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더니 마침내 처서 지나서도 계속되던 열대야도 끝났다.
역대급 여름을 환송하듯 산과 들에는 들국화가 피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화과에 속하는 가을꽃은 여러 종류이다.[1]
들국화로 많이 알려진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 산국 등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유독 과꽃을 좋아한다.
1953년 전쟁 통에 어효선이 시를 짓고 몇 년 후 권길상이 곡을 붙여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린 동요 "과꽃" 덕분이다.
과꽃 - 어효선
Gwaggot (Asters) by Eo Hyo-seon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The asters are blooming again this year.
They bloom beautifully all over the flower garden.
My elder sister loved gwaggot so much.
When they were in bloom, she used to stay in the garden.
과꽃 예쁜꽃을 들여다 보면
꽃속에 누나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지 온 삼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When I look into the beautiful flowers,
My sister's face appear in the flowers.
As I hear little from my sister after wedding,
I miss her so much in autumn.
뭐니뭐니 해도 우리나라의 자랑거리는 가을의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아래 들판에서 익어가는 오곡백과 사이로 추석을 앞두고
수확에 가슴 부푼 농부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빨간 고추잠자리일 것이다.
어느 초가을 날 - 김덕성
One Early Autumn Day by Kim Deok-seong
생글생글 웃음 짓는 햇살
파란 빛으로 유난히 빛나는 하늘빛
가을에 부는 소슬바람에서
초가을이 유혹한다
Via smiling sunbeams
In the sky that shines unusually blue, and
In the autumn breeze,
The early fall tempts us.
파란 하늘에 그림처럼
뭉게뭉게 떠오르는 하얀 뭉게구름
고운 날갯짓하는 빨간 고추잠자리
요염하게 유혹한다
Like a picture in the blue sky,
White fluffy clouds floating in the air, and
Red pepper dragonflies fluttering fine wings,
They're seducing us.
갈바람에 한껏 춤을 추며
제 세상 만난 듯 살랑대는 코스모스
들에서 보니 모두 멋진
한 폭의 가을 그림을 그린다
Dancing to the fullest in the breeze,
Cosmos are fluttering as if they met their world.
In the field, they are all wonderful
Painting a beautiful picture of fall.
풍작을 예고하는
풍요로운 가을 들판에서
그리운 고운사랑
그녀의 숨결을 듣는다
In the bountiful autumn fields
With good harvest foreseeable,
I miss my sweet love
Listening to her breath.
한국의 가을은 성묘의 계절이다.
가족들과 함께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한 해의 성과를 보고하고 가족애를 다지는 계기로 삼는다.
진도에 있는 친구의 산소를 찾아가는 길에 시인은 친구와 어울렸던 옛 시절을 생각하며 의도하진 않았지만 친구와 종종 들렀던 음식점에 들어간다.
우연찮게 마당 한가운데 피어 있는 과꽃을 보며 옛 생각에 잠긴다.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만났다 헤어지는 세상이치를 되새긴다. 술잔을 들어올리며 남은 삶을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어느 초가을 날 - 황동규
On an Early Autumnal Day by Hwang Dong-gyu
오랜만에 죽은 친구 고향 진도 찾아가는 길
해와 하늘이 너무 쨍쨍해
집과 길만 남고 모두 진한 하늘로 오른 날
김유신을 태운 말[2]처럼
나 몰래 차가 슬쩍 들린 밥집
(그와 함께 온 적 있었지,
그때도 참 되게 환했던 가을 날)
마당 한가운데 핀 과꽃들 향해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동그라미 그리며
공중에 멎어 있다.
무리 지어 핀 환한 꽃들 위로
고추잠자리 한 쌍 붙어 한참 돌고 있을 때
두 몸 떨어지기 전
한 바퀴만 더 돌라 한 바퀴만 더, 입술 새로 적시며
술잔을 높이 들 때,
세상 일 다 이렇다.
그들은 깜빡 떨어져 제 갈 데로 가고,
쟁그랑! [3]
On the way to Jindo Island, the hometown of my deceased old friend,
The sun and the sky are so bright.
The day when only houses and roads remained and everyone climbed into the dark sky,
Like the horse[2] that carried Kim Yu-sin,
My car sneaked by a restaurant with no notice.
(I once came here with my friend.
It was also a bright fall day.)
Toward the asters in the middle of the yard,
The thumb and forefinger of my right hand circled
Hanging in the air.
Over a cluster of bright flowers,
A pair of red dragonflies are circling together.
Before they fall apart,
One more turn, one more turn, my lips are freshly moistened.
As I raise my wine glass high,
That's the way it goes in this world,
They flicker off and go their separate ways.
My glass sounds Jangle ! [3]
잠시 숨 멈추고
가만 배꼽 밑에 힘을 준다.
When I pause for a breath,
I hold still, and tense under my navel.
한국의 가을은 너무 짧다. 금년처럼 늦더위가 오래 간 해에는 이 아름다운 계절이 순식간에 지나갈 것 같다.
시인은 추석을 앞둔 어느 달밤에 풀벌레 소리에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한다.
괘종 소리가 두 점을 쳤는데도 창밖에 달빛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금년 남은 기간에 해야 할 일을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몸을 뒤척인다.
초가을 - 황금찬
Early Autumn by Hwang Geum-chan
싸늘한 달빛이
석류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
Chilly moonlight
Is hanging on
the branches of the pomegranate tree.
며칠 전부터
숲 속에선
째 …째 … 풀벌레가 울고
Since a few days ago
in the forest,
Chirr... chirr... grasshoppers are crying.
벽에 걸린
녹슨 시계가
새벽 두 시를 치고
달이 걸렸던 자리를 옮기며
지금이 몇 시냐고
내게 묻고 있다
The rusty clock
on the wall
Strikes two in the early hours.
The moonlight on the wall moves, and
It asks me a question,
What time is it now?
Note
1] 우리가 정원 원예용이나 분재 관상용으로 키우는 노란 국화는 야생의 구절초를 모태로 개량을 거듭하여 키운 것이다.
과꽃도 한반도와 만주에 서식하던 것을 서양에서 개량하여 다시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2] 김유신은 가야계 화랑 출신의 신라 장군으로서 김춘추와 함께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청년시절 김유신이 기생 천관과 사랑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하자 어머니 만명 부인이 크게 걱정을 하였다. 그는 대오각성을 하고 천관의 집에 발길을 끊기로 했다. 어느날 그가 술에 취해 조는 사이에 그의 애마가 습관처럼 천관의 집으로 갔다. 이에 놀란 김유신은 말의 목을 베고 집으로 돌아갔다. 김유신은 그와 헤어진 천관이 스스로 목숨을 끓자 천관이 살던 집에 천관사(天官寺)를 지어 그녀의 명목을 빌어 주었다.
3] 시인은 진도 가는 길에 전에 친구와 들렀던 음식점에서 오래 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마당의 과꽃이 만발한 꽃밭 위로 고추잠자리 한쌍이 날아다닐 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리라는 것을 예상하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유명(幽明)을 달리한 옛 친구를 기리며 입으로 쟁그랑 술잔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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