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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바이칼호 알혼섬 탐방기

Onepark 2019. 7. 24. 09:00

7월 24일(수) 아침 7시 이르쿠츠크의 호텔을 떠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Lake Baikal)의 제일 큰 섬인 알혼섬(Olkhon Island)으로 향했다. 우리가 알혼 섬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알혼섬의 독특한 지형 때문이다. 초목이 드문 황무지 군데군데 호수쪽으로 바위가 돌출해 있어 샤머니즘이 아니더라도 도(道)를 닦는 사람, 山기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천지인 합일(天地人合一)을 잘 이룰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남해의 보리암, 그리스의 델포이처럼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들한테는 한민족의 시원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빙하시대가 끝나고 호수바닥의 용천수 덕에 얼지 않았던 바이칼 호수가 범람하자 원주민 코린 브리야트족이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일파는 남하하여 몽골 대평원의 유목민이 되고 일부는 동쪽으로 이동하여 한반도 농경지에 정착하였으며, 다른 세력은 육지가 연결되어 있던 베링 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이것이 몽고반점이 있는 몽골로이드 인종의 DNA 이동경로이다.

 

* 출처: 혜초여행사

 

울란우데를 떠나 열차편으로 이르쿠츠크에 당도한 우리는 교외에 있는 조그만 호텔의 의외로 큰 방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한 후 장도에 나섰다. 이곳의 주된 이동수단은 큰 짐 몇 개와 10명 이상의 사람이 탈 수 있는 미니버스인데 일정한 노선을 다니지만(버스 운행 중 계속 정류장 안내가 나옴) 손님들이 원하면 전세로도 운행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러시아식 마을버스 + 타다와 같은 공유차량이라고 할까?

미니버스 한 대는 외벽과 창문이 광고판으로 도배되어 의자는 안락했지만 바깥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까지 가는 6-7시간 동안 시베리아의 대평원을 구경하려면 바깥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도심을 빠져나온 2대의 미니버스는 위의 지도에서 보듯이 일로 목초지대 평원을 가로질러 달렸다.

버스로 4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거리로 여름철 성수기에는 알혼섬을 찾는 사람과 차량이 많기에 일찍 출발하였던 것이다. 중간 휴게소에서 한 번은 쉴 수 있으나 알혼섬 가는 페리보트를 타려는 차량과 승객들이 장사진을 이루므로 일찍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페리보트 선착장에는 이미 많은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으나 우리가 탑승한 미니버스는 선박 운행사와 특수관계가 있는 듯 기다리지 않고 바로 승선할 수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광고판 미니버스의 차주겸 기사가 알혼섬 브리야트 족 유지와 아주 가깝다고 했다.

파아란 하늘과 바다, 황량한 산 같은 풍광과 분위기가 몇 년 전 그리스 산토리니 섬에 들어갈 때와 아주 흡사했다. 배를 탄 시간은 20분에 불과했다. 당연히 연륙교를 건설하면 이런 불편이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알혼섬에 들어가보니 여름 한 철 관광객이 몰려들면(overtourism) 이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나머지 계절은 시설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였다. 얼마전에 본 실사영화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나온 지니 같은 모습의 구름을 보고 문득 소원을 말하고 싶었다.

황량하기 그지 없는 알혼섬의 비포장 길을 한 시간 반 가량 달려 이윽고 후지르(Khuzhir) 마을에 도착했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길은 비포장 상태이고, 최근 들어 관광객들을 위한 통나무 게스트 하우스가 많이 들어섰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우선 늦은 점심부터 해결해야 했다. 연유에 찍어 먹는 크레페와 으깬 감자, 그리고 걸죽한 고기 스프를 그런대로 맛있게 먹었다. 고추장 생각이 났지만 매운 맛 핫소스로 대신했다.

 

 

더운 물이 나오는 샤워룸까지 있는 통나무 게스트 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문명과 단절되어 있는 알혼섬까지 와서 WiFi 비밀번호를 묻고 다니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패스워드는 러시아의 호텔 체인인 priboy.com이었다. 그럼에도 인터넷은 느려터지고 거의 불통이었다. 5시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우리는 대망의 부르한 바위(Cape Burkhan), 일명 샤먼 바위(Shaman's Rock)를 찾아 나섰다.

