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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iness

[성경] 4복음서와 날개 달린 네 생물의 의미

Onepark 2024. 3. 26. 23:10

G : 오늘은 아주 진기한 해외 여행을 떠나볼까요?

베니스에 가면 산 마르코 성당과 종탑, 산 마르코 광장이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데 베니스는 마가복음을 쓴 마르코(개신교에서는 마가)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P : 베니스가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대에 야만족의 침입을 우려한 기독교인들이 계시를 받고 보다 안전한 곳에 거주하기 위해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개펄 위에 통나무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운하 도시를 건설하였음을 잘 아실 거예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1797년 나폴레옹이 침공해 올 때까지 1천년 간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점이지요. 베니스는 이러한 이점을 살려 해상으로 진출하여 국제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문화를 발전시킨 아주 독특한 도시국가였습니다. 해상무역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투자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공동기업 형태를 고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물건을 잘 팔려면 브랜드 네임이 중요하잖아요? 베니스의 상인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지중해의 무역항 알렉산드리아에서 복음을 전했던  기독교의 성인 마가(Saint Mark, 본명은 Mark John 별명 Mark the Evangelist, AD12 ~ 68)의 묘를 베니스로 옮길 생각을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가 아랍 군대에 정복되자 828년 그곳 교회 묘지에 묻혀 있던 마가의 유골을 그리스 사제의 도움을 받아 은밀하게 베니스로 빼돌렸어요. 무슬림 감시병에게 적발되지 않도록 그들이 혐오하는 돼지고기 화물로 위장했다고 합니다. 베니스 정부는 마가 성인을 도시의 수호성인(Patron of the City)으로 지정하고 이를 기념하여 도시 한복판에 바실리카 대성당과 큰 광장을 만들었어요.

성경에서는 마가복음을 날개달린 사자(Winged Lion)로 묘사하는데 용맹스러운 사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베니스의 상징물(emblem)이 되었습니다.

 

* 정면에 보이는 산 마르코 성당과 종탑, 산 마르코 광장
* 해수면의 상승으로 만조 때면 산 마르코 광장이 물에 잠기자 시 당국은 바닷물의 상승을 막는 모세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출처: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캡쳐

 

G : 아~ 그래서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면 '황금 사자상'을 받았다고 하는 거로군요! 그럼 다른 복음서의 상징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각기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요. 주일학교에서는 요한복음은 독수리 하는 식으로 무조건 암기를 시키거든요.

P : 아주 재미있는 질문인데요. 기독교 초기 오거스틴 같은 교부(敎父)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상당히 유력한 학설은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확정한 구약과 신약 4복음서의 관계를 중심적으로 나타난 메시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화(聖畵)가 많이 그려졌죠. 신비스러운 날개 달린 네 생물(Four Creatures)은 에스겔서(1:4-14)에 나옵니다.

 

거기(바빌론 그발 강가의 북쪽 하늘이 열리고 번쩍이는 불과 광채 속)에 살아 있는 네 생물의 모습이 있었는데 그들의 생김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네 생물은 각각 네 개의 얼굴과 네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네 생물의 다리는 일직선이었고 그들의 발은 송아지 발 같았으며 광낸 청동색같이 빛났다.

사방에 달린 그들의 날개 아래는 사람의 손들이 달려 있었다. 네 생물들에게는 각각 얼굴과 날개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날개들은 서로 닿아 있었다. 그들이 움직일 때는 뒤돌지 않고 각자 자기 앞으로만 곧장 갔다.

그들의 얼굴 생김새로 말하자면 그 네 생물들은 사람의 얼굴을 갖고 있는데 오른쪽은 사자 얼굴, 왼쪽은 황소 얼굴, 뒤쪽은 독수리 얼굴을 갖고 있었다.

 

4복음서가 쓰여진 순서는 마가의 복음서가 맨 처음 쓰여졌지요. 마가는 크레타 출신으로 모친이 예루살렘의 상당한 재력가여서 그의 집 2층(다락방)을 예수님이 제자들과 유월절 최후의 만찬을 드실 때 기꺼이 식사장소로 제공하였어요. 오순절 때에는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강림을 체험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마가는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전도에 나섰던 바나바의 4촌 동생이자 사도 베드로의 제자였습니다. 마가가 베드로의 순교 직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피신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집필했다고 해요.

 

G : 신약 첫 머리의 세 복음서는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서도 각기 다른 특징이 있군요.

P : 네, 그렇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마태는 세리답게 예수님의 족보부터 기록하였고, 누가는 헬라인 의사였는데 사도 바울을 수행하면서 그가 듣고 보았던 것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기술하였지요. 마태・마가・누가복음을 공관(共觀)복음서라고 하는데 요한복음은 그 관점이 다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신 제자로서 다른 사도들과 떨어져[1]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모양입니다. 그가 골고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으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모시라는 말씀을 듣고 다른 사도들처럼 영광스럽게 순교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그 덕분에 장수하였지요.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던 티투스 황제가 제위 2년 만에 죽고 그의 동생인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즉위하여 기독교도들을 박해할 때 튀르키에 연안의 밧모섬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그 혼란스럽고 위태로왔던 시대에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그가 생각하고 느꼈던 바를 아주 깊이있게 복음서로 기술했던 거죠. 기독교회의 미래 모습은 계시록으로 만들었습니다.

