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nine o'clock in the morning, KBS 1FM radio delivers an opening poem.
In the morning of late Spring this year, we could hear a wonderful poem recital performed by actress Kim Mi-sook as expected. It started with "On a day when flowers bloom."
꽃 피는 날엔
누구와도 다투지 않기로 한다
꽃 지는 날엔
어떤 일도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연두색 잎들 초록색으로 바뀔 땐
낡은 구두로
바다 위 돛단배와 물고기를 만든다
<후 략>
3년 전 정년퇴직한 후에는, 더욱이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을 자제하면서부터는 집에서 FM 방송을 청취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선지 김경미 시인이 방송작가를 맡아 진행한 저녁 6시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 아침 9시 ‘김미숙의 가정음악’ 등 여러 시/산문 낭송 코너와 친숙해졌다.
김경미(金慶美, 1959~ ) 시인은 35년 넘게 방송작가를 하면서 심유리, 제인 퍼듀 같은 가명을 써서 자작시를 발표해 왔다고 한다.
이러한 시에 귀를 기울였던 애청자들이 누구의 어떤 시인가 하고 다시 찾아보는 일이 많았다. 일과성 라디오 방송이라 다시 들어보고 싶어도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온다”는 청취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1]
위의 시(詩)도 지난 5월엔가 방송이 되었는데 마침 현대문학 2021년 7월호(p.176)에 게재되어 여기에 옮겨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이 말하듯이 ‘탁’하고 걸리는 순간 잡아채서 쓰는 시는 애청자들에게도 그날의 분위기에 맞게 가슴을 ‘탁’치는 느낌을 준다.[2] 바로 오늘이 그랬다. 삼복더위 염천(炎天)에 “불 위에 올려진 물 없는 주전자”의 형상이라니~[3]
하루하루 바삐 살면서 물이 끓고 있으니 커피나 차를 타 마실 생각만 했지 그 물이 줄어드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는 현대인을 보는 것 같았다. 시인은 우리가 사는 것이 ‘불 위에 올려진 물 없는 주전자’ 같지 않은지 질문을 던져 충격을 받았다. 아주 오래전에 가스불 위에 국이 담긴 냄비를 올려놓았다가 벌겋게 달아오른 냄비를 보았을 때의 그 공포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되살아났다. 다행히 시인은 말미에 그 해법까지 제시하고 있어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인간론 - 김경미
Of Human Beings by Kim Gyeong-mi
1
옳지 않다
나는 왜 상처만 기억하는가
가을밤 국화 줄기같이 밤비 내리는데
자꾸 인간이 서운하여 누군가를 내치려 보면
내가 내게 너무 가까이 서 있다
그대들이여, 부디 나를 멀리해다오, 밤마다
그대들에게 편지를 쓴다
It’s wrong.
Why do I remember only wounds and scars?
One autumn night I’d rather cast away someone out of despair
When night rains were falling like chrysanthemum stems.
I came to see I’m standing too close to myself.
Hi buddies, let me be far apart, every night
I used to write to them.
2
물주기도 겁나지 않는가
아직 연둣빛도 채 돋지 않은 잎들
동요 같은 그 잎들이 말하길
맹수가 아닌 갓 지은 밥처럼 고슬대는 산양과
가슴 한가운데가 양쪽으로 찢긴 은행잎이
고생대(古生代) 이후 가장 오래 세상을 이겨왔다 한다
I scared when I was watering plants.
Still remaining pre-yellowish green,
Those new leaves said to me like a children song
Goats which act briskly like a fresh cooked rice rather than wild beasts
And ginko leaves whose center are torn apart are said to
Survive this tumultuous world long enough since the paleozoic era.
3
관상(觀相)에서 제일 나쁜 건 불 위에 올려진 물 없는
주전자 형상이라지 않는가
바닥 확인하고 싶으면 가끔 울어 보라 한다
Most physiognomists say the worst case is
Like a kettle with little water on fire.
So crying is good to fathom the depth of water in your mind.
