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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Day] 역사 드라마로 읽는 신・구약 중간사

Onepark 2024. 4. 13. 06:00

G : 지난 달 Book's Day (3.13)에는 책 소개를 한 번 거르셨지요?

P : 어쩌다 보니 빼먹었네요. 소설, 역사, 여행기 등 장르에 관계없이 내가 읽었던 책을 인용문 중심으로 소개하는 코너인데 종심소욕(從心所欲)의 나이에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베스트셀러나 화제성 여부와 관계없이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한 구절이 있는 좋은 책이라면 기회가 되는 대로 소개하겠습니다. 다만, 다음 달 13일 전후에 멀리 여행을 떠날 예정이므로 그때도 불가불 쉬어야겠습니다.

 

G : 인기 드라마처럼 손꼽아 기다리는 콘텐츠는 아니므로 편하실 때 소개해 주시면 되죠. 오늘은 어떤 책을 들고 오셨나요?

P : 류모세 목사[1]의《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 역사가 뚫린다 성경이 보인다》(두란노, 2012)는 책인데 제가 산 것은 2020년에 9쇄를 찍은 것이므로 종교 분야의 스테디 셀러라 할 수 있어요.

 

 

G : 성경을 드라마처럼 성우들이 연기하듯이 낭독해주는 오디오북이 한때 인기를 끌었었지요.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게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책인가요?

P : 성경의 신약(New Testament)이라면 4복음서와 사도행전, 사도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의 서간,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말하지요. 신약 성경이 나오게 된 역사적・지리적 배경을 알아보는 내용입니다. 부제가 "신약 편 1부:주전331-주전4년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부터 헤롯대왕의 죽음까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구약의 말라기서를 읽은 후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신약의 복음서까지 300여 년의 기간을 선지자의 예언이 사라진 '암흑기'라 부릅니다. 그래서 건너뛰는 경향이 있는데 세계사를 보면 이때는 그리스 문화가 절정을 이루고 로마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할 수 있어요. 교양있는 현대인이라면 문사철(文史哲)을 떠올리는데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요세푸스의 《유대인 전쟁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탈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모두 이때 활동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인류의 지혜와 지식이 처음으로 꽃피우던 시대였으니 하나님도 인간의 지식이 만발할 때 선지자의 말도 먹혀들지 않겠다(?) 보시고 양보하신 거라 생각됩니다.

 

* 류모세 목사는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봄, 가을 학기에 시리즈로 《역사드라마로 읽는 성경》 강의를 하고 있다.

 

G : 제가 알기로도 서양에서는 알렉산더, 카이사르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출현하였고 클레오파트라, 헤롯 대왕이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던가요?! 이때의 역사 드라마가 소설, 영화로 만들어진 것만 해도 수십 편이 될 겁니다.

P : 그런데 여기에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다니엘서의 관련 예언과 실제 역사를 비교해봅시다. 우선 다니엘서 8장을 보면 알렉산더가 종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를 통일하고 그 여세를 몰아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정복하고 세상의 끝이라는 인도까지 공략했는지 나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11:41에는 그의 왕국이 어떻게 분할(Diadochi)되는지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지요.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는 알렉산더의 비범함에 감탄한 나머지 아들을 훌륭한 왕으로 만들기 위해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초빙해 왕자의 선생으로 삼았다. 알렉산더는 이 대학자로부터 도덕, 정치, 경제, 역사, 의학 등 최고의 학문을 두루 섭렵했을 뿐 아니라, 호머의 《일리아드》와 같은 서사시 등도 배웠다. 특히 트로이 전쟁을 주제로 한 《일리아드》는 이후 알렉산 더에게 둘도 없는 '전술 교과서'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알렉산더는 그리스 문명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문명이라 확신했고, 이 문명을 그가 보기에 야만족에 불과한 페르시아인들에게 전파해야 한다 는 나름의 소명감에 불타 동방 원정의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그러면 잇수스 전투에서 알렉산더가 거둔 엄청난 승리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엄청난 대승은 신화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고대인들이 생각하듯 델포이 신탁에서 주어진 '신탁'의 결과물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사사받은 '이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군대에서 이성은 곧 전술로 발휘된다. 알렉산더는 한마디로 천재적인 전술가였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자신보다 10배 이상 많은 적과 싸우면서도 미미한 전사자만 내고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의 뛰어난 전술에 있었다.
알렉산더는 천재적 전술가였던 아버지 필립 2세로부터 그리스 최강 마케도니아의 중무장 보병을 전수받았다. 4.2m 길이의 장창을 든 중무장 보병이 밀집 대형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마케도니아의 밀집 방어(Phalanx)은 마치 거대한 고슴도치와도 같았다. 여기에 덧붙여 알렉산더는 고대 전쟁사에서 기병이 갖고 있는 기동력을 전쟁터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 . 그때까지는 단순히 보병은 보병끼리, 그리고 기병은 기병끼리 싸우는 것이 전투의 정석이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의 젊고 천재적인 왕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전투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알렉산더의 전술적 혜안으로는 보병이든 기병이든 '전쟁터'라는 거대한 장기판 위에서 그가 짠 전술에 따라 움직이는 '말'에 불과했다. 알렉산더는. 심심치 않게 적군의 보병에 맞서 자신의 기병을 투입하거나 때로 자신의 보병대를 적군의 기병대와 싸우게 했다. . .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 군대가 가진 힘을 극대화해서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가에 있었다. 천부적인 전술가였던 알렉산더에게 승리의 여신은 연전연승의 놀라운 결과물을 안겨주었다.
  33-34쪽

