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을 1년 이상 겪는 동안 국내외적으로, 아니 우리 일상주변부터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방역수칙에 따라 여러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 신앙인들은 비대면 종교집회가 보편화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현 정권이 콘크리트 지지층과 권력기관 요직의 장악에 힘입어 오래 갈 줄 알았으나, 역시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서울ㆍ부산 시장 보선에서도 야당 후보가 당선되었거니와 제1 야당의 전당대회에서는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30대 젊은이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마침 지인의 소개로 영국의 시인 퍼시 셸리의 "Mutability"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그는 "무상(無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를 했으나 시 전문을 읽어보니 세상 일이 달밤에 구름 흘러가듯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可變性, 易變性)을 표현한 말이었다. 'mutable'이나 'mutant'(돌연변이)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 파생어인데, 셸리가 살았던 당시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나 멘델의 유전법칙(1865)이 나오기 훨씬 전이었음에도 어떻게 이런 개념을 시어(詩語)로 택하였는지 놀라웠다. 불교 사상에 익숙한 우리 같으면 이렇게 수시로 바뀌는 것은 덧없다는 '무상'을 떠올리는 게 일면 당연해보인다. 하지만 200년 전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는 어떻게 이런 시를 짓게 되었을까 자못 궁금해졌다.
"서풍부"를 읽게 된 계기
셸리의 사후에 발표된 유고 중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급기야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서풍부(西風賦, Ode to the West Wind)"까지 찾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누구나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았다"라는 구절로 기억하고 있는 시 말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서풍부"는 일부만 번역한 게 대부분이었고,[1] 전문을 번역한 것도 제각각이어서 시의 의미와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직접 원문을 찾아 번역해볼 요량이었으나 제대로 영문학 공부를 한 적이 없기에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일반인으로서 문법적인 접근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그 배경이 되는 정보를 찾아보고 시인의 입장이 되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여러 날 탐구한 끝에 다음과 같이 잠정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시 전문을 원문과 함께 비전문가인 필자의 초벌 번역을 소개함에 있어서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을 Q&A 식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구글로 검색해 보면 뭐든지 다 알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 다음 사람이 시행착오나 시간낭비를 하지 않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시인과 시에 대한 문답
Q: 영국 문학사에 있어 퍼시 셸리의 위치나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A: 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는 바이런, 키츠와 더불어 낭판파 시인으로 분류된다. 옥스퍼드 재학 당시 무신론에 대한 소책자를 간행했다가 퇴학 당한 후 몇몇 학우들과 교류를 지속하면서 시 외에도 소설, 평론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복잡한 사생활 탓이기도 했지만 영국에서는 무신론자, 무정부주의자로 알려져 그는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스스로 망명(self-exile)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Q: 시인의 사생활이 어떠했길래 자기 나라에서는 살 수 없었다는 말인가?
A: 셸리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무신론에 대해 쓴 논문이 문제가 되어 퇴학을 당했다. 그 후 누이동생이 다니는 여자기숙학교의 16세의 여학생 해리엇과 서신교환을 하면서 그의 사상을 주입시켜 부모와 학교의 억압에서 벗어나도록 부추겼다. 1810년 두 사람은 에딘버러로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양가의 후원이 끊기는 바람에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1814년에는 그의 멘토이던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의 집에 드나들면서 일탈을 하고 말았다. 유부남인 처지에 그의 딸 메리와 눈이 맞아 프랑스와 스위스로, 이복 처제까지 동행하는 애정의 도피행각(elopement)을 벌였다. 결국 이를 비관한 해리엇은 런던 하이드 파크 호수에 투신자살하였고, 셸리와 메리는 1816년 영국으로 돌아와 정식 부부가 되었다. 셸리는 사상적으로는 결혼 제도를 부정하였으나 사회적 비난을 피하고 재산상속을 받기 위해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Q: 같은 낭만파 시인으로서 셸리와 바이런의 관계는 경쟁적이었나?
