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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사람의 소원 - 경희기독인교수회 종강예배

Onepark 2024. 6. 14. 05:00

6월 13일 경희대학교 크리스천 교수들의 예배모임인 경희기독인교수회의 초대를 받고 종강 예배에 참석했다.

장소는 평소의 예배장소인 본관 4층이 아닌 정문 앞 노바 이탈리아노 3층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 홀이었다.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 간만에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가는데 볕이 따갑고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렇지~, 해마다 6월 중순이면 종강을 앞두고 기말시험 출제와 여름 방학 계획으로 마음이 바빴던 기억이 새로왔다.

 

경희기독인교수회(회장 신건철 명예교수)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퇴직 교수회원들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며 2층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예배 후에 점심까지 대접한다고 했다.

1학기를 마감하는 자리였으므로 예배가 끝난 후 신건철 회장이 기독인교수회의 장소 세팅과 찬송 반주, 점심 도시락 준비 등을 도와주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순서도 있었다. 학교를 떠난 후 내가 제일 아쉬웠던 게 교수를 수족처럼 도와주는 조교의 존재였다. 퇴직 후 한동안 컴퓨터 HW/SW나 파일 처리, 스마트폰 앱 관리를 못해 쩔쩔매곤 했었으니 말이다.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과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두 곡을 부른 후 성경봉독에 이어 오늘 설교를 해주실 잠실 동문교회의 원로목사 손세용 목사님이 등단하셨다.

 

* 경희 기독인교수회 2024년 1학기 종강예배의 사회를 보는 미디어 학과 이 훈 교수
* 한 학기 동안 기독인교수회 예배 도우미로 수고해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신건철 회장

 

오늘의 성경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가 유럽 땅에서 처음 개척한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 1장 19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이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온누리교회에서는 그 동안 10주에 걸쳐 퐁당 댜큐 "바울로부터"를 가지고 QT를 해온 터라 오늘 말씀의 배경과 주제가 대강 짐작이 되었다.

그런데 신세용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내가 생각했던 바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로 마음에 다가왔다. 내 자신이 소원이 무엇이냐 질문을 받은 듯, 마치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그만큼 나에게 실감나게 들렸기에 이날 순서지에 메모한 것을 토대로 설교 말씀을 재생해 보기로 한다.

 

* 빌립보서를 가지고 설교를 하시는 동문교회 손세용 원로목사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많이 쓰는 일이나 돈을 지출하는 곳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의 신학자 토머스 아퀴나스는 그의 소원이란 오직 주님 뿐이라고 고백했다. 성경을 보면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1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은 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하셨다. 이를테면 솔로몬 왕에게 백지수표를 주신 것이었는데 솔로몬은 부귀와 영화, 권세가 아닌 지혜를 구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나라를 다스릴 지혜뿐만 아니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셨다(열왕기상 3:5, 9-15).

 

오늘 읽은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감옥 안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의 소원을 이야기한다.

첫째로 아무일에나 부끄러움 없이 담대하게 사는 것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가난에 이르게 한 게으름이 부끄러운 것이다. 출세 못했다고 부끄러운 게 아니다. 직장이나 조직의 신뢰를 저버렸거나 인간관계에 문제를 일으켜 승진에서 탈락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교회에서 구치소 전도 사역을 나가보면 떳떳하지 못한 일로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미국의 농구 시합에서 스코어가 100대 0으로 경기가 끝난 일이 있었다. 텍사스 주의 지역 여자고등부 농구 경기였는데 한 골도 득점을 못한 달라스 아카데미 학교는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들을 원사이드하게 이긴 카버넌트 학교의 교장이 지역신문에 사죄 광고를 냈다. 상대팀의 약점을 알고도 일방적으로 게임을 운영한 것은 학교의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고 신앙적으로 문제가 많은 수치스러운 승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윤동주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소망한다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바울은 그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았다. 그러니 이를 위해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여겼다.