 

 

풍수지리나 무속신앙의 문외한일지라도 이곳 지형은 정말 특이했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흙으로 변한 큰 언덕 한쪽 호숫가에 뾰족뾰족한 바위가 솟아 있는 원뿔 모양의 큰바위가 돌출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알혼섬 토산에
불쑥 솟은 바위는
응축된 지력(地力)

 

하늘 향해 외치는
온갖 피조물의
간절한 기원(祈願)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소망이 제 각각인 것처럼 바라보는 풍경도 제 각각일 것이다. 백사장과 유람선, 수상 스포츠에 눈이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끝이 뾰족한 샤먼 바위 같은 13개의 신목(神木, 세르게)과 바위돌 앞에 동전을 던지거나 오방색 천을 매달며 복을 비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에게는 아주 신성하고 우리나라의 서낭당 같은 것이지만, 크리스천들에게는 잡신과 우상을 숭배하는 가증한 것으로  다르게 보이는 현장이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을 드나드는 관광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적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목사님의 지도 아래 기타 반주로 여러 곡의 찬양을 부르고 큰 소리로 열방을 향한 중보기도를 올렸다.

 

나로서는 위기에 처한 우리 민족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선진국이 될지 아니면 포퓰리즘이 만연한 그렇고 그런 나라가 될지. 남북관계와 국제정세 등 조용히 생각할 거리가 아주 많았다. 하지만 목사님이 개인적인 기도와 명상은 일체 하지 말라고 하신 데다 다음 크루즈를 탈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미니버스 운전기사의 재촉을 받으며 우리 일행은 알혼섬 크루즈 선착장으로 향했다.

 

 

저녁 7시에 출항하는 유람선에 승선했다. 우리 일행 말고도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유람선은 알혼섬 가장자리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북동쪽으로 올라갔다.

배를 타고 바라보니 왜 샤먼 바위를 부르한 곶(Cape Burkhan)이라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알혼섬의 언덕에서 한참 돌출해 나와 있는 원뿔 모양의 뾰족한 바위는 그 모습 자체 만으로 뭔가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스의 델포이는 수많은 도시국가(폴리스)들이 서로 경쟁하며, 다투고 공존하고 있었기에 델포이의 무녀들에게는 국가의 안위와 위정자의 앞날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그 대답이 이현령 비현령(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두루뭉실하였기에 그 나름 적중률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쟁이라든가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오는 유명한 델포이 신탁 이야기다.

반면 평원 지대와 호숫가에 사는 브리야트인 샤먼들은 이민족과의 전쟁보다도 다음 겨울의 혹한에도 살아남을지, 말을 타고 가다가 변고를 당하지나 않을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 자연히 개인 기복신앙이 될 수밖에 없었고 더욱 간절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문득 우리가 조금전 빙 둘러서서 중보기도를 할 때 간구했던 성령님이 저 바위 위에도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일행 중에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것만이 성령의 표지는 아닐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랑과 기쁨, 평화,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는 아홉 가지 열매로 인격과 품성이 갖춰진 사람이 진정 성령에 매인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바이칼 호숫가로 석양이 지고 사위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선유를 마치면 9시이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므로 알혼섬을 더 이상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숙소에서 저녁 요기를 하고 나왔지만 뱃속이 출출하여 우리는 러시아식 꼬치구이 삼겹살 샤슬릭을 음료수와 함께 사들고 숙소 식당에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It was amazing to see one hundred dollar bill create such a magic-like banquet!

자연히 목사님이 주재하는 간담회가 열리게 되어 우리는 각자의 소감을 밤 늦게까지 발표하고 서로 격려하였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온라인 백과사전 KoreanLII.or.kr을 같이 만들 동역자(collaborator)를 구하는 일과  부르한 바위로 표출되는 "Aspiration (열망, 염원)"[KoreanLII에서 찾아보기]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그러니 알혼섬 북단에 위치한 또 다른 관광명소 '사랑의 바위'는 가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사랑의 바위는 멀리서 보면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어 사랑을 하는 젊은 남녀가 꼭 찾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을 가려면 러시아 군용차를 개량한 4륜구동의 우아직을 타고 가야 한다. 길 없는 길을 종횡무진으로 달린다는 투박해 보이는 차량이다. 우리는 직접 타 보지는 못하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이르쿠츠크로 돌아가는 길에 선착장 앞에서나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