A: 셸리가 바이런보다 4년 연하였지만 그 둘은 귀족가문의 엘리트 출신에다 혁명적인 사상과 자유연애주의 성향 등 공통점이 많아 서로 격려하며 존경하는 사이였다. 1816년 셸리와 메리가 스위스 제네바에 간 것도 그해 여름을 제네바에 있는 바이런의 별장에서 《데카메론》과 같은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대폭발로 인한 전세계적인 냉해와 식량값의 폭등, 나폴레옹 전쟁의 뒷처리, 전재복구 등으로 세상이 뒤숭숭할 때였다. 서로 문학을 토론하고 집필을 하는 한편 밤에는 바이런의 제안으로 유령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때 메리가 발표한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셸리가 적극 격려하여 소설로 간행되었으며 SF소설의 원조가 되었다. 1822년 셸리는 이탈리아에 온 바이런을 만나 문학지 The Liberal 창간작업을 상의하고 자신의 요트로 피사의 집에 돌아가던 길에 돌풍을 만나 변을 당했다. 그의 나이 30세 때였다. 바이런 역시 1824년 오스만 튀르크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병사하고 말았다.
Q: 시인이 특히 서풍(西風)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A: 시인은 편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영국 출신이므로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서풍에 주목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계절에 따라 남동풍(여름)과 북서풍(삭풍: 겨울)을 구별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방향에 따라 바람의 이름도 동풍(샛바람), 서풍(하늬바람), 남풍(마파람), 북풍(된바람)으로 각기 다르다.[2] 오히려 그 용례를 보면 '치맛바람', '바람둥이', '바람 맞히다'처럼 별로 좋지 않은 어감을 지니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출이집트(Exodus) 당시 모세가 바로 앞에서 메뚜기 재앙을 거두고 홍해바다로 메뚜기 떼를 쓸어버린 것도 매우 강력한 서풍이었다(출애굽기 10:19). 그리고 폭풍우를 일으키고 배를 파선시키는 바람은 동풍, 식물의 성장을 돕는 부드러운 바람은 남풍, 비를 몰고오는 바람은 주로 북풍이 그리 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바람을 노래한 셸리가 목숨을 잃은 것은 1818년 7월 바이론을 만나고 돌아올 때 그가 탄 요트가 돌풍을 만나 침몰했기 때문이었다. 셀리의 주문으로 건조한 배의 이름은 바이런의 시 제목을 딴 '돈 주앙'호였고, 미망인 메리는 선박의 결함을 주장했지만, 그 배를 몰았던 선원의 운항 미숙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Q: 셸리의 "서풍부"가 길고 난해한 것은 무엇 때문이며 어떻게 접근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A: 셸리가 이 시를 발표한 1818년에는 이탈리아에 가 있었으며 단테가 "신곡"을 쓸 때 사용했던 3 운구법(韻句法, terza rima)을 적용하여 5부(cantos)로 만들었다. 5개 섹션의 4개 연은 압운을 지켜 ABA, BCB, CDC, DED의 3행 연구(聯句)로 짓고 마지막 연은 EE로 완성했으며 소네트와 같이 弱强 5보격(iambic pentameter)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시 문장이 중간에 끊어지고 주어-술어가 맞지 않는 일(이를 'Poetic license'라 일컬었음)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가 위대한 것은 앞의 3섹션은 서풍이 땅과 하늘, 바다에 미치는 효과를 묘사하고 마지막 2섹션에서는 시인이 바람에게 조력을 청하는 한편 뜻을 같이 할 사람(comrade)들을 불러모으고 마지막으로 낙관적인 희망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엄격한 시의 형식을 지키면서도 시인이자 예언가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어서 뛰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시인이 얼마나 고심하며 이 시를 쓰고 다듬었을지 짐작하고도 남기에 가급적 원문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시인의 의도에 맞게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Ode to the West Wind by Percy Bysshe Shelley
서풍부/西風賦 - 퍼시 셸리
I
O wild West Wind, thou breath of Autumn's being,
Thou, from whose unseen presence the leaves dead
Are driven, like ghosts from an enchanter fleeing,
오 거센 서풍이여, 그대 가을의 숨결이여,
그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죽은 나뭇잎들은,
마법사에게서 도망치는 유령들처럼 흩날린다.
Yellow, and black, and pale, and hectic red,
Pestilence-stricken multitudes: O thou,
Who chariotest to their dark wintry bed
누렇고, 검고, 파리하고, 열이 나서 빨간,
역병에 걸린 무리들; 오 그대는,
전차를 타고 그들의 어둠침침한 겨울 침상으로 간다.
The winged seeds, where they lie cold and low,
Each like a corpse within its grave, until
Thine azure sister of the Spring shall blow
날개 달린 씨앗들은 차갑고 낮은 곳에,
하늘색 봄처녀가 나팔을 불 때까지
각자 무덤 속의 시체처럼 누워 있다.
