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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오월이 지금 가고 있어요!

Onepark 2021. 5. 17. 10:00

5월이 되자 한 친구가 피천득의 수필 "5월"을 보내주었다.

처음엔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되었으니 그렇고 그런 내용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5월 들어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 시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음미하듯이 영어로 번역하여 외국의 독자들에게도 소개하면 좋겠다[1]는 욕심이 생겼다. 이 블로그에 번역해 올린 바 있는 주요한의 "불놀이"나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와 비슷한 계열의 산문시(散文詩)로 볼 수도 있었다.

 

* 하동 최참판댁의 만개한 이팝나무꽃
* 에버랜드 장미축제

 

이팝나무 가로수도 꽃이 활짝 피기 시작해 옛날 보릿고개 시절의 "이팝[같은 흰 쌀밥]에 고깃국"[2] 슬로건을 생각나게 했다.

우리집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다니는 뒷산에서는 아카시아꽃이 어느새 피었다 지고, 하얀 줄댕강나무 꽃도 져서 바닥에 별무리를 뿌려놓았다. 주말마다 비가 자주 내리고 코로나 거리두기가 계속 유지되는 바람에 놀이공원의 장미화원도 예년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 하늘 가득 하얀 별꽃이 만개한 줄댕강나무

 

"오월" 시의 번역을 대강 마친 다음에는 KoreanLII 사이트에도 올리고 싶었다. 이것과 "관련 있는 법률 항목은 무엇인가" 여러 날 고심하기에 이르렀다.

KoreanLII를 시작한지 10년째 되었으므로 후계자 겸 동역자를 찾는다는 구인광고(Collaborators WANTED)를 프론트 페이지에 막 올려놓은 참이었다. 그래서 마치 동역자와 토의하듯이 가상의 토론을 벌였다.

5월 들어 평균 이상의 지출이 불가피인  근로자의 날(5.1), 어린이날(5.5), 어버이날(5.8), 스승의 날(5.15) 등을 차례로 보내야 한다. "오월"에 나오는 몇 개의 키워드 - youth, aging,[3] attempted suicide on the river/seaside,[4] green leaves and forestation, may flower, etc. - 를 음미해 볼 때 'MAY' 자체가 의미있는 법률관련 항목이 될 수 있을까? 결론은 "Possible"이었다. 

 

* 장서원, 5월의 꽃다발

 

그러고 보니 금아 선생님이 신록의 계절 5월을 맞이하여 아주 서정적인 어조로 상당히 심각해질 수 있는 사회적 이슈를 여러 가지 다루셨구나 하는 놀라움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기에 전문을 번역해 놓은 데 이어 KoreanLII에 새로 만든 'May' 항목에도 법 관련 사항과 함께 올리기로 했다.

 

 

오  월  - 피천득

MAY    by Pi Chun-deuk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May is
a new fresh face of twenty-one years of age
just washed with cold water.
It’s a jade ring
put to a white finger.
May is the month of cherry and young strawberry.
May is the month of peony blossoms.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However, isn’t it May
most of all, the month of new green leaves?
The needle leaf of fir
is smooth just like soft skin.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When I was twenty-one years old,
suddenly, in May, I once went to a summer resort
by a night train.
I saw boats upside down on the beach,
bungalows with their outer doors closed . . .
But they didn’t look lonely as in October.
Rather, the islands near the shore
were shining vividly.

得了愛情痛苦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I've got the agony of a love affair.
I've already lost the agony of a love affair.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4]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며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After I wrote down the verses of a Chinese poet,
who died so young, on the beach sands,
I came back to Seoul staying alive.
Looking at the fresh verdure,
I'm very pleased
to keep alive.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3]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Who cares to count my age?
I still remain in May.
Tender green color is now spreading day by day.
For a while, the color will be darker.
Time flies swiftly but sometimes hesitantly.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Come to June,
the green leaves turn out to be
dark green like a mature woman.
And the sun will start to pour
its passion.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A bright, clear and pure month of May
is now departing.

