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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KBS음악실 신년음악회 'Joy'

Onepark 2024. 1. 2. 12:00

2024년 새해가 밝았다.

1월 2일 KBS 1FM 방송은 피아니스트 김주영 씨가 진행하는 KBS음악실에서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새해에 기쁨과 활기를 안겨줄 음악회이므로 오늘의 프로그램 타이틀도 'Joy'였다.

김주영 마스터가 직접 가브리엘 포레의 무언가 로망스를 연주함으로써 신년음악회의 막을 열었다. 금년이 포레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의미있는 선곡이었고, 아주 감미로운 멜로디가 금년엔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이날은 김주영 씨가 1월 중 <살롱 드 피아노>  수요 프로그램의 마스터가 되어 피아노 반주 겸 진행을 맡았다. 신년 벽두에 스케줄이 바쁜 6명의 젊은 연주자들과 협연을 가진 게 이채로웠다. 신년벽두부터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슬라브 무곡'[1], '헝가리 무곡'[2] 같이 신나는 곡들을 선사했는데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인 2020년 2월 김지윤 바이올리니스트 등 같은 멤버들과 연주했던 곡목이라고 소개했다. 김주영 마스터는 코로나 팬데믹의 난국을 무사히 헤치고 나와 이렇게 같은 곡을 함께 연주하는 것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작년 가을 KBS 여의도 사옥 1층에 새로 마련한 스튜디오에 초대받은 청취자들이나 일반 애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경우에도 정년을 맞자마자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던 터에 코로나 방역수칙으로 누구와도 만나기 어려워 마치 가택연금을 당한 것 같았다. 우리 모두 살아남았으므로(survival)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joyful).

 

* KBS 클래식FM 김주영 마스터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연주를 위해 급조한 6중주 앙상블. KBS 보이는 라디오에서 캡쳐.
* 김주영 피아니스트가 KBS 여의도 본관 1층의 스튜디오에서 방청객들 앞에서 미니 콘서트를 열었다.
* 왼쪽부터 플룻 서지원, 클라리넷 김민우, 바이올린 김지윤 연주자.
* 왼쪽부터 바이올린 김지윤, 비올라 이기석, 더블베이스 손치호, 첼로 양우리 연주자.

 

시인이라면 이런 기분,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의문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역시 같은 KBS 1FM <문유선의 가정음악>에서 소개한 문태준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공작이 꽁지 무늬를 바꾸는 사이"라는 제목부터 아주 특이한 시였다.

공작 수컷이 암컷과 구경꾼들에게 뽐내기 위해 매우 화려해 보이는 꽁지 깃털을 활짝 펼치는데 여기에 무슨 곡절이 있단 말인가?

시를 몇 번이나 읽어도 시인의 속마음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늘 해왔던 것처럼 단어 하나 하나 영어로 옮기다보니 저절로 의미가 통하는 것 같았다.

 

* "공작이 . . ." 수록된 시집 <그늘의 발달>, 문학과지성사, 2008.

 

 

공작이 꽁지 무늬를 바꾸는 사이 - 문태준

While the Peacock Changes Butt Patterns  by Moon Tae-jun

 

내가 슬그머니 무엇을 했는지 사소하게 다 말할 수 없지

I can't tell you all the little things I've been stealthily doing.

 

신문을 바꾸고 파지를[3] 내 생각을 바꾸고 안경을 바꾸고 거래 은행을 바꾸고 밥집을 바꾸고 맥주를 바꾸고 사랑을 바꾸고 이불을 바꾸고 꽃병의 꽃을 바꾸고 공중목욕탕을 바꾸고 멱살을 잡는 사람을 바꾸고 정거장을 바꾸고 병원을 바꾸고 모자를 바꾸고 모자 같은 말투를 바꾸고.......

그걸 항아리라 믿고 항아리를 씻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그걸 벌통이라 믿고 벌통을 새로 내었다고 고백 할 수밖에

I changed the newspaper subscription, I changed my thoughts, I changed the eye glasses, I changed the main bank, I changed the restaurant, I changed the beer brand, I changed the beloved, I changed the bedclothes, I changed the flowers in the vase, I changed the public bath, I changed the person who grabs the muzzle, I changed the bus stop, I changed the hospital which I visited, I changed the hat, I changed the way of talking like a hat ….

I have to confess that it was a jar that I washed believing so.

I can only confess that I put out the hive believing it to be a hive.

 

내가 모처럼 무엇을 했는지 사소하게 다 말할 수 없지

I can't tell you all the little things I did for a while.

연못 속 버들 그늘 속 오리처럼 갇힌 나로서는

I've been trapped like a duck in the shadow of the willows in a pond.