Her clarion o'er the dreaming earth, and fill
(Driving sweet buds like flocks to feed in air)
With living hues and odours plain and hill:
그녀의 나팔소리는 꿈꾸는 대지 위로 퍼져
(향기로운 봉오리들을 양떼처럼 공중에 풀어놓아)
산과 들을 생생한 색깔과 향기로 채운다:
Wild Spirit, which art moving everywhere;
Destroyer and preserver; hear, oh hear!
사나운 정령이여, 사방으로 다니는 그대는
파괴자이며 보존자; 들으시오, 오, 들어주시오!
II
Thou on whose stream, mid the steep sky's commotion,
Loose clouds like earth's decaying leaves are shed,
Shook from the tangled boughs of Heaven and Ocean,
그대가 가파른 하늘의 소란함 속에 흐르는 물 위로
성긴 구름은 썩어가는 대지의 나뭇잎처럼 흩어지고,
하늘과 대양의 얽힌 가지로부터 흔들린다.
Angels of rain and lightning: there are spread
On the blue surface of thine aëry surge,
Like the bright hair uplifted from the head
비와 번개의 사자(使者)들이
그대의 공기가 솟구치는 파란 표면 위로
머리에 치켜올린 밝은 머리카락처럼 퍼져 있다.
Of some fierce Maenad, even from the dim verge
Of the horizon to the zenith's height,
The locks of the approaching storm. Thou dirge
격하게 흥분한 미내드(Mænad)[3]의 머리카락이
지평선의 아득한 가장자리로부터 하늘 끝까지,
다가오는 폭풍의 자물쇠.[4] 그대의 장송곡은
Of the dying year, to which this closing night
Will be the dome of a vast sepulchre,
Vaulted with all thy congregated might
저물어가는 한 해의 만가(輓歌), 닫히고 있는 이 밤에
그대의 응축된 온 힘으로 아치형 천정을 이루고
거대한 묘지의 봉분이 될 것이요.
Of vapours, from whose solid atmosphere
Black rain, and fire, and hail will burst: oh hear!
단단한 대기로부터 새어나온 수증기에서
검은 비와, 불과, 우박이 터져 나오리라: 오 들어보라!
III
Thou who didst waken from his summer dreams
The blue Mediterranean, where he lay,
Lull'd by the coil of his crystalline streams,
그가 누워있던 곳에서 푸른 지중해[5]를
여름 꿈에서 깨어나게 한 그대여
수정같이 맑은 물결의 수고 덕에 잠잠해졌구나.
Beside a pumice isle in Baiae's bay,
And saw in sleep old palaces and towers
Quivering within the wave's intenser day,
바이아[6] 만의 부석(浮石) 캐는 섬 옆에서
파도가 요동치는 낮 동안 떨고 있는
오래된 궁전과 탑을 잠결에 보았노라.
All overgrown with azure moss and flowers
So sweet, the sense faints picturing them! Thou
For whose path the Atlantic's level powers
하늘색 이끼와 꽃들이 온통 웃자라
너무 감미롭고 그것을 그려보기만 해도 어지럽다! 그대는
대서양의 해면고도(海面高度)[7]가 만든 길로
Cleave themselves into chasms, while far below
The sea-blooms and the oozy woods which wear
The sapless foliage of the ocean, know
그들 스스로 균열시키며, 훨씬 밑에서는
바다의 꽃들과 수액이 없는 대양의 잎들로 뒤덮인
질척한 숲[8]이 그대의 목소리를 알고 있다.
Thy voice, and suddenly grow gray with fear,
And tremble and despoil themselves: oh hear!
그대의 목소리, 그리고 공포심에 갑자기 머리가 세어
온몸을 떨며 나뭇잎이 떨어진다: 오 들어보라!