 

* 산림청이 탄소흡수량을 늘린다고 로마병정 투구 모양으로 새로 조림해 놓은 강원도의 산

 

오월이 가는 것을 아쉬워할 새도 없이 크고 작은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연휴기간을 이용해 직계 가족만 강원도에 다녀왔는데 골프장 옆에 지어놓은 리조트에서 1박하였다.

골프장 건설을 위해 수목을 많이 벌채하고 잔디를 심어놓은 것은 지역개발, 일자리창출 등을 위해 불가피했다 쳐도 그리 멀지 않은 산림의 달라진 모습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왜 저렇게 조림을 하였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나중에 알아 보니까 산림청에서 이산화탄소 흡수가 떨어지는 30년 이상된 큰 나무는 베어내고 경제성이 높고 CO2 흡수율이 좋은 어린 나무로 교체하는 조림사업 중이라는 것이었다. 능선에 닭벼슬처럼 큰 나무를 남겨놓은 것은 벌채를 할 때 기존 수림의 10%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관련규정 때문이었다.

산에 가서 나뭇가지 하나 꺾지 못하게 하면서 수십년 간 산림녹화해 놓은 것을 태양광 발전소 만든다, 탄소흡수량 늘리는 조림사업한다며 저렇게 베어내도 좋은지 의문이 들었다. 

 

* 계류를 거슬러 오르는 산천어떼. 김종보, "물결치는 곳" (2019)

 

서울 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건도 있었다. 한강 공원에서 심야에 술을 마시던 대학생이 친구가 그를 내버려두고 귀가한 후 물에 빠져 죽은 것[4]으로 밝혀진 것이다.

졸지에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운 외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되어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심야에 한강공원에 가는 사람이 줄잡아 수백 명이 된다는 것, 젊은이들의 실종 사건은 경찰이 단순사고로 처리하기 때문에 가족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 또 남 모르게 구조견과 함께 한강변에서 자원봉사하는 갸륵한 시민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무쪼록 사인이 규명되고,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한강공원에 CCTV 카메라를 더 많이 설치해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Note

1] 가수 나훈아가 "테스형" 노래를 불러 우리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소크라테스의 조언을 듣고 싶어진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는 이런 기준을 제시했다. 남의 말을 옮길 때에는 그것이 사실인가(true), 선한 것인가(good/beneficial), 필요한 것인가(necessary/useful)를 따져보고 모두 긍정적(Yes)일 때 정확히 옮기라고 말했다. 요즘 SNS를 통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여기저기 퍼나르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우리의 시를 번역할 때에도 비슷한 기준 - Is the English translation correct, available nowhere, necessary & relevant?을 적용하고 있다.

 

2] MZ세대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가을걷이 양식이 떨어지고 보리를 수확하기 전에는 끼니를 잇지 못하고 굶는 사람이 많았다. 봄철 보릿고개(춘궁기/春窮期)를 넘기는 것이야말로 지난한 민생고(民生苦)가 아닐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통일벼 등의 보급으로 쌀 수확량을 늘리고, 비교적 풍부한 원조/수입 물자로 만드는 분식을 장려함으로써 점차 개선해나갔다. 우리는 수출확대와 경제성장을 통해 "이팝에 고깃국" 수요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계속된 풍수해, UN 경제제재, 코로나 국경봉쇄로 인해 이러한 구호가 여전히 절실한 희망사항이라고 한다.

 

3] "오월"을 쓰신 금아 피천득(琴兒 皮千得, 1910-2007) 선생은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몇 년 모자라는 100세 장수를 하셨다. 당신의 시와 수필처럼 '밝고 맑고 순결한' 정신상태를 유지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잠실롯데월드 쇼핑몰 3층 민속박물관 옆의 금아 피천득 기념관에서 금아 선생 생전의 여러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4] 표면상으로는 어떤 범죄가 개재되었다기보다 젊은이들이 과음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보인다. 이기지도 못할 술만 마시지 말고 금아 선생님처럼 시 한 줄이라도 떠올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급기야는 폭풍이 될 수 있다는 말처럼 제도나 관행의 뭔가 미비된 것이 큰 재난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법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와 경찰에서는 시민들의 여망을 고려하여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