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eople

Holiness

[선교] 이방 선교의 전범 - 사도 바울의 빌립보 여행

Onepark 2024. 5. 7. 07:15

G : 오늘은 책 소개가 아니라 동영상을 소개해주신다고요?

P : 네,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을 현지 답사를 통해 재현한 퐁당(스마트폰 앱)의 다큐 "바울로부터" 입니다. 기독교 채널인 CGN에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사도행전의 무대인 예루살렘, 키프로스, 튀르키예와 그리스 등지로 다니며 촬영한 것입니다. 탤런트 차인표가 바울 전문가인 최종상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성경 기록을 직접 확인하고 보여주고 있어요. 스마트폰에 퐁당 앱을 설치하고 찾아보거나 YouTube 동영상을 찾아보시면 됩니다. 제5편은 사도 바울 일행이 드로아(트로이)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네압볼리(現 카발라)에서 마케도니아 빌립보(현재 불가리아의 제2도시인 플로브디프)로 선교여행을 떠난 내용입니다.

 

G : 와~, 드로아라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의 무대가 되었던, 그리스 군의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유적지 아닙니까! 

P : 네, 맞습니다. 독일의 하인리히 쉴리이만이 〈일리아드〉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적은 것이라 믿고 폐허로 변한 땅을 발굴하여 몇 천년의 트로이 역사를 고증해내었죠. 그 지역에 전란과 지진, 해일이 일어나 여러 층으로 파묻혀 있던 청동기 시대의 성벽을 발견했던 겁니다.

 

* 다다넬스 해협의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주경간장) 2023m의 차나칼레 대교

 

G : 그곳은 유럽과 아시아가 맞닿아 있는 다다넬스 해협에 위치하여 얼마전 국내 기업이 단기간에 설계 시공하여 완공한 세계 최장의 현수교 차나칼레 대교가 건설된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P : 혹시 영화 〈Water Diviner〉(2014) 보셨나요? 러셀 크로우가 오스트레일리아 광야의 우물파는 농부(water diviner)로 나오는데 1차 세계대전 때 영연방군(ANZAC) 으로 참전한 세 아들을 이곳 갈리폴리 상륙작전에서 잃고 격전지의 땅을 파서 아들들의 유해라도 찾으려고 이곳을 찾아온다는 내용입니다.[1] 그때 오스만 투르크의 케말파샤 장군이 오스만의 적은 수의 병력을 이끌고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 호주와 뉴질랜드 ANZAC 군대와 맞서 1915년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했던 것으로 유명하지요.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알렉산더의 진격을 재현하려던 처칠의 꿈을 무산시켰으니까요. 그 결과 케말파샤 장군은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을 건설하여 튀르키예의 국부(國父)인 아타튀르크가 되었지요.

 

G : 사도 바울의 유럽 선교는 그와 같은 역사적・지리적 배경을 갖고 있네요~.

P : 네, 그렇습니다. 과거 드로아는 트로이 전쟁에서 보듯이 그리스(유럽)가 아시아를 공격하는 통로였어요. 이번에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교가 역(逆)으로 유럽으로 진출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이 바다를 건너와 페르시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와서 우리를 도우시요" 간청을 받고서 말이죠. 누가가 밝히지는 않았지만 금발의 그 남자가 수염이 없었기에 동전에도 새겨져 있는 알렉산더 대왕임을 바로 알아 보았다고 해요.

 

G : 어떤 '전율과 흥분' 같은 게 느껴지는데요. 차인표 배우와 함께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길인데, 2천 300년 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건넜고, 가까이 100여년 전에는 처칠이 원대한 작전계획을 세우고 영연방군이 육탄전을 벌였던 곳을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아주 평화롭게 세계에서 제일 긴 현수교를 놓았다니요! 