 

G : 그런데 에스겔서 1장의 신비한 생물과 연결될 수 있는 무슨 단서가 있습니까.

P : 네, 각 복음서의 첫 장을 볼까요? 다음과 같은 연관성을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사람의 출신 배경

마가복음 -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외친 세례 요한 힘차게 포효하는 사자

누가복음 - 사가야 제사장의 아내 엘리사벳의 잉태 소식 - 소, 양 같은 제물을 바치던 제사장 순순히 희생제물이 된 황소

요한복음 - 여호와의 말씀으로 천지창조 -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말씀 비상하는 독수리 

 

 

*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의 첨탑과 네 기둥을 장식한 4복음서의 상징물. 사진출처: 나무위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의 모습. 주된 기동 상부의 타원형 안에 4복음서의 상징물이 새겨져 있다.

 

G : 아~ 그런 식으로 에스겔서 1장에 나오는 신비로운 네 생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네 복음사가로 다시 현현(顯現)했다고 본 것이로군요.[2]

P : 그 관련성은 요한 계시록(4:6-8)에도 다시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생에서 죄의 포로상태에 있는 인간들이 네 생물을 눈으로 보아야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 완결편이 아닐까요? 

 

보좌 앞에는 수정처럼 맑은 유리 바다와 같은 것이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처럼 생겼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처럼 생겼고, 셋째 생물은 사람의 얼굴처럼 생겼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처럼 생겼습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고 날개 둘레와 안쪽에는 눈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말했습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이제 오시는 분이십니다."

 

G : 그리스 여행할 때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네 복음서의 저자를 특별히 존숭하는 것을 보았어요.

P : 네, 그렇습니다. 4복음서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이처럼 소상하게 알 수 없었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성가족 성당(스페인어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영어 Basilica and Expiatory Temple of the Holy Family: 속죄의 성가정 대성전)을 건축할 때의 컨셉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앙에 세우고 성당을 떠받치는 네 기둥에 마태・마가・누가・요한을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람・사자・황소・독수리를 새겨놓았던 겁니다. 

"직선(로마 건축물의 특징인 직사각형 Basilica)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하느님이 만든 선"이라는 가우디의 말을 생각하며 사그라다 대성전에 들어가보면 더욱 실감이 나더라고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 서거 100주년이 되는 2026년 완공 목표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데[3] 현재까지 완성된 모습을 보면 아래의 사진과 같습니다.

 

*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 탑에는 십자가와 전망대가 들어설 예정이다. 사진출처: 나무위키

 

G : 그와 같이 심오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 줄 몰랐습니다.

P : 바르셀로나에 가보면 성가족 성당 외에도 가우디의 천재성(33 숫자 마방진)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어요.

가우디가 직접 건축한 작품 중 비센스 주택, 구엘 저택, 구엘 공장단지 내 지하경당, 구엘 공원, 바트요 주택, 밀라 주택, 성가족 성당의 예수의 탄생 파사드 등 총 7작품이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어요.

 

G : 누가복음을 쓴 누가(가톨릭에서는 루카)는 복음사가 중에서도 유대인이 아닌 유일한 이방인, 그리스인이었다면서요?

P : 네, 그래도 누가는 신약성경 전체 분량의 1/4에 해당하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편저자로 알려져 있고, 사도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로서 일찍이 초대교회 당시부터 성인으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성서학자 중에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문체나 내용이 달라 글쓴이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사도행전 모두 로마 제정 당시 기독교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그리스인, 로마인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아름다운 문체로 어느 복음서보다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그 중요성은 크다고 하겠습니다. 누가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바울의 순교 후 로마를 떠나 이집트로 갔다고 알려졌어요. 전승에 의하면 올리브 나무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하며, 그의 무덤은 에베소에 있다가 파두아 성당에 안치되었습니다.  

 

G : 영화 <바울>(Paul, Apostle of Christ  2018)을 보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옥에 갇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P : 네, 저도 보았어요. 아주 키가 큰 잘생긴 청년이었다는 게 전승에도 나와요. 고등교육을 받은 의사에다 그림도 잘 그려 성모자상을 처음으로 그린 화가이자 황소를 상징으로 하는 복음사가이기에 화가와 도축업자들의 수도성인이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것은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누가를 처음 만났는데 그때부터 그는 바울의 동반자이자 비서, 주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코린토스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고린도 후서 12:7)를 보면 그가 하나님께 육신의 가시를 빼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코린토스 유적지의 박물관에서 환자들이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후 아팠던 부위를 석고로 떠서 남겨놓은 것을 보고 당시 코린토스는 아주 번창한 무역항구로 환자와 의사도 많이 몰려왔겠구나 짐작하였지요. 그렇다면 바울의 마지막까지 그와 동행하였던 의사 루카는 하나님이 바울의 기도에 2배, 3배 응답해 주신 게 아니겠습니까!  

