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People

Holiness

[QT] 위기에 처했을 때가 은혜와 구원의 때다

Onepark 2024. 3. 21. 09:30

시편 57편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다윗의 선언으로 유명한 시편이다.
일찍이 청계천에서 빈민사역을 하였던 김진홍 목사님은 이 구절을 가지고 베스트 셀러(100쇄를 훌쩍 넘긴 Steady seller) 책을 내시기도 했다.

 

시편 57편은 여러 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장면을 배경으로 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다윗이 사울왕의 부마가 되었으나 그의 인기가 사울왕을 앞지르자 그만 사울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를 추종하던 반체제 사범, 우범자, 그들의 가족과 함께 동굴이 많은 사해(死海) 서쪽의 광야 지대로 피신한다. 그러니 다윗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그날도 무사하기를 하나님께 빌고 그때까지 그와 부하들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을 것이다.

 

양재 온누리교회의 서초B 공동체를 담당하는 이한규 목사는 오늘 아침 순장(다른 교회에서는 구역장이라 함)들이 순 예배(구역예배)를 드릴 때 유의할 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주셨다. 즉, 순원들과 시편 57편을 가지고 QT[1]를 하면서 자신의 신앙생활에  다음 사항을 적용해보라고 하셨다.

 

^ 양재 온누리교회 서초B 공동체 개강예배에서 설교하는 이한규 목사

 

3월 14일 QT 시간에 우리는 다윗이 우리야 장군의 아내인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몬 죄를 범했다가 나단 선지자의 질책을 듣고 회개하는 시편 51편을 읽었다. 이 일은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왕궁에서 편안하게 지낼 때 일어났다.

이와 같이 성경은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이 가장 편안하게 지낼 때 죄악에 빠질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마찬가지로 다윗이 사울왕과 그의 정예용사 3천명에 쫓겨다닐 때 하루하루가 위험하고 절박하였음에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올렸다. 시편 57편은 1~11절 가운데 다윗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하나님께 연신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는 게 다섯 절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여섯 절로 분량이 더 많다. 이는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실 것임을 굳게 믿고 찬양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언제 하나님을 찬양하셨을까.

이 일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고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실 때 있었다. 제자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미하셨으나(마태복음 26:30, 마가복음 14:26) 자신이 어떻게 배신을 당하고 또 고난과 죽음을 맞게 될지 알고 계신 상황이었다.

 

사도 바울 역시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옥에 갇혔을 때 한밤 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사도행전 16:25).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2]에 갔을 때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그들을 보고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전하러 온 분"이라며 떠들자 그 귀신을 예수의 이름으로 몰아낸 일이 있었다. 그러자 점을 치는 대가로 돈을 벌던 여종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빌립보 관헌에게 고발하여 빌립보 감옥에 갇힌 터였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한밤 중에 기도를 하며 찬양을 하자 돌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렸다. 죄수들이 다 도망친 줄 알고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자결하려 할 때 옥 안에 있던 바울이 그를 만류하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 결과 빌립보에 예수를 믿는 교회가 처음 세워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다.

 

* 사도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빌립보 감옥 터. 사진출처: 크리스천투데이, 2023.6.14.

 

시편 57편을 보면 고난이 변하여 찬양과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다음 세 가지의 말을 통해서 일어난다.
첫 번째는 1절에서 하나님께 피난처를 구한다(take refuge)는 고백이다.
두 번째는 3절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사랑(love)과 변함없는 신실하심(faithfulness)을 보내신다는 믿음이다.
세 번째는 7절에서 그의 마음이 확정되었다(My heart is steadfast)는 선언이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 상황 속에서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이, 또 사도 바울이 찬양을 한 것은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식이 위험에 처했을 때 부모로서 선뜻 자기 생명이라도 내어 놓을 생각을 한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것은 인간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자기의 몸이라 할 수 있는 독생자를 희생제물로 내어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시편이 대부분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임에도 57편은 이례적으로 탄식하는 시와 찬양하는 시로 나뉘어 있음을 본다.  여기서 전자가 다섯 절이고 후자가 여섯 절이라는 점에서 다윗은 찬양에 더 비중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엔게디 광야에서는 다윗과 그들의 부하가 숨어 있는 동굴에 많은 병사를 이끌고 다윗을 잡으러 온 사울왕이 용변을 보러 들어 왔을 때 다윗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사울왕을 처치하고 더 이상 쫓김을 면할 수 있었음에도 사울왕의 옷자락을 칼로 베는 것에 그쳤다. 다윗으로서는 선지자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왕을 죽일 수 없었고, 사울왕에 이어 그도 왕이 될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구원을 확신하는 이상 지금 당장 형편이 어렵더라도 하나님은 피난처를 제공하시고 하나님이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실 거라는 믿음을 마음 속에 확정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오늘 QT한 내용을 실제 나 자신의 생활에 적용해 보았다.

학교를 마친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억울한 처지에 놓인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하였음에도 사법시험에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前 직장에서는 입사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어진 것을 한탄하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 돈 들이지 않고 유럽과 미국에서 유학을 했고 누구나 선망하는 뉴욕 주재원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 나중엔 대학교수가 되어 정년까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자격이 없음에도 과분한 영예를 얻은 것을 하나님의 은혜(grace)라고 한다. 은퇴 후에 평온한 생활[3]을 하게 된 것을 당연히 여길 게 아니라 이러한 순간에도 교만에 빠져 실족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Note

1] QT(Quiet Time)란 매일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적용함으로써 영적 성숙을 도모하고 다른 성도들과 나누는 것을 말한다. 온누리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두란노의 월간지 「생명의 삶」(Living Life)을 가지고 QT를 생활화하는 것을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  

2] 빌립보는 오늘날 발칸 반도의 불가리아 제2의 도시인 플로브디프(Plovdiv, 옛 지명은 Philippopolis)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인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 왕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였다. BC72년 로마의 공격을 받았고 AD46년 클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제국의 트라키아(Thracia) 속주로 편입되었다. 빌립보 유적지에는 로마 시대와 비잔티움 시대의 건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1914년부터 그리스와 불가리아 정부의 후원 아래 데살로니가의 아리스토텔레스 대학 팀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이 이루어졌다. 빌립보 고고학 박물관에는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당시 번영하였던 로마 문명의 자취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 불가리아 플로브디프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극장. 출처: 나무위키, 플로브디프.

 

3] 믿음의 조상 가운데 야곱은 그가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낳은 요셉이 국무총리가 된 이집트로 가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낸다. 그가 이집트의 바로왕을 알현하러 갔을 때 "130년 간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술회한다.

야곱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형 에서와의 장자권 다툼, 외삼촌 라반의 농장에 피신을 가서 일한 것, 그곳에서 4명의 아내를 맞아 열두 아들을 얻고 큰 재산을 모았음에도 고향에 돌아올 때는 형 에서와 갈등을 빚고 또 현지 주민들과도 경계하는 삶을 살았던 것, 자기 자식들 간의 불화로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은 줄로만 알았으나 10여년 만에 외국에서 출세한 요셉의 초청으로 이집트 고센 땅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을 능사로 알았고 그 자신 역시 속임을 당하면서 살아온 것이 회한(悔恨)으로 남았다. 그리하여 야곱은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고 요셉을 비롯한 자식들에게 그의 진심을 담아 예언과 축복의 말을 남겼다(창세기 48, 4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