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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가을 찾아 떠난 길 - Second Best is OK!

Onepark 2023. 10. 28. 07:00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가을을 피부로 느끼기란 쉽지 않다.

실내 온도가 일정하고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정원수 낙엽을 쓸어모으는 아저씨의 비질 소리에 가을이 깊어감을 느낀다.

시골로 여행을 떠난 지인이 코스모스 꽃밭 사진을 보내왔다.

길가에 피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너른 밭이 온통 살사리꽃 천지였다. 일대 장관(壯觀)이 아닐 수 없었다.

 

* 평창 알펜시아 호반

 

10월 24일은 상강(霜降)이었다. 24절기상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날이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친구는 금년 가을엔 비가 자주 오고 서리가 일찍 내려 과일 작황이 별로 좋지 않다고 걱정했다.

단풍도 그리 곱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과일과 배추 수확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경기 북부와 강원 영서 지방에는 우박까지 내렸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어느 시인은 서리가 내릴 무렵 가을이 깊어갈 때면 햇살이 애잔하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동안 삯진 일을 많이 한 탓인지 더 이상 온기도 느껴지지 않고 행장(行装)도 초라해보인다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하지만 여름철 내내 땀 흘려 일했다면 가을엔 넉넉한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텅 빈 상자에서 울려나오는 바람소리 같다고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 전북 진안 농원의 낙엽 카펫. 사진 제공: 유양수

 

상 강  - 김명인

 

갈 데 없어 한나절을 베고 누웠는데

낮잠인가 싶어 설핏 깨어나니

어느새 화안한 석양이다

문턱을 딛고 방 안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들

먼 길 가다 잠시 쉬러 들어온

이 애잔, 그대의 행장이려니

움켜쥐려 하자 손등에 반짝이는 물기

빛살 속으로 손을 디밀어도 온기가 없다

나는 삯 진 여름 지나온 것일까

놓친 것이 많았다니 그대도 지금은

해 길이만큼 줄였겠구나

어디서 풀벌레 운다. 귀먹고

눈도 먹먹한데 찢어지게 가난한

저 울음 상자는 왜 텅 빈

바람 소리까지 담아두려는 것일까

* 시집 「여행자 나무」,  문지. 2013

 

 

Frost Falls  by Kim Myung-in

 

Nowhere to go, I slept for a day.

I woke up thinking I had a nap.

It's already a br-i-gh-t sunset.

That’s the autumn sunbeams shining thru a threshold into the room.

It came in from a long way to have a rest for a while.

This lingering sorrow - how poor your appearance is!

When I tried to grab it, it glistened on the back of my hand.

I reach into the light, but there's no warmth in it.

I wonder if it's been a meaningful summer.

You've missed so much, and now

You must have shortened it by the length of daylight.

Somewhere a grasshopper is crying. Deaf and dumb.

Also I'm blind. You're extremely poor.

Why is that crying box so empty

To hold the sound of the wind?

 

* 가을 숲은 여러 활엽수가 섞여 있어야 단풍이 아름답다.

 

그래서 단풍이 절정을 이루었다는 뉴스를 듣고 10월 말 주말을 택해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 갔다.

아뿔싸!

아침에 짙은 안개가 끼어 출발을 늦추었더니 진부에서 오대산 들어가는 길이 관광버스와 승용차들로 메워졌다. 내비에서는 차량 증가로 8km 구간을 가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오대산 단풍은 늦게 가더라도 빨간 단풍나무를 비롯해 두고두고 볼 만하고 단풍 구경 이상의 볼거리가 많기에 차를 돌려 나왔다.

 

진부에 온 김에 5일장을 구경한 다음 인근 용평 리조트의 발왕산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그런데 발왕산 올라가는 케이블카 타려는 사람들도 장사진이었다. 표를 사고도 줄을 서서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니!

내려올 때도 사정이 비슷할 것이다. 게다가 오후부터는 짙은 구름이 낀다는 예보가 있었으니 山봉우리는 구름에 가리우겠구나!

그래서 미련을 두지 않고 밖으로 나와 스키 슬로프로 갔다. 이곳에서도 단체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난리였는데 루지 타고 내려오는 코스 한복판에 억새 밭이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 강원도 용평 리조트 스키 슬로프의 억새밭

 

그렇다! 가을을 찾아가는 여정이 단풍으로 물든 오대산, 설악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비탈의 억새밭에도 있고, 고요한 호숫가 산책로에도 있다. 또 가을철 수확물을 늘어놓고 파는 5일장 장사꾼의 매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가까운 동해안의 파도치는 해변에서도 가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날 밤 비바람이 몰아친 탓인지 강릉 경포대 강문 해변에는 거센 파도가 몰려들었다.

서핑하기에 딱 좋아 보였지만 풍랑이 아주 거센 편이어서 영화에서와 같은 용기를 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 고즈넉한 강릉 강문 해변에서 파도치는 동해 바다

올 가을에 생각해 보니 가을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한 곳만 정하지 않고 여러가지 Second Best (차선/次善) 선택지를 갖고 있는 게 좋을 듯 싶다.

굳이 오대산이나 설악산에 가보지 않고도,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주변의 가까운 곳에서 수고하지 않고 현명하게 가을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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