P : 사도 바울은 로마인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빌립보로 걸어서 갔고 결국은 그를 처형했던 로마제국으로 하여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만들었어요. 바로 그 현장을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세계인들이 감탄하는 기술력과 공법으로 48개월이라는 경이로운 기간 내에 교량을 완성했으니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불과 20년 전 영종대교 건설할 때의 애로 사항에 비추어보면 우리가 단숨에 오일 쇼크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든 사우디 쥬베일 항만공사 못지 않은 쾌거였어요![2] 무엇보다도 우리가 해외 선교를 나가더라도 '싸워서 정복'하는 게 아니라 '건설과 협력'이라는 기치를 내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3]

 

* 드로아에서 바울은 마케도니아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 부탁하는 환상을 보고 바다 건너 유럽땅 네압볼리로 간다. 출처: CGN "바울로부터 5편" 네압볼리 기념교회의 벽화

 

G : 마케도니아 사람의 간청이 있었기에 바울 일행은 곧바로 마케도니아의 제일 큰 도시 빌립보로 향했던 거로군요.

P : 네,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리포스 2세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도시였고, 당시 네압볼리('New Polis'라는 뜻)에서 빌립보까지는 로마가 건설한 에그나티아 가도가 잘 닦여 있었습니다. 

 

G : 그럼 빌립보에서는 무슨 일들이 바울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P : 이에 관해서는 바울 전도단에 직접 참여했던 누가가 아주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4] 누가는 드로아에서 바울 전도단에 합류했기에 그 때부터 그들(they)이라는 3인칭을 우리(we)라는 1인칭으로 바꿨어요.

 

성령께서 아시아 지방에 말씀 전하는 것을 막으셨기 때문에 바울과 그 일행은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 무시아 지방 가까이 이르러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가게 됐습니다.
한밤중에 바울은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마케도니아로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라고 간청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확신하고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는 드로아에서 바다로 나와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곧장 갔다가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첫째가는 도시인 빌립보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며칠을 머물렀습니다.
안식일에 우리는 혹 기도할 곳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성문 밖 강가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거기 모여 있던 여인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듣던 사람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두아디라 도시에서 온 자주색 옷감 장수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하셨습니다.
루디아는 그 집안 식구들과 함께 세례를 받고 "저를 참된 신자로 여기신다면 제 집에 오셔서 머물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면서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귀신 들린 한 여종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 아이는 점을 쳐서 자기 주인들에게 아주 많은 돈을 벌어 주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로 당신들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아이가 며칠 동안이나 이렇게 계속하자 참다못한 바울이 돌아서서 귀신에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명한다. 그 아이에게서 당장 나오라!" 바로 그 순간 귀신이 그 아이에게서 나갔습니다.
  사도행전 16:6-18

 

G : 사도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환영받을 것은 기대하지 않았더라도 유대 회당은 왜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P :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 가든지 성인 남자 10명 이상 모이면 회당(synagogue)부터 만듭니다. 그런데 당시 빌립보에는 유대인 거주민도 드물고 회당을 만들 여건이 안 되었으므로 바빌론 포로 시절의 전통에 따라 유대인들은 강가에 가서 기도를 드리곤 했지요. 바울 일행도 기도를 하고 말씀을 나눌 때 그 부근에 있던 루디아라는 여자가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회당이 아닌 곳에서 낯선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하나님의 영이 작용하여 자주색 고급 원단을 취급하는 상인 루디아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청종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간청하여 그녀의 집으로 일행을 초대했습니다.  바울 일행의 후원자를 자청한 것이지요. 

 

* 빌립보 유적지의 루디아 기념교회. 출처: CGN 퐁당에서 캡쳐

 

G :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와 누가라는 신실한 동역자(collaborator)를 얻은 데 이어 루디아라는 든든한 후원자(financial supporter)까지 얻은 셈이군요.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 교회를 세우러 갔습니다. 노방 전도를 한 게 아니라면 교인들은 어떻게 모았을까요?