IV
If I were a dead leaf thou mightest bear;
If I were a swift cloud to fly with thee;
A wave to pant beneath thy power, and share
내가 만일 그대가 짊어질 수 있는 낙엽이라면;
내가 만일 그대와 함께 날아가는 빠른 구름이라면;
그대의 힘 아래 펄떡이며 공유하는 파도,
The impulse of thy strength, only less free
Than thou, O uncontrollable! If even
I were as in my boyhood, and could be
그대의 힘의 충동을 그대보다 덜 자유롭게 공유한다면
오 통제할 수 없는 자여! 만일 내가
나의 소년 시절 같다면, 그래서 할 수 있으면
The comrade of thy wanderings over Heaven,
As then, when to outstrip thy skiey speed
Scarce seem'd a vision; I would ne'er have striven
그대가 하늘 위로 방랑할 때 친구가 되어,
그대의 하늘같이 빠른 속도를 앞지르던 그때처럼
공상 같지 않고; 나는 결코 애쓰지도 않았을 터
As thus with thee in prayer in my sore need.
Oh, lift me as a wave, a leaf, a cloud!
I fall upon the thorns of life! I bleed!
이처럼 그대와 나의 쓰라린 욕구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으리.
오, 나를 올려다오, 파도처럼, 나뭇잎처럼, 구름처럼!
나는 인생의 가시밭에 쓰러진다! 피를 흘린다!
A heavy weight of hours has chain'd and bow'd
One too like thee: tameless, and swift, and proud.
무거운 시간의 무게가 쇠사슬로 묶고 굴복시켰다,
그대와 같이 길들여지지 않고, 재빠르며, 자부심 강한 자를.
V
Make me thy lyre, even as the forest is:
What if my leaves are falling like its own!
The tumult of thy mighty harmonies
나를 그대의 수금으로 삼아다오, 바로 저 숲처럼:
내 잎들이 숲의 소유처럼 떨어지면 어찌 될까!
그대의 강력한 조화의 소란스러움은
Will take from both a deep, autumnal tone,
Sweet though in sadness. Be thou, Spirit fierce,
My spirit! Be thou me, impetuous one!
양쪽에서 깊은, 가을의 노래를 얻으리.
슬프지만 감미로운 노래를. 그대, 맹렬한 정령이여,
나의 영혼이 되어다오! 그대는 내가 되어라, 격렬한 자여!
Drive my dead thoughts over the universe
Like wither'd leaves to quicken a new birth!
And, by the incantation of this verse,
나의 죽은 생각을 우주 너머로 몰고 가다오
새로운 탄생을 재촉하는 시든 나뭇잎들처럼!
그리고, 이 시의 주문을 외어서,[9]
Scatter, as from an unextinguish'd hearth
Ashes and sparks, my words among mankind!
Be through my lips to unawaken'd earth
퍼뜨려다오, 꺼지지 않는 화롯불에서 나오는
재와 불꽃처럼,[10] 인류 사이에 내 말을!
내 입술을 통해 잠에서 덜 깬 대지에
The trumpet of a prophecy! O Wind,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예언의 나팔이 되어다오!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겠지?
맺음말
왜 우리는 셸리의 "서풍부"에서 말하는 바람(Wind)에 주목해야 하는가?
표면적으로는 200년 전에 유럽에 살았던 천재시인이 그의 사상을 시어(詩語)를 통해 극동(Far East)에 사는 우리들한테도 메시지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 기독교 지도자로서 민주화의 '바람'을 이끌었던 함석헌(咸錫憲, 1901-1989) 선생은 이 시구절을 읽고 "나를 몇 번이나 엎어진 데서 일으켜 준 시"라고 말했다. 그 결과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란 마지막 구절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슬로건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가 발표된 1818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목민심서를 완성하고 강진 유배에서 풀려났다. 그는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저술을 하였음에도 이를 출판하기는커녕 "살얼음 밟듯 조심하라"는 의미의 아호(與猶堂)를 짓고 집안에 꼭꼭 숨겨놓았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영국의 젊은 시인은 그의 사상을 주문처럼 외어서 잠자는 대지를 깨우고 우주 너머까지 전파해달라고 소리쳤다. 성리학에 매몰되어 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 비하면 고전사회 부적응자 같은 그의 기개가 부럽기만 하다. 셸리와 바이런 같은 시인들의 혁신적인 주장이 영국 사회에 먹혀 들었기에 영국은 다른 나라와 같은 혁명을 겪지 않고도 국가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셸리가 갈파했듯이 '길들여지지 않고 자부심이 강해 하늘 위로 방랑을 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오대양 육대주로 출구를 찾아 활발하게 영국의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겪어보는. 서두에서 말한 30대 중반의 젊은 야당 정치지도자는 그의 비전과 정강정책이 더 중요하지 결코 나이가 문제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는 훌륭한 사상을 가진 뛰어난 인재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이를 국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해 근대화를 선점한 이웃 나라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19세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우리 다음 세대를 일깨워주어야 할 것이다.
