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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영시 번역의 '멋진 신세계' 탐험

Onepark 2021. 11. 5. 12:30

KoreanLII와 블로그에 영시를 번역해 소개한다는 것을 알고 김상문 친구가 윌리엄 브라이언트(William Cullen Bryant, 1794-1878)의 "죽음에 관하여(Thanatopsis)" 시 원문과 번역문을 보내주었다. 국내 최초의 번역자는 미스트라예프 스베틀란이라는 블로거라고 한다.

여러 번 읽어보았으나 죽음에 관한 명상시(contemplative song for death)라는 것 외에는 알듯말듯하여 지금까지 해왔던 식으로 직접 번역해보기로 했다. '죽음'이 중요한 모티브라는 점에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의 "서풍부(Ode to the West Wind)", 프랑스 최초의 낭만시 라마르틴의 "호수(Le Lac)",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자유시 주요한의 "불놀이"와 비교가 되었던 까닭이다. 원문은 한 개의 연(聯)으로 되어 있지만 편의상 단락을 구분하였다.

 

Thanatopsis  by William Cullen Bryant

죽음에 관하여  - 윌리엄 컬렌 브라이언트

 

    To him who in the love of Nature holds

Communion with her visible forms, she speaks
A various language; for his gayer hours
She has a voice of gladness, and a smile
And eloquence of beauty, and she glides
Into his darker musings, with a mild
And healing sympathy, that steals away
Their sharpness, ere he is aware. When thoughts
Of the last bitter hour come like a blight
Over thy spirit, and sad images
Of the stern agony, and shroud, and pall,
And breathless darkness, and the narrow house,
Make thee to shudder, and grow sick at heart;—
Go forth, under the open sky, and list
To Nature's teachings, while from all around
Earth and her waters, and the depths of air—
Comes a still voice—Yet a few days, and thee
The all-beholding sun shall see no more
In all his course; nor yet in the cold ground,
Where thy pale form was laid, with many tears,
Nor in the embrace of ocean, shall exist
Thy image. Earth, that nourished thee, shall claim
Thy growth, to be resolved to earth again,
And, lost each human trace, surrendering up
Thine individual being, shalt thou go
To mix for ever with the elements,
To be a brother to the insensible rock
And to the sluggish clod, which the rude swain
Turns with his share, and treads upon. The oak
Shall send his roots abroad, and pierce thy mould.

    자연을 사랑한 나머지 보이는 형태로
교감을 나눈 그에게 자연이 말한다.
그가 활기찬 시간에 여러 언어를 가지고
자연은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미소를 짓고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며
그가 알아채기 전에 날선 것을 훔쳐가는
부드럽고 상처를 치유하는 동정심으로
그의 적막한 사색 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마지막 괴로운 시간의 상념이 그대의 영혼을 뒤덮는
어두운 그림자처럼 다가올 때
무서운 고통, 수의와 관을 덮는 천
그리고 숨이 멎는 어두움과 비좁은 집에 대한
슬픈 이미지가 그대를 몸서리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한다.
툭 트인 하늘 아래로 나아가라. 그리고
자연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라. 사방에서
땅과 물, 대기의 깊은 곳에서
조용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러나 며질 후
모든 것을 지켜보는 태양이 더 이상
그가 다니는 길에서는 그대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창백한 모습으로 많은 이의 눈물 속에
누워 있는 차가운 땅바닥에서도, 바다가 껴안는 곳에서도
그대의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대에게 자양분을 제공한 땅은
그대가 장성하기까지의 권리를 주장하며
땅으로 다시 가라 할 것이다.
그리고선 인간의 자취를 잃고, 그대의 개성도 포기한 채
그대는 영원히 원소들과 뒤섞이기 위해
감각이 없는 바위돌과, 무례한 농부가
보습으로 갈아엎고 밟고 올라설
느릿느릿 뭉치는 흙덩이와 형제가 될 것이다. 오크나무
뿌리가 뻗어나와 그대의 형체를 뚫고 지나갈 것이다.