 

* 호주 퀸즈랜드 록햄프턴 동물원의 공작새가 암컷 앞에서 꽁지 깃털을 펼쳐 보이며 구애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Naver 블로그 영보의 하루.

 

시인(화자)의 비교 대상은 암컷에 구애하기 위해 꽁지 깃털을 세우고 화려함을 자랑하는 수컷 공작새이다.

그는 공작새를 부러워하다가 그를 따라 하기로 작정한다. 

 

우선 그가 구독하던 신문을 바꾸고, 그 신문기사를 읽고 오락가락하던 생각을 바꾸고, 신문 읽을 때 쓰던 안경을 바꾸고, 생활비를 꺼내쓰던 은행계좌가 있는 은행도 바꾸고, 식사를 해결하던 밥집도 바꾸고, 식사할 때 마시던 맥주 브랜드도 바꾸고, 가끔 맥주를 같이 마셨던 연인도 바꾸고, 그와 함께 덮었던 이불도 바꾸고, 침대 옆 꽃병의 꽃도 바꾸고, 때를 밀기 위해 다니던 공중목욕탕도 바꾸고, 일하다가 종종 멱살잡이하던 동료도 바꾸고, 일터에 오가던 버스 승하차 정류장도 바꾸고, 몸이 아플 때 찾아갔던 병원도 바꾸고, 병원 갈 때 쓰던 모자도 바꾸고, 모자를 쓸 때 헛기침하던 말투도 바꾸고 등등. 자기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생각나는 대로 바꾸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의 생업(生業)인, 항아리에 식품을 오래 저장하기 위해 항아리를 씻고, 또 양봉(養蜂)을 위해 새로 벌통을 내놓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게 된다. 연못 한 켠의 수양버들 그늘 아래 꼼짝 않고 지내는 오리의 신세였다.

저 땅 위에서 암컷에 뽐내기 위해 꽁지 깃털을 활짝 펴는 공작새를 부러워하기 앞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본분을 알고 연못 밖으로 나오던지, 수양버들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영어로 번역을 마친 영역 시를 되풀이 읽으며 본래의 시작(詩作) 의도를 제대로 살렸는지 살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해를 맞아 "OO를 바꾸자"고 결심한 것이 다른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를 따라 하려고 한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겉모습에 현혹되어 내가 지금 어떤 선입견에, 고정관념에, 습관적인 사고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로 인해 일어날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즉, 새해 새로운 결심도 좋지만 OO를 바꿈으로써,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남을 부러워하고 그를 따라서 하기보다는 일단 자기가 매몰되어 있는 기존 고정관념, 생활습관에서 탈피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Note

1] 슬라브 무곡을 작곡한 드보르작(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1904)하면 연상되는 것은? 그가 고액 연봉을 받고 미국 국립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곡한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업을 잇기 위해 도축업 면허를 취득한 것, 새로 등장한 기차의 속도와 메커니즘에 열광한 것, 보헤미아의 민속음악에 심취하여 그 선율과 리듬을 작곡에 반영한 것도 아주 놀라웠다. 그리고 브람스가 무명의 체코 음악가에게 천재적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드보르작이 작곡한 슬라브 무곡이 출판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2] 1853년 5월 20세의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헝가리계 바이올리니스 레메니의 제안에 따라 그의 연주 여행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여행을 다니던 틈틈히 레메니가 연주하는 집시 음악을 피아노 연주용으로 틈틈이 편곡해 두었다. 같은 해 10월 슈만 부부와의 만남 이후 브람스는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869년 그가 15년 전의 헝가리 무곡집을 악보로 출판하였을 때 크게 인기를 끌자 레메니가 브람스를 상대로 그의 연주 음악을 표절한 것이라며 소를 제기했다. 이에 맞서 브람스도 출판권 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마침내 브람스의 승소로 결론이 났다. 법원 판결은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춤곡은 원작자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브람스도 헝가리 무곡은 그가 편곡자임을 밝혔는데 (1880년에 발간된 악보집 3권에 들어 있는 헝가리 무곡 11번, 14번, 16번은 브람스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짐) 지금까지도 헝가리 무곡 총 21곡은 작품번호가 없는 (Without Opus Number) 브람스 곡으로 남아 있다.

 

3] "공작이 . . ." 시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대상을 차례차례 바꾸는 구조이므로 파지(破紙)를 바꾼다면 동사형 '바꾸고'로 받아야 하는데 말이 안된다. 그 다음 내 생각을 수식하는 말이라면 파지(把持: 손에 움켜쥠)를 또는 퍼지를로 해석해야 하지만 역시 뜻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어로 번역할 때에는 "파지를"은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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