeats praised Isle of Innisfree,
It looks humble in reality.
Utopia cannot exist in this world, tho’.
Everyone dreams of it.
I imagine today looking for a Paradise
Out of choking hardships.

 

* 바다를 보러갈 때 방파제나 자갈밭보다는 하얀 모래사장, 모래언덕의 덤불이 있어야 제격이다. 출처: pixabay.
* 충남 신두리에 가면 아름다운 사구(砂丘)가 펼쳐진 해안이 있다. 출처: 박영춘의 산행정보(Gosan21.net).

 

일찍이 "구름같이"라는 시에서 노천명 시인은 "바닷가에서 눈물짓고 이슬언덕에서 노래 부르면서 뜻 모를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희(古稀)를 앞둔 나이에. 그것도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편안한 잠자리에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도 기적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지나간 삶을 돌이켜보니 모래언덕과 꽃핀 언덕을 무수히 오갔으나 그때 내가 잘 해서 꽃동산에 올라간 것보다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갔던 것 같다.

 

기적이란 엄연히 실재해도 지금 설명 못 할 뿐
불가해한 일도 차원을 달리하면 절로 밝혀질 것

Miracles are actually in existence
beyond human knowledge.

Under a new dimension,
incomprehensible things
will reveal themselves.

 

마침 FM 방송에서 패트릭 도일(Patrick Doyle)이 작곡한 "Non nobis, Domine" 성가가 흘러나왔다. 영화 "헨리 5세"[2](1989)가 이끄는 영국군이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군대에 대승을 거둔 엔딩 장면에서 울려퍼진 OST였다.

바로 시편 115편의 라틴어 첫 소절이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은 십자군 출병까지 생각할 정도로 신앙심이 두터웠던 헨리 5세가 가까스로 프랑스 군에 승리를 거둔 후에 외친 그의 신앙고백이었다.

 

오 여호와여, 영광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영광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의 이름에 있습니다.

영광은 주의 인자와 주의 진리에 있습니다.
왜 이방 민족들이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하게 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셔서 무엇이든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우상처럼 될 것이요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오 이스라엘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분이 너희의 도움이시요 방패시다.

(우리말성경 시편 115:1-4, 8, 9)

 

*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 군대, 패트릭 도일이 "Non nobis, Domine"를 선창한다.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은 본래 유대인이었지만 베를린의 부유한 은행가였던 아버지 대에 루터교로 개종하고 성을 멘델스존 바르톨디(Mendelssohn Bartholdy)로 바꿨다. 그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발굴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바흐의 르네상스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멘델스존은 라틴어 성경과 나란히 루터의 독일어 번역성경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아 합창곡 시편 115편과 함께 42편을  작곡했다.[3]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As the deer pants for streams of water,

so my soul pants for you, O God.
My soul thirsts for God, for the living God.

When can I go and meet with God?
My tears have been my food and night,

while men say to me all day long,

"Where is your God?"

These things I remember as I pour out my soul:

how I used to go with the multitude,
leading the procession to the house of God,
with shouts of joy and thanksgiving among the festive throng.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개역개정 및 NIV 시편 42:1-5)

 

Note

1] 배롱나무(crápe mỳrtle)는 붉은꽃이 100일 동안 핀다고 '木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무궁화처럼 꽃봉오리가 잇달아 나있어 피었다지곤 하지만 꽃이 계속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추위엔 약해도 메마른 땅에서 잘 자라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정원수로 많이 심었는데 여기엔 다음과 같은 배롱나무의 특성이 고려되었다.

* 줄기가 매끈하고 붉은 꽃을 피우기에 청렴과 충절을 숭앙하는 선비들이 서원과 정자 주변에 많이 심었다.

* 줄기만 살짝 건드려도 가지와 잎이 크게 떨기(간지럼)에 소통을 상징하는 나무로서도 제격이었다.

* 해마다 줄기가 껍질을 벗는 것을 지켜보며 세속의 허물을 벗고 들어오라고 사찰 입구에도 많이 심었다.

* 매끈한 나무줄기가 여인의 나신(裸身)을 연상케 한다 하여 여염집 안뜰에 심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2] 영국왕 헨리 5세(1386-1422)는 본래 왕위계승 순위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리처드 2세와의 권력 다툼에서 이기고 헨리 4세가 되자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랭커스터 공작이 되었다. 왕세자로서 국내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1413년 헨리 4세에 이어 왕위에 올랐다. 백년전쟁 기간 중 프랑스에 대한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고 의회를 설득하여 1415년 프랑스 정벌에 나섰다. 그 해 10월에 벌어진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에서 그가 이끄는 영국군은 숫적으로 절대 우세한 프랑스 군을 대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 샤를왕의 공주 카트린느와 결혼함으로써 양국은 화평을 맺게 되었다. 프랑스의 적대적인 비협조로 1421년 다시 프랑스 원정에 나섰으나 그 이듬해 병에 걸려 재위 9년만에 죽고 말았다.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셰익스피어가 희곡으로 다소 과장되게 묘사했지만 영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하고 무엇보다도 프랑스에 대승을 거둔 왕으로서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3] 멘델스존의 합창곡 시편 115 에 대해서는 별첨 블로그 "Nicht unserm Namen, Herr Op.31의 작곡 배경", 그리고 시편 42편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같은 블로그의 " 멘델스존 Op31의 가사와 음악"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