    Yet not to thine eternal resting-place
Shalt thou retire alone, nor couldst thou wish
Couch more magnificent. Thou shalt lie down
With patriarchs of the infant world—with kings,
The powerful of the earth—the wise, the good,
Fair forms, and hoary seers of ages past,
All in one mighty sepulchre. The hills
Rock-ribbed and ancient as the sun,—the vales
Stretching in pensive quietness between;
The venerable woods—rivers that move
In majesty, and the complaining brooks
That make the meadows green; and, poured round all,
Old Ocean’s gray and melancholy waste,—
Are but the solemn decorations all
Of the great tomb of man. The golden sun,
The planets, all the infinite host of heaven,
Are shining on the sad abodes of death,
Through the still lapse of ages. All that tread
The globe are but a handful to the tribes
That slumber in its bosom.—Take the wings
Of morning, pierce the Barcan wilderness,[1]
Or lose thyself in the continuous woods
Where rolls the Oregon, and hears no sound,
Save his own dashings—yet the dead are there:
And millions in those solitudes, since first
The flight of years began, have laid them down
In their last sleep—the dead reign there alone.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안식처에서
그대는 홀로 물러서지 못하고, 더 영광스러운 것을
바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대는
원시 사회의 부족장들과 지상의
권세를 가진 왕들과, 현자와 선한 사람,
가인(佳人)들, 그리고 흘러간 시대의 예언자들과
모두 하나의 거대한 무덤 속에 누워 있을 것이다. 그 언덕은
바위투성이에다 태양만큼이나 오래되어
그 사이에 생각에 잠겨 고요함 속에 뻗어나온 골짜기들,
위엄있어 보이는 나무숲,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불평하듯 흐르는 개울물이
목초지를 푸르게 한다. 그리고 온 사방에
구대양(舊大洋)의 우울해 보이는 잿빛 황무지가 있는데
그저 거대한 인간의 무덤의
엄숙한 장식품일 뿐이다. 황금빛 태양,
행성들, 창공의 무수한 집주인이
세월이 멈춘듯이 흘러가는 가운데
죽음의 슬픈 처소 위에 빛나고 있다. 지구를 밟고 가는
모든 이들은 대지의 가슴에 잠든 부족들에 비하면
한줌밖에 되지 않는다. 아침의 날개를
붙잡고 바르칸 광야를 뚫고서 가라.
그렇지 않으면 오레곤 강이 굽이쳐 흐르는
끝없이 펼쳐진 숲에서 길을 잃거나 강물의 철썩임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리라. 그곳에도 죽은자들은 있다.
세상이 처음 시작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누워 마지막 잠을 잔다.
그곳에서 사자(死者) 홀로 다스린다.

    So shalt thou rest, and what if thou withdraw
In silence from the living, and no friend
Take note of thy departure? All that breathe
Will share thy destiny. The gay will laugh
When thou art gone, the solemn brood of care
Plod on, and each one as before will chase
His favorite phantom; yet all these shall leave
Their mirth and their employments, and shall come
And make their bed with thee. As the long train
Of ages glide away, the sons of men,
The youth in life’s green spring, and he who goes
In the full strength of years, matron and maid,
The speechless babe, and the gray-headed man—
Shall one by one be gathered to thy side,
By those, who in their turn shall follow them.

    그러니 그대는 안식을 취하라. 만일 그대가
침묵 속에 산 것들로부터 물러나고 어느 친구도
그대가 떠난 것을 알지 못해도 어쩌겠는가? 숨쉬는 것은
모두 그대와 운명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대가 사라지면
즐거운 자들은 웃을 것이요, 엄숙하게 걱정하는 부류는
터벅터벅 걸어가고, 각자 전과 같이
자기가 좋아하는 환영을 쫓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일자리를 떠나 그대와 같이
누울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세월의 긴 행렬이
미끄러져 가고 사람의 아들들
새파랗게 젊은이들과 가장 힘찬 시절을
보내는 이들, 유부녀와 처녀들,
아직 말 못하는 아이 그리고 머리가 센 남자가
차례가 되면 그들을 따라갈 사람에 의해
하나 둘씩 그대 곁에 모여들 것이다.

    So live, that when thy summons comes to join
The innumerable caravan, which moves
To that mysterious realm, where each shall take
His chamber in the silent halls of death,
Thou go not, like the quarry-slave at night,
Scourged to his dungeon, but, sustained and soothed
By an unfaltering trust, approach thy grave,
Like one who wraps the drapery of his couch
About him, and lies down to pleasant dreams.

    그렇게 살아라. 신비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무수히 많은 대상(隊商)에 합류하라는 소환장이 날아올 때
그곳에서는 고요한 죽음의 홀에
각자 방을 차지할 것이다.
그대는 지하 구덩이에서 채찍질 맞으며
밤에 채석장에서 일하는 노예처럼 가지 말아라.
그대신 확고한 믿음으로 위로받고 견뎌내면서
그대의 무덤을 향해서 가라. 마치 침상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자신에 대한 즐거운 꿈을 꾸려고 눕는 사람처럼.[2]

 

* 콜린파월 전 국무장관의 장례식에 참석한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그들도 모두 '거대한 무덤'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갈 운명이다.