P : 바울이 구브로 섬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제1차 전도여행을 갔을 때와 빌립보는 여러 가지 상황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그 길을 열어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은 예상과 사뭇 달랐습니다. 점 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며 "이 분들이 하나님께 구원 받는 길을 알려줄 것"이라고 PR을 해주었습니다. 말하자면 부탁하지도 않은 광고 방송을 해준 셈인데 바울로서는 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쳐주었다가 곤경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여종을 경계한 나머지 귀신을 내쫓아 그녀의 입을 막았습니다.[5] 그 결과는 사도행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돈 벌 소망이 사라진 것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시장에 있는 관리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로마 관리들 앞에 데려다 놓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 사람으로서 우리 도시에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로마 사람들이 받아들이거나 실천할 수 없는 풍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도 가세해 바울과 실라를 공격하자 로마 관리들은 그들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관리들은 그들을 심하게 때린 뒤 감옥에 던져 넣고는 간수에게 그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런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깊숙한 감방에 가두고 발에는 쇠고랑을 채워 두었습니다.
한밤중쯤 됐을 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자 다른 죄수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이 기반부터 흔들렸습니다. 곧바로 감옥 문이 모두 열리고 죄수들을 묶고 있던 쇠사슬도 다 풀렸습니다.
간수가 잠깨어 일어나 감옥 문이 모두 열린 것을 보자 죄수들이 도망친 줄로 생각하고 칼을 뽑아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 있소!”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하더니 부리나케 달려 들어와 부들부들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들, 제가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바울과 실라는 그와 그 온 집안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 시간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 부위를 씻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당장 그와 그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으로 인해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날이 밝자 로마 관리들이 부하들을 보내 간수에게 명령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풀어 주라.”
그러자 간수가 바울에게 “저희 관리들이 당신과 실라를 풀어 주라고 전갈을 보냈으니 이제 나와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그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로마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재판도 없이 공개 석상에서 우리를 때리고 감옥에 처넣고는 이제 와서 우리를 몰래 내보내려 하시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라고 하시오.”
부하들이 그대로 자기 관리들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직접 감옥까지 와서 사정사정하며 바울과 실라를 정중히 모시고는 그 도시를 떠나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나온 뒤 루디아의 집으로 가 형제들을 만나 위로해 주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사도행전 16:19-40

 

G : 바울이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그녀는 더 이상 돈 버는 도구로 쓰이지 않게 되었는데 바울과 실라는 오히려 모함을 받고 매를 맞은 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 도시에 소란을 일으키고 풍습을 교란시켰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로마 관헌에게 태형(笞刑: 매질)과 구류형 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P :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여종 주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점치는 영업을 방해한 것이지만 인권보호의 견지에서 죄가 되지 않습니다. 절차상으로도 로마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구제를 받지 못했으므로 오히려 로마 관헌의 위법행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오묘하게 역사하신 게 드러납니다.

즉, 투옥된 수형자의 경건한 기도 생활 → 다른 죄수와 간수의 의외라는 반응 → 지진이 일어나 감옥을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감방에 잔류 → 책임감에 자결하려던 간수를 제지 → 간수의 감동과 그의 가족이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 영접 → 로마 관헌의 실책 인정과 방면 → 바울과 실라는 정당한 항의를 하고, 로마 관헌에게는 현지에서 사업하는 루디아를 소개 → 로마 관헌 외에 루디아와 간수, 그들의 가족의 환송을 받으며 빌립보를 떠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 빌립보 유적지의 관청과 감옥 터. 출처: 동서울 광염교회 블로그

 

G :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고초를 겪었지만 복음을 전하는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례 받은 교인과 잠재적 교인들을 다수 모으는 큰 성과를 거두었어요. 

P : 빌립보의 다른 주민들 역시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고 그 믿음을 실천할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축복이 임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어요. 바울이 떠난 후에도 빌립보 교인들은 구제와 선교에 있어서도 아주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6] 

 

G :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P : 저도 전에 전문인 선교 과정을 이수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에 관한 CGN 다큐를 보면서 선교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다음 3요소를 갖춰야겠구나. 즉, ① 복음전도의 소명의식과 선교에 대한 열정, ② 신실한 동역자와 물심 양면의 후원자, ③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교인들이 반드시 필요하구나,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때 그때 가장 적절하고 유효한 방법을 택해 이루어주시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우리가 어느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든지 선교활동에는 선교의 소명의식과 신실한 동역자과 후원자, 믿음 좋은 교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바울 시대부터 변함 없는 선교의 전범(典範, archetype)이라고 생각합니다.[7]

 