 

G : 네, 알렉산더가 군대를 이끌고 파죽지세로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를 평정할 때 유대 땅은 어떻게 보전될 수 있었지요? 

P : BC333년 東과 西가 격돌한 잇수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알렉산더는 다리우스 3세를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늘어나는 군대의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이집트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지중해 해안의 페니키아 도시들은 속속 넘어갔으나 두로는 방비를 더욱 굳건히 했어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높은 성벽이 지켜주고 북아프리카의 식민지 카르타고로부터 후방원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7개월에 걸친 포위와 공성전 끝에 두로를 함락시키고 저항한 시민 중 일부는 십자가형으로 처형하고 나머지는 노예로 잡아갔어요. 그 사이에 사마리아는 자진 항복하고 알렉산더에게 군사 8천명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유대인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어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그들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해방시켜준 데다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것까지 지원을 받았던 만큼 페르시아를 배신할 뜻이 없었던 거죠.

알렉산더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다는 말을 들은 유대 대제사장은 울긋불긋한 예복을 입고 흰옷을 입은 백성들을 이끌고 알렉산더를 맞으러 나갔습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알렉산더는 무장하지 않은 유대인의 행렬을 보자 유대인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대제사장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 제사를 드렸다고 해요. 알렉산더가 원정을 떠나기 전에 꿈을 꾸었는데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체하지 말고 세계정복의 뜻을 이루라"고 격려해 주었다는 거예요! 대제사장은 다니엘서 8장에 그와 같은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줬을 겁니다.  위의 책, 40-41쪽.

 

* 예루살렘 성전에서 다니엘서의 예언을 듣는 알렉산더 대왕. 세바스티노 콩카의 그림.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으로 시작된 그리스 시대는 이스라엘과 이후 초기 기독교 역사에까지 미치는 두 가지 의미심장한 영향을 남겼다.
첫째, 유대인들의 광범위한 디아스포라(Diaspora, 분산) 현상이다. 포로기 이후 시작된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그리스 시대를 거치며 그 절정에 다다랐는데, 이것은 알렉산더가 자신이 건설한 신도시에 유대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 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대에 만연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현상은 이후 초기 기독교가 전파되고 확산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둘째, 불후의 역작인 70인역 성경의 탄생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당시의 세계 공용어인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Septuagint)은 프톨레미 2세의 요청을 받고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이 알렉산드리아로 파견한 70명(혹은 72명)의 유대 학자들이 번역한 것이다. 처음에 이 성경은 학문을 사랑한 프톨레미 2세(BC283~247)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비치할 목적으로 번역되었지만, 번역에 참가한 유대 학자들의 또 다른 바람은 이미 반세기 이상 이집트 사회에 동화되어 살면서 히브리어를 잊어버린 유대인 2세들이 이 성경을 읽고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기를 기대한 것이다.
70인역 성경은 그런 점에서 분명 유대 학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민, 아울러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과도 초래했다. 그것은 이방인 사이에 소통을 이루는 창구로 사용된 것인데, 70인역 성경은 평상시 유대교 신앙에 관심을 보이던 이교도들을 흡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이후 70인역 성경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가정뿐 아니라 진리를 사모하는 이교도 가정의 서재에도 빠짐없이 비치된 필독서가 되었다. 이로써 할례와 음식 정결법으로 인해 유대교가 시대착오적이고 미신적인 종교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이교도 지식인들 가운데 많은 수가 70인역 성경을 통해 유대교 진리의 진수를 맛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주후 1세기에는 무려 300만 명에 달하는 유대교 개종자들이 나왔고, 굳이 개종 절차까지 밟지 않더라도 유대교에 지대한 관심과 호의를 보이며 회당 예배에도 참석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불리는 거대한 지지 세력까지 등장했다.
그런 점에서 프톨레미 통치기에 이루어진 70인역 성경의 번역은 초기 기독교 전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바울을 비롯한 신약 시대 사도 들이 인용한 성경이 바로 70인역 성경이었고, 초대 교회부터 보편적인 용어로 채택된 '그리스도'란 단어 역시 히브리어인 '마쉬아흐'(메시아)에 대한 그리스어, 즉 70인역 성경에 나오는 단어였다. 바울이 수차례 전도 여행을 다니며 로마 제국을 누빌 때 바울은 청중에게 전혀 생소한 교리를 설파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청중은 이미 70인역 성경을 통해 구약성경에 무적이나 친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86-87쪽