위의 시는 연을 나누지 않고 들여쓰기로 단락을 구분하고 있다.

첫 단락에서는 자연에 감동을 느끼던 사람이 숨이 멎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 비좁은 관에 누워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활동사진처럼 보여준다.

둘째 단락에서는 영원한 안식처에서 세월이 멈춘듯 흘러가는 가운데 수많은 죽은자들과 함께 잠을 잔다고 묘사하고 있다.

셋째 단락에서는 지상의 숨쉬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되며 남녀노소 예외가 없음을 강조한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산 사람들이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타율적으로 살지말고 사후세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죽음을 대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서풍부, 불놀이와의 비교

 

영문학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기에 영시(英詩)는 완전 미지의 세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시를 좋아하는 덕후[3]의 입장에서 새로운 유형의 시를 발견하면 호기심과 함께 스릴을 느낄 때가 많다. 과연 저 높은 산을 제대로 넘을 수 있을까? 도중에 실족하거나 70% 능선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단념하고 내려와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계기는 주요한의 "불놀이"를 영역할 때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시, 자유시라는 정도의 지식밖에 없었는데 단어 하나하나 영어로 옮기면서 죽음이나 중병에 대처하는 5단계(DABDA) 심리적 반응 같은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셸리의 "서풍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브라이언트의 "죽음에 관하여"를 처음 대하였을 때에도 약관(弱冠, 20세 전후를 이르는 말)의 천재시인은 과연 어떠한 정신세계에서 시를 썼는지 알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차 번역을 마치고 어순이 사뭇 다른 영시와 번역시문을 서로 맞춰볼 때에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세 편의 시를 비교해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영국과 미국, 한국의 세 시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적지 않았다.

첫째, 세 편 모두 죽음과 영혼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죽음을 사실적으로 이해하다가 생각이 깊어지면서 철학적인 의미를 깨닫고 현실 속에서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된다. 공통적으로 '우울' 모드에서 시작했다가 끝부분에 가서는 희망과 용기를 고취하고 있다.

 

둘째, 놀랍게도 세 시인 모두 20세 전후에 발표한 것들이다. 특히 브라이언트의 시는 그가 17세이던 1811년 경에 써놓은 것으로 알려져 처음 이 원고를 받아본 편집자가 "대서양 이 쪽에서 이런 시를 쓸만한 사람은 없다"며 믿지 않았다고 한다. 셸리는 사생활 문제로 이태리에 체류 중이던 1818년 26살 때 "서풍부"를 발표했으니 신생 독립국가인 미국에서 "타나톱시스"같은 시가 나온 것을 알았을지 궁금해졌다. 아니, 알아볼 사이도 없이 1822년 그가 탄 요트가 돌풍을 만나 세상을 뜨고 말았다. 열아홉살 주요한은 1919년 초 동인지 창조」에 "불놀이"를 발표한 후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셋째, 셸리의 "서풍부"는 낭만주의 영시의 대표작으로, 브라이언트의 "타나톱시스"와 주요한의 "불놀이"는 각각 미국과 한국 최초의 근대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Note

1] 'Barcan wilderness'(바르칸 광야)란 북미대륙의 사막을 일컫는 말이다. 시인은 19세기 초 당시만 해도 미개척 상태이던 북미대륙의 끝없이 펼쳐진 광야와 숲을 마치 새(오늘날엔 드론 카메라?)처럼 비행하며 내려다 보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2] 시인은 숨을 쉬는 생명체에게 죽음이 어떻게 찾아 오고 자연으로 돌아가는지를 직설적으로 또는 은유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피치 못할 숙명이라면 죽을 때에도 타율적으로 채찍질 당하는 채석장의 노예(quarry slave)처럼 살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침상 위에 자리를 펴고 단꿈(pleasant dream)을 꾸려는 사람처럼 죽음에 임하라고 하는 것은 죽은이를 안타까워 하며 꿈속에서 그 영혼이라도 만나자고 하는 사람의 심정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3] 지금까지 필자가 한국의 법이나 법 개념과 관련이 있는 우리 시를 영어로 번역한 것과, 중국이나 우리 고전의 한시(漢詩) 및 외국의 유명 시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은 시인별 詩 일람표 참조. 위의 시도 KoreanLII의 "Death" 항목에 인용되어 있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17음절로 다듬어 블로그에 올렸던 국ㆍ영문의 단시(短詩, haiku) 목록은 이곳을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