개신교의 토대를 이루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이를 따르고 전파하는 일에 우리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 성악가가 공연 무대에서는 환호와 갈채를 받고 기뻤으나 집에 돌아온 후에는 한없는 우울감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특순으로 찬양을 할 때에는 비록 박수갈채는 크지 않았음에도 감동적이었다. 그는 사람은 밥이 아니라 보람을 먹고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프린스턴 대학 총장이 이 대학의 상징적인 건물로 채플과 중앙도서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서관 건물이 채플보다 높아지지 않도록 지하로 4층까지 팠다는 비화를 공개했다.

대학생선교회(CCC)를 만들고 캠퍼스 복음화에 평생을 바치셨던 김준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하소서. 제가 무엇을 바라오리까. 주님이 주신 은혜가 제게 족하나이다. 저를 주님의 깊은 품안에 들이셔서 주님의 심장 고동소리를 듣고 살게 하소서. 나머지는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셋째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는 것이다.

바울은 옥에 갇힌 몸으로 죽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하면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라 말했다. 그렇게 하고는 싶지만 육신으로 있는 것이 그가 전도했던 여러 교인들에게 유익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면 끝내 살아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존재는 세상 사람들을 빛으로, 선한 일로 인도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어느 영국 젊은이가 한국 전쟁에 참천하여 중공군과 싸울 때 그의 총을 맞은 중공군 병사가 그의 목전에서 고통스럽게 죽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는 죽은 중공군 병사의 환영에 시달리며 힘들게 살았다. 그러던 중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전쟁 중의 비참한 거리의 광경만 떠올렸던 그는 한국이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마침 가죽 혁대의 바클이 고장나 수리를 맡겼더니 그가 6.25 참전용사임을 알아본 수리점 주인이 그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하며 수리비도 받지 않았다. 그는 깨달았다. 그가 한국전쟁에서 애먼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게 아니라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지키고 자유와 번영의 길로 이끌었던 보람찬 일이었음을 알았다. 그 후 그는 더 이상 중국사람의 환영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자동차에 나침반을 달아놓은 차주인에게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내비게이션이 길은 알려주지만 자기가 달리는 길이 올바른 방향인지는 나침반이 보여준다고 답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내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이 살만하고 좋아졌는가"하고 곧잘 자문(自問)을 했다고 한다.[1]

바로 부끄러움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다른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노바 이탈리아노에서 오찬을 나누기 전에 퇴직 후 근황을 소개하는 송재룡 교수. 맨 왼편은 손세용 목사
* 정년 퇴직 후에도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강의를 계속하고 있는 정완용 교수. 왼편은 정형근 교수

 

오늘 종강예배에 참석한 기독인교수회의 전현직 회원들은 한 층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주문한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이 훈 교수가 2부 순서의 사회를 보았다. 팬데믹 이후 자기가 2년 이상 예배 사회를 도맡아 하고 있다면서 퇴직 회원들에게 가나다 순으로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소감을 말씀해 주시라 했다.

퇴직 후 학교법인의 사무총장에 임명되어 본관 3층으로 자리를 옮긴 김 현 교수, 수 년 전에 한ㆍ중(대만)ㆍ일 동아시아 과제로 응모한 것이 탬플턴 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게 되어 지금도 프로젝트 조사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송재룡 교수, 기업의 ESG 친환경 경영에 자문도 하고 가덕도, 새만금, 대구 등 신설 공항의 환경영향 평가를 수행하고 있는 유정칠 교수가 근황을 소개했다.

또 법학전문대학원을 정년 퇴직한 후에도 연구년을 맞은 상법 교수 대신 계속하여 강의를 맡고 있는 정완용 교수, 법전원장과 행정법 교수 직을 그만 둔 다음 변호사로 복귀한 정형근 교수가 근황을 전했다. 특히 정형근 교수는 로펌의 공증업무를 맡고 있다고 하면서 요즘 세태의 단면을 소개했다. 유언 공증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정 자녀에게 재산을 몰아주는 유언을 남기고는 자녀들이 서로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낼 것을 당부하는 모순된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해 우리는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다.