 

G : 사실, 우리 한민족도 전체 인구의 1/8이 해외로 나갔다는 점에서 디아스포라가 광범위하게 일어난 것은 유대인 못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가 알기로 구약은 유대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었는데, 300여 년의 기간 중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이방인을 포함한 세상사람들에 대해 복음을 선포하실 수 있도록 무대와 배경을 바꾸고 계셨던 거네요. 하나님의 '침묵기'가 아니라 '막간 준비기'라고 해야 맞겠습니다 그려.

P : 저도 이번 강의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의 말씀을 70인역을 통해 알게 된 헬라인을 비롯한 이방인들 역시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갖지 않았겠어요? 우리도 그동안 Book's Day 마다 책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이야기했는데, 성리학에 매몰되어 있던 조선의 선비들이 북경에 가서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 마테오 리치가 한문으로 저술한 천주교 교리서)를 접하고 받은 놀라움, 독일인들이 신부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을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경을 읽고 받았던 감동 못지 않았을 겁니다.

 

G : 저도 그 느낌을 알 것 같아요. 저도 대학 다닐 때 일본어를 배우면서 일본책을 파는 서점에 갔는데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더라고요. 

P : 그렇습니다. 신・구약 중간기에 그리스・로마의 영향력 하에 있던 곳에서는 헬라어가 공용어였는데 그 당시 교육을 받은 지성적인 사람들은 집에 70인역 성경책을 갖고 있었다 해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부유해진 사람들이 집에 피아노를 두게 되자 악보 출판이 성행했던 것과 비슷했다고 할까요? 그때도 70인역의 창세기, 출애굽기, 시편과 잠언 등은 사람들이 많이 읽었을 겁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유대 회당에 가면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뿐만 아니라 경건한 삶을 동경하는 헬라인과 로마인, 성차별을 받고 있던 교양있는 여인들도 많이 경청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온누리교회 교인들은 CGN이 퐁당(fondant app) 3주년을 맞아 제작한 사도 바울의 이방인 전도사역을 현장을 찾아다니며 '바울이 이곳에 와서는 무엇을 했다'고 자세히(5W1H) 해설하는 〈바울로부터〉 시리즈를 가지고 QT를 하고 있어요. 그 해설을 들어보면 사도 바울은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설명 [2] 해줬다는 해설이 많이 나오거든요.

 

G : 그렇다면 선지자 다니엘이 내다 본 이 세상의 종말(Apocalypse)은 어떠할지 궁금해집니다.

P : 때마침 류모세 목사님이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오는 9월부터 8주간에 걸쳐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 요한계시록 편〉(아래 포스터 참조)을 강의할 예정이라고 공지하셨어요. 온누리교회 교인이 아니더라도 들을 수 있으니 그때 등록하고 들어보세요.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개역개정 다니엘서 12:1-4

At that time Michael, the great prince who protects your people, will arise. There will be a time of distress such as has not happened from the beginning of nations until then. But at that time your people—everyone whose name is found written in the book—will be delivered.

Multitudes who sleep in the dust of the earth will awake: some to everlasting life, others to shame and everlasting contempt.

Those who are wise will shine like the brightness of the heavens, and those who lead many to righteousness, like the stars for ever and ever.

But you, Daniel, roll up and seal the words of the scroll until the time of the end. Many will go here and there to increase knowledge.”  New International Version  Daniel 12:1-4

 

류모세 목사의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 요한계시록편〉 강의 주제 (계획)

  1. 종교개혁자들은 왜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지목했나?
  2. 70 이레 예언, 7년 대환난, 그리고 비밀휴거설, 집중분석!
  3. 아마겟돈 전쟁, 언제 어디서 왜 일어날까?
  4. 이스라엘 회복과 제3성전, 예언의 성취인가, 미혹의 영인가?
  5. 베리칩, 코로나 백신이 짐승의 표라고?

 

  6. 천년왕국, 곡과 마곡의 전쟁, 그리고 백보좌심판
  7. 자유주의, 세대주의, 그리고 종교통합운동
  8. 2300 주야 예언, 아사셀 염소, 그리고 144,000명 의인
  9. 차별금지법 밀어붙이는 미국, 어린 양인가, 용인가?
10. 라오디게아 교회에 전하는 긴급한 말씀

 

G : 아니~! 2500년 전의 선지자 다니엘이 예언[3]하기를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때면 사람의 이동이 빨라지고 지식이 크게 늘어난다(다니엘 12:4)고 했다고요? 갈수록 교통수단의 속도가 빨라지고 인공지능(AI)으로 사람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까?