- 출처: 김경미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
살다 보면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미워하고 마음에서 밀어내려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임에도 너무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느낄 때가 있다. 가을밤 비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또는 화초에 물을 주다가 불현듯 이점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하찮게 보이는 은행나무가 고생대부터 2억 5천만 년을 살아낸 것과 비교하면 찰나 같은 시간 동안 애증에 휘둘릴 게 뭐 있나 생각된다.
시인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면 얼굴 모습도 그대로 변할 테니 나름 마음의 깊이를 더 키워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타고난 운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노력하면 힘들고 흉한 일도 어렵지 않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말한 대로 "남을 위해 울기"까지 무슨 일이든 감사함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자연히 그에게는 좋은 일만 일어나게 될 것이다.[4]
동해 일출을 보고자 하는 것은
아침 햇살이 어둠을 사르고
만물을 생동케 하기 때문
We go to the east coast
To see the Sun rise thru darkness,
which activates everything on Earth.
생화 (生花) – 김경미
Living Flowers
생생한 꽃들일수록 슬쩍 한 귀퉁이를
손톱으로 상처 내본다, 흘리는지 본다
가짜를 사랑하긴
싫다 어디든 손톱을 대본다
Whenever I saw vividly living flowers, I used to
Secretly injure a corner of the flower with my nail, and see
If any fluid occurs. It’s because any fake one
Is abhored. So it will invite anywhere my nail check.
햇빛들 목련꽃만큼씩 떨어지는 날 당신이
손톱 열 개
똑똑 발톱 열 개마저 깎아준다
가끔씩 입속 혀로 거친 발톱결 적셔주면서
One day when the sunbeams were dropping as magnolia petals, You cut
Ten finger nails and
‘Ttok’ ‘ttok’ ten foot nails.
More often than not, You moisten my rough nail ends with Your tongue.
신에게 사과했다
I made a sincere apology to God.
나는 가짜 꽃(造花)인지 알아보려고 연약한 꽃들을 손톱으로 상처를 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신은 죄 많은 손톱뿐만 아니라 3D 고된 일을 도맡아 하는 발을 어루만져 주시고 발톱까지 깎아 주신다.
당신의 혀로 거친 발톱결을 적셔주기까지 하시니 정말 면목이 없다.
신에게 사과를 드릴 뿐만 아니라 진정 회개하는 심정이 되었다.
Note
1] 백수진,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 시 묶어 '카프카식 이별' 펴낸 김경미 시인, 조선일보, 2020.7.4.
2] 첫머리에 인용한 시의 다음 구절도 그러하다. "연두색 잎들 초록색으로 바뀔 땐 / 낡은 구두로 / 바다 위 돛단배와 물고기를 만든다"는 시작(詩作) 의도를 고려하면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무슨 대수인가. 초여름엔 (낡은 구두를 계속 신어야 할 정도로) 경제사정은 어려울지라도 바다로 바캉스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하며 스스로 즐거워지고 싶다는 것을. 물고기가 아니라 백구(白鷗)가 되어 창공을 나는 것도 못 할 것 없다.
3] 지혜로운 점술가들은 이렇게 은유적인 표현으로 고객이 자신의 단점을 깨닫고 스스로 고치도록 한다. 예컨대 "파리도 낙상 할 유리그릇", "바람에 촐싹거리는 얕은물", "벼 백 섬을 쌓아둘 곳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4] 40년 가까운 방송경력이 말해주듯이 연차가 상당히 되었음에도 김경미 시인의 감각과 감성은 젊은이 못지 않다. 시인이 2014년에 발표한 시집 《밤의 입국 심사》에 관한 기사와 '연애시'로 일컬어지는 시(詩)의 전문은 다음 신문기사 참조.
진중봉, “김경미 시인, 다섯 번째 시집 '밤의 입국 심사' 출간”, 중앙일보, 2014.9.2.
흥미로운 것은 시인이 똑같은 소재를 놓고 '밤의 입국 심사' 훨씬 전에 '연애의 횟수'라는 시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입국심사서류, 후자는 출국심사서류인 두 시의 전문과 각각 영어로 번역한 것은 KoreanLII의 'Breakup (결별)' 기사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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