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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충만] 늦여름 숲속 풀벌레 소리의 대향연

Onepark 2019. 8. 16. 22:00

아침저녁으로 바람결이 서늘해지고 해도 많이 짧아졌다.
8월 16일 아침 강아지를 데리고 뒷산에 올랐다.

 

늦여름의 숲속에선
온갖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짝을 부르는 매미 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 소리 . . .

In the late summer forest,
Various sounds are heard
From cicadas, crickets to
Autumn-forwarding wind.

 

* 뒷동산 숲속의 매미 소리, 계절이 지나가는 소리

그날 오후 우연찮게 케이블에서 영화 "파리로 가는 길 (원제: Paris Can Wait, 일본에서는 ボンジュール、アン)을 보았다. 프랑스 칸에서 파리 쪽으로 시골 길을 달리던 차 안에서 여주인공(Diane Lane)이 차창 밖에 비친 초승달을 보고 감탄하며 말한다. (YouTube의 영화 장면, BGM은 G.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산드 3악장 시실리엔느)

 

When I see the first new moon,
Faint in the twilight,
I think of the moth eyebrows
Of a girl I saw only once.

황혼에 창백한 초승달을 보았지
한 번 본 소녀의 눈썹이 생각났네

ふりさけて三日月(みかづき)見れば
一目見し人の眉引(まよびき)思ほゆるかも

- 오토모노 야카모치 (大伴家持, 733年), 萬葉集 중에서

 

다큐 영화 전문인 엘레노어 코폴라(Eleanor Coppola) 감독은 영화 속의 프랑스 요리와 와인은 물론 일본에 관한 지식도 해박한 모양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여 주인공의 동반자인 유명 셰프(Arnaud Viard)의 입을 빌려 2012 빈티지의 Chateauneuf du Pape, Hermitage, Cuvee Silex 와인을 추천하고 있다.

 

내친 김에 일본의 고대 가사집인 만엽집(万葉集, Manyoshu)에서 한두 편 더 찾아보았다.

 

鳴る神の 少し響みて
さし曇り 雨も降らぬか
きみを留めむ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당신을 붙잡을 수 있을텐데

A faint clap of thunder.
Perhaps the rain comes.
If so, will you stay here with me?

 

鳴る神の 少し響みて
降らずとも
我は留まらむ 妹し留めば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데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그대가 있으면 나도 함께 있을테요

A faint clap of thunder.
Even if the rain comes not,
I will stay here, together with you.

- 만요슈(万葉集 第十一巻 旋頭歌) 2513, 2514

 

예정도 없이 파리 가는 길
초저녁 차창 밖에 스친 초승달
만엽집에 실린 짤막한 와가(和歌).

 

여주인공이 읊조린 시 구절이 묘하게도 이 영화의 예술적인 품격을 높여주었다.
다른 장면과는 달리 스토리 전개나 타이밍에 비추어 초저녁 초승달을 영화 화면에 담기는 정말 어려웠을 텐데……

 

이와는 달리 처음부터 앞서 소개한 만엽집의 와가를 놓고 만든 영화도 있다. 비가 오는 계절의 공원 연못가의 정자에서 우연찮게 만나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다.

신카이 마코토(新海 誠)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言の葉の庭(언어의 정원)』은 비가 내리는 공원의 아름다운 초록 색상과 남녀 주인공의 미묘한 심리상태를 두 편의 와가를 통해 잘 묘사하였다.

우리나라에도 감성충만한 시가 적지 않으니 이처럼 새로운 장르의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