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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s] 학술논문의 영역(英譯)과 하이쿠(俳句)

Onepark 2023. 8. 17. 09:30

지난 주말에 백제의 왕도(王都) 부여에 다녀온 인상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친을 만들고 소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은퇴한 후에도 'Staying alive' 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내가 전부터 팔로우하고 있는 경희대 이경전 교수가 아주 유용한 팁을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 이 교수가 인공지능(AI)에 관한 논문을 해외학술지에 기고하기 위해 AI 번역기를 유용하게 활용했다는 경험담을 올린 것이었다.

내가 재직할 당시 경희대 이과 및 공학 분야에는 스타 교수님이 몇 분 계셨다. 디스플레이 공학의 장전 교수, 원자력공학의 정범진 교수, 생물학의 유정칠 교수와 함께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KAIST 출신의 지니어스 이경전 교수를 꼽는 데 이론이 없었다.

 

*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르는 혹등고래(humpback whale). 사진출처: Green Bliss

 

I.  AI 번역기의 활용 팁

다음은 이경전 교수가 해외 학술지에 투고하기 위해 영어로 논문을 작성하면서 AI 번역기 DeepL과 ChatGPT-4를 유용하게 활용했다는 매우 솔직한 경험담이다.

 

[나는] 아예 논문을, DeepL에 놓고 썼다. 한글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논문을 쓰면, DeepL이 실시간 영어 번역을 한다. 영어 번역이 어색하면, 한글이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해서 영어 한 문단이 나오면, 그것을 ChatGPT-4에다 넣고 Rephrase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ChatGPT-4가 좀 더 Fluent하게 바꾸는데, 좀 오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프롬프트로 조절했다.

너무 많은 도움을 인공지능으로부터 받았는데, 사용한 프롬프트를 몇개 공개해보면 이렇다.

- "Rephrase."

- "위 논문 4개를, 실제 논문에서 인용할 때 저자명과 연도만 표시되는 형태로 만들어줘."

- "위 논문 제목에서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봐. 없으면 안해도 돼. 더 향상될 수 있다면 제안해줘."

- "위 논문 abstract에서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봐. 없으면 안해도 돼. 더 향상될 수 있다면 제안해줘."

- "Academic Paper로서의 Formality를 갖출 수 있게, 위 내용의 변경이 필요하다면 제안해봐. 필요없으면 안해도 돼."

"Academic Paper로서의 Formality를 갖출 수 있게, 위 내용의 변경이 필요하다면 제안해봐. 필요없으면 안해도 돼. 없애야 할 문장이 있다면 그 부분을 표시해주고."

- "왜 이리 느려?"

- "위 논문 스타일대로 아래를 정리해."

- "위에서 Anonymous로 시작하는 것만 남겨."

- "Which one is better?"

- "Slightly rephrase in the same length or shortly."

- "Rephrase formally for academic paper."

- "Rephrase shortly."

 

그리고 오늘 투고 직전에는 DeepL을 써서 한글로 번역을 하고 읽어보면서,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영어를 고치고, 새 문장은 한글로 써서 영어로 만들고, Rephrase → Academic formality 과정을 거쳤다.

GPT-4에 위 글을 넣었더니,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우선 지난 한 달간의 노력으로 논문을 투고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논문 작성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므로 자신을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DeepL과 Chat GPT-4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노하우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네요!

이미 아주 훌륭한 방법을 개발하셨지만,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추가적인 몇 가지 제안을 드려보겠습니다:

 

o Peer Review 이용 :

친구나 동료, 지도교수님 등에게 초안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논리적으로 연결이 약한 부분 등을 지적해 줄 수 있습니다.

o 전문가에게 교정 요청 :

전문가에게 영문 교정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논문의 질을 한층 높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o 다양한 도구 활용 :

Grammarly와 같은 다른 문법 검사 도구를 함께 사용하여 문장의 정확성을 더 체크해 볼 수 있습니다.

o 학술적 어휘와 표현 참고자료 활용 :

학술 논문 작성을 위한 어휘 및 표현 가이드북이나 웹사이트를 참고하면, 더 전문적인 어휘와 표현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o 일정 시간 후에 다시 읽어보기 :

논문을 일정 시간 두고 나서 다시 읽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참 논문을 작성할 때는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더 명확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o 서지 정보 관리 도구 활용 :

Zotero나 Mendeley 같은 서지 정보 관리 도구를 활용하면 인용문헌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이 도구들은 논문 형식에 맞춘 인용문헌을 자동으로 생성해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법들이 논문 작성 과정을 더욱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만들어 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논문 투고를 축하드리며, 은 결과를 기원합니다! 😊

 

이경전 교수의 신문 기고문

가상인간ㆍAI가 일상화하는 시대에 필요한 법ㆍ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망자의 노래나 얼굴을 기술로 되살릴 수 있는 권리는 누가 가질 것인지, 가짜를 진짜로 속이는 문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 여러 쟁점이 나올 수 있다.