 

* 영화 <Paul>에서 누가와 사도 바울.
* 파두아 성당에 안치된 성 루카의 묘

 

G : 정말 그렇네요. 사도행전의 태반은 사도 바울의 복음전도 행적과 고난을 기록한 것인데 바울이 여러 교회와 동역자들에 보낸 서간, 옥중에서 쓴 편지들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지요. 그래서 바울의 생각과 고충, 고난을 헤쳐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몰라요.

P : 네, 맞습니다. 위대한 사역자 뒤에는 그와 고락을 함께 하고 사역자의 행적을 돋보이게 하는 동역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총독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다가 로마 시민권이 있음을 주장하여 로마로 압송되어 갔어요. 그 때 지중해 멜리데(현재의 Malta) 섬 부근에서 폭풍(Euraquilo: 거센 북동풍이란 뜻)을 만나 배가 조난을 당했는데 무사히 구조될 때까지의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사도행전 27-28장)한 것이 놀라웠습니다.

 

G : 실제 역사상으로도 큰 인물의 동반자와 기록자를 겸한 사례가 있나요?

P :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가 그러하고, 공자님과 제자들의 어록인 논어,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남긴 여러 저작이 그 결과물들인 셈입니다.

   

Note

1] 사도 요한이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기록한 것을 두고 크리스천 작가인 김성일 장로는 그의 장편소설《제국과 천국 上》(1987)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던 요한은 그가 제일 먼저 스승의 권능을 이어받고 싶었다. 그래서 예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지 않을 때에도 몰래 스승을 따라다녔다. 기회를 봐서 스승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가 보고 들은 것은 엄청 많았다. 그가 노렸던 결정적인 찬스는 스승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왔다. 이 사실을 요한은 그가 기술한 복음서(요한복음 19:25-27)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것이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지만 요한은 마리아를 예배소로 모시고 가서 정성껏 봉양하였으며, 백발이 되도록 독신으로 지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어머니와 그 곁에 사랑하는 제자가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에게는 “보아라. 네 어머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예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2] 에스겔서 1장은 성경에 기록된 외계인의 우주선을 묘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Close Encounter of the Third Kind>(1982)에 나오는 우주선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에스겔서(1:15-19)를 읽어보면, 유대인인 스필버그가 성경을 토대로 우주선을 그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네 얼굴을 가진 각각의 생물들 옆 땅 위에 바퀴가 하나씩 있었다.

그 바퀴들의 모양과 구조는 황옥이 빛나는 것 같고 네 개 모두 똑같이 생겼다.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처럼 생겼다.
바퀴들은 움직일 때 네 방향 가운데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나아가면서 옆으로 방향을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 바퀴의 둘레는 높고 놀랍게 생겼다. 바퀴 네 개가 다 그 둘레에 눈들이 가득 달려 있었다.

생물들이 움직이면 바퀴들도 그 옆에서 움직였고 생물들이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바퀴들도 들어 올려졌다.

 

3]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성당 건축에 착공한 이래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불법 건축물이었다고 화제가 된 바 있다. 초창기 수석 건축가였던 아우디가 성당 부지를 관할하는 산 마르티 시청에 건축허가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허가가 나지 않은 채 1897년 바르셀로나 市로 편입되었다. 그 후 아무도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허가 없이 건축 중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130여 년이 흘렀다. 이러한 사실을 2016년 바르셀로나 시청에서 공식 확인하고 성당 건축위원회와 협의에 들어갔다. 스페인 카탈루니아의 건축 규정은 무허가 건축물일지라고 일정 기간 권리자의 이의제기 없이 존속한 경우 존치를 허용하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측은 130년간의 과태료를 납부하고 건축을 계속할 수 있었다. 성당 건축위원회는 3600만 유로(약 4천만 달러)를 10년에 걸쳐 시청에 분할 지급하기로 했는데 성당의 1년 입장료 및 헌금 수입이 5000만 유로 이상이므로 건축예산에 큰 지장은 없다고 한다.

1926년 가우디가 퇴근 길 교통사고로 비명(非命)에 간 뒤 그동안 가우디의 기본 스케치에 의존하여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공사를 해왔다. 더욱이 스페인 내전 당시 바르셀로나를 지배했던 아나키스트 민병대가 프랑코 편을 든 가톨릭 교회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성가족 성당 역시 지하의 가우디 사무실에는 불을 질렀음에도 다행히 성당 건물은 무사할 수 있었다.

2010년 11월 7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바르셀로나를 방문했을 때 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준(準)대성전(Minor Basilica)으로 승격시키고 축성 미사를 봉헌해 화제가 되었다. 축성 미사는 성당 건물이 완공되거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주 이례적으로 교황과 가톨릭계가 이 성당에 보인 관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가우디가 건설한 파사드 부분은 2005년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