이백년 전 천재시인이 노래한 “서풍부” 시는
한겨울에 봄을 고대하는 혁명가의 통찰력
칠흑같은 밤바다를 밝히는 소망의 등댓불
“Ode to the West Wind” is not a mere poem
of a young English genius.
It was an insightful slogan of a revolutionary poet.
It’s like a lighthouse of hope in the darkness of ideology.
Note
1] 학교에 재직할 때에는 의당 대학도서관에서 영문학 도서를 여러 권 참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글로 검색하여 학술도서가 아닌 가장 믿을 만한 블로그를 참고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 글을 쓸 때에는 영시 원문과 번역문을 위 아래로 배치해 놓은 블로그 솔쉼터를 많이 참조하였다.
2] 우리나라에서 가을에 가장 많이 부는 바람은 "가을바람 살랑 불어옵니다"라는 동요 가사처럼 살랑살랑 불어오는 ‘서풍’이다. 우리 선조들은 ‘하늬바람 불 때 일해라’라고 했는데 맑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때 일의 능률이 가장 높다는 것을 알고 한 말이었다. 물론 지리적인 차이 탓이지만 지중해의 서풍과 한반도의 서풍은 날씨에 미치는 영향이나 상징적인 의미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늬바람에 곡식이 모질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여름이 지나 서풍이 불게 되면 곡식이 여물고 대가 세진다는 의미다. 또 ‘비 올 때 바람이 서풍으로 바뀌면 곧 날씨가 갠다’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도 있다. 기압골이 지나갈 때 불던 남동풍이 고기압이 다가오면서 서풍으로 바뀌고 날씨가 좋아지는 기상학적 현상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다. 출처: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조선일보, "[기후와 날씨] 가을에 많이 부는 '서풍', 2024.09.19.
3] 미내드(Mænad)는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시녀를 가리킨다.
4] 시인은 지평선부터 높은 하늘까지 발달해 있는 아치형의 거대한 먹구름(積亂雲)을 보고 그 문이 열릴 때 폭풍우가 엄습할 것임을 바람이 불면 열릴 수 있는 자물쇠에 비유하였다
5] 셸리가 이 시를 쓴 곳은 피렌체 부근이었는데 그 후 지중해에 가까운 피사로 옮겨가 살았다.
6] 바이아(Baiae)는 이탈리아 나폴리 부근의 해안에 있는 옛 도시로 카에사르와 네로의 별장이 있었다.
7] 해면고도(海面高度)란 지중해의 바람길을 만드는 해면 위의 기압차를 가리킨다.
8] 이 대목은 지중해의 바다밑에서 풍랑이 거세게 일어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9] 낭만파 시인인 동시에 진보적 사상가였던 셸리는 일견 서정적인 시 언어를 빌어 그의 개혁과 혁명 사상을 전파하고자 했다. 이 시에서 '바람'이란 시인이자 예언자로서 변화를 촉구하는 그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10] 놀랍게도 셸리의 이 시는 몇 년 후에 닥칠 그의 죽음을 예언한 셈이 되었다. 그의 시혼(詩魂, poetic spirit)을 압도하는 맹렬한 정령(fierce Spirit)에 이끌려, 당시 이탈리아에 체류 중이던 바이런을 만나러 갈 때 자신의 요트 돈 후앙 호를 타고 갔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이 요트를 탔다가 돌풍을 만나 그만 운항 미숙으로 배가 침몰하고 말았다. 10일 만에야 익사체로 발견된 그의 시신은 심하게 훼손되어 그가 입은 옷과 소지품으로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지인들이 둘러선 가운데 해변 모래사장에서 화장을 했고 그의 '재'는 로마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석(gravestone)에는 셰익스피어의 Tempest 한 구절이 인용돼 있다. 그의 사망을 보도한 영국 신문은 이렇게 썼다. "무신론자 셸리는 죽은 다음에야 신이 존재하는지 알았겠지." 출처: Wikipedia.
Nothing of him that doth fade
But doth suffer a sea change
Into something rich and strange.
그의 것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은 채
뭔가 풍요롭고 괴이한
바다의 변화를 몸소 겪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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