P : 바벨 탑 이후 혼란스러웠던 사람의 언어가 AI번역기를 통해 자유자재로 소통이 되는 것도 하나의 징표라 할 수 있지요. 그때는 밤중의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니 항상 깨어있으라고 하셨지요. 종말론을 곧이 곧대로 믿기 보다는 왜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지 경각심을 갖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Note

1] 류모세 목사는 이색적인 선교사(tentmaker)이다. 경희대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히브리의대 세포생리학 석사 과정과 히브리의대 약리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스라엘에서 11년간 공부하고 온누리교회 이스라엘 베이스 지역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성서시대 유대인들의 문화를 알아야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열린다 성경> 전 7권 시리즈를 기획・출간하고 온누리교회 협동목사로서 교인들을 상대로 시리즈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은 신학적・영적인 해석으로 덧입혀진 성경을 원래의 역사 스토리로 재현한 것이다. 성경 역사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의 땅, 즉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 우리에게 익숙한 제국들의 역사가 맞물려 돌아가는 흥미진진한 역사 드라마로 성경을 풀어냈다. 현장방문을 통해서는 류 목사의 인솔하에 성경 역사가 펼쳐진 고대 근동 지방을 답사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2] 이러한 배경 지식을 갖고 있어야 사도행전을 읽을 때 "보인다 성경!"하고 외치게 된다. 이를테면 13장 6~7절에서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자와 성경 교사를 하고 있던 바나바와 사울은 그 교회의 파송을 받아 바나바의 고향인 크레테 섬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살라미에 도착한 그들은 그 섬을 가로질러 바보로 갔다. 거기서 그들은 바예수라는 유대 사람 마술사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현지 총독 서기오 바울의 초청을 받았다. 지성적이었던 총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바나바와 사울을 관저로 부른 것이었다.

그런데 바나바와 사울은 평탄한 해안 도로가 아니라 굳이 해발 3000m가 넘는 높은 산을 가로질러 갔을까? 이 점은 CGN의 퐁당 3년 기념 다큐 "바울로부터" 제2편을 보면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그것은 산속에 아주 큰 구리 광산이 있었는데 헤롯왕이 유대인 노동자들을 많이 보내 유대인 마을이 형성돼 있었고 바나바와 사울은 그곳을 찾아가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이러한 소식이 현지 총독에게 보고되어 사실 확인 차 총독에게 불려간 것이었을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그때 사도 바울을 만나기 전이었음에도 전문(傳聞)을 통해 이미 70인역 성경을 알고 있던(이를 '지성적이었다'고 표현) 총독이 그 이후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벌어진 일을 듣고 싶어 바나바와 사울을 초청한 것이었다고 썼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최측근이었던 거짓 예언자 바예수가 방해를 한 것이었고 사울의 준엄한 질타를 받은 그가 실명하는 것을 본 총독은 '낮은 자'라는 뜻의 바울로 이름을 바꾼 사울('높은 자'라는 뜻)의 가르침에 놀라고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누가는 13:13에서 '바울과 그 일행'이라고 적어 그때부터 바울이 전도여행의 이니셔티브(leadership)를 갖게 되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3] 일반 기독교인들은 다니엘서(Book of Daniel)를 느브갓네사르 왕에 의해 바빌론에 인질로 붙잡혀 간 다니엘이 쓴 예언서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성서학자들은 다니엘서의 저자가 다니엘만이 아니고 BC2세기 경 후세 사람이 다니엘의 이름을 빌어 추가한 책이라 보고 있다. 그 근거는 2장에서 7장까지는 아람어로, 1장과 8~12장은 히브리어로 쓰였으며, 내용에 있어서도 1~6장은 궁정에서의 이야기, 7~12장은 미래에 대한 종말론적 환상(apocalyptic visions)을 다루어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7:25, 9:27, 11:31 등 적그리스도(Antichrist)에 대한 언급은 실제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렇게 자세하게 묘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바로 알렉산더 사후 그의 장군 중의 한 사람인 셀류코스(Seleucus)가 세운 왕국이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지만 경쟁국인 프톨레미 왕국과 신흥 강국 로마의 사이에 끼어 국력이 크게 쇠퇴하였다. 특히 안티오쿠스(IV) 에피파네스 왕에 이르러서는 나라 재정이 고갈되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상할 수 없는 만행(다니엘 11:21-31) 을 저질렀는데 이를 마치 본 것처럼 기술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