Note

1]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면 으레 공원 한쪽에는 우리나라 충혼탑 같은 기념관을 볼 수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한국전에도 참여하였거니와 1, 2차 세계대전에도 영연방군의 일원(ANZAC: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으로 참전하였다. 그런데 1915년의 갈리폴리 상륙작전에서는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너무 많이 희생되었기에 더욱 특별히 애도를 하는 것 같았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호주에서 성장한 러셀 크로우가 이 영화의 감독과 주연을 맡아 갈리폴리 전투 100주년을 맞아 영화를 개봉을 한 것도 그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영화에서는 그의 아들들이 쓰러졌다고 여겨지는 격전지에서 그가 피눈물을 흘리는 장면, 천신만고 전쟁터를 헤매다가 그리스 군대가 공격해 올 때 어느 농가에 호주식 양수 풍차가 서 있는 것을 보고 큰 아들이 살아 있다고 확신하는 장면, 마지막에 1차 대전 중에 남편을 잃은 숙소 여주인(올가 쿠릴렌코)이 그에게 청혼의 표시로 아주 단 커피를 내놓자 그가 깜짝 놀라는 장면 등이 생각난다.    

 

* 뉴질랜드 퀸즈타운 교외의 기념관에 ANZAC 장병의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소개한 포스터
* 러셀 크로우가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워터 디바이너'는 죽은 아들도 찾고 사랑도 얻는다.

 

2] 차나칼레(Canakkale) 대교는 국내에서 이순신대교를 건설하여 현수교 기술 자립화에 성공한 DL이앤씨와 유럽 사업 경험이 풍부한 SK에코플랜트가 '팀 이순신'을 구성해 진행했다. 2017년 차나칼레 대교 건설 사업 공고가 났을 때 DL-SK 컨소시엄은 당시 세계 1위의 기록 보유자인 일본 기업을 제치고 BOT(건설-운영-양도 방식의 민간투자 프로젝트 금융) 방식으로 수주에 성공했다. 2022년 차나칼레 대교 이전에는 1998년에 준공된 일본 고베 시와 시코쿠를 연결하는 아카시(明石) 해협 대교(주경간장 1991m, 주탑 높이 209.3m)가 세계 최장의 현수교였다.

다다넬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대교의 발주처는 튀르키예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여 주탑(에펠탑 320m, 도쿄타워 333m보다 더 높은 334m) 사이의 거리인 주경간장을 2023m로 못박았기에 최첨단 토목공학 기술을 총동원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경간장 2000m가 기술적인 한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현수교의 또 다른 이름은 갈리폴리 전투가 벌어진 연도 '1915년'을 붙이고 있다. 이 교량에 들어간 철근과 강판, 강선 등 철제 자재는 포스코에서 생산한 것으로 포스코 강선을 엮어 만든 케이블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장강도를 자랑한다.

 

3] 요즘 YouTube를 보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여성들과 교제(long distance relationship: LDR, 장거리 연애)를 하는 사연을 많이 볼 수 있다. K팝ㆍK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기성세대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언어교환 앱, Instagram, YouTube 등을 매개로 쉽게 현지 여성들의 호감을 사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YouTube에서 차나칼레를 검색하던 중 튀르키예를 여행하던 한국 젊은이가, 트로이 유적지보다도 한국 건설사가 시공한 차나칼레 대교를 직접 보러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맺은 사연을 알게 되었다. Yoobeer라는 한국 청년이 차나칼레 대교를 보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버스를 타고 대교를 건너갔다고 한다. 이 과정을 YouTube 동영상으로 촬영하면서 현지 햄버거집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아리따운 튀르키예 아가씨를 보고 유튜브 촬영을 핑계로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녀가 대교 공사 현장에서 통번역사를 일한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슬비'라는 한국 이름도 갖고 있는 그녀는 튀르키예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대전 충남대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다녀왔으며  졸업과 동시에 현장 사무소에 취업하여 주탑에도 여러 번 올라갔었다는 말을 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그녀의 집이 있는, 튀르키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이즈미르로 야간 버스여행을 함께 하고 데이트를 하다가 한국과 이즈미르를 오간 끝에 결국 결혼에 골인하였다는 사연이었다.