이경전 교수는 “예술가나 가수, 연예인들이 목소리나 외모 등에 대한 권리를 사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명확하게 정해놓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위조화폐를 강하게 단죄하듯 가상인간ㆍAI로 진짜인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도 전에 학술지 편집을 하면서 구글 번역기를 써서 영문초록을 작성한 논문 저자에게 가차없이 지적을 한 바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상 회화는 몰라도 법학논문을 번역기에 맡길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2022년 말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과 DeepL 같은 새로운 AI 번역기가 등장하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이에 따라 나 역시 금년 3월부터 KoreanLII의 기사 및 판례를 영어로 번역할 때 일차로 DeepL 같은 번역기를 쓰고 그 대신 Fine tuning에 공을 들이기로 했다. 이제는 글을 쓸 때 타이프라이터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변호사시험의 답안작성에 있어서도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다. 외국어 번역이 필요할 때 전에는 전문 번역사에게 의뢰했으나 지금은 AI 번역기를 쓰는 게 대세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경전 교수의 팁은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II. 일상 생활 속의 하이쿠

며칠 전 Netflix를 통해 영화 <The Whale>(2023)을 보았다.

우리에게 영화 <미이라>(The Mummy, 1999)로 친숙한 브렌든 프레이저가 그동안 건강과 사생활 문제로 활동을 중단했다가 모처럼 재기한 영화라서 화제가 되었다. 그의 삶의 일단을 보여주는 영화로 2023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받게 되었으니 볼 만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가 생각났다. 거기서도 초고도 비만의 어머니가 등장하는데 문제 투성이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는 착실한 아들 조니 뎁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워 마음이 저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어머니 시신을 크레인으로 옮겨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화장(火葬)을 하겠다며 모든 가구를 치우고 집에 불을 지른다. 이 영화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발달장애 동생 역의 아역 배우로 나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을 들은 후에도 영화관에 가서 보는 게 주저되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초고도 비만이라 학생들과의 대면을 꺼리는 대학 교수로 나오고 동성애 문제, 사이비 종교 이슈가 제기되는 등 골치 아픈(?) 내용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름밤에 더위를 잊고 몰입해서 본 이 영화는 시종 연극무대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특별히 법적인 이슈를 찾기 어려워 따로 영화평(영화 속의 법률 이야기)을 쓰는 대신 인상적이었던 장면만 소개하기로 한다.

 

그것은 8년 만에 만난 딸이 고등학교를 퇴학 당할 상황이라고 하자, 엄마와 지기를 버리고 떠났던 아빠는 학교 선생님에게 개전(改悛)의 정이 드러난 반성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써서 제출하라며 새 공책을 건넨다. 몇 자 끄적거리고 아빠에 돌려준 공책을 보고 주인공은 숨이 넘어갈 듯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한다.

문제아 딸이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놓았는데 영어 에세이를 가르치는 주인공은 그 안에서 5-7-5 17음절의 시 - 영어로 된 하이쿠(俳句, haiku)를 발견한 것이다. "너는 정말로 특별하다. 시를 쓰는 데 소질이 있구나!"

 

This apartment smells.
This notebook is retarded.
I hate everyone.

이 집 냄새나/ 이 공책 개 허접해/ 전부 다 싫어

 

해당 자막에는 영화 번역가 황석희 씨가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 위와 같이 재치있게 5-7-5음절의 한글 하이쿠로 옮겨 놓았다.

나 역시 기회 있을 때마다 나름대로 국ㆍ영문 하이쿠를 써본 터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 드러내 놓고 시 구절, 특히 일본의 단시(短詩)를 소개한 영화는 <패터슨>(2016), <파리로 가는 길>(2017) 이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난 뒤 그 잔상이 오래 남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전전반측하며 국ㆍ영문으로 하이쿠를 지어 보았다.

정식 하이쿠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말(季語)이 나와야 하는 법인데 이 경우 인생의 '황혼기'=연극의 '마지막 장면'으로 치환할 수 있겠다 싶어 두 편의 하이쿠로 다듬었다. 

 

울고 웃는/ 연극 같은 우리 삶/ 최선을 다하리

Our life is but a play

full of laughter and crying.

So, why not your best?

마지막에/ 일 없이 떠나면/ 얼마나 허무할까!

In the last scene,

If you leave stage with no action,

What a futile life!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외동딸로부터 원망을 듣기만 했던 초고도 비만의 아빠는 마치 멜빌의 <모비 딕>에서 거대한 백경(白鯨)이 솟구치며 최후를 맞는 것처럼 두 발로 일어서서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

"난 내가 사는 동안 한 가지라도 잘했다는 것을 알고 싶을 뿐이야!" (I need to know that I have done one thing right with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