 

* 은퇴 후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밝혀 박수를 받은 오준근 교수(중앙)
* 정년 퇴직후 학교 재직 시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정칠 교수

 

그 중에서 제일 놀랍고 이색적인 케이스는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을 역임한 오준근 교수였다. 오 교수는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히브리어를 새로 공부하는 등 인생 제2막에 도전하여 작년 말에 목사 안수를 받았노라고 말했다. 요즘 목사도 70세가 정년이지만 협력 목사의 경우 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다면서 뜻있는 크리스천 교수들의 이같은 노후 설계를 권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지금도 모닝 루틴이 학교 다닐 때나 비슷하다고 말하고 요즘 인공지능(AI) 검색기, 번역기를 사용하고 있는 AI 체험담의 일부를 소개했다. 또 챗GTP 같은 생성형 AI 때문에 학생들의 리포트 평가가 얼마나 힘들게 되었냐며 후배 교수들에게 안타까움과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나로서는 정년퇴직한 老교수로서 떳떳하게 자기가 공부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정보로 갈무리해서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지식의 큐레이션을 하고 있느니만큼 손세용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부분적으로 따르고 있는 게 아닐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2]

 

* 마지막에 연초에 퇴직한 신건철 회장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 왼편은 김형재 교수
* 현직 교수들의 자기 소개 순서에서 정년이 수년내로 임박했다고 말하는 지리학과 주성재 교수

 

Note

1] 미국의 시인 랄프 에머슨은 그의 시 "What is Success?" 에서 "당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편해지는 것 / 이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시의 전문을 영문과 우리말 번역으로 보려면 이곳을 클릭.

 

2] 필자가 양재온누리 교회에 다니면서 블로그에 올린 신앙 관련 기사가 숫적으로 적지 않다. 일과성(一過性)으로 끝날 수 있는 종강 예배의 이모저모를 이 같이 인터넷에 낱낱이 올림으로써 사람들이 경희대 기독인교수회에서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알려주는 블로그 포스팅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법률제도에 관한 Wikipedia식 온라인 법률백과사전 KoreanLII를 13년째 운영하면서 한국의 법률 개념과 관련된 성경구절이 생각나는 대로 각주에 달아놓아 한국의 법제(法制)도 넓게 보면 성경말씀과 같은 맥락 위에 서있음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예컨대 KoreanLII의 Repentance (회개) 항목 참조.

 

그동안 내가 올린 블로그 기사를 보아도 퐁당의 다큐 양상 "바울로부터"를 소개하면서 사도 바울은 왜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의 소원을 밝히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파악할 수 있게끔 해놓았다. 왜냐하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금발의 마게도니아인이 이리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는 환영을 보고 유럽 땅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개척한 교회인 데다 바울의 전도활동 내내 그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또 빌립보서에서 감옥 이야기를 꺼내고 그가 굳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편이 훨씬 좋은 일이라 말한 까닭은 바울이 성령의 계시로 빌립보에 갔음에도 현지 주민의 모함에 빠져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고, 서신을 쓰던 당시에서 곱게 풀려나기는커녕 로마 감옥에서 언제 순교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빌립보서 1:13에서 감옥의 시위대 사람들을 언급한 것은 로마 가택연금 시절에는 로마 병사 1명만 지키고 있었을 뿐이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빌립보서 1:25, 26을 보면 빌립보를 다시 방문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즉, AD67년 로마 대화재로 민심이 흉흉해져 로마의 지하 감옥에 다시 갇혔을 때가 아니라 AD57년 유월절에 바울이 예루살렘에 갔다가 성전에서 체포된 후 로마로 호송되기 전 가이사랴 유대 주재 로마 총독의 직할 감옥에 2년간 갇혀 있을 때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