그 청년에게는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 가서 누가를 만나고 환상 속에 마케도니아 사람을 만난 것이나 진배없는 사건이 2000년을 건너뛰어 차나칼레 대교를 매개로 현실 속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4] 드로아에서 바울 전도단에 합류한 누가의 입장에서 바울의 언행은 기이하고도 놀라운 (amazing) 일의 연속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드로아에는 유명한 의학교가 있었으므로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바울은 의도했던 아시아 전도 계획이 계속 틀어지자 심신이 피곤해진 나머지 진료를 받기 위해 드로아에 가서 누가를 만났던 것임에 틀림없다. 의학도인 누가로서는 300여년 전 그리스 나라의 대왕이었던 알렉산더를 환상 속에 보았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일어난 일들은 과학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하는 누가로서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누가는 바울과 그가 알리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도 깊어졌다.

누가는 영화 Paul, Apostle Of Christ (2018)에서 잘 생기고 훤칠한 그리스 인으로 나온다. 사도 바울에게 이방 사람 누가를 주치의이자 수행비서로서, 나중에 사도 바울의 행적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복음서까지 편찬한 동역자로 맺어주신 것은 이방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가 작용한 결과였다. 이 점은 같은 복음서를 쓴 마가와 함께 키프로스 섬을 방문했던 바나바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별로 많지 않은 것과 비교해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5] 사도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당시 루스드라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남자가 걸을 수 있게 하는 기적을 행하였다. 그러자 현지 주민들은 제우스 신과 그의 전령 헤르메스가 현현한 줄로 알았다가 바울이 이를 한사코 부인하자 그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 빌립보에서는 점치는 여종에게서 점치는 귀신을 쫓아내자 그동안 많은 돈을 벌었던 여종의 주인으로부터 바울과 실라는 치안교란죄로 고발을 당했다. 바울이 행한 축령술(exorcism)은 나중에 기독교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의 모델이 되었다.

 

6] 사도 바울은 아무런 선교 전략이나 계획도 없이 로마 군대의 퇴역 장병들이 많이 정착해 거주하고 있는 빌립보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방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 일행은 빌립보를 기점으로 하여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 그리스 전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방인에 대한 선교 사역을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빌립보는 바울과 실라, 그의 행적을 기록한 누가에게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 바울이 로마(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총독의 신문을 받았던 가이사랴라는 설도 있음)의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첫머리는 바울이 얼마나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사랑하고 있는지 구구절절이 보여주고 있다.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여러분 모두를 위해 항상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합니다.
이는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에 동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모두에 대해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것은 내가 여러분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사슬에 매였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확증할 때나 여러분 모두가 나와 함께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십니다.
나는 여러분의 사랑이 지혜와 모든 총명으로 더욱 풍성하게 돼서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의의 열매로 충만해져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빌립보서 1:3-11

 

7]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입장에서는 그가 처음으로 참여한 빌립보 전도여행에서 여성들의 역할에 크게 감명을 받은 것 같다. 그렇기에 그가 쓴 복음서에서는 가부장적인 고대사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성들의 행적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당시 여성들은 멸시 대상이었으며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의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재판관을 찾아가 그가 말을 들어줄 때까지 떼를 써야만 했다(18:2~5).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마리아라는 여인을 통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다(1:28~37). 당시 혼전 임신은 가문의 수치요, 드러나면 당사자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 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함으로써 하나님 을 향해 전적으로 신뢰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참여한다.

또한 7장에서 예수님은 그분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은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시고, 8장에서는 남성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사역을 도왔던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다른 많은 여인이 있었음을 누가는 기록한다. 10장에서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통해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일로 여겨졌던 '손님 대접'하는 일보다, 주님의 제자로서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하는지를 얘수님은 설명하신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알고 열한 사도(제자)들에게 이것을 알린 사람들이 바로 여인들이었다. 더욱이 누가복음은 이 여인들 의 이름을 상세히 소개한다(24:1~10). 이 일은 제자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되었다(24:11~12). 안창선, "누가복음 3", 생명의 삶, 2022.3, 22쪽

 

In 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